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61)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61화(61/240)
61. 통폐합 (3)
엘리가 벙찐 표정으로 되물었다.
“…세계수가 많아진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이죠?”
그녀는 내 말뜻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엘프들에게 있어 세계수란 유일무이한 존재였으니까.
그것이 복사된다는 발상 자체를 떠올리지 못하는 듯했다.
엘리는 그저 이렇게 덧붙일 뿐이었다.
“저주를 이겨낼 만큼 세계수가 장성한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겠쬬.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요. 이미 균형이 기울어져 버렸으니까요.”
엘븐하임의 세계수.
지금은 묘목에 불과해 보이는 이 나무는 과거 구름에 닿을만큼 거대했다고 했다.
불과 수백 년 사이 조금씩 사그라들던 세계수는 바르나울의 저주와 싸우며 지금의 크기까지 줄어들었다고.
“바르나울의 흑마법은 우리 엘프들의 정화 능력으로도 회복이 불가능해요. 어디 전설의 드루이드라도 데려오지 않는 한… 승산은 없다고 봐야죠.”
“으음…”
엘븐하임의 운명을 비관하는 엘리.
나도 뭐라 덧붙이지는 않았다.
분명하다.
세계수를 무한정 복사한다면 엘븐하임을 뒤덮은 저주를 깔끔하게 걷어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힘이 밀리고는 있다지만, 지금 저 작은 묘목 하나가 대륙 전체를 두른 저주와 힘을 겨루고 있다는 뜻이니까.
과연 세계수다운 가공할만한 위력.
냉큼 삼켜버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해당하는 카테고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과연 세계수였다
물류센터에도 화초 같은 건 존재했지만, 엘븐하임의 셰계수와 견줄 수는 없는 모양.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아공간 레벨마다 주어지는 저장 슬롯을 사용하는 것.
레벨 5에서 이미 상공회의소 일본 지부를 수용했으니, 새 물건을 넣으려면 다음 레벨로 올라서야만 했다.
‘…돈이 없어.’
레벨 6달성을 위해 요구된 마석의 양은 자그만치 10만 개.
반면, 지금 내가 보유한 양은…
[남은 마석은 68,331개입니다.]한참 모자랐으니까.
.
.
.
다시 밖으로 빠져나왔을 즈음이었다.
세계수가 둘러싼 넝쿨 지대의 한쪽 너머.
올 때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는데, 공터처럼 마련된 공간이 눈에 띄었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엘프들.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기억 속의 순박한 미소가 날아가 버릴 만큼.
“뭘 하는 거죠?”
“사격 훈련이에요. 어찌 되었든…일주일 뒤 전쟁이 예고된 상태니까요.”
혹시 모를 침략자들을 대비하여, 엘프들은 하나같이 활을 치켜들었다.
-준비!
한 엘프가 우렁차게 명령했고.
지이이익…
나머지 엘프들이 하늘을 향해 팽팽한 활시위를 당겼다.
-발사!
파아아아앙!
가공할만한 위력이 화살을 빠져나갔다.
찌르르…
주변을 울리는 소리.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한 위력이었지만, 정작 놀랄 점은 따로 있었다.
“…화살이 없네요?”
“화살을 사용하면 위력이 오히려 더 떨어져요. 대신 자연력을 변환한 에너지를 모아 발사하죠.”
장비와 위계 간의 관계.
란슬롯이 한 차례 설명해준 적이 있었다.
강화된 무기 아닌 이상, 사용자의 손을 떠나는 순간 위계의 힘을 잃는다는 것.
이 때문에 대부분의 차원 존재들이 근접 무기를 선호한다는 것까지.
하지만 엘프들은 예외였다.
어엿한 궁수인 이들은 어쭙잖은 도구를 버리고 자신들이 지닌 자연력을 무기로 삼고 있었으니.
“화살도 아낄 수 있으니 나름 환경보호도 되죠.”
엘리가 너스레를 떨었지만, 정작 내 팔뚝에는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최소 7위계, 높으면 5위계에 달하는 엘프들이다.
활 하나만 주어지면, 그 수준의 공격을 어렵잖이 퍼부을 수 있다는 것.
평화로운 성격의 엘프들이기에 망정이지, 만약 이들이 침략을 작정했더라면 지구는 단숨에 엘프들에게 넘어갔을 터였다.
엘븐하임을 침공하는 자는 모두 죽을 것이라는 그녀의 단언.
그 말에는 한 치의 과장도 없었다.
이번에는 엘리가 덧붙였다.
“사실 어제도 해안에서 교전이 있었어요.”
“어제요?”
“예, 하지만 당신들과는 종족이 다른 것 같던데..조금 물고기 같은…”
“물고기라면…”
다른 게 있을 리 없었다.
일본의 어인들.
유신각성회를 붕괴시키고, 다이치가 일본 각성자들을 모아 수습에 나섰음에도, 아직 잔당이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봤자 엘프들의 상대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그때였다.
“정겸 씨, 잠시…”
아공간 포탈 안에서 나를 부르는 이용수.
그가 새 소식을 전해주었다.
“일본에서 다이치가 찾아왔어요.”
“…다이치가요?”
엘븐하임으로 오기 위해 오사카를 경유했떤 우리였다.
오사카에 있던 각성자들이 그 소식을 다이치에게 전했던 모양.
출입을 허자하자, 다이치가 포탈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정겸 씨, 오래간만입니다.”
반가운 인사와는 달리, 그는 꽤 침통한 표정이었다.
잠시 엘리에게 양해를 구한 뒤, 다이치와 따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내가 먼저 물었다.
“어인들이 아직 남아 있는 모양이죠?”
“…어떻게 아셨어요?”
화들짝 놀라는 다이치.
그가 나를 찾아온 이유가 그와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 정리를 끝내긴 했어요. 이제 딱 하나 삿포로가 남았는데…”
삿포로에 남은 단 하나의 게이트 포탈.
공교롭게도 이곳 엘븐하임과 제법 가까운 위치였다.
이제는 딱히 위협적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어인들이었지만, 디이치가 고전하는 이유가 있었다.
“놈들이 게이트 핵을 챙겨 바다 위에서 농성을 하고 있어요. 마두귀라도 풀어놓을까 고민했지만…”
7위계 괴물인 마두귀.
그건 다이치가 사용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정작 놈들이 바다 한가운데로 자리를 옮겨버린 탓에, 그 수단마저 막혀버렸다고 했다.
더욱이 진짜 문제는 어인들이 아니었다.
샤리트 차원에서 넘어온 거대 괴물이 바로 그곳에 있었으니까.
“…크라켄이에요. 쉬지 않고 산성으로 된 먹물을 뿜어대는데… 주변 바다가 모두 오염돼버려 가까이 접근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에요.”
크라켄, 그리고 놈이 뿜어내는 산성 먹물.
일본 해역과 엘븐하임의 해안을 오염시킨 주범이 여기에 있었다.
“멀리서 공격하는 건요?”
“해봤어요. 정겸씨가 지원해주신 성창도 사용해봤지만, 척력이 상상 이상으로 단단한 탓에…”
성차마저 통하지 않는 척력.
지금껏 이만한 방어력은 만나본 적이 없었다.
물론…
‘미친 듯이 퍼붓는다면 어떻게 잡기는 할 것 같은데…’
이번에도 500m에 불과한 사정거리가 문제였다.
거기까지는 접근을 해야 한다는 뜻인데, 놈의 산성 먹물에 잠수함이 버텨주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웠으니까.
필요한 건 간단했다.
‘먼 거리에서, 그것도 고위계를 뚫어버릴 수준의 위력…’
그리고 그건…
‘…여기 있잖아?’
멀찍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엘리를 바라보았다.
고위계를 가지고, 그에 상응하는 위력의 원거리 공격을 쏟아내는 엘프들.
그 힘이 필요한 시점이었으니까.
더욱이,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침, 딱 돈이 필요했는데…’
매번 쏠쏠한 수입을 안겨주었던 게이트 핵이다.
먼저 부탁을 해온 건 다이치였지만, 내 입장에서도 수만 개의 마석을 얻을 기회였다.
엘프들을 통해 크라켄을 사냥하고, 수급한 마석으로 레벨을 올리고, 아공간에 저장한 세계수를 복사하는 게획.
가재 잡고 도랑치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전략이었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엘프들을 설득해야 할 텐데.’
순박하기 짝이 없는 엘프들이지만, 그들의 고립성만큼은 상상 이상이었다.
대륙 밖으로는 돌 한 조각도 내보내지 않던 그들이다.
아무리 평화가 목적이라지만 밖으로 나서 함께 싸워달라는 부탁을 이들이 순순히 들어줄 수 있을까?
그래도…
“…해봐야지 어쩌겠어.”
핵심은 내가 세계수를 복사할 수 있다는 걸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
그리고 그것을 엘븐하임의 새로운 철학으로 제시하는 일이었다.
한 그루의 걸출한 나무가 아닌, 작지만 숲을 이룰 수 있는 나무들이 되는 것.
엘븐하임이 홀로 동떨어진 섬이 아닌, 팍스 풀필먼트 센터를 이루는 하나의 ‘허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엘리에게 다시 돌아갔다.
그러곤 다이치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엘리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삿포로에 있는 크라켄을 잡기 위해 엘프 궁수들을 동원해줬으면 한다고.
내 예상대로 그녀는 난색을 표했다.
“바깥이요? 엘븐하임 내부라면 몰라도 밖은…”
상공회의소의 이간질, 그리고 평화를 중시하자는 의견을 공유한 우리였다.
엘리는 딱 잘라 거절하기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절대적인 불가침(不可侵). 바르나울의 저주가 처음으로 엘븐하임을 뒤덮었을 당시, 갈라돈 의회가 결의한 내용이이요. 엘븐하임의 저주를 비롯한 그 무엇도 밖으로 빠져나가면 안 된다고요. 그건 우리 엘프들도 예외는 아니에요.”
철저히 고립된 죽음.
그것이 바르나울의 저주가 내려졌을 당시, 갈라온 의회가 작성한 자신들의 유언이었다.
“지구에는 지구의 생태계가 있을 거에요. 저주에 시들어가는건 우리 엘븐하임의 자연으로도 충분하고요. 우리 또한 지구에 불필요한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니 거니…”
곤란한 표정을 짓는 엘리.
나는 엘븐하임에 식량을 보급해주려던 계획을 조금 더 앞당겼다.
그러곤 어렵사리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를 내버려 둔 채, 손위로 파릇파릇한 채소 하나를 출하했다.
지잉.
[국내산 배추, 1통 가격은 3,390원입니다.]난데없이 나타난 실한 배추 한 통.
뭔가 짐작이라도 한 듯, 그녀는 손을 내저었지만…
“대가로 주려는 거라면 도로 넣어두세요. 미안하지만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으니까요.”
출하는 계속됐다.
척!
척!
“자, 잠깐…”
차츰 쌓여가는 배추.
그쯤 되자, 엘리의 표정 또한 경악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대체 언제까지…?”
턱!
한참 동안, 족히 수백 개에 달하는 배추를 쌓아 둔 뒤에야 나는 입을 열었다.
“너무 한 가지만 생각하지 마세요. 고여 있다 보면 곪아가기 마련이이니까.”
그러곤 담담히 그녀의 말을 반박했다.
지구에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엘븐하임의 생각,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었으니.
“지구에 피해를 줄 수 있는 건 엘븐하임 뿐만이 아니에요. 주변 바다가 죄다 오염돼 있는 것도 이미 보셨을 테고. 타차원에서 넘어오는 수십 수백 종류의 위협이 지구 생태계를 도륙내고 있죠.”
“그건…”
“결정적으로 제가 엘븐하임에 줄 수 있는 도움도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이건 그냥 선물일 뿐이고… 진짜 엘븐하임에게 제시하고 싶은 대가는 따로 있어요.”
사이좋게 겹겹이 쌓인 배추들을 보며, 나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다음번 여기에 쌓이는 건 세계수가 될 겁니다.”
그제야 엘리는 알아차렸다.
내가 사물을 무한정 복사할 수 있다는 것.
세계수가 유일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이 엘븐하임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리라는 것까지.
***
촤아악!
백여 척의 K북선이 바다를 갈랐다.
목적지는 크라켄이 있다던 삿포로의 바다.
다행히 엘븐하임의 해안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장대한 위용을 자랑한 K북선의 용머리.
그 옆으로…
휘이이익!
엘프들의 금발 머리칼이 휘날렸다.
바보같은 웃음은 잠시 접어두었다.
오뚝한 콧날, 살짝 찡그린 미간, 진지한 눈빛까지.
잘생김으로 무장한 엘프들은 K북선의 단단한 지붕에 올라탄채, 다가올 전투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복될 엘븐하임, 그리고 나무뿌리처럼 촘촘히 연결될 팍스FC와의 유대를 기대하며.
멀찍이 해안선으로부터 불룩 튀어나온 생명체의 형상이 보였다.
그 정체를 증명하듯, 바다는 한층 더 거무죽죽한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코를 찌르는 악취는 물론…
치이이이…
배의 바닥을 녹이는 강력한 산성 성분까지.
선두 그룹에 있던 엘프 하나가 우렁차게 외쳤다.
“슬슬 배가 못 버팁니다.”
“괜찮아! 조금 더 갈 수 있어!”
엘프들을 다독인 에단이 재차 외쳤다.
“정화!”
엘프들이 바다를 향해 손을 뻗었다.
빠르게 달리는 보트 위에 앉아, 무심히 내민 손으로 물살을 가르듯이.
그렇게 그들의 손이 머문 자리 주변으로…
지이이잉…
검게 물들었던 바다가 차츰 색을 되찾기 시작했다.
배의 하부에 가해지던 손상을 막아낸 것은 물론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우리는 마침내 크라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체동물답지 않게 육중하고 둔탁한 몸.
돌, 아니 쇳덩어리 같은 머리와 다리 모두에는 마치 녹이라도 낀 것처럼 청록색과 구리색이 곳곳에 피어있었다.
깊은 바닷속에 수백 년간 넣어둔 거대한 닻과 같은 모습.
접근한 적을 수심 끝까지 끌고 들어갈 것만 같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외양이었지만…
‘어차피 가까이 안 가도 되니까.’
오염된 바다를 이용해 줄곧 거리적 이점을 가져가던 녀석이지만, 이제는 반대였다.
놈은 우리를 공격할 수 없지만, 반대로 우리는 놈을 타격할 수 있는 위치.
즉, 엘프들의 사정거리가 닿는 위치에 다다랐을 즈음이었다.
“둘러싸!”
크라켄을 중심에 둔 엘프들.
뭔가 낌새를 친 크라켄 또한 이동을 시작했지만, 엘프들을 실은 배가 다시 거리를 벌린 탓에 포위망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렇게…
“공격!”
타아아앙!
슈우우우우우웅!
슈우우우우욱!
엘프들의 자연력을 담은 수십 수백 발의 공격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피웅!
핑!
마치 총알처럼 매다 꽂히는 공격.
성창으로도 뚫을 수 없었던, 그 강철과도 같은 크라켄의 갑피를 두부처럼 찌르고 들어갔다.
우우우우…
낮게 울리는 크라켄의 비명.
놈은 깨달았다.
바다가 더 이상 자신의 피난처가 될 수 없음을.
뽀그르르르르륵!
물길을 따라 피어오르는 거품.
오렴된 먹물을 흘리며 녀석은 심해를 향해 탈출을 노렸지만…
-???
[화물차 안전 그물망+1. 가격은 20,930입니다.]강화된, 그리고 수십 개를 엮어 만든 그물에 거대한 몸집이 가로막혔다.
과연 크라켄이었다.
파아아악!
촤아악!
녹슨 촉수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눈앞에 놓인 그물을 찢어발겼다.
한 장, 두 장, 그리고 세 장까지.
하지만 파도처럼 겹겹이 쏟아지는 그물을 맞이하며, 크라켄은 뭔가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끄르르르르륵…
하나둘 무거워지는 촉수와 흐릿해져 가는 시야.
그 끝에서 녀석이 본 것은…
푹!
[차원 계좌가 소유 이전되었습니다.] [기존 예금주, ???, 잔액 : 46,721개] [이미 차원 계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금액이 합산됩니다.] [남은 마석은 115,052개입니다.]빛나는 창에 의해 터져나간 게이트 핵의 노른자.
그리고.
콰득.
새카만 먹물과 함께 자신의 머리를 꿰뚫은 엘프들의 화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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