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74)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74화(74/240)
074화 녹색 인디언과 다리 짧은 블루칼라 (2)
세계수가 사라진 대수림의 아포칼립스.
우리는 그 속에서 드루이드의 다양한 군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드루이드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내 오래된 연인이여! 그대는 어디로 갔는가······?”
뒤적뒤적.
혹시 누가 씹다 뱉은 세계수 잎이라도 나올까, 조각상과 움막 아래를 샅샅이 뒤지는 모습.
흙먼지를 쓸어 담는 모습이 궁상스러우면서도, 꺼이꺼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 처량하기 짝이 없었다.
두 번째 드루이드는 하늘을 향해 두 손가락을 펼쳤다.
“······내 손이 만일 세계수의 가지였더라면.”
쓰읍.
두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는 드루이드.
하지만 그의 입술에 닿은 것은 앙상한 손가락뿐이었다.
그의 손은 세계수가 아니었으니.
세 번째 드루이드는 무려, 연극을 하고 있었다.
“후······ 니들은 이런 거 피지 마라······.”
뻐끔뻐끔.
애꿎은 나뭇가지를 오물거리며, 공연히 입술을 달싹거리는 그.
세포에 각인된 세계수와의 추억이 그의 대뇌피질을 자극하고 있었다.
갖은 전략을 동원해 세계수의 상실을 위로한 드루이드들이었지만······.
결국 그들 모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세계수를 피울 수 없다는 사실을.
“어으으으어어억······.”
“아으억······.”
물에 담근 빨래처럼, 곳곳에 아무렇게나 늘어진 드루이드들.
발에 채는 것이 절망한 드루이드요, 그걸 피하다 다시 발에 채는 것이 우울한 드루이드였다.
한편, 단 한 마디도 못 알아듣겠다는 듯 이용수가 머리를 긁적였다.
“저게 대체 다 무슨 소립니까······?”
“그야······.”
숲의 시인이라 불리는 드루이드들이다.
혓바닥에 기름이라도 절인 것일까?
이놈의 드루이드들은 말 한마디 곧이곧대로 내뱉는 경우가 없었다.
물론, 그 의미를 이해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도와달라는 소리죠.”
결국, 그런 뜻이었고······.
“우리도 도움을 받아야 하고요.”
또 그런 뜻이었다.
중독 연기로부터의 면역 효과.
단순히 세계수의 잎을 씹는 것만으론 부족했다.
드루이드들의 특수한 가공 처리가 필요했으니까.
더욱이······.
“분명 치료 효과도 있다고 하셨죠?”
“예······ 그렇긴 한데, 정말 지구에 세계수가 존재한단 말입니까?”
믿을 수 없다는 듯, 내게 되묻는 드루이드 족장 핀드릭.
그 후유증이 어마어마한 남부의 중독 가스다.
세계수의 잎을 이용해 중독자들을 치료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터.
조마조마한 표정을 짓는 핀드릭 앞에, 나는 포탈을 열었다.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그리고 그 이상을 얻기 위해.
***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물.
자욱한 수증기에 세계수 잎을 쪄내는 것이 ‘가공’의 첫 번째 과정이었다.
“아아! 그대를 찾았나니! 그대를 향해 이 노를 젓나니!”
커다란 주걱으로 휘휘 물을 젓는 첫 번째 드루이드.
웃음에 찬 그의 눈이 하회탈처럼 보기 좋게 구부러져 있었다.
“나 자신이 세계수가 된다면······! 나 자신이 세계수가!”
아직 채 가공되지 않은 이파리를 미친 듯이 입에 쑤셔 넣은 두 번째 드루이드.
곧장 팔다리가 붙잡힌 채 밖으로 질질 끌려 나갔고, 남은 이들이 부드럽게 익은 세계수 잎 위로 각종 첨가물을 뿌려 넣었다.
그다음은······.
빠사삭.
빠삭.
강렬한 태양 빛 아래, 젖은 이파리를 말리는 마지막 공정.
빳빳하게 굳은 세계수 잎은 이전에는 볼 수 없던 독특한 광채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 드루이드는······.
“후우······ 니들은 이런 거 피우지 마라.”
보따리에 잎을 능청스럽게 쓸어 담고 있었다.
“이 새끼 잡아!”
이를 적발한 다른 드루이드들이 그를 제압한 덕에, 드루이드들의 특제 ‘세계수 잎’이 무사히 완성될 수 있었다.
김장을 담그던 할머니의 손길처럼, 주름진 손으로 완성된 세계수 잎을 건넨 족장 핀드릭.
나 또한 사양하지 않고 날름 세계수 잎을 받아먹었다.
그리고······.
“······오오?”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각이 나를 찾아들었다.
부드럽게 구부러지는 이파리.
하지만 이파리는 이에 끼거나, 씹히는 일 없이 입 안을 자유롭게 헤엄쳤다.
맛깔나면서도 중독성 있는 식감.
하지만 놀라운 것은 식감뿐만이 아니었다.
“향긋하고······ 청명해······!”
실로 놀라운 느낌이었다.
입천장을 넘어 비강까지 단숨에 뚫고 지나가는 세계수의 향.
알싸한 박하 향이 머리에 쌓인 노폐물을 깨끗하게 씻어 버렸고, 두뇌의 자잘한 회로들이 단숨에 연결되며 서울대 정문을 부숴 버릴 듯한 짜릿한 지적 충족감이 대뇌를 휘감았다.
“정겸 씨, 이거 정말······!”
함께 세계수 잎을 받아먹은 이용수 또한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졸음운전에 특효약이겠는데요!”
물론, 그 적용 범위는 조금 달랐지만.
우리 인간들에게는 중독성이 없는 세계수의 잎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에 달고 살고 싶을 만큼 압도적인 효능을 지니고 있었다.
“껄껄! 이게 다가 아니지요!”
체통 따위는 내다 버린 채, 터질 듯이 입에 세계수 잎을 집어넣은 족장 핀드릭.
그의 말처럼, 세계수의 활용 방안은 실로 다양했다.
드루이드들이 모여 빳빳하게 마른 세계수잎을 잘게 빻았고, 그 가루를 다른 세계수 잎으로 돌돌 감싸 불을 붙여 피우거나, 아예 한데 모아 태우며 자욱한 연기를 만들기도 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백색 연기.
사뭇 남부군의 중독 가스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지만, 그 효과는 정반대였다.
드루이드들은 힘을 되찾았고, 우리 지구인들은 침략자들의 능력에 대항할 무기를 얻었으니까.
이를 모르지 않는지, 족장 핀드릭이 내게 말했다.
“정겸 님,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옛날 옛적에 세계수 한 그루와 젊은 드루이드가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드루이드가······.”
“······결론만 말해 주세요.”
“······너무너무 감사하다고요.”
꾸벅, 내게 고개를 숙이는 드루이드들의 족장.
이를 발견한 드루이드 모두가 뒤따라 고개를 숙였다.
나, 그리고 새로운 ‘길’의 상징이 될 아공간 포탈을 향해서.
그리고······.
자욱한 연기와 함께, 모두가 한창 행복해지고 있을 때였다.
안개 사이로 찌르듯 날아든 소식.
“프리스트가 깨어났습니다!”
북부의 지도자, 글렌 포드가 눈을 떴다.
.
.
.
우물우물.
질겅질겅.
한 움큼 쥐여준 세계수 잎.
프리스트, 글렌이 커다란 입을 움직이며, 쫄깃한 이파리를 씹었다.
기억력에도 특효약인 세계수의 잎이었다.
남부의 상황, 그리고 드워프들의 공장이 있는 위치를 떠올리도록 하기 위한 도움이었지만······.
“공장의 위치를 확인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가 보고 온 것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공장이 움직이거든요.”
글렌은 2미터에 가까운 거대한 몸을 자랑하는 흑인이었다.
그런 그가 어깨를 부여잡으며 파르르 몸을 떨고 있는 것을 보니, 남부의 전력이 만만치 않다는 걸 여실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생각해 보니······ 지금도 이럴 때가 아닙니다······!”
그가 몽롱한 잠에서 깨어난 듯, 허둥지둥 몸을 일으켰다.
“왜 그래요?”
“놈들이 올라오고 있어요. 얼른 시카고에 소식을 전해야······!”
움직이는 드워프들의 공장.
그것은 꽤 많은 것을 의미했다.
“······놈들에게는 보급로라는 개념이 없어요. 아예 전장 근처로 공장을 보내 버리면 그만이니까요. 곧 있으면 중독 가스와 괴물들이 시카고에 들이닥칠 겁니다.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다급하게 움직이는 그.
하지만 나는 그에게 검은색 스마트폰을 내밀 뿐이었다.
“······?”
지금 장난하는 거냐 묻는 듯한 표정.
미안하지만 진짜 장난이 아니었다.
그가 골절된 몸을 이끌고 100km를 횡단하는 것보다야 백번 빠른 방법이었으니까.
“문자 한 통 넣어주면 되죠.”
테스트 단계의 문자 시스템이 부여된 스마트폰이었다.
케이트에게 스마트폰을 출하해 주고 온 참이었으니, 시카고에 남부군의 침공을 전할 수 있을 터였다.
이건 포탈과 포탈을 통해 연락이 닿는 구조였으니.
“그리고······.”
지금 문제는 시카고가 아니었다.
“남부군이 노리는 건, 이곳 대수림이에요.”
“······예?”
“놈들이 줄곧 대수림에 중독 가스를 풀어놓고 있었거든요.”
세뇌 효과를 발휘하는 중독 가스.
놈들의 전략은 간단했다.
드루이드들을 세뇌하는 것.
이를 통해 ‘거점’ 중 하나인 대수림을 손에 넣는 것.
물론······.
“······슬슬 전략을 바꿀 때가 되긴 했지만.”
세레니티아는 대수림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마냥 가스를 살포하는 것이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걸 놈들도 알아차렸을 터.
이를 증명하듯······.
꽈아아아앙!
꽈아앙!
남부군의 포격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더 이상의 가스 캔은 없었다.
섬뜩한 포격음을 내뿜는 드워프들의 대포.
그 충격에 휘말린 대수림이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쿠구구구······.
바닥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진동.
난데없는 공격에, 드루이드들 또한 당황스러운 기색이었다.
“오브스틴!”
“예, 족장님!”
“전사들을 모아라. 지금 당장······.”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남부군의 공세였다.
대수림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앞선 모양이었지만······.
내가 그들을 막아 세웠다.
“나가면 안 됩니다. 바깥은 벌판이에요.”
“······!”
줄곧 세레니티아에 박혀 있던 드루이드들은 모를 것이다.
이곳 대수림 바깥에는 황량한 미국식 황야가 펼쳐져 있다는걸.
자연환경을 활용하는 드루이드들의 특성상, 효율이 떨어지는 전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반대의 상황이다.
지금이야말로 그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사용할 차례였으니.
“대수림의 공간 왜곡. 혹시 직접 다룰 수도 있나요?”
이곳저곳을 뒤죽박죽으로 섞어 버리는 기상천외한 공간.
그것이 드루이드들의 천혜의 요새를 이루고 있었으니까.
“부족원 모두가 힘을 쓴다면 가능이야 하겠습니다만······.”
“포격을 다른 한곳으로 몰아넣어 주세요. 이곳 세레니티아는 안전할 테니.”
적들의 공격을 무위로 돌릴 수 있는 전략.
하지만, 족장 핀드릭은 의문스러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가만히 안 있을 겁니다.”
물론이다.
그렇게 피하기만 한다면 단단한 가드를 올린 채, 마냥 남부군의 주먹을 맞고 있겠다는 소리나 다름이 아니었으니.
곧장 스마트폰을 꺼낸 나는 팍스에게 요청사항을 전달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우르르르르르!
포탈을 타고 나온, 수백 명의 팍스맨이 세레니티아에 들이차기 시작했다.
맨몸이 아니었다.
RPG-7을 닮은 드워프들의 대전차 로켓.
그에 못지않은 멋들어진 무기가 팍스맨들의 어깨에 올라가 있었으니까.
[현궁(晛弓) AT-1K Raybolt +4, 가격이 설정되지 않았습니다.]합참으로부터 불하받은 대전차 미사일.
무기부터 미사일까지, 모두 한계치까지 강화해 둔 물건이었다.
척!
그렇게 팍스맨들이 겨냥한 것은······.
↓↓↓
팍스가 거대 홀로그램으로 표시해 준 사격지점이었다.
바로 남부군의 포대가 위치한 곳.
이제 남은 것은······.
“화력전이지.”
꽈아아앙!
꽈릉!
놈들의 포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드워프 공장의 생산력을 앞세운, 무차별한 포격.
하지만 나는 그런 놈들의 포격에 과부하를 걸어 버릴 작정이었다.
‘······한번 해 보자고.’
드워프 공장의 생산력, 그리고 물류센터의 재고 간의 싸움.
‘둘 중 누가 먼저 거덜이 날지.’
녹색 인디언과 다리 짧은 블루칼라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