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76)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76화(76/240)
076화 녹색 인디언과 다리 짧은 블루칼라 (4)
“······엇.”
엉거주춤 아공간에 들어선 ‘공장’의 드워프들.
하지만 그들은 마주친 상대로 인해 주춤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세공사잖아?’
또 다른 드워프인 세공사 브로크.
같은 드워프 종족이지만, 직군이 다른 만큼 그 성향 또한 달랐다.
행색만 보더라도 그랬다.
청바지에 허름한 작업복을 아무렇게나 걸친, ‘공장’ 출신의 제작자 드워프들.
반면 브로크는 말끔히 먼지를 털어낸 가죽 앞치마를 둘러매고 있었으니까.
“······.”
어정쩡한 조우.
공장의 드워프들은 걱정이 앞섰다.
“괜찮을까? 텃세 장난 아닐 것 같은데······.”
“차라리 못 본 척 지나치는 게······.”
모행성에서 또한 알게 모르게 선이 그어져 있던 두 직군이다.
협동적인 성격이 강한 제작자들과 달리, 세공사들은 유달리 까탈스럽고 고립적인 성격이 많았으니까.
수군수군대며,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려던 찰나,
“······!?”
가장 앞장서 있던 쿠퍼를 세공사 브로크가 와락 껴안았다.
“그간 고생이 많았소. 동족을 보니 정말 반갑구먼······.”
툭툭 등을 두드려 주며, 눈을 글썽이는 브로크.
아공간의 동료들과 어울리며, 그 또한 모종의 변화를 맞이한 터였다.
어안이 벙벙한 공장의 드워프들.
그런 그들을 브로크가 차분히 안내했다.
“따라오쇼. 이곳에서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알려 줄 테니.”
“아······!”
지내는 방식.
그 말을 들은 공장의 드워프들의 목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모행성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걸음마를 떼자마자 망치를 쥐고, 성인이 되자마자 공장에 배속되는 제작자 드워프들.
그들에게 있어 공장과 기숙사는 치열한 전장의 일환이었으니까.
그렇게······.
저벅저벅.
서른 명의 공장 드워프들이 세공사 브로크를 따라나섰다.
‘이곳이 우리의 새로운 일터······.’
오늘 막 출근한 신입사원과도 같은 기분이었다.
며칠, 아니 몇 주간 누적되어 온 무거운 피로가 몸을 짓눌렀음에도, 드워프들은 꿋꿋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까마득하게 높은 물류센터의 천장부터, 자로 잰 듯이 맞춰 서 있는 재고 선반들, 규칙적으로 배열된 환기구를 바라보며, 드워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혀를 내둘렀다.
“아주 질서정연하게 정돈되어 있군······ 확실히 체계가 있는 곳이야.”
“구획 별로 레이블링도 되어 있어. 이러면 효율이 확 올라가지.”
“지금까지의 작업 동선을 살펴보면······.”
수군수군 이야기를 나누던 드워프들.
그들이 내린 결론은 명확했다.
“김정겸 대표······ 보기보다 굉장한 사내였군.”
“이만한 공장을 설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어.”
예상보다 자신들의 고용주가 걸출한 인물이었다는 것.
앞서가는 브로크를 바라보며, 드워프들은 남모를 기대감에 부풀었다.
“이제 작업 라인에 배치를 해주려나?”
“······에이, 우리 같은 신참들한테 작업 라인은 무슨? 바닥부터 쓸고 닦곤 하겠지.”
벌써부터 일할 생각에 잠긴 공장에 드워프들이었지만······.
정작 브로크가 안내한 곳은 국군통신사령부의 샤워실이었다.
“일단 편하게 씻게 하라고 하더군.”
“······??”
“여기 세면도구들이 꽤 사용하기가 편하오. 여길 이렇게 올리면······.”
쏴아아아아.
온수 샤워라는 개념 자체를 모르던 드워프들이었다.
굳은 근육 사이사이를 주무르는 뜨거운 물줄기.
“아으으어어으아······.”
“아우으우······.”
그 강렬한 자극이 드워프들의 어깨에 얹혀 있던 피로를 순식간에 녹여 버렸다.
“이제 다음 장소는······.”
땀에 절어있던 몸을 말끔히 씻어 낸 드워프들.
그들이 뽀송뽀송한 걸음으로 향한 곳은 ‘생활관’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원래 인간들이 사용하던 곳인데, 지금은 비어 있소. 베개랑 이불도 깔아 뒀으니 다들 우선은 눈부터 붙이라고.”
“······자, 자라고?”
당황스러운 드워프들이었다.
휴식을 보장해주겠다고 말한 김정겸 대표였지만, 그게 이렇게나 빠를 줄은 미처 몰랐기에.
푹.
푹.
드워프들은 멋쩍은 표정으로 하나둘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들의 지친 무게를 덜어주는, 구름처럼 푹신한 호텔식 매트리스.
“아······.”
이 모든 것이 꿈만 같았지만······.
쿠퍼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 손뼉을 쳤다.
“그렇군. 작업 효율을 우선시하는 스타일인가? 과연 트렌디해.”
“······작업 효율?”
“그래. 쉴 때 제대로 풀어 주는 대신······ 정작 일할 땐 지옥 같은 업무 강도를 부여하는 거지. 사실 이거야말로 제대로 사람을 쥐어짜는 방법이라고.”
“아······!”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되는 드워프들이었다.
이 또한 업무의 일환이라면, 대뜸 휴식을 부여한 김정겸 대표의 의도 또한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쿠퍼는 한 술 더 덧붙였다.
“보나마나 수면 시간도 통제할 게 분명해. 장담하건대 몇 시간 뒤면 당장 일어나라며 흔들어 깨울걸? 빨리 자자고, 한숨이라도 많이 자둬야 내일 버틸 수 있을 거야.”
그럴듯하게 들리는 쿠퍼에 말에, 드워프들 또한 서둘러 푹신한 침대로 들어갔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그간의 피로.
스르륵 눈을 감으며······.
‘김정겸 대표······.’
쿠퍼는 그렇게 생각했다.
‘······과연 호락호락한 공장주가 아니었어.’
.
.
.
“빨리 일어나!”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드워프들이 곤히 잠들어 있던 쿠퍼를 흔들어 깨웠다.
“허······ 허엇!”
그제야 기억이 났다.
김정겸 대표의 제안에 따라 팍스FC에 들어왔고, 오자마자 씻고 자리에 누웠다는 사실을.
얼마간만의 잠인지, 줄곧 그를 괴롭히던 두통이 말끔히 사라진 터였다.
그와는 별개로······.
“······그것 봐, 내 말이 맞지?”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생각에, 쿠퍼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뭔 개소리야? 빨리 일어나. 자네가 제일 늦었으니까.”
“······왜들 그래?”
“해가 중천이야. 벌써 열일곱 시간이나 잤다고.”
“뭐? 열······ 열일곱?”
머리가 새하얘지는 그였다.
모행성의 공장에서는 고작 몇 분의 늦잠만으로도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었으니.
그렇게, 황급히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그가 발견한 것은······.
뚜벅뚜벅.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팍스FC의 김정겸 대표였다.
“허, 허억!”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의 고용주.
그 넓은 물류센터를 자로 잰 듯 철저히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첫날부터 열일곱 시간이나 퍼질러 잔 그의 책임을 톡톡히 물을 것이 분명했으니.
하지만, 정작 그는 예상치도 못한 말을 꺼냈다.
“일어났으면 이제 밥 먹으러 갑시다.”
“······밥?”
그는 아무렇지 않게 서른 명의 드워프들을 인솔했다.
그렇게 도착한 팍스 풀필먼트 센터의 2층 직원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간 그들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까무러칠 수밖에 없었다.
“세, 세상에!”
마치 그들이 주야장천 밤을 지새우던 공장의 생산 라인과도 같은 풍경이었지만······.
“······어떻게 이런 냄새가?”
그 품목은 완전히 달랐다.
일렬로 늘어선 수십 종류의 음식들.
뜨끈하게 데워진 음식 앞에는 집게나 국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어제 만났던 세공사 브로크를 비롯한 팍스FC의 일원들이 음식을 자유롭게 퍼 나르고 있었다.
“식사는 뷔페식이니까, 원하는 대로 퍼다 먹으면 됩니다.”
“뷔······ 페?”
난생처음 듣는 말이었다.
고개를 갸웃하는 드워프들에게, 김정겸 대표는 그릇과 식기를 나눠주며 자세한 식사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곤······.
“아싸! 오늘 닭갈비!”
쾌재를 부르며 유유히 음식 사이로 자취를 감췄다.
“이게 대체······.”
얼떨떨한 표정으로 저마다 음식을 담아 자리로 돌아온 드워프들.
그들이 앉은 곳은 세공사 브로크가 있던 테이블이었다.
참다못한 쿠퍼가 브로크에게 물었다.
“그······ 일은 언제 시키는 건지?”
“일? 하고 싶을 때 하면 되오. 뭐, 간간이 부탁이 들어올 때도 있기는 하지.”
“······!?”
겹겹이 충격이었다.
하고 싶을 때만 일하면 된다니.
그것도 대표가 일을 ‘부탁’한다니.
“하고 싶을 때만 하면 된다고······? 그런 걸 일이라고 부를 수 있을 리가······.”
여러모로 충격적인 팍스FC의 근로 조건이었지만······.
“쿠퍼 이것 좀 봐!”
“뭔데 그렇게······ 허억!”
동료들이 들고 온 거대한 맥주잔을 보자마자 복잡한 생각이 깡그리 날아가 버렸다.
“저기 저 기계에서 맥주가 무한으로 나와! 무한으로 나온다고!”
맥주.
거칠기만 했던 모행성의 생활이 그리웠던 가장 큰 이유였다.
수십 년간 노예가 되어 우주를 떠돈 탓에, 그 맛조차 기억할 수 없었던, 이제는 드워프들에게 있어 신화적인 음료가 된 그것.
치이이······.
차갑게 식은 맥주 위로, 보글보글 신선한 기포가 올라왔다.
꿀꺽.
꿀꺽.
그 시원한 맥주가 목으로 폭포처럼 쏟아졌을 땐······.
“아아······!”
“흐흐흑!”
지난 수십 년간 참아왔던 눈물이 함께 터져 나왔다.
펑펑 울음을 터뜨리며 무슨 하소연이라도 하듯, 브로크에게 묻는 쿠퍼.
“대체······! 우리에게 대체 뭘 시키려고 이렇게까지 해주는 거야?”
“아니, 뭘 시키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절절한 동족들의 울음에, 브로크는 머쓱하다는 듯 덧붙였다.
“······이거 그냥 사내 복지야.”
***
그렇게, 드워프들이 평화로운 하루를 만끽한 그날 밤.
정작 나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용수와 틈틈이 밖으로 나와 동부로 이동하고 있었으니까.
적들의 큰 전력 중 하나인 ‘공장’을 빼앗았다지만, 대수림을 공격한 병력은 남부 세력의 일부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런 우리에게 갑작스러운 소식이 들이닥쳤다.
“······투자 유치요?”
“예, 직접 보시는 게 빠르겠습니다. 여기······.”
소식을 전해 준 사람은 북부의 지도자이자, 프리스트인 글렌 포드.
그가 자신에게 떠오른 알림 메시지를 우리에게 공유해 주었다.
—
다차원 상공회의소에서 알려드립니다.
성공적인 투자 유치를 축하합니다.
본 상공회의소는 귀 지역의 투자 요청을 수리하여, 현 ‘미국’의 실정에 가장 적합하다 판단되는 ‘머크우드’를 최종 투자 차원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이후 ‘미국’에서의 사업 계획에 대해 안내드립니다.
7일 뒤, ‘워싱턴D.C’ 지역에 대한 ‘머크우드’ 차원의 통행이 제한적으로 허용됩니다.
-제한적 허용 : 6위계, 7위계.
-무제한 허용 : 8위계.
※ 투자를 요청한 단체에는 투자 차원과의 수익 배분 및 별도의 중개 수수료가 자동으로 적용됩니다.
귀 지역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다차원 상공회의소 배상.
—
투자 유치.
새로 나타난 경제 용어였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또다시 괴물들을 풀어놓겠다는 것.
갑작스런 상공회의소의 통첩에 대해, 글렌 포드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남부 놈들 짓이 틀림없습니다. 최근 워싱턴 쪽에서 전선이 교착되고 있었거든요. 거기에 공장까지 빼앗기게 되었으니······.”
상공회의소의 메시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외부로부터 들어올 침략자.
하지만 그것을 불러낸 것은 다름 아닌 지구 차원의 존재라고.
“놈들도 초조했던 거겠죠. 하지만 다른 차원까지 끌어들일 줄이야······.”
상공회의소가 부여한 시간은 일주일.
하지만, 이 메시지를 기점으로 전쟁은 한층 가속화되고 있었다.
“미 전역에 퍼져있던 남부의 병력들이 모조리 동북부로 집결하고 있습니다. 괴물들과 함께 워싱턴을 공격할 요량이에요.”
미국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워싱턴이다.
그곳에 가장 먼저 침략의 깃발을 꽂으려는 것.
먼저 워싱턴에 도달해 놈들의 진입을 막으면 될 것이었지만······.
문제는 일주일 뒤 들이닥칠 ‘머크우드’의 전력이었다.
“머크우드가 어떤 차원이라고 하던가요?”
“야수 종족으로 이뤄진 차원이라고 들었습니다. 재생력이 강하다는데······ 그보다, 6위계라뇨······!”
글렌 포드가 초조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6위계.
지금으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강력한 적이었다.
이번 기회에 상공회의소가 남부를 제대로 밀어주려는 모양이었다.
한편······.
‘······되려나? 이거?’
나로서도 고민이었다.
내 주력 화기들의 등급은 대부분 4강.
7위계까지는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었지만, 6위계를 잡아낼 수 있을지는 차마 확신이 들지 않았다.
물론, 방법은 있었다.
이제는 팍스FC의 일원이 된 ‘공장’의 드워프들.
브로크의 말대로라면 그들이 5강 무기 제작에 도움을 줄 수 있을 터였으니까.
다만······.
‘······꼴랑 하루 만에 일 시키는 게 좀 미안하긴 하네.’
‘공장’에서 보았던 드워프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했다.
퀭한 눈빛으로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녹초가 되었던 드워프들의 모습.
최대한 휴식을 부여해 주고 싶은 것이 내 마음이었으니까.
하지만······.
벌컥!
그때였다.
누군가 회의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것은.
“······쿠퍼?”
틀림없었다.
그는 ‘노사협상’을 벌이던 공장의 드워프였으니까.
어쩐 일이냐 물어볼 새도 없었다.
쿠퍼가 다짜고짜 입을 열었으니까.
그리고······.
“김정겸 대표님!”
“······?”
미처 알지 못했다.
때로는 일이 너무 없는 것이 직장인들의 고충이 된다는 걸.
“미치겠습니다······! 제발 일 좀 시켜주시오!”
남북전쟁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