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72)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72화(72/240)
072화 이동통신 (4)
출발은 라이시온 광산이 위치한 애리조나.
이번에도 이용수의 운전 솜씨가 빛을 발했다.
“한결 낫네요.”
태평양을 건너며 녹초가 되었던 그다.
극한까지 자신을 몰아붙였던 경험 덕인지, 이번 비행이 유난히 쉽게 느껴지는 모양.
간간이 괴물들이 날아들었음에도, 이용수의 운전과 나의 출하 스킬을 이용해 어렵지 않게 미 대륙을 가로지를 수 있었다.
시카고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세 시간 정도.
널찍한 터를 골라 착륙에 성공한 우리는 새로 차량을 출하해 시카고의 도심으로 이동했다.
숲처럼 늘어선 빌딩, 도시를 두른 아름다운 강까지.
황량하기만 했던 서부와 달리, 또 다른 미국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풍경이었지만······.
“이것 참 새삼······.”
그만큼이나 멸망의 흔적이 역력했다.
곳곳에 처박힌 차량들,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전신주, 곳곳에 널린 시체까지.
팍스FC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 지금의 한국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런 우리에게 미국은 보여 주고 있었다.
멸망이란 정확히 이런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카아아아아아악!”
“케이이이익!”
시작은 사나운 울음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우두두두두두두!
반대편 골목으로부터 괴물이 미친 듯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쿠와아아아악!”
고블린, 오크, 놀, 드레이크를 비롯한 수많은 종류의 괴물들.
놀라운 점은 놈들이 서로 합심하여 움직인다는 점이었다.
“······대체 뭐지?”
저마다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괴물들.
그들은 인간의 적이었지만, 동시에 서로가 서로의 적이기도 했다.
그러니 지금과 같은 상황이 심히 당황스러울 수밖에.
이용수가 추가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원래 눈이 저랬던가요······?”
새빨갛게 충혈된 괴물들의 눈.
그뿐만이 아니었다.
축 늘어진 팔다리, 거기에 흐느적거리는 움직임까지.
영락없는 좀비 그 자체였다.
물론······.
투두두두두!
투두두두!
“케에에에엑!”
“끼이이이이이익!”
그렇다 한들 우리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4강까지 내성을 끌어올린 소총.
거기에 1강 수준의 탄환을 사용하니 소총이 터져나가는 문제가 완전히 해소됐으니까.
좀비들을 잡기엔 더할 나위 없는 무기였다.
그렇게······.
순식간에 도로가 정리됐다.
철컥.
함께 소총을 내려놓은 이용수와 나.
멸망이 시작된 직후, 국통사에서 와이번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지만······ 아무쪼록 급한 건 눈앞의 괴물들이었다.
“왜 무리 지어 다니는 걸까요? 그것도 이런 이상한 상태가 되어서······.”
이용수의 질문.
나로서도 어깨를 으쓱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괴물이 많은 건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과 달리, 다수의 입찰 경쟁에서 패배한 미국이었으니까.
무수히 많은 차원으로부터 침략이 이뤄졌을 터.
“이제 차차 확인해 봐야죠. 시카고의 각성자들이라면 뭐라도 알고 있을 테니.”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다.
일명 ‘루프’라고 불리는 호수 앞의 번화가.
그곳이 유성철이 알려준 시카고 세력의 주둔지였으니까.
.
.
.
부우우웅.
도심을 가로질러, 마침내 ‘루프’에 도달한 우리.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은 것은 시카고 힐튼 호텔에 매달린 거대한 스피커였다.
-북부 해방군에서 알립니다. 생존자들은 이곳 힐튼 호텔로 오십시오. 마실 물과 식량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생존자들께서는······.
북부는 스스로를 해방군이라 칭하고 있었다.
타 차원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중이니,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이쯤 되니 정말 영화 같네요.”
이용수의 감상이었다.
‘미국식’ 아포칼립스의 전형.
하지만 그 장대한 포부와는 달리, 시카고의 각성자들은 위기에 처해 있었다.
여느 아포칼립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카아아아아악!”
“키에에이익!”
쿵! 쿵!
호텔 입구에 몰려든 수백 마리의 괴물들.
놈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강철로 덧댄 호텔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생존을 내세운 해방군이었지만, 찾아온 괴물들이 원하는 것은 살육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한편, 정작 우리에게는······.
“생존자가 아니라······ 구원자를 찾는 것 같네요.”
궁지에 몰린 그들이 애처롭게 보일 뿐이었다.
하는 수 없었다.
철컥!
다시 무기를 드는 수밖에.
그럴듯한 ‘미국식’ 아포칼립스를 재차 경험할 기회였다.
***
우리를 맞이한 것은 시카고의 지역대표, 케이트였다.
“그렇군요. 한국에서······.”
포탈을 통해 불러들인 작전본부장 유성철이 그녀에게 우리의 신분을 확인해 주었다.
핫라인이 끊어져 버린 한국.
그 먼 곳으로부터 지원이 도착했다는 사실에 그녀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무엇보다······.
“감사합니다. 이제는 정말 끝이구나 했었는데······.”
그들은 한창 궁지에 몰려 있었다.
괴물들을 처치하지 못해, 마냥 버티기만 한 것이 어느덧 일주일이 되었다고.
나 또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저 괴물들은 대체 뭡니까? 무슨 좀비처럼······.”
“아, 그건 말이죠······.”
후우.
얕은 한숨을 뱉은 케이트가 말을 이었다.
“엄연히 말하면 좀비는 아니에요. 그저 약에 취해 있을 뿐이죠.”
“약이요?”
“남부 사령관의 능력이에요. 정체불명의 성분으로 된 약을 만드는 능력인데, 중독성이 상상 이상으로 강해요. 괴물들에게는 세뇌 효과까지 일으키는 탓에······ 괴물들마저 놈의 입맛에 따라 움직이는 상태고요.”
드워프들의 공장을 점령하는 등, 상상 이상으로 빨랐던 남부군의 약진.
그 배경에는 남부 사령관의 독특한 능력이 있었다.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는 케이트.
“이제는 아예 기체 형태로 살포하고 있다는 게 문제예요. 이상한 대포에 넣어서 우리 진영 쪽으로 쏘아 넣는 식인데······.”
“대포라면······.”
드워프들의 대포.
다른 것을 의미할 리 없었다.
해방군은 드워프들의 존재를 몰랐다.
하지만 ‘공장’에서 생산되는 무기의 위험성만큼은 여실히 체감하고 있었다.
화약 없이도 발사되는 것이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었는데, 아예 약물을 살포하는 용도로 쓰고 있었을 줄이야.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가 우리 앞에 놓여 있었다.
-아악!
-히익, 히히힉!
쿵쿵.
발버둥 치는 소리와 함께, 모종의 비명이 들려왔다.
꺼질 듯이 한숨을 내쉬는 케이트.
비명의 주인공은 남부군 발사한 약물에 중독된 시카고의 각성자들이었다.
-으흐윽!
쾅! 쾅!
벽을 때리며, 울부짖으며, 중독된 약의 기운을 떨어내려 애쓰는 그들.
그 고통 어린 목소리가 내게도 괴롭게 들려왔다.
“······잠시 기다려보세요.”
차마 견딜 수 없었던 나는 팍스 FC에 구조대를 요청했다.
우르르르르!
포탈을 타고 나오는 수십 명의 팍스맨 힐러들.
그들이 일사불란하게 중독자들이 머무는 방으로 흩어져 들어갔다.
-흐으으······.
-흣······!
한결 완화된 반응.
하지만 통증을 가라앉힐 수 있을 뿐, 중독된 약 기운을 완전히 떨쳐 버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무력감이 찾아들었지만,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이제는 본론에 다다를 차례.
상황이 얼추 정리되었을 즈음, 유성철이 케이트에게 물었다.
“글렌을 만나고 싶습니다. 북부를 지원할 생각이에요.”
진즉 무너져 버린 미 연방 정부다.
몇몇 주는 주 정부군이 그 역할을 대신했지만, 이곳 시카고처럼 지역 대표가 세력의 구심을 이루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글렌 포드.
그는 프리스트 능력을 가진 각성자로, 북부 주요 도시 세력을 규합한 해방군의 지도자였다.
북부와의 연합을 위해서는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
하지만 케이트가 뜻밖의 사실을 털어놓았다.
“행방불명이에요.”
“······예?”
그리고 그 경위는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핵심 인원들을 데리고 직접 남부로 내려가셨어요. ‘공장’을 찾기 위해서요. 약물 중독까지는 방법이 없더라도, 놈들이 점령한 공장만 멈출 수 있다면 전황을 바꿀 수 있을 거라며······.”
“그럼 남부에서 행방불명이 된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공장을 발견했으니 복귀하겠다는 무전을 받았고, 얼마 뒤 문제없이 신시내티를 지났다고도 전해 들었으니까요. 다만 이곳 시카고에 다다랐을 즈음에······.”
작전을 무사히 완수한 글렌 포드.
하지만 그런 그를 붙잡은 것은 남부가 아닌 별개의 존재였다.
“인디애나에 형성된 대수림이 있어요. 통폐합으로 형성된 점령 지역 중 하나인데, 그 위를 비행하시다가 그만······.”
결론은 간단했다.
점령지로 생겨난 타차원의 대수림에 추락해 버렸다는 것.
“잠깐만요, 인디애나라면······.”
미국 지리에 빠삭한 유성철이 되묻자, 케이트가 대답했다.
“맞아요. 시카고에 인접한 곳이죠. 심지어 대수림은 여기서 50마일도 채 떨어져 있지 않아요.”
“수색은 해 보셨습니까?”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그를 만나야 하는 것은 물론이요, 드워프들의 공장의 위치까지 알고 있는 그였으니.
내 질문에 케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해봤어요. 하지만······ 사실상 수색이 불가능한 땅이에요. 항공기는 나는 족족 격추되고, 육로로 들어간 탐색조도 헤매기만 하다가 겨우 살아 돌아왔어요. 돌아온 각성자가 증언하기론 숲이 끊임없이 변형됐다고 해요. 나침반이고 뭐고 도무지 방향을 찾을 수 없었다고······.”
그야말로 미지에 둘러싸인 대수림이었다.
그곳에 떨어진 북부군의 수장, 프리스트.
말은 행방불명이라 했지만, 케이트는 더 이상 그의 생존을 확신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제가 헛된 희망을 부여잡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푹 고개를 숙인 그녀가 천천히 어깨를 떨었다.
“그래도 글렌 님께서 계셨을 땐 희망이 있었어요. 제한적이기는 해도, 프리스트의 능력으로 약물의 기운을 정화할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젠······.”
그때였다.
-아아아악!
-흐히익!
옆 방으로부터 찌르듯이 흘러나온 비명.
힐러들의 치료가 임시방편에 불과했음을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가 케이트의 마지막 기둥을 무너뜨렸다.
“지금까지 미국이 패배한 입찰 경쟁만 자그마치 스물다섯이에요. 그중 게이트를 닫은 곳은 다섯 곳이 채 되지 않죠. 그런데 남부 사령관은······.”
담담히 적의 전력을 가늠하는 그녀.
내게는 그 목소리가 또 다른 비명처럼 들렸다.
“거기서 쏟아진 괴물들을 제 수족처럼 부리는······ 진짜 괴물이에요.”
한 도시를 이끄는 수장이 할 말은 아니었다.
애써 이들을 도우러 온 우리가 들을 말은 더더욱 아니었지만, 차마 나무랄 수 없을 만큼 그녀의 절망은 무거웠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은, 이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희망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일이었다.
“프리스트, 살아 있어요.”
“네?”
홱 하니 고개를 든 케이트.
유성철과 이용수 또한 그게 대관절 무슨 소리냐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프리스트, 글렌이 대수림에 추락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다.
나는 곧장 아공간에 들어있는 상공회의소의 메시지 시스템을 이용했다.
“검색해 봤거든요.”
꽤 방대한 거리까지 적용이 가능한 메시지 시스템.
메시지를 수신할 대상을 자유롭게 세부적으로 설정할 수 있었고, 글렌의 이름과 성별을 토대로 대수림에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는 인물이 있는지 팍스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메시지 전송이 가능합니다.]프리스트의 생존 신고였다.
“잠시 이리들 와 보세요.”
남은 일은 간단했다.
케이트를 비롯한 일행들을 호텔 창가로 이끄는 것.
이제 어둑했던 밤이 가고, 이른 새벽의 해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과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던 케이트의 말이 맞았다.
회색을 섞은 듯한 밝은 하늘 아래로, 프리스트를 삼킨 인디애나의 대수림이 한눈에 내다보였으니까.
그리고······.
“정말이었군요······.”
“그럼 이제 저것만 따라가면······.”
“······뭐, 뭐예요, 저게?”
이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이용수와 유성철.
반면 케이트는 황당한 표정이었다.
그럴 만했다.
그녀로서는 상상조차 못 했을 능력.
울창한 대수림 위로, 내가 글렌에게 지정한 거대한 붉은색 화살표가 난데없이 떠올라 있었으니까.
선명하게 띄워놓은 홀로그램.
그것이 우리의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었다.
우선은 프리스트, 그리고 다음은 남부의 공장으로까지.
녹색 인디언과 다리 짧은 블루칼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