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54)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54화(54/240)
54. 통신 판매 (1)
뻐억!
물류센터와는 일절 관계없는 나의 맨주먹이 헨리의 복부를 강타했다.
다차원 상공회의소의 외계인에게 알려주는 ABC.
그 첫 단어가 ‘공짜’였다면, 다음은 ‘더불어 사는 법’을 알려줄 차례였다.
빠악!
놈의 고개가 위로 치솟았고,
“지구촌 사람들끼리!”
빡!
잠시 땅을 내려다봤다가.
“두루두루 오손도손하게 지내야지!”
퍼억!
한참 뒤로 밀려났다.
“커헉!”
“어딜 싸가지 없게! 돈 놀이나 하고!”
후두두둑!
쏟아지는 놈의 이빨.
손에 묻어나는 핏자국을 바라보며, 놈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그야말로 의문이 사무쳤다.
한순간에 사라진 상공회의소의 일본 지부.
그와 동시에 자신을 감싸고 있던 척력이 일순에 지워져 버렸으니.
털썩!
자리에 주저앉은 녀석의 황망한 얼굴.
좀 전의 자신만만한 태도는 온데 간데 찾아볼 수 없었다.
나로서도 고민이었다.
다차원 상공회의소의 지부장.
지구에 들이닥치 멸망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설명해줄 존재가 눈앞에 떨어진 상황이니까.
‘뭐, 목적이야 알고는 있지만…’
차원 간의 침략 전쟁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수수료.
다차원 상공회의소는 그러한 침략을 부추기는 철저한 중개기관이었다.
그래도 궁금한 게 없는 건 아니었다.
내가 삼킨 상공회의소의 일본 지부.
놈이라면 그 가치나 활용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지 않을까?
“그럼…”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놈에게 필요한 정보를 캐내려던 찰나.
“…?”
문득, 회의감으로 가득 찬 놈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흠칫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살면서 그렇게 허무한 표정은 결코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씨발, 쪽박이네.”
녀석이 하늘으 보며 나지막이 읊조렸고….
푸학!
놈의 머리통이 즉시 터져나갔다.
풀썩!
놈의 몸이 옆을 철퍼덕 엎어졌다.
철철 새어 나오는 새빨간 핏자국.
그 옆으로.
잘그락.
검게 그을린 손목시계가 핏물에 잠겼다.
“…뭐야?”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예고도 없이 죽어버린 녀석.
상공회의소가 자신의 치부를 없애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소름 끼칠 만큼 깔끔하고 간편했다.
후회도, 회의도, 원망도 아니다.
그저 짜증.
단지 그것뿐.
쿡쿡.
옆에서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지. 이 거대한 우주의 입장에서 볼 땐… 결국 놈도 말단이었던 거야.”
목소리의 주인공은 슈메이였다.
놈도 알고 있었다.
유신각성회의 수장인 슈메이, 비록 자신이 일본인들의 왕으로 군림했을지언정, 타차원의 거대한 존재들에 비하면 미약한 개미 한 마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스러운 이야기도 아니지 않나? 다만… 나는 대일본이라는 새로운 중심을 만들고 싶었다. 그게 이 우주의 새로운 태양이 되길 바랐어.”
방금 죽은 지부장에 비하면, 슈메이는 지극히 감상적이었다.
온몸에 꽂힌 십수 자루의 성창.
놈은 그 창대 하나하나로 갖은 핏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어쩌면 본인을 순교자처럼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역사에서 되짚어 볼 때, 분명 군국주의에는 그런 식의 착각도 존재했었으니.
하지만 아무리 우주의 관점에서 본다 한들,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뭔 개소리야? 당연히 내가 중심이지.”
“……?”
“너는 눈깔을 태양에 갖가 붙여놓고 사냐?”
우주가 아무리 광대하다 한들, 작달만한 내 시야에서 볼 뿐이다.
아무리 거대한 멸망일지언정, 그것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나만의 멸망이다.
그러니 우주고 나발이고, 나는 아득바득 살아남을 수 밖에 없다.
이 멍청한 놈처럼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툭.
숨이 끊어진 슈메이는 풀썩 고래를 꺾을 뿐이었다.
이윽고 떠오르는 메시지.
[차원 계좌가 소유 이전되었습니다.] [기존 예금주, 히로토 슈메이, 잔액 : 3,509개] [이미 차원 계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금액이 합산됩니다.] [남은 마석은 63,919개입니다.]주변도 서서히 정리가 끝나가고 있었다.
내가 헨리를 패는 동안, 란슬롯을 비롯한 열두 명의 기사들은 유신각성회의 잔당들을 처리하고 있었으니까.
어느덧 화창하게 떠오른 태양.
나는 싸늘하게 죽은 헨리의 시신을 살폈다.
두 개의 손목시계.
그리고 새카맣게 타들어 간 하나.
녀석은 상공회의소의 작디작은 톱니바퀴 하나에 불과했다.
나머지 한쪽 손목이 빛났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알만한 사람들은 알만한 스위스 명품 시계.
이 와중에도 지구산 명품을 가져다 쓰고 있던 지부장이 아니러니하게만 느껴졌다.
놈의 손목을 툭 하니 걷어찼다.
‘…이깟 게 다 무슨 소용이야.’
제멋대로 죽어버린 탓에 놈의 차원 계좌는 빼앗을 수 없었다.
아니, 설령 죽였더라도 빼앗아 올 수 있었을지 확신하기 어려웠지만.
아쉬운 대로, 놈이 내게 건네주었던 투자금을 전리품으로 삼기로 했다.
“뭐…어떻게든 정리가 되긴 됐네.”
[마석 1,000개 받았습니다.] [남은 마석은 62,919개입니다.]위잉!
놈들의 근거지가 있던 장소.
바로 이곳 오사카에 아공간 포탈을 설치했다.
그리고 서서히 발걸음을 옮겼다.
진짜 전리품은 거기에 있었으니까.
***
물류센터로 돌아가자, 이미 정신을 차린 다이치의 모습이 보였다.
중앙에 놓인 접이식 테이블에는 다이치는 물론, 제임스, 운양 그리고 다이치를 치료해준 큰누나가 다 함께 앉아 다과를 나누고 있었다.
느닷없이 성사된 한미일중 일반인 회담.
특히 다이치가 열띤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거기서 딱 유진이 그렇게 이야기를 한 거에요. 욘사마가 고개를 돌리는데…”
“호오…”
어느덧 내게 다가온 김솔이 툭툭 옆구리를 찔렀다.
“…어디서 저런 파릇파릇한 화석을 데려왔냐?”
“…기운은 좀 차렸데?”
“팔팔하던데? 문신 때문에 무슨 야쿠자라도 넣어왔나 했는데…애는 착하더라.”
그때, 나를 발견한 다이치가 쪼르르 앞으로 달려 나왔다.
“정겸씨! 무사하셨군요! 도우러 가려고 했는데 나가는 방법을 몰라서…”
“아닙니다. 덕분에 쉽게 끝냈어요.”
나는 그에에 유신각성회를 괴멸시켰으며, 일본에 설치된 상공회의소의 지부까지 제거했노라 전해주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연신 감사 인사를 표하는 다이치.
그 또한 유신각성회로 인해 갖은 고초를 겪은 당사자였다.
무너진 군국주의가 명백한 해방으로 느껴질 수밖에.
하지만 아쉽게도 일본의 모든 상황이 종료된 것은 아니었다.
일본에서 열린 열한 번의 입찰 경쟁 중 패배한 곳은 자그마치 아홉 곳.
마두귀가 오사카, 그리고 후쿠오카의 게이트 핵을 박살 냈다지만, 아직 일본에는 일곱 개의 게이트가 남아 있었다.
다이치가 흥미로운 사실을 전해주었다.
“아, 정말요?”
“예, 유신각성회가 무너졌다는 것만 전해지면, 제법 인력을 모아볼 수 있을 거에요.”
공교롭게도 그는 요코하마의 지역대표였다.
입찰 경쟁에서 승리한 두 차원 중 하나였고, 그만큼 생존한 각성자도 많았기에 다이치는 이들을 필두로 전국의 각성자들을 규합해보겠다고 말했다.
“물론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꼭 일본을 정상적으로 돌려놓겠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를 비롯한 일본 각성자들의 역할이었다.
남은 일곱 개의 게이트를 제거해 테라포밍으로 인한 오염된 해수를 걷어내는 것.
그리고 이를 지키는 유신각성회의 잔당들을 처리하는 것까지.
한시라도 빨리 일본을 복구하기 바라는 마음을 더해 다이치에게 말했다.
“상황이 안 풀리면 이야기하세요. 마두귀 한 번 더 풀어놓죠.”
그의 봉인 능력은 의외로 나의 아공간 포탈과 상성이 좋았다.
거대한 마두귀, 혹은 나중에 다른 괴물까지.
지역 단위의 전투를 벌일 때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테니까.
“그럼…”
다이치에게는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움직이라 일러두었다.
한 차례 기절했던 것은 물론, 오랜 시간 침대에 묶여 고문과도 같은 시간을 보낸 그였으니까.
적당히 마무리 인사를 마친 나는 팍스의 안내에 따라 새로운 장소로 향했다.
.
.
.
에메스 차원의 자재 창고.
그 한쪽 벽면에 이번 싸움의 전리품, 즉 상공회의소 지부가 들어서 있었다.
위이잉.
사람을 차분하게 만드는 배기음.
모종의 신비를 담고 있는 듯, 은은한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오…”
가까이 들어서자, 상공회의소 지부의 면면이 드러났다.
타르르르르…
부단히 움직이는 톱니바퀴.
그 사이로.
달칵!
달칵!
몇 개의 스위치가 끊임없는 반복 운동을 거듭했다.
톱니의 궤도는 몇 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나의 작은 톱니가 열 번 도는 동안, 보다 중심부에 있는 톱니는 한 번 또는 두 번을 도며 바퀴 소리의 균형을 더했다.
달칵!
달칵!
틱!
타르르…
마치 음악 소리와도 같은 기계들의 움직임.
사뭇 그 질서정연한 동작들로부터 건조함과 무심함이 묻어났다.
“어디 보자…”
이러나저러나, 목적을 달성할 때였다.
<차원 존재 등록 신청서>
나는 그런 이름의 서류를 찾고 있었으니.
“…없는 건가?”
딱딱한 사무공간.
놀랍게도 종이 한 장 찾아볼 수 없었다.
발견한 것이라곤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수십 개의 디스플레이, 그리고 정체 모를 키보드뿐.
그 원리를 전혀 알 수 없는 자판 배열에.
틱틱.
그 어떤 버튼을 눌러도 화면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자판에 쓰여있는 것은 외계의 언어였지만, 마석을 이용해도 그 뜻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괜히 넣었나…?”
물론 후회는 하지 않는다.
이 사무실을 저장하지 않았더라면 지부장을 처리할 수 없었을 테니까.
내 거절을 들은 놈은 한국으로 건너갔을 것이고, 유망한 각성자를 꼬드겨 한국에도 비슷한 사태를 초래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때였다.
팍스가 내게 말을 걸어온 것은.
꽤나 오랜간만의 일이었다.
[저장된 대상에서 시스템 작동에 적합한 업데이트를 발견했습니다.] [업데이트를 진행하시겠습니까?]“…뭐?”
어쩐지 익숙하게만 들리는 메시지.
아공간에 물류센터를 집어넣은 직후, 당시의 각성 시스템이 바로 저렇게 알려왔더랬다.
새삼 떠올리는 거지만, 내 각성 시스템만큼은 다른 각성자들과 달랐다.
팍스라는 최신의 AI와 결합된 독특한 구조.
바로 이 ‘업데이트’덕분에 내 아공간 능력을 물류센터와 연동되며 압도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나아갈 수 있는 곳이 어디까지인지.
“업데이트 하면 뭐가 좋은데…?”
[첫째로, 메시지 전송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 권역내에서 조건이 부합하는 대상에게만 가능하며 사용할 수 잇는 서식에 제한이 있습니다.]당장 떠오르는 것은 그간 맞닥뜨리던 상공회의소의 메시지창이었다.
사실상 영토전쟁이나 다름없는 입찰 경쟁을 예고하고, 지역과 지역 간의 선전포고를 전달해주는 역할.
하지만, 꼭 그런 메시지만 전달하는 법은 없었다.
“대박인데…?”
지구의 모든 통신이 마비된 상태다.
권역 제한 있다곤 하나, 상대에게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
무전을 넘어서는 또 하나의 통신수단이 주어진 참이었다.
더욱이,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기대하던 것, 그것이 과연 여기에 있었으니까.
[둘째로, 차원 존재 등록 신청서 출력이 가능합니다. 단, 하드웨어에 매겨진 등급이 낮아 신청 위계 등급에는 제한이 따릅니다.]“…얼마까지?”
[최대 7위계까지입니다.]일단은 그거면 충분했다.
윗 등급까지 가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한 단계 강해질 수 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으니깐.
나는 주먹을 불끈 쥔 채, 팍스가 전해주는 상고회의소의 마지막 기능을 전해 들었다.
위성관측.
나는 무심결에 벽면을 덕지덕지 메운 디스플레이로 시선을 돌렸다.
바로 저곳에 위성지도가 떠오를 것이다.
하나는 높은 고도에서, 때로는 눈앞에 보이듯 생생한 장면처럼.
카멜롯의 유령 기사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나의 눈이 되어줄 물건이었다.
“…선물이 너무 많은데?”
공짜로 받았다고 하기엔 과분한 선물.
헨리와 상공회의소의 선행에 박수를 건넸다.
하지만 한 가지의 의문이 일었다.
“권역 내라는 말은…능력에 사정거리가 있다는 소리네?”
[그렇습니다. 설치된 장소를 기준으로 제한 권역이 설정됩니다.]하지만 내 아공간은 나를 졸졸 따라다닐 뿐, 딱히 어딘가에 박혀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상공회의소의 지부 또한 마찬가지일 터.
팍스는 간단한 설명을 통해 내 생각을 재정리해주었다.
“다시 말해 지금 내 상황에서는…?”
[포탈이 설치된 주번, 모든 곳입니다.]“…미친?”
앞으로의 그림이 그려졌다.
설치되는 포탈이 많아질수록, 내 시야는 넓어진다는 것.
그리고 그 시야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날릴 수 있다는 것.
이건 더 이상 ‘일본 지부’가 아니었다.
‘일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요, 더 이상 ‘지부’라고 부를수도 없었으니.
“…통합 물류 상황실.”
어쩐지 그런 이름이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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