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63)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63화(63/240)
63. 별이 빛나는 땅 (1)
어느덧 상공회의소가 예고한 통첩일.
살벌한 전쟁의 시작을 알린 것은 일상적이게 짝이 없는 메시지였다.
띠링!
—–
다차원 상공회의소에서 알려드립니다.
한국.일본 지역의 상권 활성화를 위한 통폐합 조치가 시행되었습니다.
현 시간부로 태평양 지역에 형성된 ‘엘븐하임’지역과의 적대 관계가 설정되며, 상호 전투에서 발생하는 수익에 대해 한시적으로 할인된 중개 수수료가 적용됩니다.
세세한 전투 규칙에 관해서는…
—–
엘븐하임과의 전쟁.
그리고 상공회의소의 불친절한 설명은 한국의 일본의 각성자들에게 그간의 멸망을 상기시켰다.
사람들을 도륙하는 타차원의 괴물들.
더욱이 한국은 팍스FC와 국군에 의해 서서히 수복되고 있었다.
아공간 포탈 근처에는 괴물들의 모습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고, 되레 괴물의 부재를 갈증으로 느끼는 각성자들마저 나타났다.
“조금만 더 있으면 레벨업인데…”
“어차피 붙어야 하는 애들인 거잖아?”
그 때문이었다.
몇몇 각성자들이 한사코 그 먼바다를 건너 엘븐하임으로 흘러든 것은.
자신도 모르는 새 침략자가 되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그렇게 요트를 타고 엘븐하임의 해안에 상륙한 그들이 발견한 것은…
“…뭔 사람이 이렇게 많아?”
지난 며칠 내내 엘프들과 동고동락하며 세계수를 심던 팍스맨들이었다.
그리고…
“그거 메시지 받았다고 진짜 오는 놈들이 있네?”
“에잉! 몹쓸 놈들!”
팍스맨들 또한 모르지 않았다.
모두들 상공회의소가 보낸 메시지를 읽었으니까.
하지만 입장은 반대였다.
지난 며칠간 엘프들과 흙냄새를 나눈 팍스맨들.
다가올 침략을 막겠다며 자처해서 엘븐하임의 온 해안을 두른 그들이었다.
반면, 한국과 일본의 각성자들이 그 사정을 알 리 없었다.
요트에서 내린 그들이 팍스맨들을 향해 쪼르르 달려 나왔다.
“이봐요…! 당신들도 엘프를 잡으러 온 겁니까? 그러면 같이…”
파삭!
엘프를 잡겠다는 말에, 팍스맨들의 이미가 제대로 구겨져 버렸다.
“뭐? 뭘 잡아?”
“다들 메시지 받지 않았습니까? 상공회의소에서 엘븐하임과 전쟁이 시작됐다고…”
“뭐어? 전쟁? 저언재앵?”
지난 며칠간 타다 못해 구워져 버린 팍스맨들의 구릿빛 얼굴, 그 얼굴에 짜증과 혐오가 들이찼다.
요트를 타고 온 각성자들로서는 그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뭐야? 같이 괴물 잡자고 한 것뿐인데…무슨 반응이…’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그들에게, 선두에 서 있던 팍스맨 권익혁이 휙하니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쟤들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이런 쓰레기 같은…”
“아니, 뭘…”
“……??”
그들은 그제야 볼 수 있었다.
머릿속으로만 떠올리던 엘프들의 ‘진짜’모습을.
오만하고, 선민의식에 찌든 고귀한 존재.
그것이 엘프들에 관한 상식적인 이미지였다.
각성자들로서도 그 재수없는 엘프들의 콧대를 눌러주겠다며 애써 바다를 해쳐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저게 엘프라고?’
지울 수 없는 촌티로 뒤덮인 시골 패션.
소탈한 밀짚모자와 때 묻은 목장갑까지.
순진하다 못해 멍청함이 묻어나는 엘프들의 면면이 눈에 들어왔다.
존재 자체가 ‘겸손’인 그들.
그제야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은 각성자들이 주춤 뒤로 물러섰다.
“잠깐만요. 그러니까 우리는…”
어색한 표정을 짓는 각성자들.
그런 그들에게 엘프들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일단은 소년 엘프, 케루부터.
“아저씨, 우리 죽일 거에요?”
“아, 아니다! 무슨 소리니 그게…!”
그리고 새참 지원을 나왔던 엘븐하임의 장로들까지.
“엘븐하임의 점쟁이를 찾아왔다고?”
“아뇨, 점쟁이가 아니라 원래 전쟁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뭐! 전쟁이라고!? 엘븐하임과!?”
“아니! 아니라고요!”
대화를 이어갈수록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죄책감으로 만든 거대한 무게 추가 달린 채.
***
한편, 나는 엘븐하임의 장로 윌그라임으로부터 기사들의 소생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흑마법의 힘은 실로 막강합니다. 생명의 섭리를 뒤집은 일, 그걸 바로 잡기 위해서는 수십, 수백 배의 수고가 들어가지요. 마치 쏟아버린 물을 주워 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의미심장한 말을 줄곧 늘어놓던 윌그라임은 이내,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 모두를 상쇄할 만큼의 강력한 자연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를 운용해줄 만큼 실력 좋은 드루이드를 만나야 하죠.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일이지만… 첫 번째 만큼은 어떻게든 해결이 될 겁니다.”
윌그라임이 흘깃 옆을 돌아보았다.
세계수로 이루어진 텃밭.
은은한 녹 빛의 기운이 엘븐하임을 치유하고 있었으니까.
“세계수의 자연력을 이용하면 되니깐요. 하지만 이렇게 작은 묘목이 아닌, 제대로 성장한 세계수의 심화된 자연력이 필요할겁니다.”
“그만한 자연력을 얻으려면 얼마나 키워야 할까요?”
나무 하나 키우는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니었다.
퇴비, 비료, 깨끗한 물과 조명까지.
물류센터에는 식물을 키우기 위한 모든 재료가 갖춰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한…백 오십 년 정도면 결실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백 오십…”
차마 말이 떨어지질 않았다.
수백 년은 기본으로 사는 엘프들답게, 그 단위가 상상 이사이었다.
내 난처한 표정을 알아봤는지, 윌그라임이 한 가지 말을 덧붙여주었다.
“좀 더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
“뭐죠, 그게?”
“고난과 회복을 반복하는 방법이지요. 식물에게 있어 바람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아십니까?”
세계수를 위한 독특한 양육방식.
윌그라임이 설명을 이어 나갔다.
“바람에 충분히 흔들린 나무는 더할 나위 없이 튼튼하게 자라는 법이지요. 물론 엘븐하임의 저주는 세계수에 있어 지나친 바람이었지만, 충분한 자극과 회복을 반복한다면 비약적으로 속도를 키울 수 있을 겁니다.”
간단히 말해…
“병주고 약 주라는 소리처럼 들리는데…”
“바로 그겁니다.”
고개를 끄덕인 윌그라임은 또다시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세계수에게 시련을 안겨준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워낙에 튼튼한 생물인 탓에, 드롭킥을 꽂아도…”
하지만…
“가능할 것 같은데요.”
나는 이미 가지고 있었다.
불길한 기운으로 가득 찬, ‘자동 고문 기계”를.
윌그라임과 대화를 마무리 지은 나는 서둘러 아공간으로 돌아갔다.
.
.
.
위이이이잉!
세차게 돌아가는 고문 통돌이 카멜롯.
그 아래로…
땡그랑!
땡그르르르르르…
강화석이 떨어졌다.
‘…엄청 빠른데?’
엄청난 생산량이다.
열두 명의 기사들을 모조리 집어넣었을 때보다 배는 빠른 속도.
카멜롯에 담아둔 구성물은 간단 그 자체였다.
흙과 비료, 그 위에 꽂은 세계수 한 그루와 물 조금뿐이었으니까.
‘…이럴 줄은 정말 몰랐지.’
정말 몰랐다.
이 중세풍의 회색 모텔이 세계수를 위한 최고의 화분이었을 줄은.
카멜롯은 스파트타식 양육이 필요한 세계수에게 있어 최적의 요람이나 다름없었다.
더욱이…
땡그렁!
땡그랑!
이 압도적인 셍산력의 비결에는 한 가지 요소가 덧붙여져 있었다.
“…은근히 쿵짝이 잘 맞는 능력이란 말이지.”
6레벨에 도달한 아공간.
내게는 새로운 능력이 개방되어 있었으니까.
—–
◈ 아공간 생명유지시스템 (02) (New!)
– 아공간 내부에서의 자연적인 부패, 변질, 노화가 극도로 지연됩니다.
– 아공간 내부에 치유 효과가 부여됩니다.
—–
언뜻 보면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는 능력이다.
하지만 기존의 ‘미약한’이라는 문구가 제거되었고, 덕분에 치유 효과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다시 말해…
‘세계수 양육을 위한 최상의 조건.’
카멜롯에 생명력을 갈취당할 때는 바로 이 생명 유지 시스템이 세계수의 자연력을 보충해준다.
카멜롯이 작동을 멈출 때는 손상된 생명력을 더 빠른 속도롤 회복시켜주는 선순환 구조.
병 주고 약 주고를 반복해야 하는 세계수 성장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땡그랑!
땡그랑!
어느덧 수북하게 쌓여버린 강화석.
사용할 때마다 손이 벌벌 떨리던 것이 어제 일 같은데, 지금은 발에 챌 만큼 많은 것이 바로 이 강화석이었다.
이제는 분류도 포기했다.
그저 처치 곤란으로 뭉텅이로 쌓아놓았을 따름.
배부른 소리가 튀어나왔다.
다다익선이라고, 좋은 일임에는 틀림없었지만…
“…추가 강화를 못 하는게 아쉽네.”
카멜롯을 통해 생산되는 강화석의 등급은 D.
+2등급까지는 무난히 강화할 수 있었지만, 그 이상 강화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C등급 이상의 강화석이 요구됐다.
때문에 강화석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와중에도 별다른 실속이 없는 상황.
어쩌면…
“…물류센터의 저주인가.”
박리다매를 우선으로 하는 풀필먼트 센터다.
명품이나 사치품이 아닌, 생필품과 소비재로 승부를 보는 쪽.
저등급 아이템을 무한 사출하는 게 나와 어울리다면 어울린 전략이었으니.
물론…한 가지가 더 구비되어 있기는 했다.
“…엘프들이나 갖다줘야겠다.”
거기에 ‘정’을 한 스푼 더한 것이 바로 나, 김정겸의 물류센터였으니까.
.
.
.
차르르륵.
엘프들의 의장, 엘리에게 한 주먹 가득 강화석을 쏟아주었다.
“어머나, 이게 뭐에요?”
빨간색 썬 캡을 벗어던지는 금발 엘프 미녀, 엘리.
그 행색 때문인지 정답게 이웃과 반찬을 나누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엘리의 흰 손에 담긴 반짝반짝한 돌무더기.
그녀에게 강화석을 전해준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내성 강화석이에요. 싸울 때 보니까 다들 몇 발도 채 못 쏘고 다들 활이 부러지길래.”
총알의 충격을 견디는 데 유용하게 사용했던 내성 강화석이었다.
마찬가지의 원리로 엘프들의 활을 강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터.
카테고리 수용을 통해 아예 복사된 활을 나눠주면 더 좋았겠지만, ‘도검류’와는 달리 물류센터에는 활을 저장할 만한 카테고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 귀한 걸…”
연륜이 있어서인지, 엘리는 강화석의 가치를 모르지 않았다.
또한 그랬기 때문에, 받아든 강화석을 도로 내게 내밀기 시작했다.
“이건 너무 많아요. 분명 쓰실 일이 많을 텐데…”
“괜찮아요. 과장 안 보태고 진짜 산더미처럼 쌓여있거든요. 어차피 등급도 전부 D등급이고…”
등급이라는 말에 엘리가 덧붙였다.
“그러면 세공을 해서 쓰시지 그래요? 드워프들이라면 분명…”
“세공이요?”
내가 되묻자, 엘리는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는 듯 말을 고쳐잡았다.
“아, 죄송해요. 그러고 보니 지구에는 드워프가 없겠네요. 이리로 넘어온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제가 착각을…”
“잠시만요. 그 드워들이 있으면 강화석의 등급을 올릴 수 있는 건가요?”
나는 되물었다.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꼭 확인하고 싶었으니까.
‘…더 좋은 무기가 꼭 필요해.’
지구로 들어오는 침략자들의 수준은 차츰 높아지고 있었다.
크라켄을 잡기 위해 엘프들의 힘을 빌렸던 것이 불과 며칠 전.
물류센터의 저주를 운운하던 나의 자조는 명백히 현실적인 위기감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해요. 등급이 올라갈수록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는 하지만요.”
“혹시 드워프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녀라면 알지도 모른다.
엘프와 드워프.
판타지 세계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이 두 종족은 서로 이웃사촌이나 다를 바가 없으니까.
“드워프들의 차원으로 간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지구에서는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을 거에요. 다만…”
“다만…?”
“지구에 드워프가 있을 가능성이 있기는 해요. 이번에 통폐합이 진행된 차원은 우리 엘븐하임 뿐만이 아니거든요.”
“아…!”
드넓은 지구촌이었다.
최근 제법 글로벌하게 놀았다곤 하지만, 그래봤자 동아시아 삼국을 돌았을 뿐.
모든 연락망이 끊어진 지금, 지구 반대편에서는 그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었다.
“라이시온이라는 이름의 산맥인데… 최근에 통째로 지구로 이전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직 살아있다면… 그곳 광산에 드워프가 한 명 남아 있을거에요. 드워프들은 한 번 터를 잡은 일터에서는 좀처럼 떠나질 않거든요.”
엘븐하임이 섬처럼 지구에 떨어졌다면, 이번에 산이었다.
세공을 주로 하는 드워프답게, 광산과 함께 지구로 떨어졌다는 모양.
물론 상공회의소가 주도하는 통폐합이니만큼, 지금쯤 개판이 되어 있겠지만… 마석을 세공해줄 드워프가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었다.
나는 서둘러 엘리에게 질문했다.
“혹시 지구의 어느 지역에 떨어졌는지도 알고 있나요?”
“제가 지구의 지리는 잘 모르긴 하지만…”
잠시 기억을 떠올리던 엘리가 덧붙였다.
“…미국? 그런 이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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