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8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80화(80/240)
080화 악마와 성기사 (1)
악마들의 침공 계획을 알게 된 직후, 내가 찾은 곳은 드워프들의 공장이었다.
“여긴 어쩐 일이시오?”
터엉!
한창 두드리던 망치를 내려놓은 쿠퍼.
이제는 엘븐하임에 위치한 공장이었다.
제 발로 움직일 수 있는 이동식 공장.
새로 얻은 ‘포탈 운송’ 능력을 활용한 덕에, 아공간에 수용하는 일 없이 통째로 옮겨올 수 있었으니까.
내가 쿠퍼에게 대답했다.
“무기 좀 만들었으면 해서요.”
당장 쓸 무기가 없는 건 아니었다.
신성력을 최대로 강화한 에메스 여신의 H빔과 성창.
그것만으로도 저 사악한 악마 놈들의 땟국물을 제대로 떨어 버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쓸 수 있는 무기도 확보해 둬야지.’
상공회의소는 점점 더 강한 적들을 지구로 밀어 넣고 있었다.
놈들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서는 나 또한 그만한 전력을 갖춰야 할 터.
다행히 남부군을 상대했을 때보단 시간이 있었다.
“분명, 열흘이라고 했었죠?”
고등급 무기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
그건 ‘공장’의 원자로를 이용해 아이템에 회로를 그려 넣는 것이었다.
정교한 작업이니만큼,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이었지만······.
“대표님 부탁이라면 안 되도 되게 해야지요.”
쿠퍼가 씨익 미소를 흘렸다.
쾌적한 생활 환경과 풍성한 일거리.
워라밸의 균형을 맞춘 드워프들은 한풀 내게 살가워져 있었으니까.
쿠퍼가 내게 물었다.
“방법은 얼추 기억하시지요?”
“얼추 기억합니다. 조건을······.”
이미 한차례 제작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들은 터였지만, 쿠퍼가 한 번 더 상세히 ‘마력 회로’의 개념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마력 회로는 단순한 그림이 아닙니다. 주인이 사물에 전하는 ‘말’ 같은 거지요.”
사물에 조건을 부여하는 것.
그것은 고등급의 아이템을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아이템에 부여할 조건을 말씀해주시면, 그 조건을 토대로 마력 회로를 새겨넣을 겁니다. 이후 그 조건이 달성되면 아이템에 랜덤한 속성이나 효과가 부여되죠.”
일종의 내기와도 같았다.
다만 그 상대가 사람이 아닌 사물, 즉 아이템이라는 점.
내가 어떤 성취를 이루겠노라 호언장담을 하면, 마력 회로가 그려진 아이템이 그 결과를 두고 보는 식이었다.
조건이 성취된 것이 확인되면, 평범했던 장비가 개구리 왕자처럼 고등급의 아이템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
그리고 당연하지만······.
“대충 아무 조건이나 붙이는 건 안 되겠죠? 1시간 뒤 점심밥을 먹겠다거나······.”
“물론이외다. 그런 좀스러운 조건에는 훌륭한 혼이 깃들 수 없으니까.”
사물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
그건 사물에 미약하게나마 모종의 의식을 심어 주는 일이었다.
쿠퍼가 사물의 ‘혼’라고 부른 그것.
더 훌륭한 혼을 불러들이기 위해, 그에 걸맞은 비범한 조건을 약속해야만 했다.
“딱 좋네요. 그럼 일단 이걸로······.”
지잉.
내가 꺼낸 것은 4강까지 강화를 마친, 에메스 차원의 성창이었다.
“호오······.”
성창을 이리저리 살피는 쿠퍼.
드워프들의 무기만큼은 아닐지 모르지만, 나름 완성도가 좋은 무기였다.
‘추적 배송’과의 시너지 덕에 자주 애용해 오던 물건.
한편, 작업물을 받아 든 쿠퍼가 내게 마지막 재료를 요구했다.
“······그럼, 어떤 조건을 새기겠소?”
오래 고민할 것도 없었다.
당장 내가 맞닥뜨리게 될 적은 다름 아닌 악마족들.
그리고 신성력을 두른 성창은 놈들을 처리하기 위한 둘도 없는 무기였으니까.
거기에 더해 나는······.
“성창을 이용해 악마족 1000마리 처치. 이 정도면 충분할까요?”
이 창을 아예 악마들의 도살자를 만들어 버릴 작정이었다.
쿠퍼는 말했다.
어떤 조건을 부여받았는지가, 향후 개화하게 될 아이템의 특성을 결정하게 된다고.
모르긴 몰라도, 천 마리의 악마를 잡아먹은 성창이 그저 그런 아이템으로 그칠 리 없었다.
“충분하다 마요. 그것참······.”
흡족한 표정의 쿠퍼.
그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악랄한 놈이 만들어지겠소······.”
***
다음으로 내가 향한 곳은 민우가 입원한 강남의 세브란스 병원이었다.
“······오셨군요. 이쪽입니다.”
민우의 병실까지 나를 안내해 주는 세브란스의 간호사.
다행히 힐러들을 통해 치료받은 덕에, 민우는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했다.
드르륵!
부드럽게 열린 병실 문.
간호사가 우리 두 사람을 남기고 나가자마자, 민우는 풀썩 고개를 숙였다.
“······면목 없다.”
“뭘······ 우리보다 센 놈들 튀어나온 게 한두 번도 아닌데.”
자그마치 7위계에 달하는 가고일.
지금의 민우로서는 이길 수 없는 적임이 분명했다.
포탈 근처로 끌어들여 싸웠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사정거리를 벗어난 위치에서 전투가 벌어졌다고.
그 치열했던 전투를 떠올리며, 민우는 몸서리를 쳤다.
“진짜 세더라. 날붙이가 전혀 안 들어가더라고.”
“······‘석화’ 말이지?”
유성철이 보여 준 영상을 통해 이미 확인한 바였다.
자그마치 4강까지 강화된 운양검이었지만, 돌처럼 굳어 버리는 가고일의 피부를 뚫어내지 못했으니까.
녀석이 걱정스럽다는 듯, 내게 물었다.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녀석 또한 짐작하고 있었다.
기존의 전력만으로는 페르메곤의 악마들을 상대할 수 없다는걸.
하지만······.
“괜찮아, 그동안 괜히 밖으로 싸돌아다닌 게 아니니까.”
다니는 족족 좋은 관계를 쌓아온 덕이다.
일본의 봉인사 다이치, 그리고 미국의 프리스트 글렌이 지원을 약속했다.
엘븐하임의 엘프들을 은 화살로 무장시키기로 했고, 대수림의 드루이드들 또한 악마족의 오염을 막아주겠다고 나선 상태.
영약을 찾으러 떠난 무림인들이 빠지긴 했지만, 그들조차도 베이징에 남아 있는 인력 일부를 파견하겠다고 전해왔다.
실로 막강한 전력이었다.
능력도, 직업도, 심지어는 인종과 종족도 다르지만, 악마족을 맞닥뜨린 이번만큼은 하나로 뭉치게 될 터.
“······그렇구나.”
그제야 조금은 마음을 놓는 민우였다.
***
“어후, 힘드네······.”
깜깜한 저녁이 내려앉았을 즈음.
나는 축 처진 몸을 이끌고 아공간으로 들어왔다.
도무지 쉴 틈이 없었다.
미국에서의 상황이 정리되자마자, 들이닥친 악마들 탓에 한껏 마음을 졸였으니까.
“······그래도 조금은 쉬어야지.”
14일이라는 빠듯한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급한 일은 얼추 끝마쳐둔 참이었다.
적어도 오늘 밤만큼은 여유를 부려도 될 것이었지만······.
휴식을 취하러 물류센터에 있는 내 방으로 향하던 길,
“······?”
심상치 않은 광경이 내 시선을 붙잡아 버렸다.
저벅저벅.
두꺼운 사각형 물체를 옆구리에 낀 채 물류센터를 가로지르는 김솔.
“저건······?”
타악!
서둘러 달려간 나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대체 무슨 일이야······?”
“뭐가?”
“아니, 그렇잖아, 지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옆구리에 끼워진 사각형의 사물.
그건 다름 아닌, ‘책’이었으니까.
“벼락이라도 맞은 거야? 왜 책을······.”
“······뒤지고 싶냐?”
단언컨대 살아생전 본 적이 없는 광경이었다.
책 읽는 김솔.
20년 이상 한 지붕 아래 살아 본 내 입장으로는, 그건 멸망 이상으로 생소한 모습이었다.
다행히, 오래지 않아······.
띠링!
[개역 개정 아가페 성경전서 새찬송가, 가격은 31,500원입니다.] [코란(꾸란), 명문당, 가격은 18,000원입니다.] [반야심경: 산스크리트, 가격은 19,000원입니다.]팍스가 그녀가 들고 있던 책들의 정체를 알려 주었다.
서슬 퍼런 눈빛으로 하늘을 쏘아보는 김솔.
“입 닥쳐, 팍스.”
“······성서? 코란? ······반야심경?”
세계 3대 종교의 대통합을 일궈낸 그녀였다.
그리고······.
김솔이 생에 인연도 없는 책을 꺼내든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너 설마······.”
다른 게 없었다.
곧 다가올 악마족들의 침공.
그 소식이 아공간의 가족들에게도 전해진 참이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내게 강- 같은 평화 ♬ 내게 강- 같은 평화 ♬
한쪽에 세워진 스피커에서 묘한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찬송가?”
띠링!
[은혜의 찬송가 명곡집, 4CD, 가격은 13,500원입니다.]그제야 보였다.
스피커 근처에서 엉거주춤 CD를 들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곳곳에 줄 달린 십자가를 걸고 있는 어머니와 형, 그리고 제임스의 모습을.
황당하다는 듯한 내 표정 때문인지, 제임스는 떠듬떠듬 변명하기 시작했다.
“엑소시즘. 킬. 데몬.”
“왜 갑자기 통역 안 쓰는데······.”
그리고 그 대미를 장식한 것은······.
우르르르르르!
솔렌을 비롯한 수십 마리의 마농족이었다.
지리산으로 난 포탈을 나오자마자, 내 주위로 몰려드는 마농족들.
실로 갑작스러운 방문이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저······ 정경 님, 오늘따라 참 밤이 깊은 것 같습니다. 밤바람도 꽤 찬 것 같고······.”
두서없이 이런저런 말을 주워섬기는 솔렌.
그 결론은······.
“······오늘, 같이 자면 안 될까요?”
“······?”
역시나 두려움이었다.
인제 보니 파들파들 세차게 몸을 떨고 있는 솔렌이었다.
함께 건너온 마농족들 또한 상태 또한 매한가지.
짧은 두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은 털북숭이들이 촉촉한 눈망울을 빛내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게 이렇게까지 무서워할 일인가?’
결국 이 모두가 악마족의 침공 소식이 만든 촌극이었다.
지금껏 산전수전을 다 겪은 가족들과 동료들이다.
인제 와서 악마라는 이름에 벌벌 떠는 모습이 퍽 이상하기는 했지만······.
‘······민우 때문인가.’
생각해보니 이해 못 할 것까지는 아니었다.
실제로 당한 사람이 나타난 상황이니까.
그러던 중······.
뚜벅뚜벅.
또 다른 누군가가 아공간에 발을 들였다.
‘······또?’
하지만 이번엔 두려움에 찬 누군가가 아니었다.
‘공장’에 있던 드워프, 쿠퍼.
저녁 늦게까지 작업을 이어가던 그가 이제 막 아공간으로 복귀한 모양이었다.
“······이게 다 뭐요?”
천천히 흘러나오는 찬송가 소리.
거기에 파르르 몸을 떨고 있는 수십 마리의 마농족들까지.
그야말로 개판이었지만, 쿠퍼는 오래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표님. 드릴 말씀이 있소.”
그저 내게 용건을 전할 뿐.
“뭐죠?”
“방금 회로 설계를 끝마친 참입니다. 아흐레 정도면 각인 작업도 끝이 날 것 같은데······ 14일 뒤까지면 시간이 좀 남을 것 같아서.”
“······그 말은?”
“뭔가 하나 더 만들어도 될 것 같소.”
그들에게 부탁했던 것은 성창에 마력 회로를 그려 넣는 것.
하지만 정작 성창은 그들이 만든 무기는 아니었다.
요컨대, 그가 제안하는 것은······.
“드워프제 무기도 하나쯤은 있으셔야지. 특별히 원하시는 무기가 있소?”
추가적인 무기 제작이었다.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성창과 H빔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워낙 내게 특화된 무기이기도 했으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좀 더 성기사 다운 무기를 쥐여주는 편이 좋을 것이라는 판단.
“있죠. 그거라면 역시······.”
깊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성기사의 상징, 성기사의 로망 그 자체인 무기가 있었으니까.
다름 아닌······.
“망치죠. 전투용 워 해머.”
악마족의 출현에 두려움에 떨던 사람들.
그들 모두 믿음을 되찾을 터였다.
악마들의 뚝배기가 실시간으로 분쇄되는 것.
그 신성한 광경을 눈앞에서 보게 될 테니까.
악마와 성기사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