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56)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56화(56/240)
56. 통신 판매 (3)
“…뭐가 이렇게 좋아?”
권인혁은 감탄했다.
조금 전만 해도 죽을 위기에 처해 있던 그였다.
아내와 딸을 지키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시야가 샛노래졌떤 것이 지금도 생생했다.
하지만…
슈아아아악!
이걸 검이라 불러도 되는 걸까?
마치 붓이라도 휘두르는 기분이다.
휘두를 때마다 구름 같은 두꺼운 공기가 주변을 에워싸지만, 정작 검을 휘두를 때만큼은 빛과 같은 쾌검을 자랑한다.
먹구름 사이 떨어지는 찬란한 태양빛처럼, 대뜸 배송된 검 한자루가 그의 멸망을 말끔하게 지워버렸다.
최하학!
촤악!
풀썩 풀썩 쓰러지는 붉은 오크들.
쇠 파이프보다는 낫겠지 싶어 빼든 검이었지만,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오크들의 몸은 단단하기 그지없었으니까.
하지만.
“상쾌해…!”
돌덩이와도 같았던 놈들의 몸이 두부처럼 잘려 나간다.
숭덩숭덩 놈들의 목을 베어 넘기고 나니, 권인혁은 그 짧은새에 십수 마리의 오크들을 처치했다는 걸 깨달았다.
“분명, 한 마리도 제대로 상대하기 힘들었는데…”
어느덧 조용해진 길목.
오크들의 사체 위에 내려앉은 것은 위기 끝에 찾아온 평화 그 자체였다.
“정말…”
획!
권인혁은 손에 들린 검을 바라보았다.
팍스.
분명 그런 이름이었다.
멸망 전, 혁신적인 물류 시스템을 구축해 인터넷 쇼핑계를 평정한 거대 기업.
왜 아직 기업이 살아남아 있는 걸까?
또, 어디서 이런 무기를 구했고, 또 그걸 어떻게 자신의 눈앞에 배송해주었을까?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지만, 최소한 한 가지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이 은혜를 입었다는 것.
“…고맙습니다. 팍스 FC.”
꾸벅.
마른 하늘에 고개를 숙였다.
그는 결심했고.
“나중에 이 모든 사태가 진정된다면… 꼭 팍스의 충성고객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팍스가 원하는 건 ‘나중’이 아닌, 바로 ‘지금’이었다는 것.
“…어어?”
스르륵.
운광검이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아, 안돼!”
파앗!
공중으로 치솟는 운광검.
현실로 떨어진 신선이 다시 하늘로 회귀하듯, 운광검은 그렇게 다시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나무꾼 몰래 선계로 되돌아가는, 전래동화의 이야기 속 선녀처럼.
“돌아와!”
아쉬움에 사무치는 손길.
권인혁은 하늘로 뻗은 손을 거칠게 허우적댔다.
그런 그의 눈앞으로…
띠링!
—–
[Web발신] [팍스 FC의 소속이 되어 무료배송 혜택을 즐기세요!] [각성 시스템 > 단체 가입 신청 > ‘팍스 FC’입력]—–
메시지가 떠올랐다.
“…팍스 FC?”
그제야 떠올랐다.
팍스는 철저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었다는 것.
그리고 철저한 회원 ‘구독제’로 이뤄져 있었다는 것까지.
하지만…
“그거면 되는 거야?”
아무런 조건이 없었다.
요구되는 것은 그저 ‘가입’뿐.
마석을 비롯한 재화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원한다면 언제든지 탈퇴할 수 있었다.
더불어, 무기는 물론 생존에 필요한 물자들까지 지원될 것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다.
“좀 황당하긴 하지만…”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오로지 혜택으로만 똘똘 뭉친 놀라운 조건.
권인혁은 망설임 없이 [가입]버튼을 눌렀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
팍스 FC에 대한 여전한 감사를 표하면.
***
“좋아, 쭉쭉 올라가자!”
주식이라도 하는 걸까?
아니,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있었다.
띠링!
—–
[팍스 FC]대표 : 김정겸
소속 인원 : 9,619명
—–
소속 인원이 그야말로 치솟듯 늘어나고 있었다.
7위계 달성을 위해 필요한 인원은 자그마치 5만명.
까마득하게만 느껴지는 숫자였지만, 이 정도 수치라면 며칠 내 달성이 확실했다.
일단은 인명 구조가 최우선이었다.
하지만, 팍스의 판단하에 안전이 보장된 사람들에게는 [팍스 FC]에 가입한 뒤에 추가적인 물자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거지, 이거야.”
눈코 뜰 새 없이 늘어나는 지지자들.
자고로 최고의 선거전략은 금권선거(金權選擧)가 아니겠는가?
특히 지금과 같은 아포칼립스 상황에서는 무기나 식량이 천금과도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위계를 얻어서 좋고, 사람들은 무기와 물자를 얻어서 좋은.
모두를 위한 상생(相生)이었다.
물론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지역마다 설치된 아공간 포탈은 장차 사람들을 보호하고, 물자를 분배하는 생존의 거점이 퇼 터.
사람들이 몰려들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특히, 그 문제에 관해 작전본부장 유성철은 우려를 표했다.
“치안이 걱정입니다.모든 사람이 포탈 주변에 자리를 잡고 싶어 할 텐데요.”
더 안전한 장소를 찾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리고 더 안전하고 쾌적한 거처를 갖는다는 건 특권, 그리고 권력의 상징이 된다.
다시 말해…
“많은 싸움이 벌어지겠죠.”
포탈의 출하 사정거리는 고작 500m.
설치 반경 주변이 금싸라기 땅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사람들의 생존 욕구, 그리고 욕망.
그 모두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강력한 힘, 그리고 정당하게 합의된 사회적 권력이었다.
나는 유성철에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국군이 아직 건재한 상황인데.”
“그 말씀은…?”
“군에서 통제를 맡아주세요. 필요한 물자는 계속해서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정겸 씨…!”
유성철의 목적은 대한민국의 재건이었다.
이를 선결되어야 할 것은 국민들의 안전, 그리고 국가의 신뢰와 상징성을 이어가는 것.
인류의 거점이 될 포탈을 지키고, 그 주변의 행정력을 발휘하는 것은 합참 스스로가 바라 마지않는 임무였다.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 자신이 되레 감격한 표정으로.
“맡겨만 주십시오. 예하 부대들에 지령을 내려놓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유성철과 손을 맞잡으며, 나는 한 가지 덧붙였다.
이제 합참 예하의 부대들이 위수 지역에 해당하는 포탈을 관리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이 멸망은 전국으로 넓게, 그리고 누구에게나 가까운 방식으로 깊게 퍼져 있었으므로.
나는 내가 규합해야 할 또 다른 세력을 떠올렸다.
그것은…
“…지역 대표들을 만나봐야겠습니다.”
입찰 경쟁을 치뤘던 각 지역의 각성자 세력이었다.
.
.
.
시작은 부산이었다.
부산에는 일본과 전투를 치뤘던 병력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더욱이, 팍스가 사람들에게 무기를 불하해주고 있던 덕에, 설치된 포탈을 중심으로 빠르게 피해를 수복해나가고 있었다.
한창 전투를 치르고 있던 부산대표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와 다시 접선할 수 있었다.
그녀가 한껏 투덜대며 다가왔다.
“아니! 지금! 괴물 잡느라 엄청 바쁜데!”
“바쁘신 거 아는데… 앞으로 포탈 주변의 통제를 부탁드리고 싶어서요. 대신, 앞으로 부산 세력에 충분한 무기나 물자를 지원하겠습니다.”
“예? 정말요?”
부산대표 박서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대신, 부산이 정리되고 나면 울산이나 김해 같은 주변 지역에도 지원을 해주셨으면 해요. 거기에도 분명 괴물들이 들끓고 있을 테니…”
포탈로 커버할 수 있는 지역에는 한계가 있다.
그걸 해소하겠답시고 1km마다 포탈을 깔아둘 수도 없을 노릇.
결국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군과도 임무가 다르다.
군이 포탈 주변의 행정력을 발휘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지역 대표를 비롯한 각성자들 세력은 구명 활동을 주력으로 움직이면 될 테니까.
애당초 대의를 가지고 지역 대표가 된 그들이었다.
여기, 박서윤 또한 사람들을 구하는 일에 그 뜻을 두고 있는 사람이었으니.
그녀는 덧붙일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말이라고 해요? 당연하죠! 내가 지금까지 뭘 하다 왔는데!”
“그리고…”
다시 칼자루를 움켜쥐는 박서윤.
그녀가 떠나기 전에, 나는 재빨리 덧붙였다.
“가입 좀…”
“네?”
“각성 시스템에 들어가서 ‘팍스FC’라고 검색하신 다음에…”
“예에?”
“다른 부산 각성자들한테도 꼭 좀…”
“……”
조금은 구질구질하게.
***
“크와아아아아아!”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
한 마리의 레드 오크가 울부짖었다.
그의 정체는 시쿨루스 차원의 전사장, 투르카.
포효하는 그의 목소리에, 부족의 전사들이 하나같이 함성을 더했다.
“끄와아아아아아!”
“쿠와아아학!”
전사들은 즉시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다.
도심을 향해 우르르 몰려가는 수백 마리의 레드 오크들.
그 광경을 전사장, 투르카가 흡족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행이군. 이렇게 빨리 열릴 줄을 몰랐는데.”
그리 부유하지 않은 시쿨루스 차원이다.
애당초 자본력에서 밀리는 그들이었기에, 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입찰 경쟁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다차원으로부터 거지 차원이라는 비웃음을 샀지만, 사실 이들이 노리는 바는 따로 있었다.
“자유 개척이야말로 우리의 진짜 무대지.”
더할 나위 없을 조건이다.
고위계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시쿨루스는 이를 보충하고도 남을 만큼의 8위계 전사들을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꽤 오래 기다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빨리 개척자 모집이 이뤄졌다.
“이곳 이름이 한국이라고 했나? 이 정도 속도면 꽤나 선전했던 모양인데…”
처참한 경쟁 성적을 거둔 지구 차원.
그리고 그 안에서 유독 좋은 성적을 거둔 땅.
결코 쉬운 싸움을 내어주지 않는 상공회의소라지만, 투르카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덤빌 테면 덤벼보라지. 너희가 고작 몇 잡는 동안… 우리는 수백을 도륙할 테니까.”
톡톡.
투르카는 두꺼운 손을 계산기처럼 두드렸다.
치르게 될 비용, 그리고 이어질 막대한 양의 수익까지.
하지만…
스릉!
앞장선 선봉대의 목이 댕겅하고 날아갔다.
“뭐야? 쟤들 지금 죽은 거야?”
“전사장님…!”
다급히 목소리를 덧붙이는 부관.
“당하고 있습니다! 놈들이 생각보다…”
“잠깐.”
부관의 말을 멈춰 세운 투르카.
그는 수십 차례 전장에서 쌓아온, 노련한 경험을 발휘했다.
“놈들 모두가 같은 무기를 사용하고 있구나. 하나의 세력을 이루고 있다는 소리지. 마치 우리 부족들처럼 말이야.”
“놈들이 부족을요…?”
투르카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인간들으 살폈다.
특유의 동체시력으로 놈들의 구역을 특정했고, 귀를 기울여 녀석들의 읊조림을 포착해냈다.
-팍스FC…
-팍스가 글쎄…
-빨리 소속이 되어서…
기민한 조사를 바탕으로, 투르카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과연, 그게 너희 부족의 이름인가.”
그러곤 수하들에게 자신의 뜻을 하달했다.
“모두 비켜서라. 내가 직접 나서야겠다.”
“따르겠습니다.”
스읍!
제자리에 주저앉은 투르카.
그의 허벅지가 두껍게 팽창했다.
그리고…
타아앙!
압도적인 근력을 자랑하며 껑충 뛰어올랐다.
쐐애애액!
적진 한 가운데에 쏘아져 들어간 그는.
꽈아아앙!
놈들의 구역 한복판에 착지했다.
우수수 깨져나가는 보도블럭.
그 압도적인 등장에 인간들은 겁에 질린 채 자리에 멈추어 섰다.
정작 투르카는 푸른색으로 보이는 포탈을 응시하고 있었다.
전장의 향기를 맡은 그는, 바로 이곳이 적 부족장의 거처임을 직감했다.
그가 외쳤다.
“팍스FC의 수장은 나와 겨루자! 너도 명예를 아는 전사라면 불필요한 피를 흘리기를 원하지 않을 터. 나와 결투를 통해 이긴 자가 진 쪽의 목숨을 취하도록 하자!”
쩌렁쩌렁한 목소리.
거대한 몸집의 레드오크가 팍스 부족의 수장에게 일기토를 청하고 있었다.
그 촉구는 계속됐다.
슈우우웅!
꽈아아앙!
꽈아앙!
그 밖의 다른 레드오크들이 하나둘 공터에 착지했다.
서서히 수를 불려간 그들은 포탈 주위를 둥글게 싸며, 신성한 일기토의 ‘무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시쿨루스에 명예가 있으라!”
“투르카 님께 영광을!”
한껏 열기를 틔어내는 시쿨루스의 전사들.
하지만, 투르카만큼은 심장을 차갑게 식혀가며 포탈을 응시하고 있었다.
다가올, 팍스FC의 수장을 기다리며.
반응은 오래지 않았다.
그들이 맞닥뜨린 것은…
“……?”
쐐애애애액!
쐐애애액!
하늘에서 쏟아지는 수백 자루의 성창이었다.
피잉!
핑!
콰득!
“아아아아아아악!”
절규를 내뱉는 레드오크들.
갑작스런 기습을 감행한 팍스FC의 부족장을 저주하며 투르카가 소리를 질렀다.
“비…비겁한! 너희에게는 전사의 명예가 없단 말인…!”
푸욱!
그에게 두 가지의 대답이 주어졌다.
하나는 자신의 복부를 꿰뚫은 성창.
그리고 다른 하나는…
—–
[Web발신] [방구석에서 일기토 승리 개꿀]—–
간편한 메시지였다.
팍스FC의 부족장은 이제 집 안에서도 싸울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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