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66)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66화(66/240)
66. 별이 빛나는 땅 (4)
코리안 카우보이, 박동관은 평범한 배불뚝이 아저씨가 아니었다.
그는 LA에서 건너온 한인 각성자들의 수장이었는데, 서른 명가량의 한인들과 함께 이곳 포티나인 빌리지의 광부들로 정착시킨 것 또한 그의 역할이었다고 했다.
“뭐, 그러니 이곳 보안관이랑 업무상 얼굴 볼 정도는 되지…”
덕분이었다.
드워프가 있으리라 판단되는 이곳 광산지대의 책임자를 만나 볼 수 있는 것은.
그렇게 그는 나를 포티나인 빌리지의 보안관 사무소로 안내했다.
사무소 부관의 안내에 따라 안으로 접어들자…
“오! 파크!”
박동관을 반갑게 맞이하는 보안관, 고든을 마주할 수 있었다.
고든은 통통한 볼살에, 거대하다시피 한 체구를 가진 백인 남성이었는데 면면에는 정체 모를 영업용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제 그와 인사를 나누고 드워프에 대한 정보를 캐낼 차례였지만…
“마침 부르려고 했는데. 파크, 사실… 내가 부탁할 게 하나 있어요.”
“뭐지요, 보안관님?”
고든이 먼저 선수를 처버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한인들이 나를 좀 도와줬으면 합니다. 광산에 드워프가 나타났는데… 이게 아주 골칫거리거든요.”
“…!”
그가 드워프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들었다.
박동관은 나와 눈을 살짝 마주치더니, 이내 고든의 이야기를 경청하기 시작했다.
내게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주워들으라는 듯이.
“…드워프라고요?”
“최근 강화석 생산량이 반토막이 나고 있는데… 파크도 이 물건 본 적 있죠?”
고든이 품에서 작은 물건 하나를 꺼내 들었다.
손가락 마디만 한 크기의 투명색 돌.
보석처럼 은은한 빛을 발하는 것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물건이었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고든에게 있어 그리 달가운 물건은 아닌 모양이었다.
시선을 집중하자 각성 시스템을 통해 물건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
강화 원석 (D)
속성 : 없음
—–
미묘한 이름이었다.
강화석이라기에도,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물건.
고든이 말을 이어 나갔다.
“드워프가 원흉이었어요. 어제 애덤이 똑똑히 봤다고 합니다. 땅딸막한 드워프 한 마리가 강화석을 캐내는 족족 이런 원석으로 만들어버리고 있었다고요. 어쩐지… 깊숙이 들어갈수록 강화석 매장량이 형편없더라니!”
세공사 드워프.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강화석을 사용해 더 높은 등급의 강화석이 아닌 이도 저도 아닌 ‘원석’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강화에 사용할 수도 없는 예쁜 쓰레기를.
그것이 고든에게도 크나큰 손실을 입히고 있는 모양이었다.
박동관이 신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저희가 어떻게 도움을 드리면 될까요?”
그리고.
고든의 대답은 가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드워프를 죽여야죠. 하지만 계속해서 광산 내부를 돌아다니는 통에 위치를 특정하기가 어려워요. 그러니 채광 경험이 많은 한인들도 함께 나서서 드워프 수색을 도와줬으면 합니다.”
“그… 짐작하기론 말씀하신 위치가 아직 점령이 덜 된 구역으로 생각되는데… 거기엔 엘리트 고블린들이…”
조심스레 질문하는 박동관.
하지만 고든은 이내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등을 친근하게 두드렸다.
“하하, 파크! 한인들 모두 위계 보유자가 아니었나요? 우리 모두 코리안들의 저력에 깜짝 놀라고 있답니다.”
“하하…”
뭐라 덧붙이지 못한 채, 헛웃음을 흘리는 박동관.
그러던 중, 고든이 나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당신도 같이 도와줬으면 합니다.”
“…?”
다짜고짜 박동관에게 장기 할 말만 늘어놓은 탓에 아직 통성명도 나누지 못한 사이였다.
하지만 고든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씨익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당신이 누구인지는 이미 부관으로부터 들었습니다. 마을에서 한바탕하신 모양이지만… 특별히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포티나인은 원래 그런 곳이니까요. 그나저나 대단하군요. 그 셋 모두 위계 보유자였을 텐데…”
마을에서 불한당들을 처리했던 일.
그게 벌써 보안관의 귀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한껏 나의 전투력을 치켜세운 보안관이 덧붙였다.
“그러니 당신도 어렵지 않게 광산을 수색할 수 있을 겁니다! 답례는 충분히 할 테니, 꼭 파크를 도와주세요!”
은근슬쩍 도움의 수혜자를 박동관으로 비트는 뻔뻔함까지.
나는 물었다.
그가 드워프를 죽이겠다는 포부를 내세웠을 때부터 줄곧 궁금했으니까.
“그 드워프 말인데… 혹시 사람을 해친 적이 있나요?”
“음… 그런 일은 없었지만, 그런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인류의 자산인 강화석을 훼손하고 있으니깐요.”
그러곤 다시 화창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어쨌거나 인간이 아닌 존재들입니다. 타 차원의 존재들이 우리에게 손해를 끼치는 방식은 다양하죠. 살인, 방화, 파괴, 이런 자잘한 훼방까지…”
그야말로 청산유수였다.
한 손에 마석을 쥔 그는 자신의 지론을 유감없이 털어놓고 있었다.
그리 오래 듣고 싶지는 않은 연설이었기에,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해보죠. 그런데…”
그러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원석을 집어 들었다.
“이건 혹시 필요가 없으신지?”
고든은 흔쾌하게 손을 내저었다.
“마음에 들면 가져가세요. 쓸모없는 물건이니… 아니, 내 눈앞에서 치워준다면 그게 더 고맙겠네요.”
그것이 그의 축객령이었다.
.
.
.
사무소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박동관은 내게 귀띔해주었다.
대뜸 갑작스러운 선언과 함께.
“내일 밤에 한인들을 데리고 여길 뜰 거야.”
“…갑자기요?”
그의 표정은 한껏 살벌해져 있었다.
아까 전만 해도 볼 수 있었던 아저씨 특유의 서글서글함을 온통 지워버린 채.
그가 말했다.
“저 새끼, 우리를 미끼로 쓸 생각이야. 뭐? 엘리트 고블린이 별것 아니라고?”
주먹을 불끈 쥔 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얼굴.
그가 덧붙였다.
“8위계 네댓이 몰려다니는 놈들이야. 거기에 지능까지 있지. 누굴 바보로 아는 거야 뭐야?”
“그럼 안 한다고 하면 되잖아요?”
“말이 부탁이지 사실상 강제야. 싫다면 그때는 강화탄이 장전 된 총을 들이밀면서 광산에 처넣겠지. 사실…”
박동관이 덧붙여준 이야기는 실로 놀라웠다.
지금의 미국 전역이 인종을 중심으로 한 세력들로 분열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얼마 전 알게 된 바로는 고든이 백인우월주의 세력의 소속원이었다는 것까지.
“그러니 조용히 떠나는 게 최선이야. 어차피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결국, 이들이 LA에서 떠나온 것도 같은 이유였다.
들이닥친 멸망, 인종 갈등으로 분열된 이곳 자유의 나라는 이들에게 작디작은 둥지 하나 내어주지 않았다.
박동관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같이 가세. 이런 타지에서는 고향 사람들만큼 믿을 존재가 또 없는 법이야. 자네가 어쩌다 이렇게 홀로 떨어져 나왔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몸을 던져 총을 막아줄 때부터, 보안관을 만날 수 있게 해준 것은 물론, 아예 동행을 권하는 지금까지.
박동관이 나를 챙겨주는 이유는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 그것 하나뿐이었다.
달리 말하면…
“한국이 많이 그리우신가 보네요.”
“음? 그야… 당연하지. 그런데 갑자가 그건 왜?”
그들은 정처 없이 그저 떠돌고 있었다.
‘집’의 흔적을 찾아가며.
하지만 나는 그들처럼 떠날 생각이 없었다.
떠나도 떠날 수 없는 것이, 어딜 가더라도 이미 정착한 집이 있는 것이 내가 가진 아공간 능력의 운명이었으니까.
“드워프를 찾아야 해요. 그러니 여기 남을 겁니다.”
“그런가… 그것 참 아쉬운…”
“그리고 저를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응?”
고든의 드워프 사냥은 모레로 예정되어 있었다.
어떤 사정이 있어서 ‘원석’이라는 이상한 보석을 만들어내는지는 모르지만, 세공 능력이 있는 그를 이렇게 죽게 내버려 둘수는 없었다.
놈들보다 먼저 드워프를 발견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한인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곳 광산에서 직접 일해본 한인들의 경험이.
“아까 이야기하시는 걸 들어보니… 수색 지역을 대강 알고 계시는 거잖아요? 길을 잘 아니까 보안관이 드워프 수색을 도와달라고 한 걸 테고.”
“그렇지, 그렇긴 한데…”
“저를 그리로 데려다 주세요. 그러면 저도…”
지잉.
나는 즉시 용산으로 향하는 포탈을 열었다.
“여러분이 정착할 만한 장소를 마련해 드릴 테니.”
한국의 도심.
그 오랜 풍경이 포탈의 푸른 표면을 타고 넘실거렸다.
***
이른 새벽.
우리는 바쁘게 움직였다.
부우우웅.
차를 타고 라이시온 광산이 통폐합된 그랜드 캐니언의 일부 지역으로 접어들어 갔다.
원래라면 산맥을 넘지 않는 한, 포티나인의 경비병들을 마주쳐야만 했지만…
“여기 샛길이 있어요.”
한인 각성자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들어간 라이시온 광산의 초입.
내가 출하해준 랜턴을 비추며, 박동관을 비롯한 한인들은 나를 착실하게 안내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길 설명부터…
“고든이 말한 구역까지 가려면 한참 더 들어가야 해. 이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주의해야 할 점.
“벽 따라서 움직이다 보면 땅이 움푹 파인 곳이 있는데…”
마지막으로 이동 수단까지.
“고블린 광부들이 설치한 수레인데, 우리도 사용할 수 있어요. 여기 레버를 이렇게 당기면…”
합참의 유성철에게는 미리 언질을 해둔 터였다.
마침내 드워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광산의 한 구역에 다다랐을 때, 나는 한인들 모두를 용산으로 돌려보냈다.
그러곤.
“정겸 님!”
아공간에 있던 나의 반려 난민, 솔렌을 불러냈다.
프르르르 꼬리를 덜며 내 다리에 안기는 솔렌.
그 복슬복슬한 털을 만지고 있자니 이제야 고향에 온 기분이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드워프의 위치를 찾아볼 차례였다.
광산 내부의 이곳저곳을 배회하고 있다는 드워프.
거미줄처럼 드넓게 뻗은 광산을 모두 조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나는 솔렌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이거 냄새 한번 맡아볼래?”
내가 꺼내 든 것은 고든으로부터 받은 ‘원석’.
드워프가 만들었다던 예쁜 쓰레기를 솔렌의 코앞에 가져다댔다.
킁킁.
킁킁.
코를 씰룩이며 신중하게 냄새를 맡는 솔렌.
그러곤…
“저쪽…”
수줍게 털로 뒤덮인 다리를 들어 어두컴컴한 동굴의 한 통로를 가리켰다.
마농족, 솔렌의 추적은 계속됐다.
그가 갈림길에 설 때마다 확신에 찬 발짓으로 방향을 알려주는 동안…
쿠에엑!
켁!
나는 마주 오는 엘리트 고블린들을 강화된 성창으로 꿰뚫었다.
어두운 동굴 지형과 8위계의 척력, 마지막으로 머릿수까지 동원하는 놈들이었지만… 주변을 밝히며 날아드는 성창에 의해 곧장 생명을 달리했다.
그렇게 두어 시간의 지루한 여정이 반복되었을 즈음…
“음?”
파드득!
파득!
동구의 한쪽 구석에서 날갯짓하는 박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로.
“하지 마! 하지 말라고!”
박쥐들에게 한껏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땅딸막한 존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양쪽으로 땋은 흰 수염, 짧은 다리와 술이라도 먹은 듯 발갛게 달아오른 넓적한 코까지.
누가 봐도 드워프라고 부를 수 있을 존재를.
.
.
.
“…고맙군.”
드디어 박쥐들로부터 해방된 드워프.
그는 자신의 이름을 ‘브로크’라 소개했다.
허름한 작업복 위로, 금테 외눈 안경을 낀 그가 멋쩍다는 듯 덧붙였다.
“…내가 싸움을 싫어해서.”
“…”
싫어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 같다고 차마 덧붙이지는 못했다.
물론 브로크의 몸에는 생채기 하나 나 있지 않았다.
일전에 보았던 상공회의소의 일본지부장처럼 전투력 자체는 없되 높은 위계를 지닌 타입인 듯했다.
헥헥.
혓바닥을 내민 채, 열기를 내보내고 있는 솔렌.
기특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는 브로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내가 가진 강화석을 세공해주었으면 한다는 것.
그와 더불어…
“…여기 있으면 죽습니다.”
그의 목숨을 노리는 인간들이 곧 들이닥친다는 것까지.
인간들이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는 사실에, 브로크는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슥.
나는 이곳 광산에서의 이정표 역할을 해준, ‘원석’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그것이 브로크에게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 원흉이었으니까.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쉰 브로크가 내게 물었다.
“혹시 세공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는 알고 있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븐하임의 엘리로부터 간략한 방법을 전해 들은 터였으니까.
강화석의 세공은 실로 독특한 작업이었다.
낮은 등급의 강화석을 깎고 깎아 원석으로 만든 다음 그걸 다시 모아 하나의 강화석으로 만드는 과정.
이 원석은 브로크가 정해진 세공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미안하지만, 거기까지가 내 한계요.”
벅벅.
브로크가 거칠게 머리를 긁었다.
“세공이라면 바라던 바지. 더 좋은 강화석이나 장신구를 만드는 건 나 같은 세공사 드워프에겐 영예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슥.
갖가지 공구가 빼곡하게 꽂혀 있는 그의 작업복.
그가 들어보인 것은 볼이 빠진 채, 자루와 머리만 남아있는 허전한 망치였다.
“원석을 합치는 데 쓰는 장비 이 꼴이요. 원래는 클레멘타인이라는 요망한 금속이 달려있어야 하지. 하지만…”
나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덧붙인 말이 꽤 난해했기에.
“집을 나갔다고요? 금속이?”
“그냥 금속이 아니야. 제 나름의 ‘성질’을 가지고 있소. 클레멘타인 같은 경우엔… 간단히 말해 아주 돈독이 오른 녀석이지.”
마치 자석과도 같았다.
타고난 보석의 일종인 클레멘타인은 더 많은 ‘재물’에 이끌리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클레멘타인이 집을 나가게 된 경위에는…
“그놈의 황금 고블린만 아니었어도…”
역시나 돈이었다.
“여기 라이시온에 있는 건 분명하고… 찾아다닌 지도 한참인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소. 그러니 주구장창 원석만 다듬고 있을 수 밖에.”
그것이 이 짧은 다리의 드워프가 꾸준히 광산을 배회하는 이유였다.
더 높은 강화석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
그 열망에 사로잡힌 드워프는 간단하게 자신의 소망을 정리했다.
“클레멘타인을 찾아주시오. 그러면 그깟 강화석이야 얼마든지 세공해드릴 테니까.”
돈 많은 황금 고블린과 함께 야반도주를 감행한 클레멘타인.
그 금속을 도로 되찾아오는 것.
“그나저나…”
나로서도 궁금했다.
보석이 반할 만큼의 재물을 가진 황금 고블린.
녀석의 지갑이 얼마나 두툼할지.
그리고…
부유함의 상징인 황금 고블린, 그리고 무한의 물류창고를 지닌 나.
클레멘타인이 둘 중 누구를 선택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