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7)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27화(27/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 27편
(집으로 (1))
투두두두···
다시 떠오른 헬기.
나는 란슬롯과 함께, 헬기 수송 칸에 앉아 있었다.
220 여단을 말끔히 처리했다.
남은 것은 제물로 쓰이기 위해 잡혀 있던 사람들 뿐.
곧장 형의 신혼집으로 향해야 했기에, 무전기로 정부군에게 뒤처리를 부탁했다.
여단장의 기밀문서도 남겨두었다.
온갖 통신 용어로 암호화되어 있던 탓에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었으니.
차후 합참 쪽에서 해독한 정보를 내게 공유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제대로 챙겨왔다.
[차원 존재 등록 신청서 (8위계)]“존재 등록이라···”
익숙한 크기의 A4 용지.
서류에 담긴 내용은 간단했다.
———————-
▣ 차원 존재 등록 신청서 (8위계)
귀하의 존재 등록을 환영합니다.
신청 이전에 아래 항목을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존재 등록 발급 준비물 : 본인 명의의 차원 계좌
존재 등록 발급 수수료 : 마석 1,000개
본인 : (자필 서명)
▣ 다차원 상공회의소
———————-
“무슨 동사무소냐고···”
존재 등록.
마치 주민등록을 연상시키는 표현이었다.
준비물로 차원 계좌가 요구된다는 점도 아이러니했다.
주민등록과 본인 명의의 계좌.
그건 현대 사회에서 어엿한 개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요건이었으니.
그때, 란슬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요. 벌써 돌아다닐 물건이 아닌데···”
그는 무언가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고 보니, 위계와 척력에 대한 정보에도 빠삭했던 란슬롯이었다.
내가 물었다.
“그런 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개척 사업이 지구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이렇게 막 개척이 시작되는 곳도 있는가 하면···”
란슬롯이 씁쓸하게 덧붙였다.
“···그 개척을 못 이겨내고 파산하는 차원도 있습니다.”
전말은 이랬다.
그 또한 어느 평범한 차원의 주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공회의소가 주도한 ‘개척’이 시작되었고··· 그가 속한 차원은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기게 되었다고.
유니크 아이템, ‘카멜롯’의 망령이 된 것은 그것의 연장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는 익숙해져 있던 것이다.
멸망 그 자체에.
그가 말했다.
“주군, 존재 등록을 하시죠.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기사왕을 처치하며 차원 계좌를 얻었다.
220 여단장을 죽여 신청서까지 손에 넣었으니, ‘차원 존재’가 될 조건을 완벽히 갖춘 셈이었다.
하지만···
솔직한 말로, 재수가 없었다.
애당초 침략을 주도하는 놈들이다.
다차원 상공회의손지, 공상회의손지 이놈들이 대체 뭐길래 전 우주에 주민등록까지 요구한단 말인가?
등급을 매기고, 하위 존재들을 벌레 취급하면서까지.
“이렇게 숙이고 들어가는 게 맞는 거야? 마석을 천 개나 갖다 바치면서까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차원 존재가 되시면···”
그가 덧붙였다.
“척력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어?”
척력.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차단하는 신비로운 힘.
그 척력이 내게도 깃든다는 것이었다.
“그게 가능해?”
“물론입니다. 그러기 위한 <등록 신청서>니까요.”
구미가 당겼다.
아공간 포탈은 무적이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니까.
포탈을 벗어난 상태라면, 단 한 발의 총알로도 내 목숨을 끊을 수 있었다.
반드시 갖고 싶은 힘이다.
하지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나도 고블린처럼 된다거나 하지는 않을까?”
220여단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완전히 고블린으로 탈바꿈했던 그의 모습.
그 이전에도 고블린의 피부가 덕지덕지 섞여 있던 놈이었다.
내 걱정에, 란슬롯이 고개를 저었다.
“놈들은 지구가 아닌, 다른 차원의 <등록 신청서>를 사용했습니다. 고블린들의 차원이었겠죠. 보나마나 등록 비용이 말도 안 되게 저렴한 하위차원의 것을 이용했을 겁니다.”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어째서 놈들이 서서히 고블린이 되어 갔는지.
그들은 타차원의 힘을 얻는 대신, 정작 자기 자신을 잃은 것이었다.
란슬롯이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서류가 어떤 언어로 되어 있는지 확인해보시죠. 주군께서 사용하시던 지구의 언어가 맞다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의 말대로 서류를 살폈다.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서류에 적힌 글씨는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한글이었다.
내가 가진 <등록 신청서>가 지구 차원의 것이라는 뜻.
잠깐의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좋아. 해보자.”
“서류 하단에 서명하시면 바로 신청이 완료될 겁니다.”
팍스를 통해 볼펜 한 자루를 출하했다.
그리고···
[정겸]서명란에 바른 말 고운 말로 이루어진 내 이름을 정자로 새겼다.
변화는 즉시 이루어졌다.
[보유하고 계신 마석의 양은 3,422개···].
.
.
[···2,422개입니다.]계좌에 있던 마석 천 개가 수수료로 빠져나갔다.
들고 있던 신청 서류 또한 눈꽃 같은 알갱이로 사르르 녹아 없어진 상태였다.
싸아아···
몸에는 잠시 동안 은은한 빛이 어렸다.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라, 얼떨떨할 따름이었다.
“···끝난 거야?”
“그렇습니다.”
새로 전입신고를 했다하여 사람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나 또한 별다른 체감 없이 어느덧 8위계의 차원 존재가 된 참이었다.
“궁금하기는 하지만···”
척력을 테스트해본답시고, 내 몸에 총을 쏴보거나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련히 란슬롯의 설명대로 8위계가 되었겠거니 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쯤 되니,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나중에 우리 가족들도 모두 등록시켜버리는 게 좋겠어.”
척력을 얻기 위함이다.
적어도 총이나 평범한 괴물에 의해서는 죽지 않는 몸이 될 테니.
지금으로서는 까마득한 일이었다.
신청 서류를 구해야 하는 것은 물론, 요구되는 마석 또한 상당했으니.
투두두두!
생각을 정리하자, 새삼 힘차게 회전하는 프로펠러 소리가 들려왔다.
무너지고 부서진 도시였지만, 서서히 익숙한 풍경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울창한 나무로 뒤덮인 도봉산.
그 아래에 보기 좋게 연식이 쌓인 고층 아파트가 놓여 있었다.
산으로부터 불어 드는 세찬 바람이 매력인 집.
입주한 지 채 몇 달이 되지 않은 형의 신혼집이었다.
***
그 주변에도 역시나 괴물은 존재했다.
고블린과 비슷한 체구로, 개와 돼지를 섞은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란슬롯은 이 녀석들을 ‘코볼트’라고 불렀다.
무리 지어 다니는 것이 조금 귀찮기는 했지만, 전투력 자체는 오크에 미치지 못하는 잡몹이었다.
큰누나와 김솔이 나와 파티를 갖췄고, 란슬롯과 베디비어의 도움으로 빠르게 놈들을 치워나갔다.
깨행!
쿠확!
놈들을 치우다 보니, 어느덧 건물 입구에 다다랐다.
작동하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뒤로하고, 자갈무늬가 섞인 회색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나갔다.
그렇게···
마침내 현관 앞에 다다랐다.
한껏 마음을 졸이는 두 누나를 뒤로하고, 서서히 초인종에 손을 가져다 댔다.
덜걱.
어딘가 나사 빠진 소리.
초인종이 작동하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문을 두드렸다.
쾅쾅!
“형! 나야!”
하지만 굳게 닫힌 현관문 너머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곧장 베디비어를 불러냈다.
“이 문 좀 열어줘.”
베디비어는 끄덕 고개를 숙이더니, 문고리를 움켜쥐곤 특유의 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빠득!
소리와 함께, 아예 문고리가 부러져버렸다.
하는 수 없었다.
트드드드득!
이번에는 구멍을 잡고, 아예 문짝 전체를 뜯어버렸다.
쿠웅!
한편으로 치워진 현관.
그 안으로 황량한 거실이 펼쳐져 있었다.
리모델링을 갓 마친 신혼집이었기에, 모든 것이 새것 같고 깨끗했다.
마치 이 안에 그 누구도 산 적이 없었던 것처럼.
허전한 마음이 찾아들었다.
차라리 주소를 잘못 찾은 것은 아닐까, 그리 믿고 싶은 심정이었다.
“···너무 늦었나?”
그렇게, 망연히 생각을 정리하려던 찰나,
“여기 뭐가 있어!”
주방으로 향했던 큰누나가 뭔가를 발견했다.
.
.
.
큰누나가 발견한 것은 편지였다.
누가 수신인이 될지 모르는 막연한 편지.
형은 혹여나 자신을 찾아올 지 모를 동생들에게 메시지를 남겨둔 참이었다.
우리 세 남매는 둥글게 모여, 천천히 그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주연, 솔이, 정겸아. 너희 중 누가 이 편지를 읽게 될 지 모르겠다. 전화도 터지질 않는 상황이고, 혹시나 너희가 여기에 올 수도 있으니 이렇게 편지를 남긴다.
과연 형은 우리가 찾아올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불확실하다는 것까지.
다만, 그 가능성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이 편지는 그의 소원을 담고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었다.
이렇게나마 만남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소원.
핵심은 다음 문장에 있었다.
-우리는 아버지 집에 가보려고 해.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안전하게 계실지 확신이 서질 않아. 처가댁이 근처이기도 하고. 그 밖에도 이상한 일들이 여럿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설명할 만한 시간이 없구나.
마지막으로, 형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네가 주연이가 됐건, 솔이가 됐건, 정겸이가 됐건 반드시 살아 남아주기를 부탁할게. 의정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우리 세 사람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편지를 내려놓았다.
형을 만나지 못했다. 그래도···
“···최악은 아니야.”
편지에 적힌 날짜는 멸망이 시작된 다음 날.
괴물들이라면 몰라도, 1군단이 본색을 드러내기 이전의 시기였다.
그러니···
부모님이 계실 의정부 집에 무사히 합류했으리라.
그 가능성을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곧장 부모님의 집이 있는 의정부로 향하기로 했다.
헬기로 간다면 채 20분도 걸리지 않을 거리.
위잉-
누나들이 아공간으로 들어갔다.
이용수에게 소식을 전할 겸, 이런저런 출발 준비를 부탁했다.
이제 남은 것은 내 역할이었다.
공터에 착륙한 헬기로 되돌아가는 일.
길목에 괴물들이 서성이고 있을 테니, 다시 란슬롯과 베디비어를 꺼내 보려던 참이었다.
그렇게, 텅 빈 거실을 벗어나려던 찰나.
투두두두두두두두!
와장창!
산산이 조각한 유리조각과 함께, 거실 안쪽으로 두꺼운 총알이 날아들었다.
타앙! 팅! 탕! 티잉!
벽면 이곳저곳을 찌른 총탄이 아무렇게나 튀어 올랐고, 새로 짠 혼수 가구들이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새 옷처럼 깨끗하던 집은 그대로 풍비박산이 되었다.
이윽고,
슈우웅!
헬기로부터 미사일이 날아들었다.
꽈아아아아앙!
총알은 차라리 양반이었다.
강렬한 폭발에 의해, 펑하니 조명이 터져나갔다.
총탄 자국이 장식처럼 새겨진 벽.
그 위로 매캐한 얼룩이 파도처럼 쏟아졌다.
화르륵···
찢어진 벽지 위로 서서히 잔불이 어렸다.
한편 나는···
“멀쩡하잖아···?”
그야말로 미칠듯한 공격이었다.
미니건에서 쏜 총알이 내 몸통을 정확히 쓸고 지나갔으니.
하지만 내가 전해 받은 것은, 그저 약간의 반동뿐이었다.
총알은 닿는 족족 미끄러지듯 튕겨 나갔고, 미사일로 인한 폭발마저 눈앞에 흩뿌린 모래알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물론···
“개 따갑네···”
낯선 감촉에 피부를 벅벅 긁을 수밖에 없었다.
<차원 존재 등록>을 통해 얻은 척력.
과연 그 힘은 대단했다.
갖은 무기를 장비한 UH-60 블랙호크를 공원 비둘기처럼 느끼게 만들었으니.
녀석은 베란다 너머로 날개를 돌리며, 여전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 집과 함께 나를 통째로 날려버리려던 것이 분명했다.
새카맣게 그을린 형의 신혼집.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물건에는 죄가 없는 법이다.
물건을 다루는 사람에게 죄가 있는 법.
나는 자애로운 마음으로 잔뜩 겁을 집어먹은 새카만 비둘기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리 온, 블랙 호크야.”
<카테고리 상품 등록>을 발동했다.
미니건과 미사일로 무장한 블랙호크다.
일단 새장에 넣어둘 필요가 있었다.
조종사는···
죽든지 말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