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46)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46화(46/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 46편
(아포칼립스의 내공심법 (2))
이튿날.
호텔 로비에서 만난 운양은 말했다.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풍족하게 공급된 식량과 식수.
가장 결정적으로는 깨끗한 공기까지.
애당초 상정했던 조건이 송두리째 뒤바뀌었으니까.
“원래는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지는 싸움이었습니다. 독을 정화하느라 계속해서 내공을 소모하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휘이이이익!
호텔 곳곳에 몰아치는 바람.
그 신선한 공기가 운양의 머리칼을 휩쓸었다.
그는 놀랍다 못해 한편으론 황당하단 눈치였다.
“지금은 반대로 내공이 쌓이고 있습니다. 모두들 점차 강해지고 있어요.”
“그 말씀은···”
“예, 한차례 숨을 고르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시간이 많은 건 아니지만요.”
벨제부르의 오염된 대기는 지금도 편서풍을 타고 흐르고 있었으니까.
“산둥성의 해안 도시들이 먼저 피해를 입을 겁니다. 늦어도 나흘 내로 벨제부르의 대기가 도달하겠죠. 아시다시피··· 그다음은 한국이 될 거고요.”
막대한 피해가 예고된 상황.
벨제부르의 대기가 미치는 영향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의 자연 생태계를 완전히 무너뜨렸으니까.
“베이징 주변 녹림 지대가 완전히 끝장났습니다. 게이트 핵을 부숴 대기를 정화한다 해도··· 피해를 복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어요.”
결론은 간단했다.
오염된 대기가 해안 도시에 다다르기 전에 끝내야 한다는 것.
내가 상황을 요약했다.
“늦어도 나흘 내로는 매듭을 지어야겠군요.”
“맞습니다. 그동안 최대한 내상을 회복해야겠죠.”
기한을 확정한 우리는 재빨리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상대해야 할 벨제부르 차원의 전력에 관한 것.
설명을 위해 운양이 노트를 가져왔다.
그러곤 파브르 곤충 박사처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잘 그리잖아?’
슥슥.
빠르게 완성되어가는 그림.
분명 괴물들일 텐데도, 어쩐지 그 외양이 낯설지 않았다.
완성된 곤충도감을 가리키며, 내가 물었다.
“말벌··· 나방··· 이건 개미네요?”
“맞습니다. 맞긴 한데···”
똑같았다.
다만 사이즈가 대륙이었을 뿐.
말벌과 개미는 소 한 마리쯤 되는 크기였고, 나방은 2-3층까지 건물 크기의 괴물이었으며, 하나같이 8위계의 척력을 두르고 있었다.
상상만 해도 끔찍했지만, 정작 문제는 이놈들이 아니었다.
“메뚜기랑··· 꽃매미?”
“한국에도 있는 곤충일 줄은 몰랐군요. 맞습니다. 사실 이놈들이 더 큰 문제거든요.”
역시나 크기가 컸다.
팔뚝만 한 메뚜기 떼가 가축과 사람을 가리지 않고 물어뜯었고, 방패연 크기의 꽃매미가 새하얀 분진을 뿌려댔다.
크기만 컸지, 척력을 두르지 못한 하위 개체들이었지만···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때려잡는 게 아무 의미가 없을 정도로요. 무시하면서 게이트로 넘어가는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그게 가능할까요?”
“내공을 두르면 가능할 겁니다. 어느 정도의 피해는 감수해야겠지요.”
내공이 회복됐기에 내릴 수 있는 결정이었다.
나름 계산을 하며 하는 말이겠지만···
내게 더 명쾌한 방법이 떠올랐다.
“결국 벌레들이잖아요?”
“그렇긴 합니다만······”
“살충제 뿌립시다. 저한테 많아요.”
“예···?”
해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
.
.
우리는 곧장 실험에 돌입했다.
무림인 한 명이 거대 메뚜기와 꽃매미 한 마리씩을 잡아다 주었고, 밀폐된 컨퍼런스 룸에 팔뚝만 한 놈들을 결박해 두었다.
치이이이!
수십 종의 살충제들.
에프킬라, 홈키파, 바퀴용, 모기용, 허브향, 레몬향까지.
실험실의 연구원처럼 각 제품의 살충력을 꼼꼼하게 비교했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같았다.
“효과가 없는 건 아니지만···”
버둥버둥!
괴롭다는 듯, 꿈틀거리는 여섯 개의 다리.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치이익!
치익!
수십 통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아무리 약에 절여도 벌레들의 목숨을 결코 끊어지지 않았다.
뭔가 다른 방법이 절실해질 시점.
“아, 그렇지.”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
운양에게 주어진 시간을 재확인했다.
“3일 뒤, 아침에 결행. 맞죠?”
“예. 늦어도 그때에는 승부를 봐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곧 돌아올게요.”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다시 아공간으로 발을 들였다.
.
.
.
아공간에 개방된 능력들.
내게 주어진 것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나에게만 허락된 능력은 아니었다.
아공간 실험실.
포션을 만들 때도, 그 밖에 다른 잡다한 버프 포션을 개발할 때도 형수는 곧잘 내 아공간 실험실을 애용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재료를 직접 가져올 필요 없이 실험실의 홀로그램을 띄우면 되었고, <연금술사> 능력으로 확인한 조합식에 맞게 팍스에게 계량과 혼합을 요청하면 되었으니까.
이참에 나는 형수에게 의뢰할 생각이었다.
벨제부르의 곤충들을 쓸어버릴 초강력 살충제 제작을.
형이 걱정을 앞세웠지만···
“뭐? 살충제? 그거 아기한테 안 좋은 거 아니야?”
“홀로그램이라니까.”
다행히 형수의 몸에 부담이 갈 일은 없었다.
남은 문제는 그렇게 완성한 살충제의 효과를 검증하는 문제.
다행히, 이 부분도 해결할 방법이 남아 있었다.
얼마 전, 아공간 5레벨을 달성하며 새로운 능력을 얻었으니까.
—
◈ 아공간 실험실 (3) (New!)
-외부에서 식별된 대상을 홀로그램으로 형상화할 수 있습니다.
-형성된 홀로그램을 대상으로 모의 시뮬레이션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 단, 대상에 대해 확인된 정보만 시뮬레이션에 반영됩니다.
—
이제는 외부의 적들까지 실험실에 띄워놓을 수 있게 됐다.
벨제부르의 곤충들을 띄워놓고, 그 위로 살충제를 뿌려볼 수 있다는 소리.
더욱이 그 모두가 홀로그램으로 구성되는 만큼, 완전히 안전한 환경에서 시뮬레이션을 진행할 수 있었다.
개방에 필요한 비용은 마석 3,000개.
적지 않은 비용이지만··· 항상 그랬듯 아깝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팍스, 개방해줘.”
[알겠습니다.] [마석 3,000개 받았습니다.] [남은 마석은 18,877개 입니다.]신형 살충제 개발이라는 목표.
형수는 부담 없이 의뢰를 받아들였다.
“어차피 평소에 하던 일인데요, 뭐. 벌레가 좀 징그럽긴 하겠지만··· 어차피 홀로그램이기도 하고. 힐링 포션 만들었을 때만큼 보람도 있을 듯하고.”
“뿌리는 건 내가 할게, 여보.”
“그럼 더 좋고!”
신혼부부가 나란히 역할을 나눠 가졌다.
당장 오늘부터 메뚜기와 꽃매미에게 살충제를 뿌려가며 실험을 거듭할 터.
주어진 3일 내로 개발이 완료되기를 애타게 바랄 뿐이었다.
***
이제 남은 것은 무림인들의 준비였다.
“자- 따끔해요.”
“아앗!”
큰누나가 내상이 심한 이들을 골라 치유했고,
“쓰으읍! 쓰읍!”
남은 이들은 운기조식을 이어 나가며 내력을 쌓아나갔으며,
운양처럼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따로 모여 실전적인 훈련에 돌입했다.
호텔의 컨퍼런스룸 몇 개를 연무장으로 개조했고, 수십 명의 무림인이 저마다 연공과 수련을 거듭하며 힘을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운양 다음으로 두각을 드러내는 이가 있었다.
파앙!
경쾌한 타격음.
예고된 공방이었음에도, 주먹을 받은 사내가 십여 미터 뒤로 밀려나 버렸다.
푸쉬이이···
기감으로 둘러싸인 주먹을 거두는 공격자.
그녀는 파축문(破築門)의 권룡(拳龍)이었다.
2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젊은 얼굴이었는데, 정작 주먹을 내지를 때만큼은 그런 어리숙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무림인들 사이에서도 그 출중함이 자자한 모양인지, 그녀는 적강운검 운양 다음 가는 실력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잠깐······?’
불현듯, 기시감이 찾아들었다.
딱 한 명 저런 비슷한 존재를 본 적이 있었으니.
아니, 정확히 말하면 보면서 살아왔다.
그래서였다.
이 사자들의 무리에 호랑이 한 마리를 풀어놓은 것은.
곧장 후다닥 아공간에서 김솔을 데려왔다.
“이게 다 뭐야, 사극 찍냐?”
그러곤 운양 앞으로 끌고와 포권으로 그녀를 소개해주었다.
“대협. 이 사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얼떨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운양은 한눈에 김솔의 비범함을 알아차렸으니까.
“정겸 소협, 이분은···”
몸을 감싸는 아우라.
아무래도 몸 쓰는 사람들끼리는 그런 게 눈에 보이는 모양이었다.
운동인들의 통뼈에는 올림픽 DNA라도 담겨있는 것일까?
그저 데려다 놓을 뿐인데도···
‘···왜 갑자기 싸우는 거지?’
김솔과 권룡 간의 친선 비무가 자연스럽게 성사되었다.
척!
서로 포권을 주고받은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슈우우욱!
타앙!
그렇게 시작된 비무.
몇 차례 탐색전을 위한 공방이 이뤄졌지만···
‘아주 특별하진 않네?’
특별한 인상은 없었다.
그저 김솔을 상대로 권룡이 제법 잘 버틴다는 느낌?
하지만, 비무가 이어질수록, 묘한 분위기가 연무장을 채우기 시작했다.
슈우욱!
내질러진 김솔의 일장.
탄성이 새어 나왔다.
“정권공(井拳功)! 정권공이야!”
“그냥 주먹질 아녜요?”
“정겸 소협, 보는 눈이 없으십니다! 저게 어딜 봐서 그냥 주먹입니까?”
20년 내내 맞아봐서일까?
내게는 평범하게 짝이 없는 김솔의 주먹이 무림인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었다.
쐐애액!
복부를 향해 빠르게 날아드는 권룡의 주먹.
김솔은 그 공세를 그대로 받아들더니, 허리를 축으로 돌려 고스란히 사선 방향으로 흘려버렸다.
운양을 비롯한 무림인들이 이번에도 호들갑을 떨었다.
“팔극권(八極拳)까지···?”
“······?”
“어찌 저 어린 나이에 팔극(八極) 묘리를···!”
대략 10여분쯤 지났을까.
승부를 가리기 위한 비무는 아니었다.
두 사람은 포권을 주고받으며 비무를 마무리 지었다.
“정겸 소협, 잠시···”
확인해볼 것이 있다며 운양이 헐레벌떡 김솔에게 달려갔다.
그러곤 김솔의 손목의 맥을 짚더니 탄성을 내질렀다.
“천무지체(天武肢體)···! 세상에 천무지체라니!”
“뭐? 천무지체라고?”
쏟아지는 한자어.
마석의 힘이 통역을 해주고 있었지만,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김솔은 무림인들의 환호에 완전히 녹아들어 있었는데, 무림인 한 명의 목마를 탄 채 ‘협은 협이요 권은 권이니’ 같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따거!”
무림인들의 연호가 쏟아졌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무림인들의 세계였지만, 운양이 간단히 정리해주었다.
“권룡이 누이분께 기술을 전수하고 싶다는군요. 본인의 수련에도 도움이 되는 모양입니다.”
“아···”
서로들 뭔가 통하는 게 생긴 모양이었다.
좋은 일이었다.
김솔은 우리의 든든한 전력이었고, 훈련을 통해 함께 강해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으니까.
‘잠깐?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적강운검, 운양.
그는 검강를 두를 수 있는 검의 고수가 아니었던가?
지잉.
즉시 포탈을 열어 아공간에 들어갔다.
그러곤 설치된 포탈을 통해 인천에 있던 백민우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유학이다, 민우야.”
녀석은 검사 클래스의 각성자였으니까.
***
그렇게, 3일의 시간이 흘렀다.
무림인들은 청명한 지리산의 기운을 통해 내력을 최고로 끌어올렸다.
작은누나 김솔은 권룡과 어울리며 권법의 묘리를 익혔고, 백민우는 적강운검으로부터 기초적인 수준의 검법을 사사받았다.
쿠구구구···
어쩐지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내뿜는 두 사람.
주먹과 칼끝에서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무형의 기운이 감돌았다.
“드디어 오늘이군요···”
운양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비장했던 3일 전의 목소리와는 달랐다.
이전에는 사생결단의 투지가 담겨 있었다면, 이번에는 적들을 쓸어버릴 수 있다는 여유로운 자신감, 그리고 기대감이 깃들어 있었다.
타앙!
허름한 호텔의 정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3일간의 폐관, 이제 그 수련의 결과를 확인할 차례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 가지 더 준비한 것이 있었으니.
부우우웅!
부웅!
열린 문 사이로 메뚜기와 꽃매미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하지만,
펄럭!
무림인들이 너른한 소매에 손을 집어 넣었다.
척!
그렇게 꺼내든 물건은···
친숙한 형태의 스프레이였다.
꾸욱 버튼을 누르자마자,
치이이이이익!
무색의 기체가 공중으로 분사되었다.
퍼드드득!
퍼드득!
까아악!
미친 듯이 거품을 물며 까뒤집어지는 벌레들.
초강력 살충제.
그것의 개발이 완성되었다.
인체에 무해(無害)한 무향(無香)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