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37)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237화(237/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237화
외전 8화. 입고
지이잉!
무림인들이 포탈을 타고 우르르 달려 나왔다.
검수들을 위주로 보내달라는 요청에 더해 아예 고수 서른 명을 골라 보낸 모양.
열 명만 더 있어도 좋겠다 싶었는데, 이 정도면 완전히 압살이었다.
“정겸 씨!”
“얀마!”
그중에는 운양, 그리고 내 친구 백민우도 있었다.
우거진 넝쿨과 괴물을 향해 두 사람이 나란히 칼을 치켜들었다.
차아아앙!
은은한 황금빛 검기가 서렸다.
그리고······.
스칵!
괴물과 넝쿨을 동시에 잘라 넘겼다.
괴물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쓰러진다.
단숨에 잘라낸 넝쿨이 후두둑 낙엽처럼 깔린다.
땅에 발을 비빈 운양이 디딤발을 잡고 다시 새 검기를 휘두른다.
슈화아아악!
서컹!
카멜롯의 기사들도 뒤지지 않았다.
아발론에서의 싸움을 두고 검기와 오러를 두고 경쟁했던 그들.
숫자는 적지만 훨씬 더 선명한 푸른빛 오러를 뿜으며?검격을 뻗어나갔다.
핑핑!
구부러지듯 칼날이 나부낀다.
한편에서는 검기가, 다른 한편에서는 오러가 충만하다.
장인의 망치질은 음악처럼 들린다.
싸움이 거듭될수록 숲은 고요를 더했다.
후우우우웅!
나부끼는 검풍에 괴물의 비명이 꺼진다.
달빛을 받은 검신이 저문 해를 대신해 숲을 비췄다.
***
완전히 해가 저물었다.
전투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넝쿨을 잘라낸 구역이 꽤 넓게 늘어났다.
기사들과 무림인들은 원진을 이루고 싸웠다.
그 덕분인지 넝쿨로 이루어진 숲 지대 한 가운데에, 둥근 평지가 형성됐다.
앞으로 이곳이 비델족들의 거주 구역이 될 예정이었다.
사사삭!
사삭!
이를 모르지 않는지, 비델족들 또한 바쁘게 움직였다.
재빠른 발놀림으로 사방을 누볐고, 바닥에 떨어진 넝쿨을 주워모았다.
넝쿨은 위로 뻗어있을 때도, 지금처럼 바닥에 굴러다닐 때도 문제였다.
검수들이 더 편하게 발을 뻗을 수 있도록 비델족들이 바닥을 청소해준 것이었다.
‘······이렇게 보니 엄청 많네.’
비델족들은 구역 한 편에 넝쿨을 쌓아놓았다.
어찌나 그 양이 많았던지, ‘산더미’라 표현해도 손색이 없었다.
그리고······.
슥슥.
슥슥.
비델족들이 이를 중심으로 둘러앉았다.
그러곤 하나둘 넝쿨을 집어 빠르게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손놀림 한 번에 넝쿨 줄기가 한 줄씩 쭉쭉 뽑혀 나왔는데, 속도도 그렇지만 두께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을 만큼 정교했다.
줄기 하나를 집어 든 내가 비델족 족장에게 물었다.
“뭐 하는 거야?”
“아, 집 지을 때 쓰려고요.”
확인차 줄기를 잡아당겼는데, 확실히 질겼다.
결대로라면 맨손으로도 찢을 수 있었는데, 반대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끊을 수 없었다.
‘밧줄로 만들면 대박이겠는데?’
예상대로였다.
비델족들은 줄기를 엮어 밧줄을 만들었고, 그 밧줄로 나뭇가지들을 엮어 오두막을 짓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드워프나 건축 각성자들을 불러줘야 할까 했는데, 그럴 걱정은 없는 모양.
하기야 드워프들은 십자선을 개조하느라 바쁘고, 건축 능력 각성자들 또한 전후 복구에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다.
복슬복슬.
흰색 털 뭉치들이 꾸물꾸물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자니, 떠오르는 이들이 있었다.
.
.
.
“정겸 님!”
우르르!
포탈에서 솔렌을 비롯한 마농족들이 쏟아져나왔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비델족들은 놀란 눈치였지만 이내 친근하게 다가오는 마농족과 서로 더듬고 냄새를 맡으며 인사를 나눴다.
놀랍게도, 마농족들은 비델과 구면인 것 같았다.
“솔렌!”
“니우!”
비델족 족장의 이름은 니우였다.
듣자 하니 마농족이 지구로 넘어오기 전, 마지막으로 머물러 있던 곳이 다름 아닌 비델족이 살던 차원 틈새였다고.
전투 능력이 전무한 마농족들에게 비델족이 자주 도움을 주곤 했더랬다.
“오랜만이야!”
푹!
두 녀석이 풍성한 털을 뭉개며 재회의 포옹을 나눴다.
새카만 단추 같은 솔렌과 니우의 눈이 촉촉하게 빛났다.
친구 집에 집들이라도 온 것처럼, 솔렌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둥글게 형성된 평야 지대, 그리고 그 가운데 세워지고 있는 비델족의 새 둥지까지.
벌써 기초 공사가 끝나갈 만큼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재료는 나무와 넝쿨뿐이었지만, 손재주가 좋은 비델족들에게 그런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대단하다는 듯 입을 벌린 솔렌이 니우에게 물었다.
“이제 여기 사는 거야?”
“응, 정겸님이 자리를 마련해주셨거든.”
“역시!”
타다닥!
솔렌이 나를 향해 앞발을 버둥거렸다.
바지에 침이 척척하게 묻었는데, 제 딴에 감사 인사를 표하는 것 같았다.
마농족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우르르 몰려나온 그들도 비델족처럼 바닥에 깔린 넝쿨을 청소했다.
그리던 중 얼마 지나지 않아, 마농족 한 마리가 입에 새하얀 광채를 뿜으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녀석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제 입에 물고 있었다.
“그건 뭐야?”
“모르겠습니다. 예뻐서 주웠는데······.”
녀석이 입을 벌리자 은은한 백색의 돌이 툭 하고 떨어졌다.
눈을 괴롭게 할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멀리 뻗어나가는 빛.
주변을 충분히 밝히고도 남을 만한 빛이었다.
“이게 뭐지?”
넝쿨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질이었다.
그 특성으로 보아 야광석이나 발광석 정도로 부르면 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야광석은 하나가 아니었다.
터벅터벅.
마농족들이 입안 가득 빛을 머금고 다가왔다.
냄새 맡기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들이었기에, 특유의 후각을 이용해 곳곳에서 야광석을 찾아낸 것.
덕분에 주변 일대가 유례없이 밝아져 있었다.
그리고······.
“오?”
야광석의 효과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아까부터 줄곧 싸움을 걸어오던 넝쿨 지대의 괴물들.
야광석의 빛 덕분인지, 녀석들의 공격이 뚝 끊어졌으니까.
‘이게 이렇게 되네.’
숲은 온통 넝쿨로 가득 차 있었다.
넝쿨을 걷어내 그늘을 제거했고, 그 자리에 야광석의 빛이 들어선 것.
빛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안전지대가 설치된 셈이었다.
***
모든 게 잘 풀렸다.
괴물들이 물러갔고, 근사한 오두막이 완성됐다.
“좋은데?”
비델족들이 야외 테라스를 만들어 주었다.
은은한 야광석의 빛이 내리쬐는 자리.
무림인들을 돌려보낸 뒤, 나는 오랜만에 민우, 그리고 운양과 함께 테라스에 앉았다.
운양의 취향을 고려해 좌식 테이블을 놓았는데, 난간에 팔을 괴고 앉아 있자니 낯선 이계의 풍경 탓에 신선이라도 된 것 같았다.
테이블에는 두 개의 찻잔, 그리고 두 개의 맥주캔을 놓았다.
운양이 차를, 민우가 맥주를 들이켰고, 나는 그 두 개를 번갈아 마셨다.
살다 살다 차와 술을 한 자리에서 같이 먹어보긴 처음이었다.
“하하, 미안합니다. 대협, 이젠 안 먹기로 해서요.”
운양은 술을 끊었다고 했다.
원래부터 알콜 중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그라디바에서 본 환상 때문에 더더욱 강한 경각심이 생긴 모양.
다행히 원체 차를 좋아하는 덕에, 술을 끊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이렇게 마시니 좋네요.”
운양이 빙긋 웃었다.
조만만 꼭 나와 차 한잔기울이고 싶었다고.
가끔은 강한 자극보다 이런 은은한 향이 더 끌릴 때도 있는 법이다.
테이블 한편에는 운양이 올려놓은 후라보노 껌 한 통이 시원한 냄새를 쏘아 올렸다.
찰랑!
그렇다고 나까지 술을 안 먹을 건 아니다.
다음으로 민우와 캔을 부딪쳤고, 시원한 탄산 거품이 터지는 소리를 냈다.
오랜만에 만났겠다, 이참에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복학계 내라, 민우야.”
“······학교? 그걸 진짜 만들었어?”
민우가 참 징하다는 듯, 맥주를 들이켰다.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녀석이지만, 반드시 녀석을 학교에 데려갈 생각이었다.
외로운 복학생에게 새 학기의 친구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일 수밖에 없으니까.
바삭!
테이블에 놓인 크래커를 집어 먹었다.
그러곤 찻 주전자를 들어 그새 비워진 찻잔을 채웠다.
“그러고 보니······.”
비델족 이 녀석들 은근히 서비스가 좋았다.
전망이 좋은 테라스를 만들어준 것도 모자라, 시중을 들어주기까지.
부탁한 적도 없는데 은근슬쩍 다가와 찻주전자를 뜨거운 물에 데우고, 빈 술병을 치워 주었다.
안주로 놓은 크래커를 훔쳐먹는 괘씸함을 보이긴 했지만 그건 봐줄 수 있었다.
그야, 귀여우니까.
고로롱······.
완성된 오두막에는 마농족들이 비델족과 얽혀 자고 있었다.
솔렌은 그 와중에도 곁에 있기를 고집해, 내 무릎을 벤 채 잠들었다.
잠깐 이거······.
‘······애견 카페?’
코오오······.
부드러운 털과 게으른 살이 만져지고 도롱도롱 콧소리가 들려왔다.
한가로이 고개를 들었다.
하늘 위론 두 개의 달이 떴고 야광석이 이세계의 밤을 밝혔다.
찌르르 곤충들이 우는 소리와 짐승들의 으르렁 소리가 들렸지만 상관없었다.
야광석 덕분에 그 어떤 것도 접근하지 못했으니까.
***
이튿날 우리는 포탈 관리국으로 돌아왔다.
비델족들을 위한 개척을 마쳤으니, 이번에는 관리국 아공간에 새로운 품목을 추가하기 위함.
넝쿨과 야광석이 그러했듯이, 개척이 진행되다 보면 점점 더 많은 종류의 자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일 테고.’
새로울 필요는 언제나 생겨난다.
삶은 길고, 또 다양하기까지 하니까.
그들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품목을 앞으로도 꾸준히 추가해나갈 계획이었다.
새로운 발견과 갱신을 이 ‘슈퍼마켓’을 통해 공유될 것이다.
작은 선행만으로도 다차원의 모든 존재가 그 수혜를 나눠 받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니우가 ‘넝쿨’을, 그리고 솔렌이 야광석을 들고 있었다.
“한번 집어 넣어볼래?”
물건을 입고시킬 차례다.
거울에 들어갈 수 있는 건 나뿐이지만, 언제까지고 일일이 받아줄 수는 없는 일.
고개를 끄덕거린 니우와 솔렌이 각각 넝쿨과 야광석을 거울 속에 던져넣었다.
슈우우우욱!
거울의 은색 표명이 꿀렁꿀렁 움직였다.
그러곤 넝쿨과 야광석을 스르륵 집어삼켰다.
나밖에 들어갈 수 없는 거울 속 아공간이었지만, 단순한 사물은 얼마든지 넣고 빼는 것이 가능했다.
개수도 하나씩이면 충분했다.
아공간의 기능을 이용하면 무한히 복제가 가능할 테니까.
오히려 많으면 귀찮아지는 것이, 팍스가 없는 탓에 아공간에 넣은 물건들을 일일이 선반에 정리해 줘야 할 것이었다.
‘이제······.’
입고 작업은 끝났다.
다음은 들어온 상품을 매대에 진열하는 일.
나는 익숙하게 거울을 타고 아공간 속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뭐야?”
위이이잉.
위이이잉.
AGV 로봇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로봇청소기처럼 생긴 녀석들에게는 내가 설치하고 간 선반이 그대로 얹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조금 전 던져넣었던 넝쿨과 야광석 또한 선반에 반듯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위잉! 위잉! AGV 로봇들을 따라 수십 개의 선반이 움직였다.
기둥처럼 높은 선반들이 마법처럼 아공간의 흰 지면을 질주했다.
슈우우우우······.
위이이이이······!
움직임은 복잡하고, 또 다양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서로 부딪히거나, 경로를 방해하는 일이 없었다.
누군가 녀석들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조작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팍스?”
팍스는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물류센터는 분명 가동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