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8)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8화(8/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 8편
(맹견과 담벼락 (2))
부아앙!
트럭이 달렸고,
깨행!
달려들던 저글링이 차에 치여 운명을 달리했다.
지긋지긋하던 놈들의 물량을 줄여놓고 나니, 잡아내기가 한 결 수월했다.
애당초 하나하나의 전투력이 오크에 미치지 못하는 녀석들이었으니.
“···여기 3층입니다.”
이용수가 핸들을 잡은 두 손을 벌벌 떨며 말했다.
그의 집은 주택가에 놓인 낡은 빌라였다.
유리로 된 공동현관은 박살이 나 있었고, 주변 전봇대 아래로 수거되지 못한 음식물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다행인 점은 시체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시신이 발에 채이듯 있던 대로변과는 썩 다른 풍경이었다.
어찌 보면, 좋은 징후였다.
작은 빌라였다.
탑차로 주차장 입구를 완전히 틀어막은 뒤, 우리는 계단을 올랐다.
도착하기까지 힘주어 액셀을 밟던 이용수였으나, 정작 집 계단을 오르는 속도는 더뎠다.
문지방 너머에 있는 것이 축복인지 재앙인지 알 수 없는 그였기에.
어쩌면 그 결과가 끝없이 유예되기를 바라는지도 몰랐다.
그의 고뇌가 무색하게, 초인종 버튼은 너무나 가벼웠다.
마치 실수로 눌리기라도 한 것처럼.
띵동-
초인종의 잔음이 길게 늘어지려던 찰나.
인터폰에서 소리가 들렸다.
“···당신이야?”
***
“······!”
딸이 그에게 안겨 울었다.
사진에서 보았던 작은 토끼 같은 딸이었다.
딸아이의 울음 앞에, 이용수와 그의 아내는 애써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삼켰다.
어느 정도 감정이 추스러진 뒤에야 이용수가 나를 소개했다.
“김정겸 씨라고···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도와주신 분이셔. 이분 아니었으면 여기 오는 건 고사하고 애초에 살아남지도 못했을 거야.”
그가 물류단지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거론했다.
오크에게 쫓기던 그를 구해준 일.
와이번들을 해치워 물류단지를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준 일.
마지막으로 자동 출하 스킬을 이용해 저글링들을 소탕해 길을 열어준 일까지.
듣다 보니 나까지 그런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보통 은인이 아니잖아?’
그저 서울로 가려 했을 뿐인데, 본의치 않게 그를 아주 많이 도와준 셈이 되었다.
물론 나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으리라.
이용수의 말이 끝나자, 그의 아내가 나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이를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정말··· 이 사람 없으면 못 살 것 같았거든요.”
애써 참던 눈물이 터졌다.
아장아장 걸어 온 딸아이도 조막만 한 고개를 숙였다.
“감샤합니다.”
감동스럽지만, 또 한 편으론 어색한 분위기.
이용수가 서둘러 상황을 정리했다.
“많이 피곤하실 텐데, 일단 좀 앉아서 쉬시죠. 요기할 만한 거라도 내오겠습니다.”
그는 안방에 있는 소파에 나를 앉혀두곤 거실로 나갔다.
두런두런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아내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어느덧 졸음이 몰려왔다.
그러고 보니 아침 일찍부터 와이번을 해치웠고, 한참 동안 도심을 누빈 다음 한숨도 자지 않고 새벽 내내 저글링을 잡았다.
잠이 모자란 건 둘째치고, 피로감부터가 보통이 아니었다.
“···지금 집에 먹을 게 없어서··· 물도···”
바깥으로부터 두런두런 소리가 들렸지만,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흐릿해지는 시야를 애써 붙잡던 나는, 그렇게 잠이 들었다.
***
“···!?”
화들짝 놀라며 깨어났다.
미처 잠이 들 줄은 몰랐던 탓이다.
내 몸은 소파에 길게 눕혀진 채, 위로 따뜻한 담요가 덮여 있었다.
옆에는 이용수가 있었다.
보아하니 그도 침대에 기대어 졸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가 말했다.
“식사하시라고 할까 하다가··· 곤히 주무시길래 깨우질 않았습니다.”
“···제가 얼마나 잤죠?”
그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얼마 안 주무셨습니다. 3시간 정도?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그를 따라 거실로 나가자, 식탁 위로 무언가 이것저것 세팅되어 있었다.
그 위에 차려져 있는 것은 놀랍게도···
전형적인 한국인의 밥상이었다.
휴대용 가스버너 위로 전골냄비가 올려져 있었고,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김칫국물 사이로 통통한 꽁치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거기에 고소한 냄비밥 냄새까지.
‘···이게 가능한가?’
며칠 내내 맡아오던 멸망의 냄새가 일순에 지워졌다.
이용수의 아내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더 좋은 걸로 대접해드려야 하는데··· 재료 종류가 많지 않아서요. 아쉬운 대로 볶음김치랑 꽁치통조림으로 만들어봤어요. 저랑 딸아이는 먹었으니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드세요.”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딸이 있는 작은 방으로 떠나갔다.
간단히 말해 이건 그거였다.
꽁치 김치찜.
내가 자는 사이 트럭에서 재료를 꺼내온 모양이었다.
그중에 쓸만한 재료를 아낌없이 넣어 특식을 준비해준 셈이다.
이용수가 채근했다.
“어서 드세요.”
“아··· 그럴까요?”
후르릅.
국물은 더한 감동이었다.
볶음김치의 달고 기름진 맛을 어떻게 해소한 것인지, 입안에 남는 것은 담백한 꽁치와 김치의 감칠맛뿐이었다.
김치 조각이 작은 건 아쉬웠지만, 자작이 끓은 국물과 밥알을 섞으니 별미도 이런 별미가 없었다.
“···잘 먹었습니다.”
단숨에 그릇을 비웠고, 마찬가지로 식사를 마친 이용수가 믹스커피 두 봉을 꺼내왔다.
그러곤 가스버너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멍하니 버너에 피어오른 푸른 불꽃을 바라보던 중, 이용수가 입을 열었다.
“목적지가 강남이라고 하셨죠?”
“예, 우선은요.”
“태워다 드리겠습니다. 쉬실 만큼 쉬시다가··· 편하실 때 출발하시죠.”
“예?”
당초 그가 동행하기로 한 것은 이곳 인덕원까지였다.
서울로 통할 수 있는 길목 중 하나였으니까.
그가 말을 이었다.
“아내와도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정겸 씨가 가족을 찾으러 간다고 했더니··· 어디 우리 가족만 가족이냐고 하더군요. 아내나 딸아이나, 트럭에 챙겨온 물자들을 내려놓고 가면 최소 몇 달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제가 그전에는 돌아오겠지만···”
서울로 오가는 길.
그 길이 위험천만할지도 모른다는 당연한 말을, 그는 하지 않았다.
쪼르륵.
그저 시치미를 뗀 채, 내 잔에 뜨거운 물을 따를 뿐이었다.
뭉근하게 수면 위로 떠 오르는 커피 프림을 보던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놀란 이용수를 향해 말했다.
“잠시 기다리세요.”
아공간으로 향하는 포탈을 열었다.
.
.
.
“팍스, 레벨을 올리면 나 말고 다른 사람도 들일 수 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타인(他人)은 2레벨부터 수용이 가능합니다.]“2레벨이 되면, 몇 명이나 수용할 수 있어?”
[최대 20명까지 수용이 가능합니다.]“오··· 꽤 되네?”
[그렇습니다.]나는 손가락을 펼쳐 우리 가족의 수를 헤아렸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
형과 형수, 그리고 두 누나까지.
이들을 빼고도 열세 자리가 남았다.
이용수와 그의 가족들을 너끈히 넣고도 남는 숫자였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마석 100개라는 어마어마한 가격.
하지만···
잘그락!
나는 큼지막한 더플백을 풀어헤쳤다.
새벽 내내 저글링 도축쇼를 벌였을 때 마석을 담아두었던 가방이다.
“세어줄 수 있어?”
[확인해보겠습니다.] [···총 116 개입니다.]“레벨업, 진행해줄래?”
[괜찮으시겠습니까?] [아공간 레벨 2에서는 전력 유지 비용이 24시간마다 마석 3개로 조정됩니다.] [수도/가스 비용 또한 24시간마다 마석 3개로 동일합니다.]더 큰 능력에는 그만한 비용이 따른다는 거였다.
적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겁낼 비용은 아니었다.
나는 점차 강해지고 있었으니.
[알겠습니다.] [레벨업 진행 중···]두웅-
순간, 붉은색 파장이 번쩍하고 공간을 휘감았다.
눈 깜짝하는 사이 원래의 흰 배경이 돌아왔고···
“끝난 거야?”
[그렇습니다.] [이제 원하시는 대로 타인도 아공간에 수용하실 수 있습니다.]레벨 2를 찍었다.
새로운 능력이 무엇인지, 어떤 스킬을 강화할 수 있는지는 차차 확인하기로 했다.
지금 당장은 할 일이 있었으니.
그렇게, 아공간을 빠져나왔다.
.
.
.
“···오셨습니까.”
이용수가 식은 커피잔을 홀짝거렸다.
애써 서울로 데려다주겠다는 제안을 했는데, 돌연 내가 자리를 벗어났으니 조금은 멋쩍기도 했으리라.
내가 그의 제안에 답했다.
“좋습니다. 같이 가시죠, 용수 씨.”
“예예, 마음 정하셨군요. 그럼 언제···”
“단, 혼자는 안 됩니다.”
“예?”
위잉-
포탈을 열어둔 채 말했다.
“아공간의 레벨을 올렸습니다. 이제 다른 사람도 들일 수 있어요. 용수 씨도, 용수 씨의 가족들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가 반색했다.
내 아공간이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무적이라는 것.
그리고 그 안에 무한한 물자가 들어있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으니.
지구상에 존재할 그 어떤 요새보다도 안전할 터였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라면···”
“강남이 끝이 아닙니다. 을지로, 도봉구, 의정부까지. 끝까지 저를 데려다주시죠. 제 가족을 구하는 일에 계속해서 힘을 빌려주신다면··· 저 또한 용수 씨의 가족을 끝까지 지켜드리겠습니다.”
그에게 내가 필요한 것처럼, 나 또한 그가 필요했다.
먼 길을 이동해야 하는 나에게 그의 <베스트 드라이버> 능력은 큰 도움이 될 테니.
벌떡!
내 말을 들은 이용수가 몸을 일으켰다.
“둘을 데려오겠습니다. 바로 출발하시죠.”
***
[외부의 존재가 입장을 시도합니다.] [이용수, 오지수, 이유정의 입장을 허가하시겠습니까?]“허가할게.”
내 허락이 떨어지지마자, 세 사람이 아공간 안으로 들어왔다.
“와아···”
세 사람은 포탈을 넘어오자마자 탄성을 내질렀다.
창문 밖으로 광활히 펼쳐진 아공간도 그렇지만, 애당초 풀필먼트 센터의 시설 자체가 장관이기는 했다.
미래 도시를 연상시키는 최신식 시설에, 자동화된 AGV 로봇이 이리저리 선반을 옮기고 있었으니.
나는 이용수와 그의 아내 오지수를 데리고 가장 먼저 픽킹 스테이션으로 데려갔다.
“여기 보이는 PC에서 품목을 검색하고 주문 버튼을 누르면 됩니다. 그러면 물건이 여기로 자동 배달될 거예요. 지내시면서 필요한 물건은 알아서 주문해서 쓰시면 됩니다.”
아포칼립스에서의 즉시 배송이라니, 이용수는 기함할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그의 아내, 오지수가 눈을 빛냈다.
“혹시 식재료들도 많이 있을까요?”
“여기가 1층인데, 3층에 프레시 센터가 있어요. 어지간한 음식 재료는 거기에 다 있을 테니··· 필요하면 주문해서 쓰세요.”
“세상에··· 너무 좋아요!”
그녀가 감탄하며 얼굴을 감싸쥐었다.
새삼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각종 채소류에 고기, 싱싱한 해물들까지.
정작 나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던 곳이었다.
직원 식당에 있는 조리실까지 그녀가 알뜰살뜰하게 써먹어 줄 듯했다.
분위기도 살릴 겸, 물건을 주문하는 법을 시범으로 보여주었다.
[시크릿 주주 캐릭터 하우스, 가격은 41,360 원입니다.]AGV로봇이 분홍빛 찬란한 여아용 장난감을 가져왔고, 딸 유정이에게 선물을 건넸다.
선물을 받은 아이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듯, 자기 부모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어쩐지 멋쩍은 기분이 들어, 농담을 건넸다.
“···취향에 안 맞으면 교환도 가능하단다.”
그제야 이용수가 딸의 등을 토닥였다.
“감사합니다- 해야지.”
“감샤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유정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오지수와 유정이를 직원 휴게실에 데려다준 뒤, 이용수와 나는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가 운전하는 차가 천천히 골목을 빠져나갔다.
그는 몇 번이고 고개를 뒤로 돌렸다.
자신이 살던 오래된 빌라를 눈에 담기 위해.
세 들어 살던 월셋집.
멸망한 세상 속, 소유권의 개념 자체가 풍비박산 난 지금이었지만, 그가 온존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법적 효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
가족사진 하나 챙겨오지 못했다.
아공간이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허락된 것은 그저 거대한 풀필먼트 센터, 단 하나뿐이었다.
돌이켜 보자면···
아공간 물류센터에는 세상의 모든 물건이 담겨 있었다.
단, 없는 것만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