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3화(3/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 3편
(핵가족의 아포칼립스 (3))
얼추 준비를 마친 뒤, 다시 밖으로 빠져나왔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오크의 머리에 박힌 도끼를 빼내는 것.
푸슉!
찐득한 녹색 피가 울컥하고 튀어 올랐다.
도끼를 휘둘러 묻어있던 피를 마저 걷어냈다.
“이놈 몸에 마석이 들어있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대개는 심장 근처 부위에 위치합니다.]본격적으로 놈의 가슴팍을 뜯어보려던 찰나, 하나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아, 맞다. 단검.”
손에 도끼가 있긴 했지만, 도축용으로는 불편해 보였다.
하려면 하겠지만, 어차피 아공간에 단검이 쌓여 있을 테니.
깜빡한 나에게 팍스가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었다.
[아공간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바로 이곳에서 상품을 출하할 수 있습니다.]“그래?”
그것참 희소식이었다.
불편하게 물건 하나 때문에 포탈을 들락날랄거릴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하지만 제약이 있긴 했다.
[단, 출하는 30초에 한 번만 가능합니다.]“되게 애매하게 불편한 수치네.”
긴 시간은 아니지만, 몇 종류 되는 물건을 한 번에 꺼내려면 좀 짜증날 것 같기는 했다.
더군다나 빨리빨리의 한국인이 아니던가?
웹페이지가 30초에 한 번씩 로딩이 된다면 빡쳐서 모니터를 부숴버릴지도 모른다.
[스킬을 강화하면 출하 소요시간을 단축할 수 있습니다.]“아, 그게 스킬이었어?”
[그렇습니다. 등록된 상품을 떠올리며 ‘출하’라고 부르시면 됩니다.]“그렇단 말이지··· 그럼 일단 단검 중 쓸만한 것들 보여줄 수 있을까?”
띠링!
곧 팍스가 목록을 띄워주었다.
픽킹 스테이션에서 모니터로 보던 것과 똑같은 화면.
상품 페이지를 ‘높은 가격순’으로 설정했다.
모르긴 몰라도 비싼 게 성능도 좋겠지.
개중에 고른 것은 검정과 녹색이 섞인 손잡이에, 날이 은색으로 날카롭게 벼려진 정글도였다.
날의 뒷면은 나무를 자를 수 있도록 톱니가 나 있었다.
[마린포스 쿠크리 정글도 40cm, 가격은 211,120원입니다.] [출하를 원하시면 ‘출하’라고 말씀해주세요.]“어디보자··· 그래, 출하.”
위이잉!
눈 깜짝할 사이, 손끝에서 자그마한 포탈이 생겨났다.
출하는 즉시 이루어졌다.
그리곤,
슈우욱- 타앙!
순식간에 땅에 처박혔다.
어찌나 빨리 튀어나왔는지, 단검이 포장 박스를 뚫고 나온 수준이었다.
나는 너덜너덜해진 포장을 마저 뜯으며 투덜댔다.
“···뭐가 이렇게 빨라?”
[기본 설정된 출하 속도는 시속 60km입니다.] [원하신다면 속도를 조절하실 수 있습니다.]의외로 세부 설정이 가능했다.
그렇다 보니 역으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혹시 이것보다 더 빠르게도 가능해?”
[현재로서는 최대 시속 75km까지만 가능합니다. 그 이상으로는 스킬을 강화하셔야 합니다.]이번에도 강화 이야기가 나왔다.
“강화하는 방법은?”
[마석을 사용하시면 됩니다.]“역시 그런가.”
시설의 유지 비용부터 스킬 강화까지.
두루 쓸 곳이 많은 마석이었다.
우선은 눈앞의 오크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푸욱!
오크의 흉부 중앙을 찔러넣었다.
길게 살을 찢어내자, 몸통 중심부에 박힌 마석이 은은한 빛을 내뿜었다.
단검을 비스듬히 찔러 툭하고 꽂혀 있는 마석을 튕겨냈다.
“다시 하나 얻었네.”
[센터 전력 비용으로 사용하시겠습니까?]“일단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하루 동안은 시간이 있으니.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무엇을 도와드릴까요?]“출하될 때 포장을 벗겨서 내보내 줄 수 있을까?”
팍스에게 날카로운 단검과 도끼를 들어 보였다.
방금 전만 해도 확인한 참이다.
내가 직접 던지는 것보다, 아공간의 ‘출하’ 스킬을 이용해서 물건을 던지는 것이 훨씬 더 위력적이라는 것을.
나는 이 ‘출하’ 스킬을 본격적인 공격 스킬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AI 팍스의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가능합니다. 주문 요청 사항에 기재해두겠습니다.]나는 한술 더 떴다.
단검을 정면으로 세웠고, 도끼 또한 날이 비스듬히 앞을 향하도록 보여주었다.
“그리고 딱 이런 각도로, 이런 방향으로. 가능할까?”
[그것도 주문 요청 사항에 기재해 두겠습니다.]“좋아.”
준비는 끝났다.
물류센터 주변은 쥐 죽은 듯 한적했다.
위이이이-
전기 자전거의 부드러운 구동음을 들으며, 근처 산길을 타고 올라갔다.
사라진 물류센터로부터 200여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적당한 위치에 도착한 나는 큼지막한 느티나무를 앞에 서서, 조금 전의 정글도를 떠올렸다.
출하 속도를 최대 속도인 시속 75km로 맞춰둔 상태였다.
그리고 외쳤다.
“출하.”
슈우우우욱!
날카롭게 세워진 칼날이 쏘아졌고,
파악!
느티나무 한 가운데에 틀어박혔다.
얼추 보기에도 꽤나 깊게 들어갔다.
타앙!
잠시 후에 쏘아낸 도끼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게 때문인지, 칼날보다 한층 더 파괴력이 컸다.
여러모로,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30초에 한 번씩 도끼나 단검을 미사일처럼 발사할 수 있는 아공간.
이제 그게 내 무기였다.
자전거에 올라, 지도책을 꺼내려던 찰나였다.
멀찍이, 나무가 흔들리며 푸드득 새들이 날아올랐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비명 소리?”
서둘러 페달을 밟았다.
***
“허억… 헉”
회색 직원복을 입은 두 남자가 산길을 질주했다.
마찬가지로, 두 마리의 오크가 그들을 쫓고 있었다.
“젠장···! 젠장···!”
그 중 한명인 이용수.
그는 입에선 거품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어째서 이런 일이···”
지금으로부터 3일 전이었다.
멸망은 하루아침에 벌어졌다.
돌연 TV에서 긴급 속보가 날아들었다.
전국 각지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출현했다는 것.
혼비백산하는 사람들을 찍은 화면, 인파에 깔려 검게 물들어간 화면, 괴물들에 의해 피칠갑이 된 화면까지.
멸망은 모든 사람에게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주어진 정보는 그게 전부였다.
TV, 라디오, 인터넷 등의 통신이 일제히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전쟁이 나더라도 버틴다고 하는 것이 통신사와 방송국이다.
이용수는 작금의 상태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간간이 무장한 군인들을 보았다는 소식이 알음알음 전해졌다.
그들이 하나같이 아스팔트에 갈려 죽어있었다는 소식도.
세계의 운명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생존이 제 1의 원칙이 되었던, 역사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는 것.
문명은 그렇게, 한순간에 폐허로 뒤집어졌다.
이용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내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주어진 것은 멸망뿐만이 아니었다.
선택받은 일부 사람들은 불현듯 이능과도 같은 능력을 각성했으니까.
이용수 또한 운 좋게 각성자가 되었지만, 아쉽게도 오크를 처치할만한 능력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거대한 멸망 앞에서, 그는 무력한 개미 한 마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애타게 전력을 다해 뛰었으나,
“제발··· 제발···”
거대한 그림자는 그보다 한참이나 더 빨랐다.
“···”
무심결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본 것은,
“······!”
절망이었다.
거대한 오크가 지척에 다가와 있었다.
스르륵.
다리에 힘이 빠졌다.
이미 한계를 몇 차례나 지나온 다리였다.
“···”
이용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담담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파아악!
소리가 들렸다.
“···어?”
터진 것은 자신의 머리가 아니었다.
털썩, 되레 쓰러진 것은 자신을 쫓고 있던 흉악한 오크.
놈의 머리에는 검은색 도끼가 꽂혀 있었다.
장작을 팰 때 쓰는 캠핑용 도끼에 불과했지만, 정작 이용수를 놀라게 한 것은 다른 데 있었다.
‘···머리가 아예 터져버렸잖아?’
도끼가 꽂히다 못해 오크의 두개골을 박살 내버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10여미터 멀치에서 손을 거두는 한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영락없이 투척을 마친 자세였다.
이용수가 히끅 입을 다물었다.
‘무슨 힘이···?’
이용수는 다시금 주변을 살폈다.
쫓기던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고, 오크 또한 한 마리가 아니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반대쪽에서 비탈길을 내려가고 있는 동료 최병철이 보였다.
그의 뒤를 오크 한 마리가 바짝 뒤쫓고 있었다.
“···최 씨!”
발을 동동 구르던 찰나, 도끼를 던진 사내가 다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이용수는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있잖아?’
무슨 묘기라도 부리는 것일까, 자전거를 타며 도끼를 던진다는 것이 쉽게 상상이 가질 않았다.
이용수의 시선은 계속해서 그를 따라갔지만,
‘···안 보여.’
나무에 가려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나타난 사내가 최병철을 구해주기를 애타게 기도하는 수 밖엔 방법이 없었다.
그가 두 손을 모았고,
파악!
그 기도는 통했다.
오래지 않아 동료 최씨를 쫓던 오크의 머리통이 터져나갔으니까.
“대체······”
사내는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
푸욱!
오크의 시체에 단검을 찔러넣었다.
뭐가 됐든 일단은 마석부터 챙겨야 했다.
아까 챙긴 것까지 해서 두 개.
아공간 포탈 앞에서 챙긴 것까지 하면 그새 세 개를 모았다.
일단 눈에 보이기에 구해준 것도 있었지만, 나로서도 정보가 필요했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왜 이런 괴물들이 돌아다니는지.
물류센터에 3일간 갇혀 있던 나보다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나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이들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기 바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더군다나, 뭔가 오해하고 있는 듯했다.
“군인이신가 봅니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평범한 육군은 아니신 듯한데, 혹시 특수부대 그런 겁니까? 어떻게 자전거를 타면서 도끼를 그렇게···”
그는 내가 입고 있는 전투조끼를 보고 있었다.
내가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전역한 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아, 역시!”
사내의 눈빛이 한층 더 빛났다.
아니 진짜 아닌데.
“정말이지 천운이로군요. 이 근방에 사람이라곤 저희밖에 없는 줄 알았습니다.”
“두 분이 전부인가요?”
아무리 주택가가 아니라지만, 내려다보이는 물류단지에는 극도로 삭막했다.
이용수와 최병철, 두 사람이 고개를 저었다.
“E동에 사람들이 더 모여 있습니다. 열댓명 정도인데··· 다 같이 고립이 됐거든요.”
“고립이요?”
이용수가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예, 지금 상황이 그렇습니다. 원최 이곳 물류단지가 동쪽, 북쪽이 막혀 있는 구조인데··· 지금 아래 영동고속도로까지 반파가 됐거든요. 저희도 지금 차가 다닐 만한 다른 루트가 없는지 찾아보던 중이었습니다.”
차를 타고 이 지역을 벗어나는 것.
그건 나로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아무렴 자전거로 강남까지 가는 건 쉽지 않을 테니.
이용수가 제안했다.
“일단 같이 가보시겠습니까? 간단한 요깃거리 정도는 챙겨드릴 수 있을 겁니다.”
마다하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요깃거리 같은 건 필요 없었지만, 아무쪼록 목적이 같은 사람들이니.
대강 주변이 어떤 상황인지도 알아볼 수 있으리라.
“그러시죠.”
지난 3일.
갇혀 있던 건 나 혼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