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69)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69화(69/240)
069화 이동통신 (1)
“그 전에 일단은······.”
엘븐하임으로 향하기 전, 나는 황금고블린이 숨어 있던 비밀 공간으로 들어갔다.
강화석과 마석, 그리고 금화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곳.
“······뭘 굳이 이렇게 다 꺼내놨담.”
강화석이나 금화는 몰라도, 마석은 차원 계좌에 수용이 가능한 물건이었다.
구태여 보물과 함께 쌓여 있는 마석.
황금고블린의 과시욕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슈우우우우욱!
<상품 회수>로 열린 포탈이 강력한 바람을 일으켰다.
차르르르르륵!
곳곳에 쌓여 있던 금화와 금붙이들이 와르르 쏟아졌고, 사이사이 숨어 있던 마석과 강화석이 빠른 속도로 아공간 내부에 저장됐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값비싼 금이, 지금 내게는 불순물과 다름없었으니.
그래도······.
“참 쏠쏠하네.”
잔고가 10만 개 이상으로 훌쩍 불어나 있었다.
얼마 전만 해도 까마득하게 여겨지던 액수.
그것이 단 몇 초 만에 내 계좌로 흘러들었다.
물론, 많으면 많을수록 되레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 이 ‘돈’의 속성이기도 했다.
“그만큼 씀씀이가 커지니까······.”
아공간 레벨 7 달성을 위해 요구된 금액은 자그마치 마석 25만 개.
당장 레벨을 올리기엔 무리였지만, 그럼에도 의미 없는 돈은 아니었다.
“어디 보자, 이번에 개방된 능력이······”
레벨 6에서 개방한 능력은 <아공간 생명 유지 시스템(2)> 단 하나.
이후 남은 돈이 전혀 없었던 고로, 나머지 두 개의 능력을 자세히 살피지 못한 상황이었다.
띠링!
팍스가 개방할 수 있는 항목을 띄워 주었다.
—-[개방 가능 항목]—-
[비용 10,000]◈ 포탈 운송
-아공간을 거치지 않은 포탈 간 운송이 가능합니다.
◈ 상품 주문
-주문을 받아 아공간에 등록된 사물을 자동 출하할 수 있습니다.
(주문 자격, 물품 종류, 비용 및 조건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으며, 주문자로부터 리뷰 메시지를 수신할 수 있습니다.)
※ 단, 출하 사정거리까지만 자동 출하가 가능합니다.
————————-
“······확실히 좋네.”
상당히 쓸만한 능력이었다.
아공간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
당장 아공간에 수용할 수 없는 물건일지라도, 다른 안전한 장소로 옮겨 두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었으니까.
상품 주문 능력도 나쁘지 않았다.
전국 각지에 깔린 팍스 FC의 쉘터들.
지금까지는 사람들에게 내가 일방적으로 물자를 지원해주는 형태였지만, 주문이나 요청사항을 접수할 수 있다면 더 쉽게 편의를 봐줄 수 있을 테니까.
자연스레 팍스FC의 소속원들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질 터였다.
“둘 다 개방해 줘.”
[알겠습니다.] [마석 20,000개 받았습니다.] [남은 마석은 95,443개입니다.]이로써 마무리였다.
라이시온 광산, 그리고 새로운 능력을 손에 넣은 나는 아공간 포탈로 향했다.
엘븐하임의 엘리.
그녀에게 점령석의 정체를 묻기 위해.
***
나를 라이시온 광산으로 안내해 주었던 박동관과 한인들.
당장은 그들을 한국이 아닌 엘븐하임에 보내 둔 터였다.
팍스맨들과의 왕래가 이어진 덕에, 지금 엘븐하임은 지구 어디서도 볼 수 없을 따듯한 마을 공동체가 되어 있었으니까.
그리고······.
“어흐흐흐흑!”
박동관과 한인 일행들은 그 ‘정’을 여지없이 느끼고 있었다.
우적우적.
박동관의 두 볼이 터질 듯 차올랐다.
벅벅.
그가 긁고 있는 것은 거대한 양푼 그릇.
안에는 고사리, 취나물, 곤드레, 가지 등등이 알차게 든, 이제는 엘프들의 주식이 되어버린 담백한 산채 비빔밥이 담겨 있었다.
우물우물.
문어 다리처럼 입을 삐져나온 고사리.
그리고 뭉근하게 끓인 미역 된장국까지.
“어허어엉!”
멸망 이후, 처음으로 보는 제대로 된 ‘한식’에, 한인들은 눈물을 거두지 못했다.
“어이구, 괜찮아. 괜찮아.”
“어흐흐흑! 할머니! 흐으윽!”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를 위로하는 것은 그의 할머니보다도 나이가 곱절은 많을 엘프 장로들이었으니.
휘이이······.
시골 풍경으로 물든 엘븐하임.
갈대처럼 높게 자라난 세계수 사이로, 한인들은 고향을 느끼고 있었다.
수년, 아니 수십 년 전에 떠나온 고향을.
한편, 그곳에는 엘프들의 수장인 엘리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엘리?”
함께 포탈을 넘어온 브로크가 알아보았다.
그를 마주 본 엘리 또한 쓴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무식하게 계속 라이시온에 있을 줄 알았지.”
.
.
.
내 예상대로, 엘리는 ‘점령석’의 용도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상공회의소가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예요. 약간의 보상을 내세우면서 이곳 지구의 각성자들을 또 다른 ‘침략자’로 훈련시키려는 거죠.”
지구를 침공해 들어오는 타 차원의 세력들.
그들 모두가 한차례 멸망의 위기를 겪은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개중 누군가는 바득바득 멸망을 헤쳐 나갔고, 상공회의소의 선택을 받아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았다.
바로 자신에게 들이닥쳤던 멸망을 뒤집어, 자기 자신이 멸망이 되는 것으로.
“탐스러운 열매를 놓아 두곤, 싸움의 승자가 보상을 독차지하게 하는 거죠. 싸우고, 빼앗고, 차지하기를 반복하면서······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원초적인 감각을 제공하는 거예요.”
탐스러운 보상과 독점.
그것이 상공회의소가 미국 땅에 꽂아놓은 라이시온 광산의 정체였다.
“······그런 거였군.”
대화의 상대는 엘리뿐만이 아니었다.
시뻘건 눈을 한 채 고개를 끄덕이는 박동관.
다름 아닌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니만큼, 그가 공유해줄 정보 또한 적지 않았으니까.
“라이시온에는 캘리포니아 말고도 콜로라도, 유타, 멀게는 중부의 댈러스에서 온 사람도 있었어. 다들 강화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에 개떼처럼 몰려들었던 거지.”
“모두 상공회의소의 메시지를 받았던 거고요?”
“그랬지, 하지만 아주 자세히 알려준 것도 아니었어. 모르긴 몰라도······ 광산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박 터지게 싸워 보라 유도했던 거겠지.”
더욱이, 그뿐만이 아니었다.
드넓기 짝이 없는 미국 땅.
상공회의소가 박아 넣은 ‘점령지’는 라이시온뿐만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 문제는 이제 완연한 전쟁의 형태로 불거져 있었다.
“지금 동부에서는 아예 전쟁을 벌이고 있어. 각성자들로 이뤄진 극단주의자들이 남부를 휘어잡았다는데······ 전세가 우세한 쪽도 그쪽이라고 하더라고.”
무너진 미연방.
주 단위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었는데, 어느덧 세력을 규합한 북부와 남부 세력이 과거의 남북전쟁을 재연하고 있었다.
그림 또한 비슷했다.
각성 능력을 숭상한다는 남부의 극단주의자들.
그들이 비각성자들을 죽이고, 또 노예로 부리며 가파른 속도로 세를 불리고 있었으니까.
이야기를 들은 엘리가 심각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상공회의소에 의해 길들여진 최종 승리자가 나오면 상당히 위험해져요. 그때부턴 상공회의소가 그 세력에 온갖 지원을 몰아주거든요. 아마 미국의 상황이 정리되고 나면······.”
“······밖으로도 비집고 나오겠네요.”
이제는 비단 타 차원의 세력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상공회의소에 의해, 지구 자체에서 새로운 침략자들이 양성되고 있었으니.
새로운 적이 등장했지만, 그 존재는 암세포처럼 자라난 내부의 적이었다.
우리 자신처럼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지닌.
언젠가는 그 마수가 이곳 동아시아까지 미칠 게 분명했다.
게다가······.
“상공회의소의 지원은 이미 시작된 거나 다름없어요.”
엘리가 덧붙였다.
미국 곳곳에 뿌려진 점령지들.
강화석과 가디언과 같은 막강한 자원이 숨겨진 곳이었다.
상공회의소가 양성한 남부의 침략자들이 이 금싸라기 땅들을 차지한다면, 그 전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할 게 분명했다.
입술이 바싹 마르는 기분.
하지만 다행히, 아직 시간이 있었다.
“바로 당장은 점령지를 확보하지 못할 거예요. 통폐합으로 넘어온 지역들 대부분이 지구인들보다 월등하게 강하거든요.”
당장 엘븐하임부터가 그랬다.
피골이 상접한 외모 뒤로, 고위계의 숙련된 궁수 부대로 무장한 그들이었으니까.
라이시온 광산만 하더라도 평범한 각성자들이 황금 고블린과 가디언들을 무찌를 수 있을 거라 생각되지는 않았다.
황금 고블린과 협력하던 고든이 있었기에 그나마 라이시온에 둥지를 틀 수 있었을 터.
엘리가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 당장 본격적인 점령전이 시작되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북부와 남부가 서로 전쟁을 통해 충분히 성장하고 난 뒤에는······.”
“대규모의 전쟁이 벌어지겠군요.”
“맞아요. 지구인들로서는 마음 아픈 일이 되겠죠.”
그야말로 내전이었다.
자그마치 미국의 ‘북부’와 ‘남부’가 벌이는 싸움.
그 병력 단위가 적게는 수십만에서 많게는 수백만에 달할 것이었다.
‘내버려 둘 수도 없고······.’
이제 미국에는 내 영토로 선포된 ‘라이시온 광산’이 있었다.
더욱이, 한국을 위해서도 미국 남부의 침략자들이 성장하는 일은 막아야 했다.
놈들의 탐욕이 비단 아메리카 대륙에만 머무르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이러나저러나 미국의 내전에 끼어들어야 한다는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도 그만한 세력을 갖춰야겠네요.”
엘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렵네.’
동아시아의 수장들을 규합했지만, 정작 제대로 가용할 수 있는 전력은 수백에서 많아야 수천에 불과했다.
팍스FC도 마찬가지다.
최근 10만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지만 허수에 불과했다.
대다수가 생존에 급급한, 제대로 된 전투원으로 보기는 어려운 사람들이었으니까.
결론은 간단했다.
‘······제대로 관리되는, 편제된 병력이 필요해.’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나눌만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합참 본부의 작전본부장 유성철.
엘븐하임에서의 대화를 마친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 아공간 포탈에 몸을 실었다.
***
“그랬군요. 미국에 그런 일이······.”
유성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미국으로의 파병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정작 한국에서 대규모의 병력을 편제하는 일에는 고개를 저었다.
“어려울 겁니다. 각성자들이 나서지 않을 거예요.”
한국도 아닌 미국이다.
당장 생존이 급급한 각성자들이 목숨까지 걸며 나서긴 쉽지 않았다.
아무리 무기나 풍족한 식량이 대가로 주어진다고 한들 그랬다.
물론, 각 지역대표처럼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는 영웅들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들마저······.
“자신들의 지역을 우선하는 경향이 강해요. 한국에서의 상황이 많이 안정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별다른 조짐도 없이 괴물들이 튀어나오고 있거든요.”
“그 말인즉슨······.”
“생명은 평등하다지만······ 누구나 자기 가족, 친구, 동료가 우선인 법이죠.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섣불리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움직이더라도 가족들과 함께 움직이고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정이었다.
나 또한 멸망이 벌어진 직후, 무엇보다 가족들을 찾는 일을 우선하지 않았던가.
“그것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답답함과 함께 곰곰이 생각에 잠겼을 즈음······.
번뜩 떠오른 기억에, 갑자기 눈이 뜨였다.
나는 곧장 유성철에게 말했다.
“그거······ 완전히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예?”
그 열쇠는 새로 얻은 두 개의 개방 능력이었다.
한국을 이동통신의 혁명 아래 놓을 수 있는 획기적인 활용 방법이 떠오른 참이었다.
첫 번째는 ‘포탈 운송’이었다.
아공간을 들르지 않아도 된다.
설치된 포탈을 교통수단처럼 활용한다면, 혹여나 가족들에게 변고가 생기더라도 즉시 집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더욱이, 꼭 그들 자신이 아니더라도 팍스 FC의 세력 모두가 괴물이 나타난 장소로 신속하게 집결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유성철이 한 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대처가 빨라지기는 하겠습니다만······ 사실 변고가 생겼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전국적으로 모든 통신이 마비된 상태니까요. 한국 사람 모두에게 무전기를 쓰도록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것도 문제없습니다. 직접 구조 요청을 할 수 있게 하면 되니까요.”
둘째는 ‘상품 주문’이었다.
출하 스킬과 달리, <상품 주문> 자체에는 따로 제한된 사정거리가 없었다.
포탈과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도 내게 상품 주문을 의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소리.
그 말인즉슨······.
“꼭 물건만 팔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서비스를 파는 겁니다. 이를테면······ 괴물이 나타났을 때 필요한 ‘112 서비스’나, 사람이 다쳤을 때 ‘119 서비스’ 같은 걸 말이죠. 게다가······.”
세 번째가 있었다.
<상품 주문> 능력의 부가 기능인 ‘리뷰 작성’.
여기에 반드시 ‘리뷰’만 적으리라는 법은 없었으니까.
“상공회의소의 메시지 시스템과 연동해서, 아예 사람들끼리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게 만들 거예요. 손을 좀 본다면······ 한국에서 통신은 완전히 복구하는 것도 가능하겠죠.”
물류센터를 넘어, 이동통신사를 넘보는 팍스FC.
그 탐욕스러운 문어발에, 유성철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그게 어떻게 가능한 겁니까? 대체 사람들이 어떻게 메시지를 보낸다는 거예요?”
“그냥은 불가능하죠. 하지만······.”
애당초 팍스가 설명해 주었던 터였다.
<상품 주문>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 정보를 전송해줄 별개의 매체가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 매체는 내가 직접 선택할 수 있다고.
그렇게, 나는 결정했다.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을 뿌릴 겁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대한민국에 공짜폰을 팔기로.
이동통신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