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7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70화(70/240)
070화 이동통신 (2)
터벅터벅.
이곳은 한적한 강릉 시내의 어느 길목.
세 명으로 구성된 각성자 파티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거 뭐야?”
힐러 강희영이 탱커 박병우를 보며 물었지만, 그녀도 모르지 않았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네모난 유리 액정.
그건 멸망 전이라면 누구든 손에 달고 살았던 평범한 스마트폰이었으니까.
그러자 이번엔 근접 딜러 이혁수가 못마땅하다는 듯 덧붙였다.
“강릉역에서 받아왔대. 쟤 그거잖아, 팍스맨.”
“또? 포탈 근처로 갔던 거야?”
강희영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최근 창궐했던 괴물들을 단번에 일소해 주었던 팍스FC.
생존에 필요한 물자까지 아낌없이 지원해주던 그들이었지만, 아직 강희영과 이혁수에게 있어 팍스FC는 의심의 대상이었다.
이혁수가 말했다.
“잘 생각해 봐, 병우야. 세상에 공짜가 어딨냐? 지금이야 퍼주면서 인기몰이하겠지. 하지만 나중에 분명 도로 다 빼먹으려 들 거라니까.”
그동안 줄기차게 해 오던 이야기였다.
멸망한 세상.
누구도 믿을 수 없으며, 남에게 기대기보다는 스스로 지킬 힘을 갖춰야 한다고.
팍스FC가 사람들을 구원하는 와중에도, 그는 단단히 고삐를 쥐고 자신을 채찍질했다.
한편, 동료들의 핀잔에도 박병우는 조금도 풀 죽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스마트폰의 전원을 켜, 두 사람에게 화면을 보여 줄 따름.
—
■ 상품 주문
■ 112
■ 119
—
그게 전부였다.
화면에 뜬 버튼을 손으로 가리키며, 박병우가 말했다.
“여기 아래 보여?”
“112······ 119······? 뭐야 이게?”
“각각 지원요청이랑, 구조요청이야. 그냥 꾹 누르기만 하면 돼.”
스윽.
스마트폰을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은 박병우가 말을 이었다.
“네 말도 맞아, 혁수야. 하지만 목숨이 날아가는 것보다는 이게 나아.”
그라고 어찌 의심 한번 해 본 적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스마트폰에 ‘지원요청’과 ‘구조요청’ 기능이 있다는 소식을 접한 새벽, 박병우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강릉역으로 향했더랬다.
그리고, 그런 그를 이끈 것은 단순한 생존 욕구가 아니었다.
“······그게 너희나 우리 가족들의 목숨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박병우의 단호한 태도에, 이혁수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위험한 일 없게만 해.”
아무쪼록 평화롭게 마무리되어가는 대화였지만······.
“잠, 잠깐!”
힐러 강희영의 손짓과 함께, 그 평화는 산산이 박살 났다.
“크르르르르······.”
예고도, 조짐도 없었다.
골목 앞, 그리고 뒤로 나타난 다섯 마리의 드레이크.
“카아아악!”
놈들이 세 사람을 향해 맹렬히 달려들었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힐러, 강희영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쓰러진 박병우를 치료하고 있었다.
“제발······ 제발······!”
미처 몰랐다.
평범한 줄로만 알았던 드레이크 중에 고위계가 섞여 들어 있었을 줄이야.
놈들의 공격을 정면에서 방어하던 박병우의 배에서는 울컥울컥 피가 치솟고 있었다.
“어떻게 좀······!”
아무도 없었다.
가까스로 마지막 드레이크를 처리한 이혁수.
그마저 놈들이 쏜 마비 독 탓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으니까.
힐을 최대한으로 쏟아부었지만, 상처가 워낙 컸다.
치료되는 것보다 악화되는 속도가 곱절은 빠른 상태.
파학!
솟구치는 피를 애써 손으로 막아 세웠다.
모두를 지키겠다며 의지를 다지던 박병우.
그런 그가 울컥 피를 쏟고 있었으니, 말로 다 할 수 없는 참담함이 찾아들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
스르륵.
박병우의 주머니에서 흘러나온 스마트폰을 발견한 것은.
그녀는 황급히 달려들었다.
“······팍스!”
거대 쇼핑사이트의 이름을 외치며, 그녀는 박병우가 알려준 스마트폰의 사용 방법을 떠올렸다.
꾸욱.
터치스크린에 닿은 그녀의 손가락.
그렇게······
3분 아니, 2분이나 지났을까?
부우우우우웅!
강희영이 발견한 것은 맹렬하게 달려오는 두 대의 택배 트럭이었다.
“······팍스?”
문명 시절, 아파트 입구에서 매일 같이 마주쳤던 팍스의 배송 트럭.
그 알듯 말듯 한 기시감이 그녀는 어색하기만 했다.
벌컥!
차량의 뒷문이 활짝 열렸고,
드르르륵!
척! 척!
푸른색 유니폼을 입은 네 명의 팍스맨이 들것을 끌며 절도 있게 다가왔다.
사실상 외관만 택배 트럭일 뿐, 활짝 열린 화물칸 내부는 완벽한 앰뷸런스 그 자체였다.
“환자!”
“아! 여, 여기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새, 멍하니 넋 놓던 강희영이 황급히 대답했다.
“하나, 둘!”
무거운 택배 상자를 드는 듯, 균형 잡힌 호흡.
드르륵!
팍스맨들이 들것에 실린 박병우와 이혁수를 앰뷸런스에 밀어 넣었고,
탁!
조수석에 강희영을 태운 채, 냅다 골목을 달리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익!
거칠게 바퀴를 들며 골목을 꺾어 나온 배송트럭.
지그시 눌린 액셀과 영화처럼 스쳐 지나가는 주변 풍경.
그 끝에 강희영이 본 것은······.
화아아악!
그들을 덮치는 푸른색 포탈이었다.
.
.
.
하얗게 물든 응급 병동.
삐이- 삐이-
전력이 공급되고 있는 것은 물론, 청결하게 관리되고 있는 병실 내부로 의료진들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멸망한 세상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녀 또한 환자였다.
머리에 칭칭 붕대를 감은 강희영.
병실을 두리번거리며 그녀는 황당하다는 듯 읊조렸다.
“······여기가 강남이라고?”
강릉에서 강남까지,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나 빠른 환자 후송은 멸망 전에도 불가능했으리라.
한창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을 즈음, 흰 가운을 입은 누군가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가운에는 이름표가 없었다.
하지만, 강희영은 머리맡에 뜬 홀로그램을 통해 그녀의 소속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팍스FC 화타, 김주연]“······화타?”
“아, 이건 신경 쓰지 마세요. 동생 새끼 때문에······.”
잠시 불끈 주먹을 쥔 김주연이 말을 이었다.
“일행분들 모두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니 걱정 마세요. 한 열흘 정도면 치료가 끝날 것 같고요.”
“열흘이요······?”
배가 꿰뚫린 관통상.
심지어 주먹만 한 크기였다.
그런 상처의 치료가 고작 열흘 만에 끝난다니, 강희영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여기에 힐러분들이 아주 많아요. 위급했던 환자라 우선 치료를 하다 보니······ 오히려 다른 분들보다 치료 기간이 짧아졌네요.”
“아니, 어떻게 그런 게······.”
힐러들의 치료에 뒤덮여 있을 박병우의 모습.
그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뒤늦은 안도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래서일까?
똑.
똑.
손등에 눈물이 떨어졌다.
그제야 알았다.
아무리 각성했다곤 하지만, 그들 자신 또한 보호가 필요한 존재였다는 걸.
아주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강도가 들어왔을 때 신고할 수 있는 경찰.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요청할 수 있는 구급대원.
그 일상적 인프라가 얼마나 큰 심리적 보탬이었는지, 멸망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저런······.”
김주연은 그런 강희영을 꼬옥 안아주었다.
그러곤 벌벌 떨리는 그녀의 어깨를 잡아주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강희영 씨도 치유 능력 각성자라던데, 맞나요?”
“네······ 하지만 아직 레벨이 낮아서······.”
한껏 주눅이 든 목소리.
작게 숨을 몰아쉰 김주연이 강희영에게 말했다.
“레벨도 물론 중요하지만······ 기초적인 응급처치 정도는 숙달하고 있는 게 좋아요. 치료 효과가 극대화되거든요.”
“응급처치요······?”
그것이 김주연이 이곳 세브란스 병원을 택한 이유였다.
현대의학과 치유 능력을 동시에 적용한 치료.
그 효율은 상상 이상이었으니까.
생각조차 못 해 봤다는 듯한 강희영의 표정.
그런 그녀에게 김주연은 제안했다.
“팍스FC에서 진행하는 힐러 훈련프로그램이 있어요. 따로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고······ 수료한 다음에는 여기 힐러로 일할 수도 있지만 원하지 않는다면 그냥 돌아가도 되고요.”
“훈련······ 프로그램······.”
잠시 고민하던 강희영은 덥석, 김주연의 손을 움켜쥐었다.
“······할래요! 시켜주세요!”
그녀는 여실히 깨달은 터였다.
‘······다시는 같은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인해 죽어가는 동료의 모습을.
그런 그녀의 눈을 보며, 김주연 또한 싱긋 미소를 지었다.
한편······.
자신의 부족함을 느낀 사람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드르르륵!
커튼을 가린 채, 쿵하니 돌아누운 이혁수.
조금 전 힐러들이 그의 독을 모두 치유해 준 터였다.
의도치 않게 강희영의 자책 어린 목소리를 듣게 됐다.
하지만 이혁수 또한 자신의 무력함이 원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내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박병우에게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느니, 장광설을 늘어놓았던 그였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부족한 능력 앞에서, 그는 이 모두가 허풍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오만했어.’
자립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도 능력이 받쳐줘야 할 수 있는 것.
지금의 이혁수는 자립은커녕 스스로를 지킬 만한 힘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이대로는 안 돼. 나도······.”
더 성장해야 한다는 명백한 자각.
하지만 별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한 막막함이 그를 찾아올 때쯤······.
펄럭.
“······?”
텁.
어디선가 날아온 전단지가 이혁수의 얼굴을 덮었다.
“뭐야······?”
팔랑.
무심결에 종이를 펼쳐본 그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
[팍스FC 각성자 훈련 프로그램 개설]☞ 김솔과 백민우의 무림생활
☞ 이용수의 운전면허학원
☞ 레고 조립보다 쉬운 에메스 건축
☞ 최시은의 연금성
☞ 맥가이버 제임스의 튜닝스쿨
☞ 엘븐하임의······.
—
***
“······효과가 어마어마하네요.”
작전본부장 유성철이 감탄에 찬 목소리로 덧붙였다.
“김 대령께서 마련한 신고 시스템 덕에 괴물들을 출몰하는 족족 잡아내고 있어요. 지역 각성자들의 참여율도 올라가고 있고······ 가장 주목할만한 건······.”
“사람들이 차츰 팍스 FC와의 관계를 쌓아 가는 거죠.”
“맞습니다. 바로 그거예요.”
그간 팍스FC의 포탈, 그리고 합참의 병력이 지역 방어에 힘써왔지만, 한국 전체를 커버하기에는 그 전력이 현저히 모자란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야말로 선순환 구조네요.”
지원이나 구조를 요청한 각성자들에게 팍스맨들을 급파하고, 그렇게 구조한 이들이 다시 새로운 팍스맨이 되는 구조.
전투 능력 각성자들은 물론, 드라이버, 건축가, 메카닉 등 유용한 보조 능력을 갖춘 이들까지 대거 유입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렇죠. 이건 각성자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테니······.”
물류센터가 지원하는 무기와 물자.
거기에 훈련과 양성 프로그램까지.
우리는 생존에 급급했던 각성자들을 한 단계 도약시켜줄 계획이었으니까.
한층 더 강해질 각성자들을 떠올리며, 유성철은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 정도면······ 정말 우리가 미국의 전쟁을 종결시킬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나는 한 가지 조건을 덧붙였다.
“모두 데려가지는 않을 겁니다. 본인의 의사도 중요하겠지만······ 훈련과 테스트를 통해 인원을 선발해서 데려갈까 해요.”
각성자들의 손을 빌려야 하는 대규모의 전투다.
하지만 그들의 피까지는 빌리고 싶지 않았다.
“테스트라면······ 어떤 걸 말이죠?”
각성자들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가늠하는 것.
이를 위해 나는 아공간 <실험실>의 홀로그램 기능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괴물들의 홀로그램을 띄울 수 있어요. 타격을 주고받고 하는 식으로 상호 작용도 가능하고요. 그걸로 모의 전투를 시켜보면, 실력에 따라 랭크를 부여해 줄 수 있겠죠. 뭐 대충······ A급부터 F급까지 다양하게······”
“그렇군요. 랭크라······ 그거 괜찮은 아이디어인데요.”
이제 알겠다는 듯, 유성철이 내게 덧붙였다.
“그럼 전국 각지에 있는 모든 각성자들의 신상 기록을 보유하게 되겠군요. 어떤 능력의 각성자들이 있는지······ 또 몇 명이나 있는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팍스FC의 산하 기관을 만들까 해요. 팍스FC가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단체라면, 이건 각성자들만을 관리하고 지원하는 단체이니까요.”
“그렇군요. 확실히 그게 깔끔하기는 하겠습니다. 혹시 이름은 정해두셨습니까?”
테스트를 거쳐 랭크를 부여받게 될 각성자들.
그들은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넘어, 멸망 그 자체를 사냥할 수 있을 만큼 주도적인 존재여야만 했다.
멸망한 세계를 딛고, 새로운 계급으로 올라설 그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나는 산하 기관의 새 이름을 떠올렸다.
“헌터 관리국. 어떨까요?”
이동통신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