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40화(40/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 40편
(동굴 속 마법 대여점 (2))
우적우적.
우선은 밥부터 먹였다.
백민우를 비롯한 각성자 생존자들.
그리고 507여단의 간부 및 병사들이 미친 듯이 음식을 퍼먹었다.
어머니와 오지수가 만들었던 음식 중 상품으로 등록해둔 것들이 있었고, 프레시 센터에서 꺼내온 간단한 즉석식품을 몇 개 섞었다.
전투 식량도 없이 건빵 몇 봉지로 연명하던 그들에게는 둘도 없는 식사였다.
민우가 나를 보며 눈을 빛냈다.
“고맙다, 김대령.”
“······”
군대에 가기 전, 대학 1,2학년 동안은 내내 이 녀석과 점심을 먹었다.
그러고 보니, 한번은 민우의 집에서 밥을 얻어먹은 적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대보름날이었는데, 민우의 어머니께서 이날 오곡밥을 먹어야 복이 들어온다며 우리를 나란히 식탁에 앉히셨더랬다.
그녀의 당부에 따라 최소 열 번, 많이는 서른 번씩 찰진 오곡밥을 잘게 씹었던 그날이 떠올랐다.
더욱이, 잡곡에서 배어 나오는 고소한 쓴물을 씹으며, 어머니와 민우 단둘로 텅 비어있던 그 집을 나지막이 바라보았더랬다.
우적우적.
그런 민우를 내 손으로 먹이고 있었다.
대단히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니고, 밥 한 끼 먹이는 게 별 대수겠냐마는, 둥근 달처럼 세상이 홱 뒤집어진 것이 새삼 여실히 느껴졌다.
민우가 어지간히 배를 채웠을 찰나.
평소에 곧잘 먹던 초코우유를 물려주자, 녀석이 그간 인천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줬다.
“여기에서도 입찰 경쟁이 열렸어. 각성한 사람들끼리 나서봤지만 상대가 안 됐지. 나도 참가했었어. 검사 클래스로 각성했었거든. 결국 별 도움은 못 됐지만···”
멸망 이전에도 검도를 했던 민우였다.
중학교 시절에는 지역 대회에 나가 준우승도 한 적이 있다고 했었는데, 그 실력이 어디 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인천에서의 입찰 경쟁이 어떠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지역 대표가 사망했고, 100명 중 고작 서른 명이 살아남았다.
그 참혹했던 상황을 구태여 상기시킬 필요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어머니는 무사하시고?”
내 질문이 그보다 더 깊게 민우의 심장을 파고든 모양이었다.
녀석이 털썩 고개를 떨구었다.
학기 중에는 기숙사에 머물렀지만, 방학 때면 인천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와 지내곤 했던 민우였다.
별일이 없었다면 어머니와 같이 머물고 있었을 터.
민우가 대답했다.
“그래서 입찰 경쟁 참가자로 자원했던 거야. 꼭 그 새끼들을 내몰아야 했거든···”
민우의 집은 차이나타운 뒤쪽 주택가에 있었다.
하지만 멸망이 시작된 이래 얼마 지나지 않아, 차이나타운과 그 옆 자유공원이 통째로 입찰 경쟁의 전장이 되었고, 투명한 결계에 가로막힌 탓에 민우는 어머니와 생이별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만일 놈들을 밀어냈더라면 인천 구역을 되찾아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입찰 경쟁에 실패한 탓에···
“···테라포밍이 진행돼버렸지. 이제 결계는 없지만 들어가려야 들어갈 수가 없어. 지금 차이나타운은 아예 동굴로 뒤덮인 상황이야.”
인천에 세워진 게이트 포탈.
그것이 불러들인 것은 비단 적들의 병력뿐만이 아니었다.
게이트 포탈을 타고 흘러든 검은 진흙.
그것은 건물과 건물, 나무와 나무를 타고 올랐고, 이내 하늘을 향해 단단하게 굳어지며 인천 시내 전체를 곳곳이 연결된 거대한 개미굴처럼 만들어버렸다.
사브로스의 존재들이 편히 기거할 수 있고 유리하게 움직일 수 있는 형태로.
완벽한 테라포밍의 방식이었다.
덥썩!
민우가 내 손을 부여잡았다.
“정겸아. 네가 서울 대표가 됐다고 들었어. 여기서 서울로 넘어간 도마뱀들도 모조리 해치우고 왔다고 들었고. 제발 부탁할게. 꼭 좀 도와줘. 나도 목숨 걸고 싸울 테니까.”
절절한 부탁이었지만, 예정된 일이기도 했다.
애당초 사브로스 차원의 도마뱀들로부터 이곳 인천을 수복하기 위해 넘어온 참이었으니까.
더욱이, 녀석의 어머니를 구하는 것은 내게도 기꺼운 일이었다.
나는 아직 정월대보름 밤의 쌉쌀한 오곡밥을 기억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랬다.
내게는 가장 가까운 우리 가족들.
이들은 나의 기억을 이루는 가장 두꺼운 뿌리요 줄기지만, 인연은 그밖에 셀 수 없는 잔뿌리들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진즉 연락이 끊어진 사람도 있다.
멸망 직후 통신 장비들이 먹통이 되며 행방을 알 수 없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 백민우를 만났듯이, 불현듯 돌아와 그래 이런 일도 있었지, 하며 얇은 심지 하나를 태우고 들어오는 기억도 있는 법이다.
모두 하나같이 흐릿한 기억이지만, 먹물 같은 멸망이 그 모두를 뒤덮는 것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물론, 그 모두를 구하겠노라 자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갑작스레 들이닥친 멸망을 최전선에서 걷어내다 보면, 알게 모르게 그들에게도 광명이 찾아들 터였다.
인천을 구하는 것이 민우의 어머니를 구하는 일이 되듯이.
민우가 덧붙였다.
“사브로스의 게이트 포탈이 열렸지만··· 그래도 아직 끝난 건 아니야. 게이트 핵이 남아 있다고 했거든.”
“···아직 남아 있다고?”
입찰 경쟁에서 한 차례 파괴한 바 있었던 괴이한 노른자.
게이트 포탈을 형성하며 절로 사라지는 줄 알았건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상공회의소가 그렇게 이야기했어. 게이트 핵을 부수면 사브로스의 게이트를 닫을 수 있다고.”
패배로 끝난 줄 알았던 입찰 경쟁.
그것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게이트 핵은 지금 어디에 있는데?”
“그게···”
우물쭈물 답하지 못하는 민우.
누군가 나타나 녀석 대신 답해주었다.
507 여단의 작전 참모였다.
“아직 수색 중입니다. 시내 곳곳이 테라포밍 탓에 동굴로 뒤덮여버린 상황이라 수색이 쉽지 않아요. 여러 차례 드론도 띄워봤지만 모두 초입에서 격추당해버렸고요. 이번에 들러달라 요청했던 것도 놈들의 동굴 지대에 대해 설명해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가 말을 이어나갔다.
“동굴 바깥까지는 잘 나오지는 않지만, 되레 테라포밍이 진행되고 있는 탓에 놈들의 영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여의치 않다면··· 해병대 쪽에 포격 지원을 요청하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고요.”
“잠깐만요, 참모님!”
포격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민우가 끼어들었다.
“그 밑에 있을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요?”
“게이트 핵을 찾아내지 못하면 그 이상이 죽습니다. 무차별로 폭격할 것도 아니고요. 놈들의 게이트 포탈이 있는 위치 주변으로 조금씩 반경을 넓혀 갈 겁니다. 찾으면 포격을 멈추면 그만이고요.”
작전 참모로서는 차선의 결정이었다.
동굴처럼 뒤덮인 도시와 그 안에 갇힌 사람들.
그들 또한 폭발에 휘말릴 테지만, 게이트 핵을 찾지 못하면 더 큰 피해로 번지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제가 찾아드리죠. 일단 좀 더 가깝게 붙어야 해요.”
내가 끼어들었다.
최선을 두고 구태여 차선을 택할 필요는 없는 법이었으니까.
카멜롯의 망령들을 활용할 차례였다.
***
507여단의 위치는 부평.
때문에 인천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서는 좀 더 가깝게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스멀스멀 도시를 뒤덮은 놈들의 동굴 벽.
차이나타운에서 시작된 사브로스의 테라포밍은 어느덧 제물포역에 다다라 있었다.
우리는 그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인천대 제물포 캠퍼스에 자리를 잡았다.
멀찍이서 사브로스 차원의 진흙이 스멀스멀 넘어오고 있었지만,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했다.
후욱!
후욱!
어느덧 네 명까지 소환된 기사들.
남은 망령은 여덟에 불과했지만, 여전히 많은 숫자였다.
휘익!
지형지물을 통과할 수 있는 녀석들이다.
차이나타운을 향해 한껏 쏘아져 나간 망령들은, 인근 주택가에 이르러 스르륵 동굴 벽을 타고 내려갔다.
줄곧 망령들의 시선을 공유받고 있던 나는, 망령 라이오넬이 익숙한 대문을 후욱 통과하자마자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민우의 어깨를 불끈 움켜쥐었다.
“어머니 무사하시다.”
“뭐···?!”
물론 잘 계시다곤 할 수 없었다.
바싹 매마른 싱크대.
텅 빈 찬장.
낡은 자개장에서 두꺼운 솜이불을 꺼내놓으신 민우의 어머니는 몸을 옆으로 뉜 채 쓸쓸하게 누워계셨으니까.
식량도, 마실 물도 다 떨어졌고, 밖을 돌아다니는 괴물들 탓에 집에서 나갈 수조차 없는 상황.
몸을 파고드는 무력감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 터였다.
민우에게는 특별히 덧붙이지 않았다.
그저 아직 무사하시니, 게이트 핵을 부수고 구해내면 될 거라 말해주었을 뿐.
“고맙다··· 고마워 정겸아···”
눈물 콧물 쏟는 백민우.
이상한 말이지만, 녀석의 고맙다는 말이 영 불편했다.
하루라도 빨리,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소의 내 친구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랄 뿐.
그리고 그건, 이제 내게 달린 문제였다.
“어디 보자···”
이제는 사브로스 차원의 ‘게이트 핵’을 찾을 차례였다.
놈들의 동굴은 골목과 골목, 거리와 거리를 복잡한 혈관처럼 연결하고 있었다.
그 사이를 통과하는 망령들은 먼 거리를 왕복하고, 같은 자리를 빙빙 돌며 부단히 놈들의 심장이 숨어 있을 장소를 수색해나갔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안 보이는데?’
놈들의 게이트는 발견했다.
푸른 빛의 영롱한 포탈.
그 안에서는 지금까지도 리자드맨들이 한두 마리씩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주변으로부터 천천히 영역을 넓혀갔음에도, 게이트 핵은 커녕 그걸 지키고 있을 만한 병력조차 찾아 볼 수 없었다.
놈들은 그저 이곳저곳으로 뻗은 동굴의 출입구를 관리하며 서서히 인천을 덮어나가고 있는 테라포밍에 집중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게이트 핵.
사브로스 차원으로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물건이었다.
당연히 놈들이 감출 수 있는 최적의 장소에 숨겼을 터.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주억거리던 나는, 한 가지 생각에 다다랐다.
자연적인 동굴이 아니다.
테라포밍으로 인해 자라나고, 빚어진 동굴 지대.
만일 그렇다면···
‘아예 밀실이 있을 수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동굴이다.
‘비밀의 방’ 하나쯤은 만들어져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터.
곧장 망령들에게 온 벽을 뚫고 다녀보라 지시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은은한 불빛으로 밝혀진, 좁디좁은 방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뭐지?’
하지만 그 내부는 사브로스 차원과는 퍽 어울리지 않았다.
고풍스러운 나무 책상.
그 위로는 수십 개의 잉크병이 쌓여 있었고, 책상 뒤에 놓인 작은 책장에는 낡은 두루마리 양피지가 끈에 동여 매인 채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훠이! 훠이! 뭐야 이게!”
인간 노인 한 명이 나의 여덟 망령을 내쫓고 있었다.
큼지막한 코, 잘게 뻗은 회색 머리칼.
하지만 표독스러운 눈만큼은 어딘가 소름끼치는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 이곳에 있었다.
사브로스 차원의 게이트 핵.
짧은 팔다리가 달린 구 형태인 게이트 핵은, 아무렇게 달린 눈 코 입을 덜렁거리며 망령을 내쫓는 마법사를 시시덕거리며 즐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생명의 반죽, 정확히 그런 인상이었다.
내가 에메스 차원의 게이트 핵을 부쉈을 때 느꼈던 것과 정확히 궤를 같이하는 역겨움이었다.
망령들을 보다 못한 마법사가 결국 칼을 빼 들었다.
정확히는 그의 뒤에 놓인 책장을 허둥지둥 뒤적거리더니, 그중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북 찢어 넘겼다.
그러곤 외쳤다.
“에··· 엑소사이스!”
휘이익!
노란 장막이 놈이 찢은 양피지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다섯의 망령들이 공간에서 밀려났고, 나머지 세 망령은 그 자리에서 소멸해버렸다.
띠링!
[카멜롯의 망령, 헥터, 트리스탄, 캐러독이 소멸했습니다.] [재생산까지 남은 시간 23h 59m···]정체를 알 수 없는 노인.
방법은 알 수 없으나, 망령들을 내쫓아버렸다.
더욱이, 사브로스의 게이트 핵과 희희낙락하는 걸 보면, 적어도 지구의 인간이라 보기는 어려웠다.
‘분명, 타차원의 존재야.’
사방이 둘러싸인 공간.
마침내 놈들의 심장을 발견했지만, 예상치 못한 방해꾼이 숨어 있었다.
“아무렴, 지키는 사람 하나 없을 리는 없겠지.”
이번에는 내가 직접 행차해줄 생각이었다.
놈의 아담한 방으로.
하지만 그 전에···
“먼저 가서 손 좀 봐주고 있어야겠다. 모드레드.”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유체화] 능력을 가진 유령기사, 모드레드.녀석을 먼저 보내볼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