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7)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7화(7/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 7편
(맹견과 담벼락 (1))
소리가 났다.
철컥!
드르륵! 탁!
위잉- 위잉!
베테랑 택배 기사 이용수씨께서 택배 탑차를 모는 소리였다.
직진, 커브, 급속 유턴과 드리프트를 비롯한 각종 곡예 운전까지.
그는 시선을 정면에 둔 채, 수동변속기를 게임기 조이스틱처럼 놀려댔다.
‘이것이 베스트 드라이버의 힘인가.’
휘이이이!
차창 밖으로부터 세찬 바람이 흘러들어왔다.
전방에 보이는 오크 세 마리.
끼이이이이-!
이용수가 우로 꺾는 드리프트로 놈들의 주변을 돌았고,
슈우욱!
슉!
나는 5초 간격으로 도끼를 발사했다.
그야말로 액션 영화가 따로 없었다.
이런 식으로 잡은 괴물들만 벌써 일곱 마리.
즉시 내려 마석을 채취했다.
덜컹!
가속한 트럭이 방지턱을 밟고 튀어 올랐고, 크레바스처럼 갈라진 도로를 가뿐히 넘어갔다.
멸망의 흔적은 비단 물류단지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도로 곳곳이 폭삭 주저앉았고, 쓰러진 빌딩이 대로변 사거리를 완전히 박살냈다.
이리저리 널려 있는 파괴의 흔적과 달리, 정작 사람들은 자취를 감췄다.
그럴 만 했다.
이제 이 거리의 주인은 괴물들이 되었으니까.
그렇게 도로를 달리던 중,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저건···”
시체였다.
물론 처음 보는 건 아니었다.
물류단지 구역을 떠나온 이래, 시체는 흔히 널려있던 것 중 하나였으니까.
괴물들에 의해 잘리고, 뜯어먹혀진 살갗들을 보고 있을 때면 내심 품고 있던 희망이 갈려 나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일지 모른다.
도로에 널린 시체들을 노면의 흰색 실선처럼 무시할 수 있게 된 것은.
하지만 이번만큼은 무시하기 어려웠다.
“군인들이로군요.”
널브러진 디지털 군복의 틈새는 허전했다.
누군가는 과다출혈이 일었는지 창백한 얼굴로, 또 누군가는 몸통이 잘린 채로 단단히 졸라맨 방탄 헬멧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전역한 지 불과 두 달이다.
멸망의 순간이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나도 저들 중 한명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감회를 곱씹을 여유는 없었다.
“···엄청 많네요.”
상당한 양의 시신들.
물론 군인들의 죽음 자체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비상상황에 시민들을 지키는 것 또한 군인의 역할이니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시체 수습도 아예 못 한 것 같은데···”
“···군에서도 감당이 안 되는 문제인가 봅니다.”
이용수가 쓸쓸하게 되받았다.
죽은 전우의 시체를 챙길 여유조차 없다는 것.
그것이 시사하는 바는 꽤 의미심장했다.
더 이상 국가가 우리를 지켜줄 수 없다는 것.
심장이 묵직하게 내려앉았으나, 탑차의 바퀴는 무심하게 굴렀다.
그렇게, 박살 난 군용 차량들 사이로 산처럼 쌓인 군인들의 시체를 지나쳤을 때.
우리는 인덕원으로 향하는 다리가 끊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이게 대체···”
이 사태의 원흉이 드글대고 있었다.
***
얼굴 양쪽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송곳니.
갈퀴처럼 생긴 날카로운 발톱.
얼핏 보면 개처럼 생기기도 했지만, 털 없이 민둥민둥한 피부.
그 모습은 마치···
“···저글링?”
이용수가 당황스런 표정으로 덧붙였다.
카아악!
연한 보랏빛을 띠는 살갗, 개떼와 같은 물량까지.
국민게임에서의 바로 그 저글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은 군인들과 끊겨 있는 다리를 보고 있자니, 얼추 그 상황을 알 것 같았다.
내가 말했다.
“군에서 직접 다리를 폭파한 모양이군요.”
“그랬나 봅니다. 저런 놈들이 쏟아져 내려오면 그야말로 답이 없을 테니···”
이용수는 심통한 표정이었다.
바로 저 다리 너머에 그의 아내와 딸이 있었으니.
핸들을 덧잡는 손길에 초조함이 묻어났다.
어쩔 수 없이 차를 돌렸다.
“길은 많습니다. 분명 여기가 아니어도···”
하지만 아니었다.
강을 거슬러 오르고내리며 지나친 다리만 모두 아홉 곳이었다.
모두 폭발에 의해 끊어져, 단 한 개도 성한 것이 없었다.
서서히 어둑해지고 있었다.
아무런 소득 없이, 처음 건너려던 다리 근처로 거짓말처럼 되돌아왔을 때쯤.
내가 망연해하는 그를 안심시켰다.
“용수 씨, 가족들은 무사할 겁니다. 놈들의 수가 많기는 하지만 오크처럼 문을 부술 정도로 힘이 좋아 보이지는 않아요. 어디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다면 분명 안전할 겁니다.”
“그건 그렇긴 합니다만···”
“너무 걱정 마세요. 더 이상 늦지만 않으면 됩니다.”
나는 그에게 한 곳을 가리켰다.
아까 눈여겨보았던, 폭발로 인해 무너지지 않은 다리.
단, 차로는 건널 수 없는 도보용 다리였다.
“진입 폭이 아슬아슬하긴 한데··· 용수 씨 운전 솜씨라면 지날 수 있지 않을까요?
다리는 멀쩡했다.
흙마대를 가득 채운 바리케이드로 막혀 있을 뿐.
차폐가 쉽다 보니 군에서도 전술적인 용도로 남겨둔 모양이었다.
문제는 바로 그 바리케이드 너머로 드글거리는 저글링이었다.
이용수가 물었다.
“하지만 다리를 건넌다 한들, 저 많은 놈들을 무슨 수로 뚫고 들어가죠? 아무리 정겸 씨의 능력이 있다지만··· 많아도 너무 많아요.”
확실히 그의 말대로였다.
5초에 한 번 발사되는 출하 스킬로는 저 많은 수를 감당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일단 차를 저기 바리케이드 앞까지 몰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후진으로요.”
“후진이요?”
“네, 최대한 한쪽 벽에 딱 붙여주세요.”
부르릉.
이용수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마음을 다잡고 차를 몰았다.
이러나저러나 진입을 포기할 순 없었으니.
드르륵!
이러나저러나, <베스트 드라이버>였다.
대단히 어려운 경로였음에도, 그는 핸들을 번갈아 꺾으며 차량 진입 방지용 말뚝을 교묘하게 피해 갔다.
덜컹!
차량의 후미가 다리 초입에 걸쳤고, 나의 주문대로 우측에 완전히 붙은 채 이동했다.
마침내 군에서 세워둔 바리케이드에 다다랐을 때, 차량의 왼쪽으로는 문이 겨우 열릴 만큼의 좁은 틈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비좁은 틈을 비집고 차에서 내렸다.
그러곤 나를 따라 조수석으로 넘어오는 이용수에게 말했다.
“이럴 때 쓸만한 게 하나 있더라고요.”
차르륵.
나는 모아두었던 마석을 꺼내 보았다.
와이번들을 잡으며 모은 스물 네 개.
거기에 오면서 잡은 괴물들로부터 채취한 일곱을 더해 총 서른한 개가 모였다.
내가 팍스에게 말했다.
“<동시 출하>랑 <자동 출하> 두 개 다 개방해 줘.”
[도합 마석 20개가 소모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그래. 그리고 출하 속도도 최대치까지 높여줘.”
[알겠습니다. 추가로 마석 5개를 소모합니다.] [최대 출하 속도가 75km/h에서 100km/h로 조정됩니다.] [강화 및 능력 개방을 완료했습니다.]스물다섯의 마석이 스르륵 자취를 감췄다.
나는 그 길로 바리케이드에 다가갔다.
그리고 벽을 만들고 있는 흙마대를 하나씩 떼어내 강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첨벙!
마대자루가 물에 잠겼고, 그럴 때마다 벽은 한층 더 낮아졌다.
이용수가 황급하게 나를 만류했다.
“잠깐만요, 그 벽을 허물면 저글링들이···”
“당장은 완전히 트지 않을 겁니다.”
내가 치운 것은 아주 일부에 불과했다.
카가각!
카악!
벽이 서서히 낮아지는 것을 느낀 저글링들이 신이 나 발작했다.
마지막으로 두어개의 마대를 한 번에 치웠고, 그 틈새로 저글링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비집고 들어오려던 찰나.
깨행!
내가 발사한 도끼가 놈의 입에 처박혔다.
쓰러진 놈을 짓밟고, 곧 이어 다른 녀석이 고개를 내밀었지만.
깨에헥!
2.5초 만에 발사된 도끼가 또다시 놈의 목숨을 끊었다.
생성된 두 개의 포탈에서, 각 5초마다 번갈아 가며 ‘자동’으로 도끼를 쏘아댔다.
심지어 시속 100킬로미터로 그 위력 또한 강화된 공격이었다.
나는 흙이 묻은 손을 훌훌 털어냈고, 비좁은 틈새로 이용수가 있는 쪽으로 돌아왔다.
깨앵!
칵!
그러던 중에도 끊임없는 저글링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내가 말했다.
“이렇게 개체수를 한번 줄여보죠.”
입구막기.
저글링 잡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전략이었다.
***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밀려드는 저글링을 ‘자동’으로 사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바빴다.
“···웃차.”
좁은 틈 사이로 쌓인 저글링의 사체를 끌어당겼다.
그렇게 꺼낸 사체에 단검을 찔러넣었다.
푹.
찌익-
가슴팍을 갈라내고, 마석을 꺼냈다.
그렇게 껍데기만 남은 사체를···
휙-
첨벙!
강으로 던졌다.
피로 물든 강에는 수면 위까지 저글링들의 사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이용수와 역할을 나눴고, 동작도 점차 빨라지고 능숙해졌다.
깨행!
칵!
아공간에서 꺼내온 고무장갑은 어느덧 피칠갑이 되어 있었다.
그 덕분일까, 벽 너머로 보이는 저글링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물론 이 일대 전체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분명한 건 차츰 길이 생겼다는 거였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전진했다.
군에서 세워둔 바리케이드를 완전히 치웠고, 탑차의 후미를 바리케이드 대용으로 썼다.
조금씩 후진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한창 작업이 이어진 덕에, 이제 도끼가 먼저 죽은 사체에 가로막히는 일도 없어졌다.
별다른 조치 없이 두어도 알아서 저글링들이 죽어주는 상황.
완전한 ‘자동화’ 공정이었다.
덕분에 여유가 생겼다.
위잉-
아공간 포탈을 열었다.
마석이고 자시고, 체력이 빠져 손가락 까닥하기가 힘들었다.
이용수에게 말했다.
“좀 쉬었다가 하시죠.”
“아뇨, 쉬다 오십시오. 제가 작업해두고 있겠습니다.”
그가 새빨간 눈으로 대답했다.
그는 이 고된 반복 작업과 가족들의 목숨을 저울질해가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었다.
하지만···
딱히 그럴 필요까진 없었다.
어차피 저글링들은 자동출하가 잡아주고 있었으니까.
내가 그에게 말했다.
“가족들한테 그러고 가시려고요?”
“아······”
그가 멋쩍은 듯, 자신의 행색을 살폈다.
저글링 피로 뒤덮인 옷이 축축하게 눌어붙어 있었다.
비린내 또한 진동했다.
아무리 ‘일하다 온 아빠’라지만, 애들 보여주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나는 다른 말 없이, 훌쩍 아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팍스에게 물었다.
“여기 뜨거운 물 나오나?”
[마석을 소모하면 가능합니다.] [수도/가스 비용을 합쳐 24시간에 마석 1개가 소모됩니다.]“···틀어줘. 전력은 얼마나 남았지?”
[약 7시간 정도 사용이 가능합니다.]“그럼 전력도. 각각 우선 이틀치씩 부탁해.”
[마석 4개 받았습니다.]이로써 전기/수도/가스라는 문명생활의 삼신기가 완성됐다.
세어보진 못했지만, 저글링들로부터 채취한 마석의 양이 꽤 쏠쏠했다.
뜨거운 물에 마석 하나쯤은 태워도 무방했다.
다음으로, 픽킹 스테이션으로 가서 몇 가지 상품을 주문했다.
[휴대용 물통 샤워기 15L 세트, 158,590 원입니다.] [남성 복서 브리프 3종, 40,680 원입니다.] [남성 반팔 카라티···]직원 샤워실로 가 물통 샤워기에 뜨거운 물을 가득 담았고, 나머지 물건들을 마저 챙겨 포탈 밖으로 나섰다.
이용수는 여전히 쉬지 않고 마석을 채취하고 있었다.
“받으세요. 옷은 차에 넣어둘 테니 입으시고요.”
이용수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샤워 물통을 받아들었다.
내가 말했다.
“각자 씻고 오죠.”
다시 돌아온 풀필먼트 센터.
직원 샤워실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물을 맞았다.
이용수도 데리고 왔다면 수고가 덜했겠으나, 아직은 나밖에 들어올 수 없었다.
쏴아아-
정수리를 타고 들어오는 뜨끈한 감각이 실로 아찔했다.
“미쳤다···”
샤워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주문하자마자 AGV 로봇이 옷을 가져다주니 이보다 편할 수가 없었다.
오늘의 교훈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자동··· 최고야.”
옷을 바꿔 입으니 몸도 새것이 된 것만 같았다.
이제 마지막이었다.
전기포트에 생수를 끓였고, 육개장 사발면 두 개에 각각 끓는 물을 부어 가지고 나갔다.
이용수 또한 샤워를 마쳤는지 깨끗한 새 옷을 입고 있었다.
캐행!
캥!
다른 한쪽에서는 자동출하가 저글링을 잡아 죽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늦은 저녁 식사를 들었다.
물놀이라도 한 것처럼 온 몸이 싸늘했다.
촉촉하게 젖은 면발을 후후 불어 입안으로 가져다 넣었을 때.
“미쳤다···”
이용수가 외쳤다.
그의 입에서 구름 같은 입김이 둥실 떠올랐다.
그렇게 식사를 끝마쳤을 즈음, 배경음 같던 저글링들의 비명이 멈추었다.
고개를 내밀어 보니 그 너머로는 뻥 뚫린 길목이 드러나 있었다.
텅!
텅!
2.5초마다 튀어나오는 캠핑 도끼가 애꿎은 바닥을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