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43)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43화(43/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 43편
(되찾을 것들을 위한 기념비 (2))
콰아아앙!
제물포 고등학교의 탁 트인 운동장.
그 중앙에서 거센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마법사와 코스타스는 나를 네크로맨서로 오인했다.
놈들은 자칫 병사들이 각개격파로 언데드가 될 것을 우려해 남은 병력을 모조리 공터에 모아주었는데, 그 덕분에 사브로스의 잔당들을 편하게 일망타진할 수 있게 되었다.
카아아악!
사라진 게이트와 동굴.
퇴로를 잃은 사브로스의 도마뱀들은 허둥지둥 노란 눈동자를 뒤집으며 죽음을 맞이했다.
그 방식은 다양했다.
‘지옥불’ 헬파이어 미사일부터, 유사 파이어볼인 강화 볼링공, 마지막으로 진짜 2서클 마법인 ‘파이어 볼’까지.
각각의 불길이 파충류들의 껍질을 바삭하게 구워버렸다.
물론 와이번들은 예외였다.
퍼득!
퍼드득!
녀석들은 땅을 박차고 하늘로 도주를 시도했으니까.
하지만,
투두두두두!
수천 발의 총알이 놈들의 날개를 종잇장처럼 꿰뚫었다.
아공간에서 쏟아져 나온 60여명의 군인들이 탁 트인 하늘을 겨냥했다.
카아아악!
끼에에에엑!
불에 타는 리자드맨, 그리고 벌집이 되어가는 와이번들.
그렇게 괴물들의 사체가 몇십 분째 겹겹이 쌓였을 때쯤.
쿠웅!
마지막 리자드맨이 비명과 함께 불길에 허물어졌다.
치이이···
새카만 파충류들의 사체와 함께 잔뜩 그을린 운동장.
그 위로 ‘아쿠아’ 마법을 연달아 쏟아 부었다.
촤아아악!
뭉게뭉게 핀 수증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후우······”
긴장된 어깨를 내려주는 한숨과 함께.
그렇게, 인천에서의 전쟁이 비로소 막을 내렸다.
.
.
.
급한 일을 모두 마무리한 뒤.
나는 유유히 차이나타운의 언덕으로 되돌아갔다.
뽀옥!
뽁!
<상품 회수>로 곳곳에 널브러진 와이번들의 마석을 빨아들였다.
그러곤 코스타스의 입 속에 담긴 마법사의 시체에서 모드레드의 [유체화] 강화석을 회수했다.
“정겸아!”
길목 한쪽에서 민우가 뛰어나왔다.
한결 편안한 표정이었다.
이미 어머니를 구한 상태니까.
내가 사브로스의 잔당을 처리하는 동안, 민우의 어머니는 아공간에서 큰누나로부터 치료를 받고 있었다.
형수가 만든 포션까지 복용한 덕에, 단순 탈진 상태였던 그의 어머니도 금세 활기를 되찾으셨다고.
얼추 상황을 갈무리한 뒤, 나를 데리러 왔다고 했다.
“지금?”
“그래, 다 너만 기다리고 있으니까 빨리 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민우가 목적지를 가리켰다.
“여기야.”
공교롭게도, 방금 전 입맛을 다셨던 장소였다.
차이나타운을 대표하는 유명 중식당.
계단을 통해 그곳 3층에 다다랐다.
화악!
문을 열자마자 드리운 커다란 공간.
식당 곳곳에는 우리 가족들과 형수의 처가 식구들은 물론, 이용수 일가, 아공간의 군인들, 그리고 이곳 507 여단의 각성자들이 빠짐없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 많은 인파를 감당하기 위해, 주방에서는 중국집 특유의 거센 불길이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언뜻 파이어볼 스크롤이 보인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가족들이나 민우에게 인천에 필요한 식량을 아공간에서 빼내 가라 일러두었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화려하게(?) 가져다 쓴 모양이었다.
민우가 내 등을 턱턱 두드리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사장님이 우리 엄마랑 절친이시거든. 너 밥은 꼭 먹이고 보내야겠다고 하셨어.”
민우가 나를 가족들이 있는 테이블로 안내했고, 민우의 어머니 또한 함께 앉아계셨다.
그녀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 양어깨를 호들갑스럽게 두드렸다.
“정겸아! 고생 많았다··· 고생 많았어!”
정월대보름의 그날, 인천까지 오느라 고생했다는 그녀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사뭇 그간의 멸망이 지워진 것처럼.
그런 명랑한 착각이 싫지만은 않았다.
“자! 드세요!”
인사도 식후경이다.
주방에서 따끈따끈한 요리가 하나둘 날아들었다.
이곳의 명물인 하얀 짜장부터 탕수육, 고급 메뉴인 누룽지탕과 가지튀김까지.
모락모락 피워 오르는 김이 깊숙하게 입맛을 자극했다.
마지막으로 뜨겁게 달궈진 철판 위에 바삭바삭하게 튀겨진 유린기가 식탁 위에 올려졌고···
치이이이익!
민우 어머님의 절친, 주방장께서 달달한 소스를 끼얹어주셨다.
뜨거운 철판에 고여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소스.
그 위로 촉촉하게 젖어 들어가는 바삭한 튀김을 향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젓가락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잠깐!”
큰누나 김주연 씨께서 돌연 그 손길을 제지했다.
그러곤···
“사진 찍어야지!”
그녀가 꺼내 든 것은 일전의 폴라로이드 카메라였다.
파앙-!
시원하게 터진 플래시.
어디 자랑할 곳도 없을 것이다.
SNS는 커녕, 인터넷 자체가 먹통이 되어버린 상황이니까.
하지만 이런 제대로 된 요리를 마주하는 것은 더더욱 드문 일이었다.
당연히 카메라를 들이밀고 싶을 수밖에.
“이제 끝!”
큰누나의 허락에, 다시 모두가 젓가락을 들어 올렸지만···
“잠깐!”
이번엔 내가 제지했다.
“상품으로 등록해 둬야지.”
제대로 갓 만든 중식요리.
프레시센터에 쌓여 있는 레토르트 즉석요리와 밀키트의 뺨 싸대기를 후리고도 남는다.
하물며 중식의 본고장, 차이나타운의 요리가 아니던가?
이건 참을 수 없었다.
“아 진짜!”
배고픔을 참지 못한 초원의 맹수, 김솔이 내 머리칼을 쥐어뜯었지만, 나는 꿋꿋이 팍스를 불러 <카테고리 상품 등록>으로 유린기, 하얀짜장면, 삼선짬뽕, 탕수육, 누룽지탕, 가지튀김, 팔보채, 고량주 등등을 빠짐없이 쟁여 넣었다.
갖은 역경을 헤치고 마침내 진행된 식사.
한상 그득 차려진 요리들을 차례로 맛보았고,
후루룩!
하얀 짜장과 간짜장을 차례로 흡입했다.
“휘우!”
그렇게, 차디찬 탄산음료를 삼키며 식사를 마무리할 때쯤이었다.
“정겸씨.”
통신대대장 한경호가 슬쩍 내게 다가왔다.
어딘지 무거운 목소리였다.
“예, 무슨 일이죠?”
“작전본부장님으로부터 온 무전입니다. 급히 할 이야기가 있으시다고···”
어쩐지 심상치 않은 기운에, 최대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왁자지껄 식후 담화를 나누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조용한 건물의 계단 쪽으로 향했다.
덜컹.
무전기를 출하했고, 한경호가 주파수를 세팅해주었다.
덕분에 곧장 작전본부장 유성철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정겸씨, 인천을 수복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고생 정말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지원해주신 병력들의 도움이 컸어요. 그보다··· 급히 하실 말씀이라는 게?”
-논의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정겸씨도 아시다시피 입찰 경쟁에서 패배한 국가들이 많지 않습니까? 당장 주변에 있는 중국이나 일본, 북한도 그렇고요. 남아 있는 핫라인으로 국가별 상황을 공유받는 중인데···
주변국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일까?
하지만 정작 유성철이 꺼내 든 것은 한층 더 심각한 이야기였다.
-모두 상당한 규모로 테라포밍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이 넘어오고 있어요.
“···넘어오고 있다고요?”
테라포밍의 속도는 꽤 빨랐다.
이곳 인천 시내만 해도 꽤나 빠른 시간 내에 동굴 지대로 뒤덮여버렸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하루 이틀 내에 수도권을 잠식할 정도냐 묻는다면, 단연코 그 정도로 빠른 것은 아니었다.
테라포밍이 해당 지역을 넘어 주변국까지 영향을 미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터.
나는 유성철의 대답에서 그 전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베이징 게이트에서 중독을 일으키는 대기가 흘러나오고 있어요. 후쿠오카 게이트에서도 독성이 담긴 해수가 뿜어져 나오고 있고요.
주변국들로 인한 대기 오염과 수질 오염.
어쩐지 퍽 익숙한 이야기였지만, 이번엔 그 정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베이징의 대기가 편서풍을 타고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 독성은 상상을 초월하고요. 벌써 베이징과 톈진 일대에서는 최소 수천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후쿠오카도 사실상 완전히 괴멸된 상태고요.
“둘 중에··· 우리에게 더 심각한 건 어느 쪽이죠?”
-물론 중국입니다. 오염된 대기는 바다든 육지든 가리지 않으니까요. 저희 쪽 기후 전문가가 추산하기로는··· 최소 일주일, 늦어도 열흘 이내에는 오염된 대기가 한반도에 상륙할 겁니다.
유성철이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베이징에 열린 게이트를 닫아야 합니다. 저희 쪽에서도 병력을 보낼 예정이지만··· 냉정히 판단하기로 저희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저 발버둥이지요. 해서··· 정겸씨에게 손을 보태주십사 요청드리는 겁니다.
그것이 그의 부탁이었다.
하지만 이걸 부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가만히 있다간 한반도가 통째로 지옥으로 변할 마당에?
“알겠습니다. 이곳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다시 연락드리죠. 오늘 저녁 중에요.”
-예, 기다리겠습니다.
뚝.
수화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인천을 수복했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세계는 테라포밍으로 인해 오색찬란한 멸망들로 물들어가고 있었으니.
더욱이, 그 영향이 곧장 한반도로 밀려들고 있었다.
무거운 발걸음.
한경호와 함께 가족들이 있을 식당으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들어가고 나니, 누나들이 꽤나 호들갑이었다.
“야야! 어디 갔다가 이제 와? 오빠가 중대 발표한대.”
“중대 발표···?”
가족들과 형수네 처가 식구들, 그리고 이용수 일가와 민우와 그의 어머니까지 모두가 둥글게 모여 앉아 있었다.
그 중심에는 형수를 앉혀 둔 채, 형이 우뚝 서 있었다.
완연한 ‘중대발표’의 그림이었다.
형수가 배에 손을 얹으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고···
확실히, 그건 놀라운 소식이었다.
“···임신한 것 같아요. 정확히는 임신해 있었던 거지만··· 배가 불러오길래 혹시나 싶어 임테기를 돌려봤는데, 역시나더라고요.”
“꺄악!”
누나들이 환호를 내질렀고, 누구나 할 것 없이 손뼉 소리를 울렸다.
이용수가 내게도 축하를 건넸다.
“이야··· 정겸씨 조카 생기겠네요? 유정이도 너무 좋아할 것 같고요.”
물류센터에서 아기 인형을 줄곧 선호하던 유정이었다.
내 조카에게도 좋은 누나, 또는 언니가 되어줄 것 같은 느낌.
식당 전체가 훈훈한 분위기로 물씬 달아올랐다.
유성철로부터 한국의 시한부 선언을 듣고 온 참이다.
하지만 당장은 모른 척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 어찌 찬물을 끼얹는단 말인가?
오염된 대기가 넘어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최소 일주일에서 열흘.
적어도 오늘 저녁만큼은, 다가올 멸망을 품속에 감춰두기로 했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조카···! 조카라고···!”
나 또한 흥분을 감출 수 없었으니.
“···내 새끼!”
“애가 왜 니새끼야 임마!”
큰형이 버럭 외쳤지만, 해주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몰라! 앞으로 학용품은 내가 책임진다! 유모차도! 기저귀랑 분유도!”
묘한 감정이 휘몰아쳤다.
아공간 한 곳을 개조해 값비싼 유아용품으로 도배한 아기방을 만들어 주어도 좋으리라.
물론 건강하게 태어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그와 동시에,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무거운 현실이 있었다.
건강하게 태어날 아이, 그리고 녀석이 성장할 환경.
그를 위해선···
‘···이곳 지구를 멀쩡한 땅으로 만들어야겠지.’
괴물들이 인간을 도륙하고, 곳곳에서 오염된 대기와 해수가 날아드는 세상을 살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이 세계는 반드시 수복되어야 했다.
새로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도, 미래를 살아갈 나를 위해서도.
그건 아공간에 담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니까.
***
모두가 잠든 인천의 저녁.
나는 민우와 함께 차이나타운의 거리로 나섰다.
청명한 밤공기.
이 맑은 대기가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오염될 것이라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내일 당장 떠날 계획이었다.
베이징의 소식을 민우에게 전하자, 녀석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나도 같이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여기 정리가 덜 끝났잖아. 그리고··· 같이 가는 거나 다름없을 거야.”
새로 얻은 포탈 설치 능력.
나는 사브로스의 게이트가 있던 바로 이 자리에, 아공간 포탈을 설치해둘 작정이었다.
—
◈ 포탈 설치
-해당 지역에 아공간으로 통하는 포탈을 설치합니다. (비용, 마석 1,000개)
—
“팍스, 포탈 하나 설치해줘.”
[알겠습니다.] [마석 1,000개 받았습니다.] [아공간 포탈을 설치합니다.]설치형 포탈.
평소에 사용하던 아공간 포탈과는 성질이 조금 달랐다.
기존의 아공간 포탈은 일종의 ‘물리력’을 가지고 있었다.
방패처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좌표로 지정한 사물을 따라 움직이게도 할 수 있었으니까.
물류단지 터널에서 와이번들을 상대할 때 트럭에 아공간을 실었던 것, 벽돌 째 움직이는 카멜롯 성에서 포탈을 타고 이동했던 것 모두 이러한 성질을 응용한 것이었다.
하지만,
[설치형 포탈은 외부로부터 물리적인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그대로 허공에 고정될 뿐.
설치된 포탈은 만질 수도, 옮길 수도 없었다.
간단히 말해···
“매번 내가 직접 설치해야 하는 거구만.”
[그렇습니다.]누구에게 맡길 수도, 어디에 실어보낼 수도 없다.
결국 내가 움직이는 경로마다 하나씩 설치해두는 게 최선이었다.
물론, 그만 해도 엄청난 능력이다.
한 번만 고생하고 나면, 그 이후로는 아무리 먼 거리라도 포탈을 타고 이동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뭐, 좋아.”
이러나저러나, 그 첫 시작점은 이곳 인천이 될 터였다.
지이잉.
차이나타운 중심에 활짝 피어오른 푸른색 포탈.
팍스에게 미리 민우의 입장을 허가해두었다.
“나 보고 싶으면 여기로 들어와.”
“···가는 게 가는 게 아니었네.”
민우가 너털웃음을 흘렸다.
우리는 인천의 밤 시내를 거닐었다.
내리막을 쭉 걷다 보니, 짙은 남색으로 물든 인천항이 한 눈에 들어왔다.
차갑게 식은 맥주 몇 캔을 출하했고, 부두에 걸터앉았다.
바다에 비치는 달빛을 보고 있자니 한잔 걸치기에 이만한 풍경이 없었다.
다 큰 사내 둘이 주접을 떨었고, 내가 그 포문을 열었다.
“민우야, 얼추 상황이 정리되고 나면··· 우리 꼭 복학하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다 박살 난 마당에?”
“싹 다 되돌려 놓으면 되지. 뭘.”
“이걸 소탈하다고 해야 할지··· 대범하다고 해야 할지. 그나저나 니가 학교를 다 그리워할 줄은 몰랐다.”
쭈욱.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켠 나는, 진짜 소망을 내비쳤다.
“CC··· 해보고 싶거든.”
“씨씨······?”
캠퍼스 커플.
지옥 같은 군 생활 내내 진정 꿈꿔오던 것이었다.
복학 직전에 세상이 뒤집어진 턱에 요원한 일이 되었지만.
꽤나 의외라는 듯, 민우가 물었다.
“학교 2년 동안 다녀놓고, 그동안은 왜 안 했어?”
“안 하긴? 못 했지. 연애를 나 혼자 하냐?”
되묻는 나를 보며, 민우가 그야말로 똥 씹는 표정을 지었다.
“너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내가 자리 비켜준 게 몇 번인데?”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너랑 약속 파투 내고 먼저 집에 간 적 몇 번 있었지? 그때마다 갑자기 밥 먹자고 온 애들 없었든?”
“미정이랑 지유? 에이 걔들은······”
“······”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내가 되물었다.
“······그게 계획된 거였다고?”
“와··· 이런 미련 곰탱이 같은 새끼······ 난 니가 그냥 연애에 관심이 없는 줄···”
“······”
잠시 말을 멈춘 나는 다시 의지를 다졌다.
“민우야, 반드시··· 반드시 세상을 구해야겠다.”
“진짜 깬다. 사심이 그득하네.”
반드시 세상을 구할 것이다.
외계의 황사로 뒤덮인 한국이 아닌, 벚꽃으로 휘날리는 핑크빛 교정을 걷기 위해.
얼추 대화가 마무리되어갈 때쯤, 민우가 물었다.
“그런데, 중국으론 어떻게 넘어가게? 헬기로?”
“거리가 멀어서 그건 어렵다더라. 비행기 타야지.”
마침, 우리가 있는 곳은 인천이었다.
한국 최대 규모의 공항이 위치한.
“인천공항으로 갈 거야.”
그것이 베이징으로 갈 경유지가 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