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55)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55화(55/240)
55. 통신 판내 (2)
지잉…! 지잉…!
세차게 종이를 빼내는 상공회의소의 프린터.
지구의 프린터와는 생김새가 영 달랐지만, 그 용도 자체는 딱히 다를 것이 없었다.
물류센터에서 A4용지를 가져왔고, 이후 팍스에게 출력을 부탁했다.
오래지 않아…
[출력 완료되었습니다.]그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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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원 존재 등록 신청서 (7위계)
귀하의 존재 등록을 환영합니다.
신청에 앞서, 아래 항목을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존재 등록 발급 준비물 : 본인을 대표로 하는 소속 단체.
존재 등록 발급 조건 : 단체의 소속 인원 (50,000명 이상)
본인 : (자필 서명)
▣ 다차원 상공회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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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등록 신청서를 처음 보는 것도 아니다.
내가 8위계를 얻게 된 것 또한 이 서류에게 시작됐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다.
바로 발급에 따른 조건.
“대표? 소속 단체?”
[그렇습니다.]어느덧 ‘업데이트’를 끝마친 팍스였다.
상공회의소의 시스템에 대해 속속들이 이해하게 된 것은 기본.
그 사용 방법을 알려주는 것 또한 앞으로 녀석이 하게 될 역할이었다.
팍스가 설명을 이어 나갔다.
[시스템 내에 ‘단체’개설 기능이 존재합니다.] [‘단체’를 개설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소속원을 모집하실 수 있습니다.] [이때, 등록된 소속원은 다른 단체에 가입할 수 없으며, 별개의 단체를 개설할 수 없습니다.]그 뜻은…
“사람을 모아야 한다는 거네? 위계를 올리려면?”
[그렇습니다.]“무슨 선거운동도 아니고…”
더 많은 마석을 요구할 줄 알았다.
8위계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차원 계좌와 마석 1,000개였으니.
하지만 이번에 요구된 것은 돈이 아닌 사람이었다.
나를 지지해주는 것을 넘어, 아예 나의 소속이 되어줄 사람들.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존재 등록 신청서>라는 건 위계를 올리기 위한 일종의 꼼수 같은 거였으니까.
“어쩌면 그런 거 아닐까? 이게 권력자들을 위한 편법인 거지. 꼭 전투력이 강한 놈만 지배자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차세대 고성능 AI께서 내 추론의 타당성을 인정했다.
헨리가 그 예시였다.
전투력이라고는 코빼기도 없으면서, 누구보다도 강한 척력을 두르고 있던 녀석이었으니.
아무튼, 이해 못할 조건은 아니었다.
문제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5만 명은 좀 심했잖아?”
[그렇습니다.]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이건 내가 위계를 얻을 유일한 방법이었으니.
다른 동료들은 가파른 성장을 이어가고 있었다.
모두가 위계를 올리며 성장해나가는 마당에 나 홀로 뒤처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팍스도 그걸 알고 있는지, 즉시 본론으로 나아갔다.
[단체를 개설하시겠습니까?] [단체 개설에는 마석 10,000개가 소모됩니다.]“뭐… 포탈 설치하다 보면 언젠가 채울 수 있겠지.”
아득한 숫자지만, 나를 돕는 이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용산, 강남, 인천, 부산 그리고 베이징과 일본까지.
그곳의 모든 사람에게 내 소속이 될 것을 부탁하면 될 터였다.
“개설해줘.”
요청하자, 팍스가 내게 물었다.
[단체명은 무엇으로 할까요?]“그거라면 쉽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 아공간의 정체성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으니까.
“팍스 FC (PAX Fulfillment Center).”
이것이 앞으로 우리의 이름이 될 터였다.
.
.
.
위계 등록에 대한 일을 얼추 마무리한 참이다.
하지만 헨리가 넘겨준 선물이 워낙 대단했기에, 아직도 살필 것들이 남아 있었다.
“어디 보자…”
본격적으로 ‘물류 상황실’의 능력들을 이것저것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메시지’에 포함된 부가 기능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정체에, 어쩐지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아… 그게 여기서 띄우는 거였어?”
[그렇습니다.]그 정체는 홀로그램 화살표.
입찰 경쟁이 끝난 직후, 내게도 [서울 대표]라는 낯부끄러운 표시가 부여되었더랬다.
물론, 인천에서 사브로스 차원을 쓸어버린 뒤에 말끔히 사라지긴 했었지만, 이 홀로그램 표식은 선전포고의 당사잔인 [부산 대표]와 [후쿠오카 대표]의 머리맡에도 살펴볼 수 있었다.
상공회의소가 활용하는 시각적인 시스템의 일종.
“이젠 그걸 내가 띄어볼 수 있단 말이지? 권역 내이기는 하지만.”
[그렇습니다.] [글씨 크기와 색상, 표식의 위치도 임의로 설정이 가능합니다.]“호… 그래?”
원래라면 복잡하기 짝이 없을 조작이었지만, 지금은 팍스가 모든 과정을 대신해주고 있었다.
테스트를 해보기엔 더할 나위 없는 상황.
즉시 팍스에게 요청사항을 전달했다.
“그렇다면 말이지… 일단은…”
.
.
.
평화로운 아공간의 팍스 풀필먼트 센터.
작은 누나, 김솔의 머리맡에는 큼지막한 홀로그램 글씨가 떠올라 있었다.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LV.999]한때 내게 달린 [서울 대표]를 보며 갖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김솔이다.
나 또한 그때의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있었으니.
모처럼 생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많은 것을 준비했다.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최강의 수신언, 거기에 금색과 붉은색이 점멸하는 특수효과까지.
하나하나 공들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보며,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지.”
한편, 운양을 비롯한 무림인들은 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김 소저…! 각성 시스템도 이제 소저의 재능을 알아본 모양입니다. 999레벨이라니… 레벨은 또 언제 그렇게…!”
“드디어 새로운 경지를 밟은 게로군요! 경하드립니다!”
척!
척!
척!
존경과 함께 이어지는 포권.
붉은색과 금색의 화려한 조화가 무림 중국인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휘휘 휘파람을 불며 모른 체 하고 있었음에도, 김솔은 기가 막히게 그것이 나의 소행임을 알아차렸다.
“김정겸, 뒤지고 싶냐?”
“…내가 뭘?”
“니 머리맡에 그거나 떼고 말해라…”
“내 머리…?”
고개를 들어보니 내 머리 위에도 뭔가 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상하다.
분명, 이런 건 달아둔 기억이 없는데.
[★★★ 대령 김정겸]“…??”
상황 파악을 할 새도 없었다.
득달같이 달려온 유성철이 나를 향해 혀를 내둘렀으니까.
“김 대령! 드디어 마음을 굳히셨군요! 이렇게 저돌적으로 마음을 고백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군요. 이제 우리 국군과 영생토록…!”
“아뇨, 잠깐만…”
카멜롯에서 또한 환성이 터져 나왔다.
“역시 주군이십니다!”
“이제 어디서든 별을 보고 주군께 돌아갈 수 있겠군요!”
“아니, 애들아…”
란슬롯이 나의 이름을 연호했고.
모드레드를 비롯한 유령 기사들이 내 주위를 맴돌며 휘파람을 불어댔다.
“대체 누가… 아니, 그보다 대령이 왜 별이야?”
정체 모를 현상.
이쯤 되자, 우리 머리 위의 존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팍스?”
[아닙니다.]“너…?”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업데이트 된 팍스였다.
***
부랴부랴 홀로그램을 지우고 왁자지껄했던 분위기가 차츰 사그라들 때쯤, 변화가 찾아왔다.
그 사실을 알린 것은 큰누나.
강남 세브란스에 있던 그녀가 다급히 포탈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정겸아, 지금 바깥에서…”
“…왜 그래?”
심상치 않은 표정.
나는 부랴부랴 관측 장비가 놓은 ‘통합 물류 상황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줄곧 꺼져 있던 화면들이지만, 업데이트 된 팍스가 솜씨 좋게 장비를 작동시켰다.
팟!
팟!
용산, 강남, 인천, 부산 그리고 일본과 베이징까지.
불이 들어온 수십 개의 모니터를 통해 포탈 주변의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게 뭐야?”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용산은 물론 강남, 인천 그리고 부산까지.
곳곳에 괴물들이 빼곡하게 들이차 있었으니.
“뭐가 이렇게 많아?”
물론 괴물들은 항상 있었다.
입찰 경쟁에서 승리했단 한들, 그 이전 시기부터 들어와있던 괴물들이 있었으니.
하지만 그 수는 차츰 줄어들고 있었다.
대부분 척력이 없는 하위 개체들이었뿐더러, 성장한 각성자들과 나로부터 무기를 지원받은 합참의 병력이 서서히 한국을 수복해가고 있었으니까.
비록 느리다고는 하나, 한반도는 차츰 안정에 접어들고 있었다.
불과 어제까지는.
하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은 새로운 대격변의 시작이었다.
모니터에 치열한 용산에서의 상황이 담겼다.
기관총을 발사하는 합참의 어느 한 병사.
투두두두두!
기관총이 노란 불꽃을 뿜어냈지만…
티잉! 팅!
붉은색 오크에게는 총알이 통하지 않았다.
“척력…?”
분명, 오크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붉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으며, 몸 곳곳에 녹색 문신을 새기고 있었다.
문제는 그런 놈들이 최소 수백 마리가 넘는다는 데 있었다.
강화되지 않은 기관총의 총알로는 놈들에게 생채기 하나 남길 수 없었다.
더 강해진 적들이, 더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베이징이랑… 오사카는…”
불행 중 다행일까.
다른 지역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감지되지 않았다.
어쩌면 상공회의소에 의한 일종의 ‘밸런스 패치’일지도 몰랐다.
입찰 경쟁에서 유난히 좋은 성적을 거둔 한국에 맞춘 시련.
그것이 나의 조국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빨리 나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큰누나가 동동 발을 굴렀다.
그야,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상황이었으니까.
다른 가족들, 그리고 무림인들과 유성철 또한 의견이 다르지 않았다.
어서 빨리 나가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소식을 들은 다이치 또한 뭐든 돕겠다며 발 벗고 나섰다.
고마운 일이었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모두를 구할 순 없어요. 그 많은 장소를 전부 커버할 순 없으니까.”
물론 싸우러 나가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용산, 강남, 인천, 부산까지.
그 모두를 지킬 수는 없었다.
“…그럼 어쩌자고?”
“스스로 지킬 수 있게 만들어야지.”
그 해답은 역시나 ‘보급’에 있었다.
괴물들의 척력을 뚫어낼 수 있을 무기의 보급.
나는 즉시 그것을 가능케 해줄 조력자, 팍스를 호출했다.
“팍스, 내 ‘출하’스킬 말야. 설치된 포탈을 통해 내보내는 것도 가능하지?”
[가능합니다.]“최대 사정거리는?”
[포탈이 설치된 위치로부터 반경 500m거리까지 출하가 가능합니다.]포탈이 설치된 네 개의 지역.
그리고 그로부터 500미터 반경의 거리.
그 모두는 상공회의소의 위성 관측을 통해 면면들이 확인할 수 있는 구역이었다.
그 말인즉슨…
“반경 안에 있는 사람들한테 빠짐없이 무기를 보내줘. <추적 배송>으로.”
[알겠습니다.] [권역 내 포함된 인원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연산 중…] [연산이 완료되었습니다.] [<동시 출하>와 <추적 배송>으로 출하를 진행합니다.] [포탈로부터 가까운 순으로 출하가 진행됩니다.]그것이 시작이었다.
팍스 FC의 이름으로 시작된 대대적인 보급 작전.
이른바 ‘로켓 배송’의 서막을 알린 것은.
“출하.”
나는 그렇게 말했다.
***
쿠와아아악!
부서진 현관 사이로 이빨을 들이미는 붉은색 오크.
“제발…안 된다. 이 새끼야!”
용산 주민, 권인혁은 파이프를 들어 놈의 공격을 가까스로 막아 세우고 있었다.
“아빠!”
“여… 여보!”
발을 동동 구르는 아내와 딸.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권인혁은 온갖 힘으 쥐어짜고 있었다.
“들어가 있어! 아니… 뭐라도 막을만한 것 좀 가져와!”
그 또한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각성 능력을 발휘해 숱한 위기를 헤쳐왔고, 가족들 또한 지켜낼 수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상황이 달랐다.
“이 새깨는 대체 왜 안 죽는 거야!”
지금껏 잡아 죽인 오크만 해도 수십 마리다.
성장한 각성 능력 덕에 평소 주먹질 몇 번이면 제압할 수 있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이 붉은 색 오크만큼은 달랐다.
전투력 자체는 기존의 오크와 비슷했지만, 압도적인 맷집 탓에 도무지 처치할 수 없었다.
“아, 안돼…”
아무리 각성자라 한들 한계는 있는 법.
놈을 붙잡은 팔에서 차츰 힘이 빠져나갔다.
가족들을 지키겠다는 일념에도 불구하고.
“제발… 제발…!”
눈을 질끈 감았다.
마지막까지 힘을 몰아넣기 위해서.
그리고 그런 그를 찾아든 것은…
빠악!
경쾌한 타격음이었다.
“…뭐야?”
갑작스레 두 팔이 자유를 얻었다.
스르륵 허물어지는 소리.
권인혁은 서둘러 눈을 떴다.
“…왜지?”
그리고 조금 전까지 맞서 힘을 겨루던 오크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만 보니, 놈의 머리맡에 처음 보는 물건이 하나 놓여 있었다.
“이건…?”
검집에 담긴 채 은은한 빛을 발하는 장검.
각성 시스템을 통해 ‘운광검 +1’이라는 물건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그의 눈앞으로…
“어엇?”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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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주 신속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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