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71)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71화(71/240)
071화 이동통신 (3)
한국의 각성자들이 가파른 성장을 이어가는 동안, 아공간에서도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다.
우선은 드워프 세공사, 브로크에 관한 것이었다.
아공간에 지낼 만한 곳을 마련해주겠다는 내 제안에, 브로크는 간결하게 답했다.
“자는 곳이야 아무래도 좋소. 그보다는 작업공간을······.”
그렇다고 대단한 시설을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책상과 조명, 자질구레한 공구 몇 개가 그가 요청한 전부였으니.
하지만 물류센터 한쪽에 위치한 에메스의 자재 창고, 그리고 그 옆에 붙은 제임스의 작업 공간을 발견했을 때.
“······이 무슨······!”
브로크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철제 타공판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공간.
벽면 곳곳에 수십 종의 공구가 질서정연하게 전시되어 있었고, 층층이 쌓인 선반에는 각종 나사나 부속류가 종류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기술자로서 탐내지 않을 수 없는, 그야말로 꿈과 같은 공간.
물류센터의 복제 기능이 없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사치스러운 공간이었다.
입을 떡 하니 벌린 브로크.
딱히 말은 하지 않았지만, 척 봐도 알 수 있었다.
“부러워요?”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황급히 얼굴을 붉히며 돌아서는 브로크.
책상과 조명이면 충분하다며 너스레를 떤 것 치고는 꽤 색다른 반응이었다.
‘하기야······.’
욕망이라는 것이 그렇다.
이전에는 생각조차 못 했던 물건.
하지만 그 물건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자마자, 욕망은 맹렬하게 재촉하기 시작한다.
‘어서 저 물건을 가져오라’고.
그리고······.
내가 하는 일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멸망한 세계 한가운데서 풍족한 물류센터를 전시하는 일.
그것은 평화롭던 세계의 흔적을 전시하며, ‘어서 다시 세계를 되찾자’고 그들을 재촉하는 일이었다.
한편 우리가 보고 있건 말건, 메카닉 제임스는 여전히 작업에 열중이었다.
치이이이!
용접을 하고······.
팔랑!
귀에 연필을 꽂은 채 도면을 확인하고,
슥슥! 슥슥!
멋지게 도면을 수정하면서.
다만······.
‘······제스처가 좀 과한데?’
가만 보니 제임스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브로크가 그의 작업을 우두커니 보고 있던 것이 조금은 부끄러웠던 모양.
제임스는 끝끝내 브로크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도 사회성이 바닥이었지······.’
서로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돌리고 있는 드워프와 미국인.
덕분에 나도 덩달아 낯이 간지러워질 참이었다.
“아니, 지금 뭐 하는 거야!”
“······?”
정적을 깬 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사람이 왔으면 인사부터 해야지······ 허참, 이리 와 봐!”
수시로 자재 창고를 들락날락하던 아버지였다.
제임스와는 숱하게 맥주를 기울이며 친분을 쌓은 상태.
그의 손을 잡아끈 아버지가 성큼 브로크에게 다가와 물었다.
“기술자시라고? 어떤 작업을 주로?”
“그, 보석 세공을······.”
“세공? 이야······ 전문가들이 아주 가득가득 차는구먼.”
가볍게 운을 뗀 아버지는 시시콜콜하게 브로크의 작업 도구들의 용도를 묻거나, 제임스가 말을 덧붙이도록 유도하는 등, 서서히 대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
그렇게 한참이나 대화를 이어간 끝에······ 아버지는 결정을 내렸다.
“그럼 우리가 공방을 만들어 주면 되겠네. 위치는 어디가 좋겠어요? 이쪽?”
“아, 아닙니다! 그렇게 수고 끼칠 것까지는······!”
브로크가 손사래를 쳤지만······.
“캄다운, 브로크. 정겸스 파더, 솜씨 훌륭해. 내 작업실 뼈대도 튼튼하게 잡아 줬었다고.”
그새 긴장이 풀린 제임스가 브로크를 독려했다.
“그럼······.”
그제야 눈을 들어 제임스의 작업실을 살펴보는 브로크.
그도 이런 작업실을 갖고 싶기는 한 모양이었다.
“너무 신세 끼치지 않는 정도로만······.”
“그럼! 그럼!”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공간의 기술자들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던 나 또한.
***
그로부터 며칠 뒤.
브로크의 공방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에 나는 아공간으로 향했다.
곧장 제임스의 공방에 다다른 나는 탄성을 내질렀다.
“······이야, 좋네.”
제임스의 작업실만큼이나 훌륭한 공간이었다.
선명한 LED 조명, 광택기, 드릴링 머신, 주물 작업에 필요한 도가니까지.
물류센터에 있는 물건이라면 빠짐없이 지원해 주었고, 그렇지 않은 물건이라도 제임스가 손수 필요한 장비를 만들어 준 모양이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저건?”
낮은 높이의 사각형 테이블.
가운데에는 둥근 구멍이 나 있었고, 구멍 주위로 날카롭게 솟은 8개의 송곳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두런두런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나타난 세 사람.
그들이 하나둘 의자에 걸터앉았다.
‘······이제 확실히 친해졌나 보네.’
첫날의 어색한 기운은 온데간데없었다.
절친한 팍스FC의 대표 기술자들이 모여앉아 있을 뿐.
테이블의 정체는 곧장 드러났다.
달칵.
가운데 구멍에서 피어오르는 불길.
제임스가 기다렸다는 듯, 커다란 소시지를 꺼내 푸욱 송곳에 찔러 넣었다.
그러곤 테이블 한쪽의 버튼을 누르자, 꼬챙이에 매달린 소시지가 빙글빙글 회전하기 시작했다.
치이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거대한 소시지.
그와 더불어,
꼴꼴꼴.
저마다 든 잔에 시원한 맥주가 따라졌다.
새로 제작된 자동 야식 테이블.
날마다 고된 작업을 이어가는 세 사람이 함께 위안을 갖는 자리였다.
“이것 참······.”
“오우, 정겸. 왔어?”
하는 수 없었다.
차디찬 맥주와 코를 찌르는 짭짤한 냄새까지.
그들 사이에 자리를 꿰차는 수밖에.
“앗 뜨······.”
“천천히 먹어라.”
입을 식힐 겸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고 있자니, 나를 지그시 바라보던 브로크가 말했다.
“사실 강화석을 세공해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그냥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소. 평생 보석을 다듬다 죽는 게 내 소원이었으니까. 하지만······”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
하지만 어수룩하던 첫날과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고맙네. 이런 선물까지 받게 될 줄은 미처 몰랐어. 정말······.”
선물.
라이시온에 갇혀 기약 없이 클레멘타인을 찾아다녔던 그다.
그 외로운 존재를 꺼내 온 것은 나로서도 기껍게 그지없던 일.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지만,
“그건 그렇고······ 아쉽게 됐네.”
그가 착잡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어쩔 수 없죠. 브로크 씨 때문도 아니잖아요.”
강화에 관한 이야기였다.
공방이 건설되는 중에도, 브로크는 틈틈이 카멜롯에서 생산된 강화석을 세공해 주었다.
덕분에 가지고 있던 장비 대부분을 4강까지 대폭 강화할 수 있었지만······.
정작 5강을 진행하려 했을 땐, 역으로 아이템이 무참히 박살 나 버렸다.
브로크가 그 이유를 부연해 주었다.
“강화석으로 위력을 더하기 위해서는, 아이템도 그만한 수준까지 올라와야 해.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전제 조건이라 할 수 있지.”
평범한 공산품부터, 군용품, 심지어는 타차원의 하급 무기까지.
지금껏 모두 유용하게 사용해 왔지만, 정작 카멜롯 같은 ‘제대로 만든’ 물건은 부재했다.
덕분에 성장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그렇게······.
‘······어디서 전설의 대장장이라도 데려와야 하나?’
그런 생각을 주억거리고 있을 때였다.
“······!”
물류센터에 난 포탈을 통해 헐레벌떡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 정체는······.
“아저씨?”
“정겸······!”
코리안 카우보이, 박동관.
숨을 헐떡이며 다가온 그가 다짜고짜 내게 어느 물건 하나를 들이밀었다.
“뭐예요, 이게?”
RPG-7처럼 생긴 로켓 발사기.
하지만 정작 탄두나 로켓은 온데간데없이, 그저 발사 장치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른 박동관이 새로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라이시온에 침입자가 있었어.”
“침입자요?”
그랜드캐니언에 있는 라이시온 광산.
박동관을 비롯한 한인들에게 이곳 광산의 관리와 통제를 부탁했던 터였다.
그리고 다행히, 광산을 지키는 건 이들 한인뿐만이 아니었다.
“가디언들이 모두 처리하기는 했어. 그런데······.”
“······그런데요?
“이 무기가 영 수상해서 말야.”
철컥.
그가 로켓 발사기의 발사관을 들어 보였지만, 정작 그 실체는 확인할 수 없었다.
띠링!
[정보 열람이 제한된 아이템입니다.]“······강화된 무기인가요?”
“그랬음 다행이게. 강화된 무기도 아니야. 그런데도······.”
눈으로 보는 게 더 빠르겠다는 듯, 박동관은 발사기를 치켜들었다.
그러곤 아공간의 머나먼 빈 공간을 겨냥했다.
철컥.
지체 없이 당겨진 방아쇠.
그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우우우우웅!
발사관에 그려진 복잡한 푸른색 회로.
사방으로 퍼진 푸른 빛이 서서히 앞으로 밀려들더니······.
콰아아아앙!
발사기부터 모종의 푸른색 에너지가 뿜어져 나갔다.
꽈아앙!
멀찍이서 들려오는 타격음.
분명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음에도, 무기에서는 무언가 ‘발사’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죠?”
“······내 말이.”
지금으로서는 본 적도 없는 무기였다.
원리도, 기능도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무기.
우리의 의문을 풀어준 건, 다름 아닌 세공사 브로크였다.
성큼 다가와 발사기를 집어 든 브로크.
그가 발사기에 각인된 회로를 면밀히 살핀 뒤 말했다.
“이만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지.”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말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드워프들이야.”
***
브로크, 유성철 등 나는 일행들을 데리고 엘븐하임으로 향했다.
그리고,
“······드워프들이 만든 무기라고요?”
갈라온 의회 앞에서 만난 엘리.
그녀는 우리만큼이나 놀란 기색이었다.
홱!
복잡한 표정으로 브로크를 바라보는 엘리.
브로크는 틀림없다는 듯,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워프들이 지구에 들어왔어.”
혹시 무기만 흘러들어온 것은 아니냐는 내 질문에, 브로크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봐도 지구인들의 무기를 흉내 낸 형태요. 지구인들의 요청을 받아 제작한 게 분명해.”
드워프들이 지구의 인간들을 위해 무기를 만들었다는 것.
엘리는 그 사실을 꽤나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드워프들은 엘프만큼이나 평화로운 족속들이에요. 이런 무기를 앞세워서 침략 전쟁에 나설 리가 없죠. 포로가 되거나 노예로 부려지는 거라면 모를까······.”
정황적인 증거도 있었다.
라이시온의 침입자들은 드워프가 아닌 인간들이었으니까.
지금까지의 상황을 엘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드워프들의 ‘공장’이 지구에 통폐합된 거예요. 그리고 인간들에 의해 점령당한 거죠.”
상공회의소가 미국 전역에 배치해 놓은 점령지.
그중 하나가 라이시온 광산이었다면, 이번에는 드워프들의 생산 공장이었다.
엘리가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해요. 내 예상이 틀렸어요. 인간들이 이렇게나 빨리 점령에 성공할 줄은······.”
나름 시간이 있다고 여겼던 미국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남부의 침략자들은 위협적인 성장세를 보여 주고 있었다.
이번에는 작전본부장, 유성철이 덧붙였다.
“확장세가 상상 이상입니다. 극 서부에 가까운 애리조나인데······ 벌써 여기까지 와서 기웃거린다는 건······.”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추가적인 점령지들가 남부 침략자들의 손에 들어가는 일만큼은 막아야 했으니까.
더욱이, 새로 얻은 라이시온 광산을 보호할 필요도 있었다.
내가 말했다.
“일단은 어떻게든 북부와 합류해 보죠. 그쪽도 과연 멀쩡할지 모르겠지만······.”
남부와 치열한 전선을 유지하고 있다던 북부였다.
다소 열세라고 듣기는 했지만, 분명 이들 또한 상당한 전력을 이루고 있을 터.
남부를 적대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관계였다.
다만 문제는 만나는 장소였다.
미국과의 핫라인은 진즉 끊어졌으니, 남은 것은 그 흔적을 뒤지는 일이었다.
“북부 쪽에서 마지막으로 연락이 닿던 곳이 어디라고 했었죠?”
“그나마 일리노이가 최근까지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유성철이 내 질문에 답해 주었다.
그리고······.
“······역시 시카고겠죠.”
다음 우리의 행선지가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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