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9)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29화(29/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 29편
(집으로 (3))
아버지에게는 꿈이 있었다.
널찍한 마당이 딸린 전원주택에서 여유롭게 살고 싶다는 꿈.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었다.
잊을 때면 유튜브에서 건축 브이로그를 뒤져보고, 건축사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각종 자재를 빼곡하게 정리한 노트를 만들던 것이.
바글바글한 네 남매가 푸른 잔디밭을 뛰노는 모습을 보고 싶다던 아버지다.
하지만 형이 결혼식장을 예약하고, 누나들이 독립 계획을 밝혔을 즈음, 아버지는 그 꿈이 너무 오래 미뤄져 왔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그래도 집은 집이다.
본가(本家).
떠나온 곳이지만,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
그 상상의 공간을 위해, 아버지는 땅을 사들이고, 주춧돌을 세우고, 대들보를 올렸다.
주말, 휴가, 명절··· 그도 아니면 가끔 생각날 때만이라도.
가족이라는 인력에 의해 되돌아올 자식들을 떠올리며, 핵분열에도 끄떡없을 자전 축을 설계했다.
그렇게 완성된 단란한 전원주택.
흐릿한 블루프린트부터 서늘한 감촉의 현관 문고리까지.
아버지의 입김이 닿지 않은 것이 하나 없었다.
그래서였다.
이 강고한 요새에서 아버지의 손길이 느껴진 것은.
“어떻게 된 거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요새가 된 전원주택의 활약을 이미 목도한 바였지만, 멀쩡히 살아남은 가족들은 그 자체로 거대한 기적처럼 느껴졌으니까.
부모님과 할아버지, 형네 부부까지.
심지어 형의 처가 식구들까지 모여있었고, 누구 하나 털끝 하나라도 다친 사람이 없었다.
“···욕봤다.”
아버지는 말없이 우리의 어깨를 두드렸다.
상봉의 해후를 나누며, 아버지가 설명했다.
“각성했다. 나보고 <건축가>라고 하더라. 반평생 키보드 두드리고 살았는데 건축가는 무슨···”
“이 양반 또 젠체하네. 신나서 망치 두들길 때는 언제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여전히 사이가 좋았다.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일단 살아야겠어서 집도 요새로 만들고 업그레이드도 하긴 했다. 그래도 아직 멀었어. 화살 포탑 하나 올라간 게 전부야.”
그간 아버지는 마석을 긁어모아 2레벨을 달성했으며, 레벨에 따라 장갑을 강화하거나 포격 포탑 같은 상위 등급의 방어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관련 자재가 요구되었지만, 다행히 집을 지을 당시 쓰고 남은 자재가 창고에 남아 있어 알뜰하게 건설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나만큼이나 아포칼립스에 최적화된 능력을 각성한 아버지였다.
그래도 부족하다 느꼈는지, 아버지가 탄식했다.
“아쉽다! 마석만 더 있었어도··· 대 요새를 건설할 수 있었는데···”
“아빠, 김정겸 얘 돈 개많··· 읍”
김솔이 쓸데없는 소리를 하기 전에 입을 틀어막았다.
“다들, 일단 들어가시죠.”
“···어딜?”
우선 모두를 아공간에 들이기로 했다.
그게 설명이 빠를 테니.
***
광활히 펼쳐진 물류센터의 전경.
가족들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지만, 이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여기서 키보드로 검색을 하면···”
우선은 각자 필요한 물자들을 뽑아 쓸 수 있도록, 픽킹 스테이션에서 물품을 주문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다음은 일종의 교통정리였다.
앞서 아공간 안에 들인 이용수의 가족과 카멜롯의 기사들이 있었으니까.
가족들에게 먼저 이용수를 소개했다.
“용수씨라고···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도와주신 분이세요. 이분 아니었으면 훨씬 오래 걸렸을 거야.”
먼 길이었다.
차량이든 헬기든, 척척 운전을 도맡아준 그다.
그의 각성 능력과 용기가 없었다면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을 터.
아이러니하게도, 이용수가 아내에게 나를 소개했던 때와 비슷한 어투로 그를 소개하게 됐다.
우리가 서로 고마운 도움을 주고받았다는 증거였다.
이용수가 가족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웬걸요. 저야말로 아드님께 온갖 도움을 받았습니다. 바깥 상황이 흉흉한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무사하신 걸 보니 저도 보람이 크네요.”
“아이고··· 먼 길 고생이 많으셨겠네요··· 어머나!”
어머니가 이용수의 딸 유정이를 보며 반색했다.
부르르 입술을 떨며 까꿍 소리를 내어주니, 금세 유정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여러모로 화기애애한 인사였다.
“그럼 다음으로는···”
카멜롯의 해골 기사들이었다.
녀석들의 으스스한 외관이 마음에 걸렸다.
어떻게 소개해주면 좋을까 고민하던 찰나···
텅텅!
할아버지가 란슬롯의 등을 두드렸다.
“이름이 뭐여?”
충청도 어르신의 구수한 어투가 중세 해골 기사의 무장을 해제했다.
“···란슬롯이라고 합니다.”
“그려, 란씨. 저어기 옆집 사는겨?”
창문 너머로, 위병소 옆에 붙은 모텔, 아니 카멜롯 성이 눈에 들어왔다.
“예예, 그렇습니다.”
“차림새가 신기해서 심심허진 않겄네. 장기는 둘 줄 아는감?”
“체스는 둘 줄 압니다만···”
“허허, 거 몸은 산더미만한 양반이 복잡허게 사네. 체스나 장기나 그게 그거여?”
할아버지가 너털웃음과 함께 눈주름을 접었다.
덩치를 봐서는 소도 잡아먹겠다는 말에 해골 란슬롯이 고개를 저었지만, 아무래도 할아버지는 란슬롯이 여간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드넓은 아공간이지만, 간단히 서로의 거처를 정해두기로 했다.
이용수와 그의 가족들은 여자 휴게실을 그대로 쓰기로 했고, 나를 제외한 김씨 일가는 국통사 사령관의 관사를 쓰도록 했다.
나름 마당 딸린 공간이니 전원주택까지는 아니어도 부족함은 없을 터.
당연하게도, 해골 기사들의 거처는 카멜롯 성으로 고정이었다.
다음은 형네 내외였다.
마침 전해 줄 소식이 하나 있었다.
“형 신혼집 박살 남.”
“···?”
“베란다 쪽에 헬기가 오더니 미친 듯이 총알을··· 미사일까지···”
“···??”
알고 있기론, 풀 대출을 끌어당겨 마련한 집이었다.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이 나였다는 것, 그리고 현관문만큼은 내가 손수 뜯어버렸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았다.
“정겸이 너도 참.”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기에,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어차피 요지경이 된 세상이다.
되찾을 수 있을지조차 확실하지 않으니.
“옆 군부대에 간부 아파트가 있어. 집 하나 꿰차서 쓰면 될 거야. 형수네 식구들도 하나 골라 쓰시게 하고··· 필요한 가구나 가전 같은 건 여기서 주문해서 써.”
“···정말 고맙다. 이렇게까지 네 덕을 볼 줄은 몰랐어.”
“그건 그렇고···”
물어볼 것이 있었다.
모처럼 만난 가족들.
그건 전력의 강화를 뜻하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아버지 말고 또 각성한 사람은 없나?”
아쉽게도 모두가 각성하는 가족 드라마는 벌어지지 않았다.
각성한 것은 아버지, 그리고 형수였다.
“시은이가 <연금술> 능력을 각성했어. 덕분에 그동안 식수 같은 것도 해결하기가 편했지. 어머니가 화분에 물 주려고 떠 놓은 물을 정수해줬거든.”
아버지의 <건축> 능력, 그리고 형수의 <연금술> 능력까지.
좀 더 파악할 필요가 있었지만, 아무쪼록 발전 가능성이 돋보이는 능력들이었다.
‘···이제 됐나.’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군포에서부터 끝끝내 짊어지고 온 아공간.
허전하고도 텅 빈 이 장소에 마침내 가족들이 녹아들었으니까.
허전했던 아공간에 활기가 돌았다.
“주방이 그렇게 좋아요?”
“그렇다니까요!”
식사를 준비하겠다며, 어머니가 오지수와 함께 직원 식당으로 떠났다.
두 누나가 달려들어 아공간 안에 병원을 차리자느니, 헬스장을 차리자느니 시답잖은 수다를 떨어댔다.
형이 팍스를 통해 살림에 필요한 이런저런 가전을 주문했고, 란슬롯은 할아버지에게 붙잡혀 60년대 군생활이 얼마나 혹독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충청도 특유의 0.7배속으로 전해 들었다.
그야말로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었다.
잠시 우두커니 서 있던 중,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게 집이지.”
시끄럽고, 정신 사납고, 이 사람 저 사람 말소리에 귓바퀴가 끌려다녀도, 외로움이라는 단어 한 조각조차 떠올리기 힘든, 밀도로 가득 찬 공간.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집의 정의였다.
하지만,
“아직 집 아니다.”
슬그머니 뒤에서 나타난 아버지가 딴죽을 걸었다.
“아직 아니라고요···?”
“이웃이 있어야 집이지 이눔아.”
가족이 있어야 진정한 집이라는 나의 생각.
아버지는 거기에 또 다른 사상을 덧붙였다.
“아무리 요즘 세상에 서로들 관심이 없다해도 그렇지, 옆집 사람이 죽어가는데 등 따숩다고 그게 집이냐? 동네 슈퍼에서 누구네 누렁이가 새끼를 깠네 마네까지는 못하더라도··· 서로들 별 일은 없어야 두 다리 뻗고 자는 거지. 어디 우리 가족만 가족이냐?”
우리 가족만 가족이냐는 낯 익은 말.
오지수가 나를 도우라며 이용수를 집 밖으로 내몰 때 했던 말이었다.
그 결심 덕에 나도 내 가족들을 찾을 수 있지 않았던가?
아버지의 말은 계속됐다.
“옆집 최씨네가 잡혀갔다. 저기 카센터 하는 윤씨도 그랬고. 웬 군복 입은 괴물들이 와서 이 동네 사람들 싹다 잡아갔어.”
1군단의 이야기였다.
놈들은 진즉 의정부를 차치한 채, 아래 있는 도봉구에서도 인력을 수급하고 있었으니.
망령을 통해 보았던 대로, 놈들은 의정부 곳곳에 고블린 부락과 제단을 설치해가며 제물로 쓸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안락한 낙원이 된 아공간과 달리, 밖에는 여전한 멸망이 드리워 있었다.
그것도 인간의 손을 빌어서.
그리고 그건, 단순히 윤리적인 문제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더 이상 1군단이 세력을 키우게 둬서는 안 돼.’
정부군과 정면으로 대립할 만큼 거대한 세력을 자랑하는 그들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데 모자라, 다른 인간들까지 제물로 삼으려 하고 있었다.
망령들을 통해 확인한 의정부의 포로들.
얼핏 봐도 그 수가 어마어마했다.
그들 모두가 제물이 되는 파국이 벌어진다면, 1군단의 힘이 얼마나 막강해질지 차마 가늠할 수 없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여기에 계속 머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야.’
우리는 적진 한 가운데 있었다.
마석이 무한하지 않은 이상, 언젠가는 아공간에서 나가야 할 터.
그 시기를 정해야 한다면 놈들이 더 이상 강해지는 것을 막을 지금이 최적이었다.
지금까지 갖은 방해를 일삼던 1군단이었다.
이계의 존재들이 침입해 들어오는 마당에, 동족을 향해 밭다리를 거는 놈들.
이참에 씨를 말려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
멀찍이서 소리가 들렸다.
오지수와 어머니가 식사를 차렸으니, 와서 먹으라는 소리였다.
“······”
우뚝.
걸음을 멈춰 세웠다.
이상하게 배가 고프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다른 게 먹고 싶었다.
1군단이 어떤 곳인가?
수도를 지키는 부대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 1군단이다.
병과로만 보더라도, 안에 없는 게 없는 부대가 1군단이었다.
“기갑여단에··· 항공단, 공병부대에 군수지원 부대까지.”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포로가 된 옆집 사람들.
의정부의 시민들.
더 나아가 한반도, 그리고 지구촌 사람들.
나는 그들 모두가 빠짐없이 행복하길 바랄 만큼 욕심이 끝도 없는 사람이었다.
나만의 아공간이다.
하지만 바깥의 모든 것을 빨아들일 만큼, 내 울타리에는 한계란 없었다.
혀를 날름거리며, 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먹고 싶다··· 1군단···”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담고 싶은 욕망.
나는 탐욕스런 물류센터의 주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