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36)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236화(236/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236화
외전 7화. 이주
“슈퍼마켓이요?”
공녀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기야 외계의 존재, 그것도 귀족인 그녀가 슈퍼마켓을 알고 있을 리 만무했으니.
흑마법사 아우렐도, 카멜롯의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공간이지만, 타차원의 존재들에게는 상당히 생소한 개념일 터.
나는 간략하게나마 그 의미를 설명해주었다.
“수천 종류의 상품이 진열장에 한가득 쌓여있는 곳이야. 필요한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면서 돈을 내고 물건을 사가는 거지.”
“주군, 그거 마치······ 주군이 가지고 계신 아공간 같습니다.”
“개념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아.”
란슬롯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풀필먼트 시스템으로 구성돼 있는 아공간.
물류센터의 배송 시스템과 결합되긴 헸지만, 그 원형은 슈퍼마켓에도 닿아있었다.
“일단 되는지 한번 해보고.”
나는 곧장 거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다들 놀라는 기색이었지만, 이미 한차례 안전이 확인된 공간.
모두 한발짝 물러서며 내 앞의 길을 터주었다.
슈와아아악! 거울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꿀렁거리는 은색 표면이 나를 덮쳐들었고, 커튼을 지나쳐 온 것처럼 금세 거울 속 아공간에 들어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진열장에 놓인 입체 도형, 그리고 내가 출하했던 축구공과 농구공까지.
“일단은 선반부터.”
드르르르륵!
물류센터의 선반을 출하했다.
칸칸으로 이루어진 프레임 선반이 투명한 진열장 뒤로 죽 늘어섰다.
칸 하나에 축구공을 넣었다 뺐는데, 아니나다를까 선반에는 여전히 축구공이 그대로 들어있었다.
‘품목은 무한정 늘릴 수 있겠고······.’
복사 능력은 확인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출하’가 되는지를 확인해볼 차례.
나는 내 출하 스킬을 직접 사용하는 대신, 거울을 향해 직접 축구공을 던져넣었다.
슈욱!
슈우우욱!
한 번, 두 번, 그렇게 열 번 이상.
나는 거울이 축구공을 그대로 빨아들이는 것을 확인한 뒤, 곧장 거울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잘 나왔나?”
잠시 멈춰있던 풍경이다.
거울 주변으로 열 개 이상의 축구공이 흩어져 있었는데, 물건이 출하되는 순간만큼은 바깥에서도 시간이 흐르는 모양이었다.
란슬롯이 땅에 떨어진 축구공을 주우며 말했다.
“이러면 성공이로군요.”
“그렇지.”
조만간 차원 정거장이 들어설 장소다.
다차원 곳곳으로 운항되는 여객기가 배치될 터.
거기에 물자를 무한히 공급할 수 있는 아공간 창고까지 놓였으니, 머지않아 명실상부한 교통과 물류의 중심이 될 것이었다.
사라질 능력에 전전긍긍하며 공장처럼 미리 물자를 출하해 둘 필요도 없어졌다.
물론 한 가지 난관이 존재했다.
나 외에는 거울 속으로 누구도 들어갈 수 없었던 것.
공녀와 흡혈귀들은 물론이고, 망령화한 기사들마저도 거울의 표면을 뚫고 들어갈 수 없었다.
‘왜 나만 되는 거지?’
어쩌면 능력과 관련한 것일지도 몰랐다.
거울 속 풍경은 내 아공간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었으니.
하지만 초반 물자를 내가 채워 넣어야 한다는 것까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언제까지고 내가 거울 속에 머무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일평생 거울속에서 물건만 출하하며 살다 죽을 건 아니니까.
“자동화······. 자동화가 필요해.”
그 어느 때보다 팍스가 그리운 시점이었다.
녀석이라면 요구에 맞춰 딱딱 필요한 물건을 꺼내줄 수 있을 텐데.
큰 틀에서 보자면 거울 속 아공간에 내 물류센터의 시스템을 최대한 비슷하게 이식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규모가 작은 일도, 간단한 일도 아니었던 만큼 방법을 차차 고민해 보기로 했다.
“그럼··· 뭘 채워 넣으면 좋을까?”
상점 매대를 꾸리는 일이다.
무슨 품목을 넣을지 의견을 구했는데, 기사들은 물론 공녀와 아우렐까지 한우를 거론한 탓에 픽 웃음이 터져 나왔다.
‘뭐, 안 될 건 없겠지.’
거울 속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매일 같이 싱싱한 소고기가 거울 밖으로 튀어나올 터.
우리는 무궁무진한 상품들을 욕심스럽게 고르고 또 신중하게 배제하며, 머지않아 도래할 새 슈퍼마켓의 품목을 결정해 나갔다.
***
그렇게 한동안 우리는 관리국을 둘러보며 지냈다.
거울 위치를 기준으로 어디에 활주로와 격납고를 설치할지 등, 차원 정거장에 대한 계획이 꽤 구체적으로 수립되어 갔다.
‘그냥 마실 나가듯 쓸 생각이었는데······.’
생각했건 목적지는 레텔, 그리고 베로니카밖에 없었다.
다른 차원에 집이 있는 그들을 위해 왕래할 수단을 만들고자 했던 것.
약간의 틈을 벌렸을 뿐인데 벌컥 문이 열렸고, 이제는 다차원 전체가 왕래하는 차원 정거장을 설치하게 생겼다.
“잘 되면 좋겠지, 잘 되면 말이야.”
가장 확실한 반면교사는 상공회의소다.
포탈을 이용해 모든 차원에 다리를 놓았지만, 그 결과는 침략과 전쟁뿐이었으니.
다른 존재들과의 교류에서 새로운 관계와 화합이 형성되겠지만, 그 이면에는 다툼과 전쟁의 씨앗 또한 숨겨져 있는 법.
그리고 예기치 못하게 불쑥 튀어나오는 법이었다.
“쟤들은 누구지?”
복슬복슬.
새하얀 털뭉치들이 멀리서부터 다가왔다.
흡혈귀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고, 베로니카 공녀가 앞장서서 그들은 인솔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흰색 단모가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꿈틀거리는 길쭉한 존재들을 뒤로 세운 채, 공녀가 내 앞까지 다가왔다.
“무슨 일이에요?”
“난민들이에요. 비델족이라고 하는데······ 추가 포탈을 조사하다가 차원 틈새에서 발견했어요. 포탈은 서서히 붕괴하고 있었고요.”
비유하자면 남의 집 지하로 숨어들었는데, 그 집 기둥이 무너져내린 꼴이었다.
전체적으로는 흰색 털로 뒤덮인 족제비 같은 인상이었는데, 난민이라는 타이틀이 장식은 아닌지 비델족의 몸 곳곳에는 덕지덕지 얼룩이 묻어있었다.
물론 그 모두를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귀여운 인상이었다.
‘털달린 네발 동물이 난민의 조건인가······?’
난민이라면 익숙하다.
내 아공간에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던 마농족이 바로 그 차원 난민이었으니까.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전투력이 전무했던 마농족들과는 달리, 비델족에게는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 그리고 날렵한 몸놀림이 돋보인다는 것이었다.
공녀가 이들을 데려온 것은 내게 조언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어떻게 할지 고민이에요. 차원 틈새에 살도록 내버려 뒀다간 머지않아 전멸이니까요.”
“어떤 방법이 있죠?”
“고향이라고 할 법힌 비델 차원은 전쟁으로 수십 년 전에 붕괴했다고 해요. 당장 현실적인 방법은 다른 차원에 거처를 마련해주는 건데······. 하위 차원들은 여유가 없는 상황이고, 상위 차원들에게 맡기기엔 그것도 찜찜하고요.”
그 전쟁 또한 상공회의소와 상위차원들이 주도한 것이었다.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들과 지내라고 하는 일만큼 끔찍한 일도 없을 터.
하위 차원들은 전후복구로 정신이 없었고, 지구에 들이는 것도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난민이 생기는 족족 모두 다 받아들였다간 지구도 남아나질 않을 테니까.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었다.
아무런 중재도 없이 난민들이 떠돌게 된다면 그것대로 문제가 될 터.
머물 곳이 없다는 이유로 난민들을 따돌린다면, 우리 또한 차원의 급을 나누고 약소 차원들을 배제하던 상공회의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던 중, 나는 얼마 전 관리국 포탈 너머로 보았던 한 풍경을 떠올렸다.
“아예 다른 곳에 터를 잡게 해주면 어떨까요?”
“다른 곳이요?”
“거기 있었잖아요, 차원 전체가 넝쿨로 우거진······.”
“설마······. 무인차원 말씀이신가요?”
아무도 살지 않는, 이름조차 존재하지 않는 땅.
상공회의소의 포탈이 설치돼 있었지만, 개척이 이뤄진 땅은 아니었다.
상공회의소가 수탈하던 자원은 마석을 지닌 지적 존재들이었고, 이 땅은 아무도 살지 않는 일종의 무인도였으니.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비델 족의 의지였다.
이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단순한 추방에 불과할테니까.
다행히, 비델족은 내 제안을 나쁘지 않게 받아들였다.
“저희가 틈새에 숨어 살았던 건 모습을 숨기기 위함이었습니다. 새로운 땅에 자리를 잡더라도··· 모습이 드러난다면 침략자들이 몰려들 테니까요. 그 걱정만 덜 수 있다면, 저희에게는 사라진 고향을 되찾는 것만큼이나 반가운 일입니다.”
비델족이 새카만 눈을 빛냈다.
날카로운 발톱과 몸짓으로 보건대, 척박한 환경에 주눅이 들 만한 종족은 아니었다.
아무렴 폭풍이 몰아치는 차원 틈새 보다는 살아가기가 수월할 것이다.
이참에 아예 상공회의소가 곧장 사용하던 ‘개척 사업’의 의미를 바꿔도 좋을 터.
하지만 그때, 베로니카 공녀가 한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적지 않은 괴물들이 출몰하는 곳이에요. 전투력이 아예 없지는 않다지만 거점이 없어서 꽤나 고전할 텐데······.”
“처음 정착만 조금 도와주기로 하죠.”
애당초 맨 땅에 떨궈놓을 생각은 없었다.
새 정착지를 제안한 사람으로서, 그건 마땅한 도리가 아니니까.
초기 괴물들을 처리해 주는 것은 물론, 이들이 스스로 자립할 만한 기초적인 물자를 보급해줄 계획이었던 것.
“잠시 다녀오자.”
흡혈귀들은 이곳 관리국을 지켜야 할 것이다.
나는 카멜롯의 기사들과 함께 포탈로 향했다.
조만간 ‘비델 차원’으로 불리게 될 미개척지를 향해.
***
‘비델 차원’은 넝쿨과 가지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다른 식물이나 벽 따위를 타고 자라는 보통의 넝쿨과는 달리, 비델 차원의 넝쿨은 나무처럼 맨땅에서 솟아올랐다.
수원도 풍부하고 기온도 완화했다.
이 땅을 척박하게 만드는 건 사방에서 자라나는 가시 덩굴이었다.
덩굴이 갈대밭처럼 빽빽하게 자라 올라오는 탓에, 한 치 앞을 확인하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었으니.
사사삭!
사사삭!
개척을 위해 비델족들이 고군분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어지럽게 넝쿨이 피어있는 것도 모자라, 사이사이 괴물들까지 출현했으니.
날카로운 발톱과 특유의 몸놀림을 활용하는 비델족이었지만, 넝쿨 때문에 제대로 된 싸움이 이뤄지기 어려웠다.
‘<로켓>을 날리기도 어렵겠고······.’
사거리가 도무지 나오지 않았다.
거리가 멀어서가 아니라, 너무 가깝기 때문.
이런 근거리에서 <로켓>을 날려 보내는 건 자살 행위에 가까웠다.
슈우우욱!
슈칵!
유일한 대안은 카멜롯의 기사들이었다.
오러를 씌운 칼날이 괴물들을 넝쿨 째로 쓸어버렸으니.
열두 개의 칼날이 반원을 그릴 때마다, 괴물들의 사체 위로 잘린 넝쿨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스릉!
쉬이이익!
조금씩, 조금씩 공간이 넓어졌다.
바닥의 넝쿨 밑동만 제거한다면 비델족들이 편하게 지낼만한 평지.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수의 괴물이 몰려드는 탓에, 작업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딱 열 명만 더 있어도 훨씬 편할 것 같은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오러 소드였다. 괴물들을 넝쿨 쨰로 썰어넘길 수 있었으니.
잠깐의 고민 끝에, 나는 절친한 칼잡이 친구들을 데려오기로 했다.
“안 그래도······? 만나자고들 성화였지.”
운양과 무림인들, 그리고 내 친구 백민우까지.
오러나, 기나, 그게 그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