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52)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52화(52/240)
52. 수산시장의 숨은 영수증 (3)
어느덧 어둑해진 시점이었다.
슈우욱!
잔영을 남기며 사라지는 유령 기사들.
그들이 후쿠오카의 어둠에 몸을 실었다.
멸망은 이곳에도 있었다.
무너진 도시, 전복된 유람선, 갈라지다 못해 부러진 아스팔트까지.
그 모두가 멸망을 증언하는 적나라한 풍경이었으니.
하지만, ‘유신’을 통해 멸망을 지워낸 일본은 타차원에서 들어온 정체 모를 동력의 빛으로 후쿠오카의 항구를 빛내고 있었다.
후쿠오카 타워가 그랬고, 그 옆에 자리 잡은 소라 껍데기 같은 건물이 그랬다.
후욱!
[유체화] 능력이 빛을 발했다.유령 기사들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건물 내부로 잠입했고, 후쿠오카 타워의 비상계단, 그리고 소라 껍데기의 내벽을 두르고 있는 나선형의 계단을 그림자처럼 걸어 올랐다.
그곳을 지키는 일본의 어인과 샤리트 차원의 어룡인들.
그들의 시선을 피해 가며, 서서히 건물의 심부로 빠져들어갔다.
그리고…
“찾았구나.”
헥터가 후쿠오카 대표를 발견했다.
알아보기 어렵지 않았다.
후쿠오카 타워에 임시로 세워진 듯한 지휘통제실.
그 안에서 갖가지 무전을 받아 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놈이 있었으니까.
“이 멍청한 새끼들아! 지금 얼마 죽었는지가 문제야? 부산 대표만 죽이면 끝날 일을 왜 자꾸 징징거려!”
부산항에서의 패전.
놈은 한바탕 후폭풍을 맞이하고 있었다.
가자미 같은 넓적한 입과 아가미를 씰룩거리며, 썩은 모래를 툭툭 뱉으며.
“……!”
하지만 나는 금세 시선을 거뒀다.
타차원의 건물로 향했던 모드레드와 케이.
그들이 한층 더 중요한 정보를 내게 전달해주고 있었으니까.
시야는 없었다.
신중을 기하려는 듯, 벽에서 울리는 소리가 전부였다.
그저 대화일 뿐이었지만, 그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후쿠오카를 빼앗기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걱정마십시오. 투자금에 대해서는 절대 손실이 없도록…”
걸걸하고 소름끼치는 목소리.
그런데도 그 안에는 묘한 굴종의 자세가 담겨 있었다.
“이보세요, 회장. 누구 마음대로 후쿠오카를 빼앗겨요?”
예민하면서도 얇은 목소리가 받아쳤다.
“예? 하지만 부산에서의 상황이…”
“승리는 물 건너갔죠. 하지만 그게 꼭 패배를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그 말씀은…?”
“잘 떠올려보세요. 제가 분쟁 조건에 지역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말이라도 적어 놓았는지.”
놈이 결론을 내렸다.
“대표만 죽지 않으면 되는 겁니다. 산 채로 본청 뇌옥에 집어 넣으세요. 지금 일본에서 거기만큼 확실한 장소는 없으니까.”
“아…! 지부장님은 다 생각이 있으셨군요!”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지금 대화를 나누는 존재들이 후쿠오카 대표보다 더 윗선의 존재들이라는 것.
그리고 그중 한명은 내가 애타게 찾고 있는 상공회의소의 일본지부장이라는 것을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었다.
놈들은 다음과 같은 말로 대화를 맺었다.
“한국행은 당분간 미뤄둬야 할 듯하니…일단은 게이트 핵을 챙겨서 오사카로 돌아가죠. 패배에 어느 정도의 손실은 마땅히 따라오는 법입니다. 그 규모를 줄이는 데 집중해야죠.”
“예, 지부장님. 명심하겠습니다.”
벌컥 열리는 문.
후우욱.
모습을 감춘 기사들과 함께 소리가 뚝 하니 끊겨버렸다.
유령 기사들에게 복귀명령을 내린 나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놈의 위계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억지로라도 잡을 자신은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예 일본을 다 먹은 상태라고 했었지?”
유신각성회.
놈들의 세력은 비단 이곳 후쿠오카 뿐만이 아니었다.
타차원의 침략으로 얼룩진 ‘전국시대’를 놈들은 어인들의 세계로 통합했으니까.
놈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 본진이 오사카에 있다는 소리였다.
“기왕 칠 거라면.”
놈들의 심장을 찌르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사카로 돌아간다는 말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상공회의소의 일본지부장이었으니까.
상공회의소 일본지부 또한 그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오사카라 이거지…”
목적지를 설정했으니, 이제 가기만 할 테지만…
누가 데려다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척!
정찰을 떠났던 네 명의 유령 기사들이 돌아온 다음이다.
나는 후쿠오카 타워가 내려다보이는 도심 한구석에 몸을 숨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쿵! 쿵!
후쿠오카 타워로 들어가는 건장한 어룡족 몇 마리가 눈에 띄었다.
금방이었다.
온몸이 칭칭 감긴 채 펄떡펄떡 활어처럼 뛰어오르는 후쿠오카 대표의 모습이 보인 것은.
꽈아악!
놈들은 후쿠오카 대표를 커다란 나무 상자에 또 한 번 포장하더니, 그 주변으로 케이블을 감싼 채 덩그러니 내려놓았다.
그 앞에는 붉은색 일장기가 그려진 일본의 제식 헬기가 놓여 있었다.
퍽 인상적인 그림이었다.
“…수산물 배송 뭐 그런 건가?”
이러나저러나, 당장 해야 할 일은 저 나무상자에 따라붙는 일이었다.
쿵! 쿵!
놈들이 헬기에 정신이 팔렸을 때를 노렸다.
포탈을 열 수 있는 사정거리는 10미터가량.
끝끝내 몸을 숨긴 나는 후쿠오카 대표가 포장된 나무상자에 포탈의 좌표를 지정했고.
‘상품 회수’
쐐애애액!
순식간에 나 자신을 빨아들였다.
.
.
.
쿠당탕탕!
몸을 데구르르 구르며 물류센터 안으로 들어왔다.
“아오…”
쓰라린 어깨를 부여잡았다.
그 안에는 한창 전투를 치른 내 가족들과 일행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음료수를 꺼내먹고 있었다.
목에 수건을 둘러맨 김솔이 내게 물었다.
“…뭐하냐?”
“…일본 여행.”
부산에서의 전투는 서서히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다.
큰누나가 부상자들을 인솔해 강남 세브란스로 바쁘게 이송했고, 나머지 인원들은 순번을 바꿔가며 혹시나 남아 있는 패잔병이 없는지 도시를 수색하고 있었다.
김솔이 마저 물었다.
“왜 다시 들어왔어? 후쿠오카 대표 찾는다더니.”
“찾았지. 찾긴 했는데…”
슬쩍 포탈을 열어보았다.
휘이이이!
컴컴한 밤하늘의 풍경.
포탈은 헬기에 매달린 화물에 붙어 함께 하늘을 날아오르고 있었다.
“기왕 간 거, 좀 더 둘러 보고 오려고. 일단은…”
부단히 움직이는 헬기.
홱홱 자나가는 풍경들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나른한 기분이 찾아들었다.
“한 숨 잘 거야.”
아름다운 밤이었다.
그것을 후쿠오카의 것이라 해야 할지, 부산의 것이라 해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무임승차의 안락한 승차감.
그것이 나를 깊은 잠에 빠뜨렸다.
***
이튿날 아침.
진즉 오사카에 도착했을 나무상자를 떠올리며, 손가락만 한 작은 포탈을 열어 바깥의 동태를 살폈다.
쿠우우…
어두컴컴한 공간.
벽면에 이따끔씩 놓인 작은 불빛이 칙칙한 내부 공간을 비추고 있었다.
나무상자 표면에 좌표를 찍었던 포탈이다.
알맹이를 빼낸 뒤 정리를 한 것인지, 가까운 곳에는 해체된 나무상자 더미가 아무렇게나 쌓여있었다.
“…가볼까.”
딱히 경비병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포탈을 마저 키워 밖으로 나섰다.
어둡고 거대한 공간.
분명 인간에 의해 축조된 건물일 텐데도, 특유의 습도와 우중충함이 거대한 동굴의 공동에 들어온 것만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예상했던 대로, 후쿠오카 대표는 이곳에 있었다.
병원 침대에 완전히 결박된 그.
입에는 재갈이, 눈에는 안대가 꽁꽁 동여매져 있었다.
옆으로는 주렁주렁 메달리 수액이 달려 있었고, 몸 곳곳에도 호스가 연결되어 있었다.
기필코 그 생명을 붙여 놓겠다는 유신각성회의 의지가 느껴지는 그림이었다.
그러던 중,
“……!”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거대한 공간 안에 놓인 침대는 하나가 아니었으니까.
이쪽도 상황은 매한가지였다.
주렁주렁 매달린 링거와 호스, 입에 물린 재갈과 꽁꽁 싸맨 안대.
하지만 한 가지 지대한 차이가 있었다.
‘…어인이 아니네?’
20대 초반쯤 되었을까?
그는 명백한 인간이었다.
“……”
그는 평온했다.
이제는 다 내려놓았다는 듯이.
인기척을 듣고 힘을 다해 버둥거리고 있는 옆의 후쿠오카 대표와는 달랐다.
스윽.
입의 재갈을 풀었다.
그가 인간이라는 것이 확인된 이상, ‘어떤’인간이지만큼은 확인해보아야 했으니.
“…어억?”
서서히 풀리는 재갈에 그는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그간 이런 일이 전혀 없었다는 식의 반응.
마석을 꺼내든 채,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굽니까? 왜 어인이 아니죠?”
“……”
재갈이 물려있던 입이 꽤나 고통스러웠던 모양이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한참이고 턱을 어루만졌다.
애타게 기다리던 대답은…
“사토 다이치라고 합니다. 어인이 아닌 건 당연하죠. 협력을 거부했으니까요.”
놀랍게도 한국말로 돌아왔다.
마석의 통역 능력과는 무관하게, 외국인 특유의 어색한 억양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한국말을 할 줄 아시네요?”
“예. 조금… 예전에 많이 봤었거든요.”
“뭘요?”
“겨울연가라고…”
“……?”
홱!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끽해야 이십 대 초반에 불과한 생김새.
자그만치 20년 묵은 한류열풍의 충격이 내 안면을 강타했다.
‘…정체가 뭐지?’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그저 고개를 풀썩 숙이며 얼굴을 붉힐 뿐이었다.
‘좀 이상하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적은 아니었다.
어인도 아니었을뿐더러, 유신각성회의 사람이 내게 한국말로 대답해주는 친절을 베풀리 없었으니.
스슥!
강화된 성창을 꺼내 그의 결박을 풀어주었다.
그러곤 이제 쓸모 없어진 마석을 집어넣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여긴 왜 갇혀 있던 거에요?”
다이치는 잠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제 각성 능력이 <봉인>이거든요. 한 번에 하나뿐이고… 몇가지 제약도 있지만…”
순박하게 생긴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몸.
그의 몸에는 빽빽한 문신이 들이차 있었다.
후우.
한숨을 몰아쉰 다이치는 자세한 내막을 털어놓았다.
“감쪽같이 속았어요. 입찰 경쟁에서 패배한 오사카에 마두귀(馬頭鬼)라는 7위계 괴물이 나타났는데… 정부 쪽에서 봉인해달라 사정을 했거든요. 요청을 들어줬죠. 저도 사람들을 지키고 싶었으니까요. 한데…”
그가 너털웃음을 흘렸다.
“뒤늦게 알게 됐죠. 정부는 이미 유신각성회에 장안당한 상태였고… 거추장스러운 마두귀를 봉인해준 덕에 놈들이 일본을 손에 넣었다는걸.”
“그러면 여기 잡혀 있게 된 건…”
“제 몸에 봉인된 마두귀가 무서워서죠. 묶어둔 것도, 이렇게 살려둔 것도.”
“…그렇군요.”
잠시 상황을 계산한 나는 그에게 물었다.
“확인차 여쭐께요. 여기가 오사카에 있는 유신각성회의 본청이 맞습니까?”
“맞죠. 알고 오신 게 아니었나요?”
“음…제가 운전한 게 아니라서.”
“……?”
황당하다는 듯한 다이치의 표정
나는 그 표정을 애써 무시하며 재차 질문했다.
“혹시 그 마두귀라는 거…한번 풀어놓으면 다시 봉인하기 어려워요?”
그가 고개를 내저었다.
뭘 생각하는지는 알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다는 듯이.
“봉인 자체는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이렇게 좁은 공간에 풀어놨다간 우리 둘 다 공격에 휘말릴 겁니다. 그 보다 대체 어떻게 오신 거죠? 여기서 나가야 할 텐데…”
서서히 말이 많아지는 다이치.
나는 그 앞에서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아공간으로 향하는 포탈을 열었을 뿐.
지잉.
갑작스레 나타난 푸른색 포탈을 보며, 화들짝 놀란 그가 물었다.
“…이게 뭐죠?”
“일단 들어오세요.”
무적의 방패가 되어줄 포탈.
그건 직접 겪어보는 편이 빠를 테니까.
***
콰아아앙!
화르르륵!
부서지고, 무너지고, 불길이 타오르는 풍경.
우리는 마두귀를 풀어놓은 즉시, 아공간으로 복귀했다.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우지끈!
뿌리째 박살 나고 있는 놈들의 본진.
그 모두를 무심하게 담아낸 아공간 포탈의 수면을 보고 있자니, 무슨 재난영화라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화르르륵!
화륵!
“…이래도 괜찮은 거겠죠?”
다이치가 조심스레 물었다.
눈앞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급 장면 전환이 연달아 이어진 탓이다.
꽈아아앙!
건물을 분지르고, 어인과 어룡족 괴물들을 불사르는 마두귀.
그 분투에 차마 손뼉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놈 또한 타차원의 괴물이었다.
또다시 다이치의 몸에 가둬두면 그만일 테지만, 우리의 통제에 따르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연이은 파괴.
그 끝에…
찌잉.
밝은 하늘이 드러났다.
마두귀가 유신각성회 본청 건물을 모조리 걷어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채, 서서히 다른 장소로 멀어지려 하는 녀석.
“가죠.”
내가 다이치의 팔을 잡아끌었다.
쏟아 놓은 마두귀를 다시 집어넣어야 할 테니까.
이제 남은 것은 내 역할이었다.
놈들의 본진을 초토화했으니…
‘확인하러 가야지. 집주인들 반응이 어떤지.’
유신각성회 회장.
그리고 상공회의소의 일본지부장까지.
이제 놈들의 목을 취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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