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6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60화(60/240)
60. 통폐합 (2)
“반갑습니다.”
시원하게 넘긴 동치미 국물 덕분일까.
아니면 정령사 퍼시발의 인사 덕분일까.
잠수함에서 내려 모습을 드러냈을 때, 엘프들의 긴장은 한결 거둬져 있었다.
“당신은…누구시죠? 누구신데…”
어디서 이런 신선하고 생기 넘치는 음식들을 가져왔느냐는 말.
그들은 머뭇머뭇 뒷말을 삼켰다.
물론 나로서도 대답이 쉽지만은 않았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팍스FC의 대표이기도 하고요.”
“한…한국!”
주춤.
엘프들이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지구인인 건 알아봤지만, 아예 전쟁 당사국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다행히, 퍼시발이 눈치 좋게 앞으로 나서주었다.
그리고…
“저희는 엘븐하임과 전쟁을 벌일 생각이 없습니다. 이 모두가 상공회의소의 수작이라는 걸 충분히 알고 있거든요.”
“……!”
그 말의 효과는 강력했다.
주르륵.
엘프들의 눈가에서 하나같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으니까.
“그 쉬운 걸…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걸…”
메인 목으로 떠듬떠듬 말을 뱉는 엘프들.
갖은 고난을 겪어온 희생자들 답게, 이미 여러 차례 원치 않는 전쟁을 벌여온 모양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존재를 만난 것.
“그럼… 엘븐하임을 탐내지 않는 거에요?”
다른 엘프들 다시 사이에서 빼꼼 고개를 빼든 소년 엘프 케루.
녀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갖고 싶지 않았으니까.
풀 한 포기 찾을 수 없는 황량하기 짝이 없는 땅.
이곳에 존재하는 것이라곤 그저 엘프들이 전부였다.
“하긴, 땅 달라고 온 사람은 없긴 했어.”
“엘븐하임이 좀 구리긴 해!”
엘프들이 껄껄 웃으며 순박한 자조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이렇게 농담이나 따먹을 시간이 없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엘븐하임에게 우리의 반전(反戰)의사를 타진하는 것.
하지만 그런 이런 변두리에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타이밍 좋게, 가장 고참으로 보이는 남자 엘프가 성큼 걸어나왔다.
“그럼, 엘리 의장님과 이야기를 나누셔야겠군요.”
그의 이름은 ‘에단’이었다.
그는 우리를 엘프들의 지도자인 엘리 의장에게 소개해주겠다며, 엘븐하임의 수도인 갈라돈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3일이나 걸린다고요?”
“예, 다행히 이곳 해안과 그리 멀지 않아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담담히 덧붙이는 에단을 보며, 나는 물었다.
“…혹시 걸어서?”
“그럼요. 자연께서 내어주신 이 튼튼한 두 다리가…”
에단이 씨익 웃으며 텅 빈 이빨을 드너냈다.
새삼 내가 얼마나 문명에 찌들었는지 느끼게 해줄 만큼.
깡촌 엘프와 걷는 국토대장정도 나쁘지는 않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많지 않았다.
곧장 포탈을 열었고…
덜컹.
육중한 쇳덩어리의 소리가 엘븐하임의 해안을 메웠다.
.
.
.
“와아…!”
“우와아아아아아!”
뒷자석에 구겨지듯이 탄 엘프들이 쩍 하니 입을 벌렸다.
코란도의 차량 내부를 구석구석 만져보느라 여념이 없는 그들.
달칵.
치이이이…
달칵.
치이이이…
뒤에 달린 무전기가 켜졌다 꺼지기를 수십 번.
문명을 향한 엘프들의 호기심은 그칠 줄을 몰랐다.
부우우웅.
그렇게 몇 시간을 쉬지 않고 내달렸을 즈음이었다.
“커어어어어어어…”
“드루루루루롸라라랑…”
엘프들이 코를 골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머리를 뒤로 젖힌 채, 쩍 하니 입을 벌리며.
“에단…”
“으음…예…네?”
“길 안내를 해주셔야죠.”
“아참, 죄, 죄송합니다. 스으읍.”
애써 침을 닦아내는 에단.
처음의 긴장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에단의 길 설명은 간단하기 짝이 없었다.
코끼리 바위를 지나, 악어 바위를 왼쪽으로 돌고, 생쥐 바위가 나올 때까지 직진.
내비게이션의 업데이트를 고조선까지 롤백하면 이런 설명이 나올까 싶었다.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다 왔어요.”
“그 말 두 시간 전부터 했습니다. 에단.”
헬기를 타면 한결 빨랐겠으나, 에단이 극구 만류한 탓에 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프로펠러의 소리도 상당한 데다, 다른 괴물로 오인되어 엘프들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부우우우우웅.
이용수에 의해 쏜살같이 나아가는 코란도 스포츠.
노면 사정이 좋지 않은 탓에 차는 꾸준히 덜컹거렸지만, 한나절을 족히 달린 끝에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렇게…
“바로 저곳입니다.”
엘븐하임의 심장, 갈라돈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가는 게 좋겠습니다.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깐요.”
갈라돈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
지나가는 엘프들이 우릴 보며 흠칫 놀라곤 했지만, 에단이 괜찮다는 듯 표시를 보내자 가슴을 쓸어내리며 유유히 멀어져갔다.
내부로 접어들수록 엘프들의 거처가 하나둘 뚜렷하게 들어왔다.
얼기설기 두꺼운 넝쿨을 엮어 만든 움막, 석고로 빚어 만든 회색 건물, 건너건너 보이는 주황색 지붕까지.
나름 찬란하리라 예상했던 엘프들의 도시.
하지만 그 실상은 다음과 같았다.
‘…깡촌?’
코를 질질 흘리며 뛰어다니는 어린아이들.
그리고 길목을 이리저리 배회하는 정체불명의 견종(?)까지.
허름한 집들마다 널찍한 마당을 끼고 있었고, 그런 집들이 모인 ‘마을’의 중심에는 유독 커다란 건물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에단이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우리 엘프들의 상징, 갈라돈 의회입니다. 저기에 엘리 의장님도 계실 거에요.”
“의회요…?”
가로로 긴 단층 건물에 불과한 갈라돈 의회.
그 앞에는 널찍한 평상이 놓여 있었다.
“아, 아침에 물 줬다니까!”
“아라우카리아는 반양지에 키워야…”
“아니, 그러니까 내가 몇 번을 말해? 비료를 쓸 때는…”
평상에는 십수 명의 엘프 장로들이 저마다 수다를 떨며 앉아 있었는데, 저마다 맨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연신 부채질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리보고, 저리봐도…
‘…경로당이잖아?’
주름이 자글자글한 엘프 장로들.
웃음 섞인 호통을 내뱉고, 껄껄 웃으며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는 모습은 한국의 정겨운 시골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그 사이로 젊은 여성 엘프 한 명이 끼어들었다.
“어휴, 장로님! 쓰레기 아무데다 버리지 마시라고요!”
“아 왜? 모두 대자연께서 거둬가실 건데. 껄껄.”
행색이 꼬질꼬질한 것은 다른 엘프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가지런히 땋은 머리, 자로 잰 듯한 콧날, 멀끔한 이마와 선명한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감히 아름답다는 말을 아낄수 없었다.
내가 감탄하고 있다는 걸 알아봤는지, 에단이 웃으며 말했다.
“저분이 엘리 의장님이세요. 아름다우시죠? 한참 그러실만한 나이거든요.”
“음 저도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아마…”
“200살 초반쯤 되실 거에요.”
“…?”
“에단은요?”
“에이, 저야 멀었죠. 이제 160살 조금 넘었으니까.”
그저 평범한 시골이 아니었다.
초고령화 농촌.
그것이 이 엘븐하임의 정체였으니.
엘프 장로들과 한바탕 실랑이를 마친 엘리 의장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에단? 무슨 일이야? 그 사람은…”
에단이 그녀에게 해안가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식사를 대접받았다는 것, 그리고 엘리 의장에게 꼭 전할 말이 있다는 것까지.
그녀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저희 아이들이 신세를 끼쳤네요.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덕분에 편하게 왔어요. 그보다…”
곧장 본론을 꺼내 들었다.
일주일 뒤 상공회의소의 공지가 이뤄질 테지만, 우리는 엘븐하임과 싸울 생각이 전혀 없노라고.
엘리 의장 또한 고개를 끄덕거렸다.
짐작대로였다.
한국 그리고 일본과 달리 엘프들은 일주일 뒤 전쟁이 시작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담담히 덧붙였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는 이곳 엘븐하임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생각이 없거든요.”
싸움을 원하지 않는 엘프들.
그녀의 선언을 듣고 나니 한결 안심이 되었지만…
그녀는 내가 던진 질문을 날카롭게 되돌려주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도 과연 그럴까요?”
“그건…”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일본이 어떻게 움직일지, 나로서는 확신하기 어려웠기에.
하물며 한국도 그랬다.
명실상부한 엘븐하임의 의장인 엘리와 달리, 나는 한국의 대표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한국 또는 일본에서 ‘침략자’가 생겨나는 일은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었다.
나의 바람과는 무관하게.
엘리가 싸늘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가 당신들을 침략하는 일은 없을 거에요. 하지만, 처들어오는 적을 내버려 두지도 않겠죠. 엘븐하임을 공격한 자들은 모두 죽게 될 거에요.”
그녀의 단언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모두요?”
“지구가 다차원에 개방된 지 얼마나 됐죠? 10년?”
대답하지 못했다.
채 1년이 지나지 않았으니까.
“엘븐하임은 얼마나 됐으리라 생각해요? 그것도 당신들보다 훨씬 더 긴 수명을 가지고요.”
그저 긴 세월을 살아가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도 우리처럼 그 긴 시간을 생존을 위해 분투했을 터.
그 결과, 엘리가 전해준 엘븐하임의 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우리는 대부분 7에서 6수준의 위계를 가지고 있어요. 저기 쓰레기 버리시던 장로님처럼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5위계이신 경우도 적지 않죠.”
그 때문이었다.
엘리가 지구인 침략자들의 죽음을 단정한 것은.
순박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그들은 놀라울 만큼의 강자였다.
그녀는 담담히 결론을 맺었다.
“돌아가서 사람들을 설득하세요. 와서 아까운 목숨을 버리지 말라고. 그리고…”
그녀는 회한에 찬 목소리로 덧붙였다.
“부탁할게요. 우리가 조용히 죽어가게 내버려 둬요.”
조용한 죽음.
그것은 내리막을 걷는 고룡의 서글픈 울림과도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황량하게 썩어버린 엘븐하임의 대지.
엘프들에게 나눠줄 자연력은커녕, 평범한 자연의 소산조차 내놓지 못하는 죽음의 땅.
그것이 그녀가 말하는 죽음이었다.
나는 물었다.
“해안가에서 만난 엘프들이 지구의 바다를 정화해주더군요. 하지만 정작 엘븐하임을 정화하지 못하는 이유가 뭐죠?”
“……”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없이 고민을 이어가던 그녀는 이내 천천히 몸을 돌려세우더니, 따라오라는 듯 내게 손짓했다.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
죽은 나무들로 둘러싸인 공간, 엘븐하임의 가장 깊숙한 장소로.
.
.
.
가장 경계가 삼엄한 곳이었다.
초라한 행색은 여전했지만, 나름 건장한 엘프들이 주변을 지키고 있었으니까.
나무뿌리처럼 촘촘하게 얽힌 길.
그 골목과 골목을 엘리를 따라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이게 뭐죠?”
작은 묘목 하나를 발견했다.
무심하게 자라나 있는 팔뚝만 한 나무.
그 기둥과 가지는 배고픈 엘프들의 팔뚝만큼이나 가녀리고 연약했다.
하지만 문제는 크기가 아니었다.
싱그러운 초록빛.
엘븐하임의 땅을 밟은 이래, 처음으로 발견한 살아있는 식물이었다.
엘리가 담담히 그 정체를 말해주었다.
“…세계수에요. 사실 관례상 여기부터 모시고 왔어야 맞는건데.”
세계수.
듣기만 해도 그 중요성이 느껴지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묘목은 그 이름을 지탱하기엔 너무나 작고 연약했다.
툭 하니 치면 부러질 것만 같은 연약함.
그 모습이 어쩐지 엘븐하임의 엘프들을 대변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게 여러분들이 죽어가고 있는 이유라고요?”
“…네.”
엘리가 착잡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엘븐하임 대륙 전체가 저주에 걸려 있어요. 그동안 세계수가 저주와 싸워준 덕에 약간의 작물이라도 건질 수 있었지만… 그 힘이 영원할 수는 없으니깐요.”
바다를 향해 물수제비를 던지던 케루, 그리고 그런 케루를 혼내던 에단까지.
엘프들은 이 땅에 뿌린 내린 저주에 한껏 움츠러들어 있었다.
“…누굽니까? 그 저주를 내린 건?”
무심결에 던진 질문.
하지만, 그녀의 대답에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바르나울이에요. 흑마법을 사용하는.”
란슬롯의 고향, 아발론을 덮친 흑마법사들의 차원이었다.
그 이름이 엘프들의 입에서 나올 줄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바르나울은 세계수의 자연력을 두려워했어요.”
하지만, 그 목적이 달랐다.
아발론을 침략한 것이 돈 때문이었다면, 엘븐하임에 저주를 내린 것은 엘프들을 ‘견제’하기 위함이었으니까.
“그래서 세계수가 회생하지 못할 수준까지 이 땅에 흑마법을 뿌려댔죠. 상공회의소의 제지 덕에 완전히 죽지는 않았지만…이제는 그 또한 시간문제일 뿐이고요.”
그 때문이었다.
엘리가 자신들을 죽어가게 내버려 두라고 한 것은.
바르나울은 무한한 생명력을 가진 세계수에 시한부를 선고했고, 이 작은 식물의 운명은 곧 엘븐하임 전체의 운명이 되었다.
엘리는 그것으로 우리의 대화를 정리했다.
“이제 보여드릴 건 모두 보여드린 것 같군요. 서로 충분히 예의를 차렸으니,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일주일 뒤 기어코 엘븐하임으로 들이닥치는 지구인들이 없지는 않겠지만…그대와는 상관없다고 알아두죠.”
콰앙.
그녀는 그렇게 엘븐하임의 관짝을 닫으려 했지만…
“그 저주 말인데…”
나는 그들의 죽음을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나에게 세계수를 회복시킬 만한 능력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세계수가 많아지면 해결되는 문제입니까?”
양을 불릴 수는 있었다.
나무가 부족하면 더 심으면 그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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