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4)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4화(4/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 4편
(물류단지의 기러기들 (1))
“저희 왔습니다!”
불 꺼진 물류창고의 어두운 복도.
이용수와 최병철이 손을 들고 앞장섰다.
틱!
우리를 향해 강렬한 손전등 불빛이 쏘아졌다.
가만 보니 멀찍이 서너 명 정도가 통로를 지키고 있었다.
대장 격 쯤 되어 보이는 사내가 한 발자국 다가왔다.
“얼른 들어와. 별일 없었어?”
“별일 있었죠. 아휴, 죽다 살아났습니다.”
“뭐? 어디 안 다쳤어? 잠깐, 이분은···?”
그제야 나를 발견한 사내가 물었다.
그들은 모두 식칼이 고정된 기다란 쇠막대를 들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죽은 오크 시체 두어 구가 복도 구석에 비스듬히 놓여 있었다.
이용수가 나를 소개했다.
“이분이 저희를 구해주셨습니다. 그동안은 팍스 풀필 쪽에 계셨다고 하네요.”
“뭐? ···팍스면 C동 아니야? 아까 아침에 건물째로 사라진?”
이들도 목격한 모양이었다.
내 아공간에 담긴 C동이 통째로 사라져버린 것을.
나름 보답을 하려는 것일까, 이용수가 나를 추켜세워 주었다.
“굉장히 강하신 분입니다. 오크 두 마리를 혼자 처치하시더라고요. 성격도 꽤 괜찮으시고···”
“아니··· 두 마리를 혼자서?”
문지기가 화들짝 놀랐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원래대로라면 오크를 잡기 위해 무기를 든 장정 두엇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복도에 쓰러져 있는 오크들의 사체만 해도 온몸 이곳저곳에 자상이 가득했으니까.
다대일로 싸운 흔적이었다.
이용수가 소개한 화려한 이력 덕분인지, 문지기의 태도가 한층 더 공손해졌다.
“이것 참··· 어서 들어가세요. 용수가 안내해줄 겁니다.”
“예, 감사합니다.”
문지기와 악수를 나눈 나는 이용수를 따라 E동 물류센터 사무실로 들어갔다.
‘센터장실’로 표기된 방에는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이용수가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얼추 상황을 이해한 남자가 내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정말 큰 일을 해주셨군요. 선생님께서 없었다면 이 친구들이 어찌 되었을지··· 정말이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 이럴 게 아니라···”
그가 서랍에서 작은 페트병 하나를 꺼내주었다.
500ml짜리 생수였다.
“드시죠. 다행히 배송 차량이 남아 있었거든요··· 덕분에 식수는 제법 넉넉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저도 충분히 가지고 있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텅텅.
조끼에 매달린 수통을 두드렸다.
아무리 필수 자원이라지만, 어차피 아공간에 가면 무한히 얻을 수 있는 게 생수였다.
이들이 넉넉하다고 해봤자 내가 볼 땐 벼룩의 간에 지나지 않았다.
사내가 인사를 건넸다.
“인사가 늦었군요. 저는 대현택배 군포 터미널 센터장 이진목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김정겸이라고 합니다.”
나는 바로 본론부터 꺼냈다.
“그나저나, 지금 고립된 상황이라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맞습니다. 차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알아보고 있는데··· 위쪽으로는 골프장이 막고 있고 동쪽도 컨테이너들 때문에 차로 다닐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아래 영동 고속도로로는 길이 무너진 상황이고요.”
“그럼 서쪽으로는요?”
나머지 한 곳은 내가 잘 아는 길이었다.
시내로 이어지는 서쪽.
내가 버스로 출퇴근하던 방향이었으니까.
“괴물들이 길목을 완전히 막고 있습니다. 오크라면 어떻게 싸워보기라도 하겠는데··· 무슨 괴조(怪鳥) 같은 게 날아다니는 통에···”
“괴조라고요?”
“젊은 사람들은 와이번이라고 부르더군요. 어찌나 재빠르고 힘도 좋은지··· 다행히 이곳 물류단지 터널 안쪽까지는 따라오지 않더군요.”
오크부터 와이번까지.
완전히 판타지가 되어버린 세상이었다.
내가 물었다.
“굳이 차도를 고집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단순히 여기를 벗어나는 거라면··· 사방으로 길은 많을 텐데요.”
컨테이너 사이로 걸어도 되고, 여차하면 산길을 통해 인근 주택가로 넘어갈 수도 있다.
차만 못 다닐 뿐이지, 도보라면 사방으로 뚫려 있는 게 길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들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물이나 식량을 가지고 나가야 하니까요.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타지에 가족이 있는 택배 기사들입니다. 가족들 생각에 위험을 무릅쓰고 물류센터로 들어온 거였는데··· 저 와이번들 때문에 고립된 상황입니다.”
센터장 이진목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또한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누라랑 애들이랑 집에 있을 걸 그랬습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결연한 표정이었다.
“내일 밤에는 강행돌파를 해볼 작정입니다. 물론 위험하겠지만··· 이렇게 물류단지에 갇혀 있다간 바깥에 있을 가족들도 무사하지 못할 테니까요. 이판사판입니다. 트럭마다 짐도 다 실어 두었고요.”
창문으로 내려다본 출하장에는 십수 대의 배송 트럭들이 일제히 도열해 있었다.
이진목이 아차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피곤하실 텐데 실례가 많았습니다. 내려가서 쉬시죠. 식사도 좀 하시고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해주신 것에 비하면야···”
인사를 마친 나는 이용수와 함께 센터장실을 빠져나왔다.
그가 나를 휴게실로 안내하는 사이, 팍스에게 물었다.
“팍스, 혹시 아공간에 나 말고 다른 사람도 들어갈 수 있어?”
[현재로서는 불가능합니다. 단, 아공간의 레벨을 올리면 가능합니다.]“레벨은 어떻게 올리는데?”
[마석이 필요합니다.] [레벨 2까지는 100개가 소모됩니다.]“에이, 집어쳐.”
아득한 숫자까지는 아니지만, 지금으로서는 택도 없었다.
당장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나중에 가족들을 만난다면 안전히 아공간에 넣어둘 수 있을 터다.
직원 휴게실에 도착하자, 비좁은 방 안에 얼기설기 몸을 뉘인 사람들이 보였다.
이불 몇 개를 이리저리 깔아두었는데, 딱 보기에도 쾌적한 환경은 아니었다.
이용수가 내게 말했다.
“구석 자리를 비워뒀습니다. 들어가서 쉬시죠. 피곤하시면 잠시 눈 붙이셔도 좋고요.”
“아뇨,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나는 돌연 휴게실을 빠져나왔다.
이용수가 따라 나왔다.
“···자리가 너무 누추했을까요?”
“아닙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 저 정도면 호텔이죠. 그보다···”
“그보다요?”
“서쪽 터널을 한번 보고 와야겠습니다.”
***
부르릉!
빨간색 우체국 오토바이가 속도를 냈다.
우리 모두 큼지막한 헬멧을 썼고, 이용수가 핸들을 잡았다.
“저 혼자 가도 되는데···”
“어차피 저도 오늘 중으로 가볼 생각이었습니다. 내일 도로를 넘어가기 전에 사전 조사를 해야 하거든요.”
오크에게 죽을 위험에 처했던 그였다.
불과 몇 시간 만에 또다시 정찰 임무를 자처하는 걸 보면, 상당한 정신력이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와이번들이 터널 안쪽까지는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그 안에서 보는 거라면 안전할 겁니다.”
“그렇군요.”
내 계획은 와이번들에게 출하 스킬을 테스트해보는 것이었다.
무차별 강행 돌파를 선택한 이곳 물류단지 사람들과 달리, 나는 확실한 결과를 원했으니까.
이용수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강남 쪽으로 가실 계획이라고 하셨죠?”
“예, 그렇습니다.”
“아쉽지만 목적지가 겹치는 사람은 없겠네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내일 제 차에 타시겠습니까? 인덕원까지는 태워드릴 수 있거든요.”
“좋죠. 댁이 그쪽이신가요?”
인덕원.
서울로 오갈 때 종종 지나치던 곳이었다.
강남까지 가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그만해도 감지덕지였다.
이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우 같은 마누라랑 토끼 같은 딸내미가 기다리고 있죠. 무사하기만 바랄 뿐입니다.”
팔락.
그가 핸들을 잡지 않은 왼손으로 지갑을 펼쳐주었다.
신분증이 담겨 있어야 할 사진칸에는 딸과 아내가 찍힌 스티커사진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끽해야 일곱 살은 되었을까.
토끼 머리띠를 한 아이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분명 그럴 겁니다.”
나는 불확실한 긍정을 표했다.
진정 그러길 바랐으니까.
도중에 다른 괴물을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어쩌면 우리가 점차 와이번들의 영역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부우웅-
이윽고, 검게 그늘진 터널로 진입했고,
“······”
이용수가 말없이 속력을 줄였다.
머지않아 터널의 끝에 다다랐을 때, 오토바이는 완전히 멈추어 섰다.
이 그늘 밖으로 나가는 순간 와이번이 우리를 덮칠 테니.
끼에에에에···
어디선가 놈들의 비틀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멀찍이 드러난 도로.
발톱에 구겨진 차들이 이리저리 널려 있었다.
똥까지 싸제낀 것인지, 거꾸로 뒤집힌 차 한 대 위로 악취가 나는 흰색 오물이 뒤덮여 있었다.
이용수가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노면에 쓰러진 차들 때문에 제대로 속도를 내긴 어렵겠군요. 잔인한 말이지만··· 많이들 죽기는 하겠습니다.”
그가 거친 한숨을 내쉬었지만, 내가 반박했다.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겁니다.”
저벅저벅.
터널을 당당히 걸어 나갔다.
그런 나를 이용수가 만류했다.
“···지,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빨리 들어오세요!”
“안쪽에 계세요. 확인을 좀 해봐야겠습니다.”
“아니, 확인은 무슨 확인을···!”
위잉-
등 뒤로는 아공간 포탈을 열어두었다.
언제라도 들어갈 수 있도록.
이만한 안전장치 없이 나설 수는 없었다.
변화는 금세 찾아왔다.
끼에에에에!
울음소리와 함께,
쿵!
커다란 와이번 한 마리가 내 눈앞에 내려앉았다.
코를 씰룩이는 것이 마치 ‘감히?’라고 묻는 것만 같았다.
“감히는 니가 감히지, 이놈 시끼야. 출하.”
쐐애액!
선빵필승.
다짜고짜 칼을 날렸고,
푸욱!
끼에에에에에!!
목에 칼이 꽂힌 놈이 미친 듯이 날개를 휘저었다.
머리를 노린 거였는데, 놈의 반응이 빨랐다.
펄럭!
놈이 날개를 펼치자, 주변으로 폭풍 같은 바람이 일었다.
까아아악!
날아든 녀석이 내게 발톱을 휘둘렀지만,
[외부의 존재가 입장을 시도합니다]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존재입니다]파지직!
나는 이미 아공간에 들어와 있었다.
놈의 날카로운 발톱은 포탈의 벽을 단 한치도 뚫고 들어오지 못했다.
그렇게, 어느덧 30초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위험을 감지한 놈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목에 꽂힌 칼날이 거슬리는지 제대로 비행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나 또한 고전했다.
상공 십수 미터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놈을 향해 30초마다 칼이나 도끼를 쏘아댔지만···
쐐애액!
휘익!
날개 주변으로 아쉽게 빗나갔다.
‘···오크보다 훨씬 맞추기가 어려워.’
몸이 두꺼운 오크와 달리, 와이번은 널찍한 날개를 제외하면 온몸이 얇고 유연했다.
하지만 호전성만큼 오크 못지않았다.
끼에에엑!
놈이 제 발로 내게 달려들어 준 덕에···
파악!
도끼로 놈의 머리를 날려버릴 수 있었다.
툭!
와이번의 머리가 길가에 처박혔고,
푸드득.
뱀처럼 잘린 기다란 목이 철썩 아스팔트를 때렸다.
그 끝에서 철철 피가 흘러나왔다.
나는 놈의 최후를 확인하자마자 곧장 터널 안으로 들어왔다.
끼에에에에에!
죽은 와이번 주변으로 몇 마리의 와이번들이 모여들었다.
놈들은 나를 한껏 노려보았지만, 다행히 비좁은 터널 안쪽까지 쫓아오지는 않았다.
나는 천천히 오토바이로 다가가, 이용수의 뒷자리에 올라탔다.
“가시죠.”
“아니, 어떻게···”
그가 기함할 듯 숨을 집어삼켰다.
와이번을 잡아버린 내가 여간 놀라운 눈치였다.
심지어 특수부대식의 투척술이 아닌, 아공간 능력에 의한 것이었으니.
그가 얼빵한 표정을 지으며, 시동을 켰다.
나는 품에서 마석을 꺼내어 그에게 보여주었다.
“혹시, 괴물들을 죽이면 이런 마석이 나오는 걸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저희도 모아두고 있고요.”
“잘 됐군요. 혹시 몇 개나 될까요?”
“대여섯 개 정도 될 것 같군요. 저희가 지금까지 처치한 오크 수가 그 정도 될 테니···”
부르르 오토바이를 모는 그에게, 내가 제안했다.
“여러분들의 마석을 제게 몰아주시죠. 길을 뚫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