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7)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37화(37/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 37편
(수백 장의 성적표, 그리고 페이스트리 (2))
치이익! 치익!
유성철이 무전기의 수화기를 들었다.
통신 상대는 인천의 17사단.
원래라면 무전기의 통달 거리가 닿지 않아 중계를 거치는 번거로운 과정이 필요했겠지만··· 다행히 이곳 합참 본부에는 통신장비의 성능을 강화할 수 있는 각성자가 존재했다.
심지어 내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과천에서 구해냈던 50정보통신대대장 한경호.
그야말로 통신대대장다운 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한편, 유성철은 한껏 긴장된 표정이었다.
지금쯤 인천은 아비규환에 빠져 있을 테니까.
다행히, 오래지 않아 17사단과 통신이 연결됐다.
“통··· 통신보안.”
“통신보안은 얼어 죽을. 지금 어때? 어떤 상황이야?”
“충성. 죄송합니다, 본부장님. 도무지··· 도무지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현재 차이나타운에 놈들의 게이트가 열려 있는 상황입니다.”
완전히 두려움에 싸인 목소리였다.
“숫자가 얼마나 돼? 많아?”
“많습니다. 와이번들··· 그리고 도마뱀 같은 놈들이 계속해서 밀려들고 있습니다. 사브로스 차원의 리자드맨이라고 하는데, 만만치 않게 숫자가 많고요.”
와이번.
낯선 괴물은 아니었다.
물류단지 터널, 그리고 과천에서도 질리도록 봤던 녀석들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까다로운 놈들은 아니었다.
소총으로도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었었으니까.
하지만 상공회의소의 공지대로라면, 괴물 중에는 8위계, 심지어 7위계도 섞여있을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17사단의 장교가 덧붙였다.
“개중에는 와이번을 타고 움직이는 리자드맨들도 있습니다. 그중에 우두머리도 있는 것 같고요.”
바글대는 와이번과 리자드맨들.
거기에 와이번을 탄 상위 개체들까지.
파충류로 뒤덮인 인천을 떠올리자니,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유성철이 뒤늦게 17사단의 안부를 물었다.
“그래서 지금 병력 상황은 어때? 교전 중인 거야?”
“일단 포병여단이 그대로 날아갔습니다. 직할 방공중대도 증발했고요. 그 밖에는··· 일단은 교전을 중지한 상태입니다.”
“···중지했다고?”
“예, 놈들이 전투보다는 병력 재편이 집중하는 분위기거든요. 물론··· 안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가까이 접근했던 1개 중대가 그대로 전멸했거든요.”
병력 재편.
놈들이 무엇을 서두르는지 어렵잖이 짐작할 수 있었다.
“···곧장 서울로 넘어올 생각인가 보네요.”
인천을 짓밟을 시간도 없다.
바로 서울을 손에 넣어 기세를 몰아가겠다는 것.
유성철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17사단에 당부를 남겼다.
“현재로서는 현상 유지. 섣불리 공격해서 병력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해. 수시로 통신 넣어줄 테니 매시간 상황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충성···!”
“후우······”
연락을 마친 유성철이 긴 한숨을 몰아쉬었다.
물론, 예상했던 서울 침공이다.
하지만 막상 사실로 확인하고 나니, 긴장감이 찾아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곧 놈들이 파충류 특유의 비늘을 꿈틀거리며 이곳 용산에 도달할 테니까.
한편,
따앙!
땅!
창문 너머로 세찬 망치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아버지를 필두로, 건축 능력을 갖춘 각성자들이 한데 모여 방어 시설을 건설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크레인을 통해 구조를 짜 맞추고 옮기는 과정이 필요했겠지만, 출하 스킬로 필요한 위치마다 자재를 출하해준 덕에 시간을 상당히 단축할 수 있었다.
<건축> 능력 각성자들의 가공할만한 건설 속도 또한 빠뜨릴 수 없는 요인이었다.
하지만···
“서울 전체를 지킬 순 없겠네요.”
유성철이 씁쓸하게 덧붙였다.
아무리 합참본부와 용산공원 전체를 성벽으로 둘러싼다 한들, 서울 전체를 방어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
놈들이 이곳 서울을 침공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으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한 결과였다.
그 수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노력할 뿐.
내가 말했다.
“당분간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일러두는 수밖에요.”
리자드맨까지는 알 수 없다.
처음 보는 적이니만큼 정보가 없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와이번들이 지붕 아래 인간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쓸데없이 나돌아다니지만 않는다면 놈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을 터.
더욱이, 서울 점령을 최우선으로 하는 놈들이었다.
지금도 전력 재편에 집중하는 걸 보면, 불필요한 살육보다는 곧장 이곳 용산으로 진격해 들어오리라는 것이 타당한 추론이었다.
살육은 그다음의 일이다.
내가 죽어야 서울에 게이트 포탈이 열릴 것이고, 그때 비로소 놈들도 맘 놓고 판을 벌일 수 있을 테니까.
결국 놈들이 노리는 건 서울 대표인 나였다.
그 덕분에···
[서울 대표]이렇게 쓰인 글씨와 함께, 더럽게 큰 홀로그램 화살표가 하늘에 둥둥 떠 있는 상황이었다.
수 킬로미터 바깥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선명한 글씨였다.
“······”
인간 서울이 된 나.
긴박한 상황임에도, 가족들은 도무지 배꼽을 놓지 못했다.
“당선 축하드려요. 대표님.”
큰누나 김주연 씨께서 전국 의료인협회를 대표하여 인사를 올렸고,
“제가 목숨을 걸고 대표님을 지켜드리겠습니다. 대표님은 이곳 서울의 자존심, 천만 시민의 얼굴, 해치 뺨 때리는 마스코트, 한강의 기적, 서울 그 잡채, 아이러브 서울···”
김솔이 2절 3절 뇌절로 나를 떠받들었으며,
“주군께서는 서울과 카멜롯의···”
“그만해.”
란슬롯이 충성심을 발휘했다.
아무리 아공간을 들락날락해도, 이놈의 홀로그램 화살표는 사라질 기미가 없었다.
분명한 건, 이 홀로그램 화살표가 놈들에게도 보일 것이라는 점.
그리고 이를 표적으로 삼아 미친 듯한 군세가 진격해 들어 오리라는 점이었다.
“그래도···”
그저 불리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대놓고 내 위치가 드러나는 게 찜찜하긴 하지만, 역으로 놈들을 꾀어내기 쉽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자연스레 공성전의 그림이 그려질 터였다.
우리가 원하는 위치에서 적들의 공격을 방어하는 형국.
내가 한 가지 덧붙였다.
“요 근처 주민들만큼은 대피가 필요하겠네요.”
삼각지부터 한강대교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대로.
다른 곳은 몰라도, 이곳만큼은 확실한 전쟁터가 될 테니까.
적들의 목표, 그리고 전력을 확인했다.
남은 건 철저히 파놓은 늪에서 놈들을 기다리는 일뿐.
***
카아아악!
와이번이 울음을 터뜨렸다.
펄럭.
넓게 펼친 날개 사이에 타고 있는 것은 한 명의 리자드맨.
사브로스 차원의 7위계 전사, 공대장 라키스였다.
“어디···”
그는 함께 인천에 도착한 코스타스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상당수의 병력을 이끌고 서울로 진격하고 있었다.
덜컹! 덜컹!
선두를 달리고 있는 거대한 수레.
그 위로는 온몸이 사슬에 묶인 거대 리자드, ‘야투’가 실려 있었으며, 주위로 8위계에 달하는 엘리트 리자드맨들이 나란히 행군을 이어가고 있었다.
공중, 그리고 지상 병력이 합쳐진 군세.
사실, 애당초 공중 세력들을 모아 서울을 급습했다면 상황이 빨랐을 것이다.
하지만 와이번들에게는 척력이 존재하지 않았고, 8위계에 해당하는 와이번 기수들 또한 그 수가 충분하지 않았다.
에메스 차원으로부터 지구인들에게 척력을 뚫어낼 무기가 있음을 전해 들은 상황.
하여 강력한 맷집을 자랑한 7위계 괴물, 야투를 앞세웠고, 대량의 지상 병력을 대동했다.
결코 빠르다고 할 수 없는 속도였지만, 사브로스 차원 특유의 강한 체력을 활용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았고, 이따금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의 휴식을 취하며 세찬 행군을 이어 나갔다.
어느덧 인간들이 부천이라 부르는 도시를 지난 지 한참.
몇 시간 뒤면 서울 대표가 있는 위치에 다다를 예정이었다.
“하여간 에메스 놈들···”
라키스가 혀를 찼다.
애당초 에메스가 입찰 경쟁에서 승리했더라면 이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사브로스와 에메스는 돈독한 협력 차원이었고, 이번 입찰 경쟁에서도 함께 세력을 굳혀나가기로 계획되어 있었으니까.
에메스 차원이 덜컥 입찰에서 패배한 탓에, 모든 계획이 어그러진 터였다.
예상을 뒤엎고 에메스를 꺾은 서울 세력이었지만, 라키스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에메스야 뭐, 애초에 방어력만 높은 바보들이니···”
에메스 차원의 장기는 신성력 버프를 두른 건축술, 그리고 무기 제작이었지 싸움 그 자체는 아니었다.
덕분에 압도적인 물량과 공중 전력을 가진 사브로스 차원과는 꽤나 궁합이 좋은 편이었지만, 이제는 그것도 옛말이었다.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게 방어인 놈들인데, 수성 미션을 실패했으니··· 당분간 다차원에서는 고개도 못 들겠어.”
그가 차원 지도부에 있었다면 진즉에 에메스와의 관계를 단절했으리라.
라키스는 그런 생각을 주억거렸다.
“정지!”
펄럭.
라키스가 와이번의 날개를 펄럭이며, 자신의 군세 앞으로 활강했다.
그들 앞에는 적의 본진으로 이어지는 기나긴 한강 다리가 놓여 있었다.
그 위로, [서울 대표]라는 붉은 글씨가 한눈에 들여다보였다.
“···다리는 아직 멀쩡한가.”
어쩌면 인간들이 다리를 폭파할 수도 있었다.
이 기나긴 강을 건널 수 있는 길목은 그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라키스가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해볼 테면 해보라지.”
애당초 물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리자드맨들이었다.
놈들이 다리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기세등등하다면 오히려 자신들에게 기회가 될 터.
본격적인 전투에 앞서, 라키스는 자신을 뒤따르는 수천 마리의 병력을 향해 말했다.
“잘 들어라! 지금 우리는 에메스 멍청이들의 뒤를 닦아주러 온 셈이지만··· 어쩌면 이게 기회가 될지 모른다. 놈들과 나누는 것 없이, 이 지구 전체를 사브로스로 뒤덮을 수 있을 테니까. 그뿐인가? 우리의 주머니도 두둑해질 거다. 모두들 한탕 해서 돌아가고 싶겠지?”
“실패는 나 라키스, 그리고 코스타스 사령관께서 용납하지 않으신다. 죽고 싶지 않다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우는 게 좋을 거야.”
카아아아아!
쉬리리리릭!
그의 말을 알아들은 8위계 지성체들, 그리고 단순히 그들의 살육 의지에 동조할 뿐인 와이번들이 뱀 같은 혀를 내밀며 포효했다.
“가자! 사브로스의 전사들이여!”
그렇게, 그들은 한강대교를 질주했다.
차르르르르르!
사슬이 풀린 채, 미친 듯이 내달리는 ‘야투’를 앞세우며.
의외로 한강대교는 폭파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입성을 반기는 듯, 뻥 뚫려 있을 따름이었다.
쐐애애액!
라키스가 와이번을 타고 빠르게 하늘을 질주했다.
그러곤 다른 병력들보다 한발 빠르게, 지구인들이 있는 용산에 다다랐다.
하지만···
황당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에메스가 패배했다고 하지 않았나?”
[서울 대표]라고 쓰인 홀로그램 글씨.하지만 그 아래 놓인 것은 틀림없는 에메스의 성채였다.
성벽, 철골, 그 주변을 지탱하는 벽돌 하나하나까지, 어느 것 하나 에메스 여신의 축복이 깃들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까.
그건 물론이요···
“아예 도배했다고? 저 비싼걸?”
비싸다.
그것도 아주아주.
성능 하나는 알아주지만, 더럽게 비싸기로 유명한 것이 바로 저 에메스 차원의 건설 자재들이었다.
하물며 에메스 차원 자신들조차 아껴쓰는 재료들이었으니, 두말하면 입이 아팠다.
하지만···
“에메스 이 새끼들이 진짜 돌았나···?”
실속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어지간한 하위 차원에서는 구경조차 못 한다는 축복 형강.
그걸 서너 겹으로 둘러 아예 성벽처럼 만들었으니.
눈 뜨고도 볼 수 없을 만큼 개판을 친 가성비였다.
두두두두두!
사브로스의 군세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라키스가 그저 탄식과 함께 이마를 부여잡았을 때쯤.
슈욱.
그들을 향해 시커먼 그림자가 덮쳐왔다.
“······”
여신의 축복을 받은 거대한 H형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