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6)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6화(6/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 6편
(물류단지의 기러기들 (3))
불 꺼진 물류센터의 휴게실.
누런 손전등 불빛이 지도를 비추었다.
“보건소가 나오는 사거리까지만 가면 됩니다. 거기서 다 같이 흩어지는 거지요.”
우리는 대략적인 탈출 계획을 논의하고 있었다.
바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와이번들의 영역을 벗어나더라도, 이후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다음은 각자의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내일 오후, 새하얀 열 일곱 대의 택배 트럭은 한 줄로 검은 아스팔트를 누빌 것이며, 어느 시점에 다다라 각자의 둥지로 흩어지리라.
곱게 포장된 택배상자를 입에 물고.
하지만 적어도, 와이번들을 소탕하는 것만큼은 내 역할이었다.
애당초 그것이 약속이었으니.
이용수가 말했다.
“예상되는 숫자는 여덟마리 전후입니다. 처음 놈들을 맞닥뜨렸을 때에 비해 딱히 늘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아니, 반대로 아까 정겸 씨 덕에 한 마리 줄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다행히 오크처럼 개체수가 많은 놈들은 아닌 듯했다.
물론 그 수가 적다하여 만만하게 볼 수는 없었다.
이미 깨져본 모양인지, 개중 한 명이 어려움을 토로했다.
“영악한 놈들입니다. 승산이 없는 싸움은 하려고 들질 않아요.”
듣자 하니, 이곳 물류센터 사람들도 한 차례 와이번들을 소탕하러 나섰다고 했다.
무기를 들고 터널에 숨어 놈들을 유인했다고.
하지만 놈들은 오로지 터널 밖으로 나설 때만 공격해왔다고 했다.
자신들이 유리한 위치를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결국 터널 밖에서 싸우는 수 밖엔 없군요.”
그것이 우리의 결론이었다.
물론 나는 괜찮다.
위험한 순간이 있더라도 아공간에 숨어버리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터널이든 아공간이든, 딜레마는 여전했다.
내가 안전한 싸움을 고집한다면 놈들은 또한 나와의 전투를 피할 공산이 컸다.
그렇게 되면 꼬리를 물고 올 다른 트럭들이 위험해진다.
정리하자면, 정면돌파가 필요했다.
내가 말했다.
“제가 트럭 뒤에 타서 놈들을 요격하겠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한 분은 제가 탈 차량의 운전을 맡아주세요.”
E동 물류센터에는 작업용으로 사용하는 1톤 카고 트럭이 한 대 있었다.
배송트럭이 아닌 덕에 뒤쪽 짐칸이 훤히 열려 있었다.
이용수가 번쩍 손을 들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가장 위험한 역할이었다.
나야 아공간에 숨어버리면 된다지만, 일이 틀어지면 운전수는 고스란히 저승행이었으니까.
그래도 이용수는 망설임이 없었다.
“굼벵이 앞에 주름 잡는 격이라 말씀은 못 드렸지만··· 사실 저도 각성자입니다. <베스트 드라이버>라는 능력을 얻었죠.”
“베스트 드라이버요···?”
“탈 것을 운전할 때 동체시력과 반응속도, 숙련도를 극도로 키워주는 능력입니다. 아직 레벨이 낮아 적용되는 건 자동차와 이륜차뿐이지만···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장애물이 많은 서쪽 터널이다.
능숙한 운전실력이 받쳐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도움이 될 터.
“그거 잘 됐군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끝으로, 이곳 물류센터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 저물어갔다.
***
이른 새벽, 나는 하품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아암···”
밤 사이, 습격이 있었다.
새벽 중으로 한 마리씩, 총 두 마리의 오크가 찾아들었고, 보초를 서던 다른 직원들 덕분에 타이밍 좋게 나서 놈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통로에는 간밤에 죽은 두 놈의 사체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슥슥.
칼로 놈들의 심장을 후벼 파내며, 황량한 물류단지의 전경을 눈에 담았다.
“마지막 선물인가?”
내 입장에서는 그랬다.
지금 출하 스킬의 재사용 대기시간은 15초.
마석 두 개를 얻은 덕에 5초까지 줄였다.
아공간 1레벨에서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5초] (강화 한계치에 다다랐습니다.)나는 트럭으로 향했다.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도장이 말끔한 녀석이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오늘이 마지막일 듯했다.
와이번들의 공격이 거셀 테니.
“웃차.”
차량의 짐칸에 올라섰고, 그 자리에서 포탈을 열었다.
위잉-
아른거리는 푸른색 포탈을 보며, 운전석에 탄 이용수에게 말했다.
“한번 움직여보시죠.”
차량이 앞뒤로 몇미터씩 움직였다.
다행히 포탈은 공중에 머무르는 일 없이, 트럭을 따라 함께 움직였다.
짐칸에 포탈을 싣고 다니는 격이었다.
훌쩍 차에서 뛰어내린 나는 팍스를 불러냈다.
“박카스 세 박스만 꺼내줘.”
[동아제약 박카스 F, 120ml, 30개, 가격은 20,400원입니다.]그러곤 마무리 작업을 하는 물류단지 사람들에게 다가가 박카스 한 병씩을 돌렸다.
“이야- 감사합니다!”
누구는 때 묻은 목장갑으로, 또 누구는 굳은살 가득한 못생긴 손을 비비며 박카스를 집어 갔다.
목에 둘러맨 수건을 보고 있자니, 여느 때와 다름없는 물류센터의 풍경이었다.
불현듯 우리를 덮친 멸망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드르륵!
알루미늄 뚜껑이 시원하게 돌았고,
꿀꺽꿀꺽.
“캬아!”
달달한 카페인이 새벽을 적셨다.
모자란 듯 모자라지 않은, 120ml의 마법이었다.
***
코를 찌를듯한 기름 냄새.
우우웅-
참으로 오랜만에 배기음이 울려 퍼졌다.
심지어 하나가 아니었다.
줄처럼 이어지는 열일곱 대의 하얀 배송트럭.
선두는 푸른색 포터 트럭이었다.
바로 내가 타고 있는.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우리는 서쪽 터널에 도착했다.
조수석 대신 짐칸에 오른 나는 이용수에게 미리 당부했다.
“나머지 차량들은 모두 터널에 대기할 겁니다. 좋게 풀린다면 다행이지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차를 돌려 이곳 터널로 돌아오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정겸 씨의 포탈, 제가 안전하게 배송할 테니 걱정 붙들어 매세요.”
우리는 그렇게 인사를 마쳤고, 나는 짐칸에 올라가 운전석 방향으로 나 있는 창살을 힘주어 붙잡았다.
딱 달라붙는 3M 장갑을 미리 준비해둔 터였다.
운전이 거칠어질 수 있으니.
휙.
백미러를 향해 수신호를 보냈고, 그렇게 트럭은 서서히 터널의 그늘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
펄럭.
팔락.
와이번들이 나타났고,
시작은 탐색전이었다.
동료의 죽음을 한 차례 봤기 때문일까, 놈들은 섣불리 공격해오지 않았다.
차량은 아주 느린 속도로 움직였고, 주변을 날고 있던 와이번들이 십수 미터 떨어진 곳에 하나둘 안착했다.
차륵.
놈들이 뱀 같은 눈동자 주위로 혀를 날름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전날 개방한 새로운 능력을 확인하던 중이었다.
바로, <정밀 배송> 능력을.
띠띠띠···
시야에 붉은색 십자선이 그려졌다.
저격수들이 사용하는 조준경 같은 느낌이었다.
‘조준경처럼 확대가 되거나 하지는 않지만···’
대신 다른 게 있었다.
와이번 한 마리를 향해 십자선을 가져다 대자, 실시간으로 계산된 목표물과의 거리가 시야 우측에 표시되었다.
[17m 46cm···] [16m 71cm···] [16m···]팍스가 센스 좋게 덧붙여주었다.
[현재 최대 출하 사정거리는 10m입니다.]내가 속으로 물었다.
‘거리를 벗어나면 어떻게 되지?’
[그 자리에 멈추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단, 속도가 현저히 저하됩니다.] [‘출하 속도’는 애당초 물리법칙에 의해 발생한 속도 에너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간단히 말해, 위력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
결국 놈들과의 거리를 좁혀야만 했다.
그때였다.
끼에에엑!
탐색전은 이제 끝이라는 듯, 나와 마주 보던 와이번 한 마리가 거칠게 달려들었다.
놈이 유선형의 몸짓으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나를 향해 활강했다.
띠띠띠···
[11m 52cm···] [9m 02cm···] [6m···]거리가 빠르게 줄어들었고,
카아아악!
놈이 입을 쩍하니 벌렸다.
나도 서둘러 대응했다.
‘출하.’
[움직이는 타겟입니다.] [출하 위치가 실시간으로 보정됩니다.] [보정값 계산 완료]몇 개의 메시지가 순식간에 지나갔고···
파학!
눈앞에서 와이번의 머리가 날아갔다.
끼이이이이익!
차를 몰던 이용수가 급하게 핸들을 꺾었다.
목 잘린 와이번의 사체가 차를 향해 쓸려 들어왔기 때문이다.
텅!
차체에 부딪힌 와이번의 사체가 충격을 잊지 못한 채 꿈틀거렸다.
나 또한 충격이었다.
‘정밀배송··· 사기잖아?’
헤드샷, 원샷원킬.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다.
단 한 발에 와이번의 목이 날아갔다.
까에에에에엑!
남은 와이번들이 동족의 죽음에 분개했다.
펄럭.
한 놈씩 공중에 체공하며 제비처럼 나를 향해 날아들었지만,
5초는 금세 지나갔다.
퍽!
철푸덕!
무려 여섯 배나 빨라진 속도.
정말이지 속이 다 시원했다.
팍!
투둑!
노면으로 머리 잘린 와이번들이 하나둘 툭하니 떨어졌다.
꼬리도, 날개도 아닌 머리.
일말의 고민도 없이 놈들의 죽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달칵.
이용수가 황망한 표정으로 운전석에서 내렸다.
그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휘이이-
물감처럼 파란 하늘에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베스트 드라이버인 그가 활약할 일은 없었다.
차량은 100여미터 가량을 저속으로 천천히 내달렸을 뿐.
이따금씩 핸들을 꺾어 날아드는 와이번의 사체를 피해냈던 것, 그게 전부였다.
툭.
나도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던졌다.
터널을 벗어날 때 송글 맺혔던 땀이 뽀송하게 말라 있었다.
“사실···”
나도 이렇게 쉽게 끝날 줄은 몰랐다.
이용수가 다시 차를 몰았다.
전진 같은 후진으로 터널에 입성하자, 트럭에 타고 있던 물류단지 사람들이 하나둘 뛰쳐나왔다.
차는 긁힌 자국 하나 없이 깔끔했고, 그건 나와 이용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쓰러진 와이번들 사체 사이로, 쭉 뻗은 도로가 눈에 들어왔다.
마침내 길을 되찾은 택배 기사들이 만세를 불렀다.
.
.
.
“자자, 얼마 안 남았다!”
차에서 쏟아져나온 물류단지 사람들 손에는 단검이 한 자루씩 들려 있었다.
당초 계획했던 일은 아니었지만, 길목이 안전해졌다는 사실을 안 모두가 자처해서 마석 채취를 도왔다.
출하 스킬의 <사정거리>를 강화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도로의 양옆으로는 차음벽이나 이런저런 장애물이 놓여있었으니, 자칫 먼 거리에서 놈들을 공격했다간 사체를 잃어버리기 십상이었다.
대부분 10미터 이내에서 처리한 덕에, 사체까지 모두 확보할 수 있었다.
와이번의 심장에서는 마리당 세 개의 마석이 나왔다.
어제 잡은 녀석까지 총 여덟 마리의 와이번을 잡은 셈이었고, 총 스물네 개의 마석이 내 주머니에 들어왔다.
괄목할만한 수입이었다.
물류단지 사람들이 하나둘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정겸 씨. 정말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가족들을 만나게 됐어요.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부르릉-
그렇게, 배송트럭들이 하나둘 도로를 빠져나갔다.
말없이 그들이 무사히 돌아갈 수 있기를 기원했다.
이용수가 내게 말했다.
“그럼··· 저희도 슬슬 갈까요?”
“그러시죠.”
목적지는 인덕원.
그의 아내와 딸이 있는 곳이자, 서울로 올라가는 길목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차에 올랐고,
부릉!
시동을 걸었다.
“평소에는 30분이면 갑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며칠간 줄곧 고립되어 있었던 탓에 바깥 상황을 전혀 알 수 없는 우리였다.
더욱이 인터넷도 사용할 수가 없었으니.
그래도···
“이상하게 불안하지가 않네요.”
그가 말했다.
거북이 등딱지처럼 속을 든든히 채운 탑차 트럭.
그리고 재고 무한의 물류센터가 내 등에 매달려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