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81)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81화(81/240)
081화 악마와 성기사 (2)
지이익······.
지직······.
물류상황실 프린터로부터 뽑혀 나오는 문서.
그 정체는 다름 아닌 페르메곤과의 전쟁에 관한 상공회의소의 공문이었다.
“이제 나오는구나.”
이미 소식은 전해 들은 터다.
오래지 않아 유럽의 악마들이 한국을 침공한다는 것.
하지만 구체적인 위치나 룰에 대해서는 제대로 전해 듣지 못했었는데, 그 상세한 내용을 공지하기 위해 추가적인 공문이 내려온 것이었다.
그 방식 자체는 이전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전쟁을 선포하고, 각자 배정된 ‘대표’를 먼저 죽이는 쪽이 승리하는 방식.
다만······.
“한국 대표라······.”
[한국 대표 : 김정겸]부산, 후쿠오카로 싸웠던 지난 국지전과는 달리, 이제는 아예 국가 단위의 싸움이 되어 버렸다.
하물며 상대는 유럽을 통합했다고 하니 어쩌면 대륙과 국가 간의 싸움이라 봐야 할 지도.
일본 지부로 하달된 명령에는 며칠 뒤 선전포고가 내려질 테니, 그 시점에 맞춰 ‘김정겸’에게 홀로그램을 부여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물론······.
“안 하면 그만이지.”
누구 좋으라고 머리 위로 이름표를 달겠는가.
무심한 건지 뭔지는 알 수 없어도, 아직 상공회의소는 일본 지부가 통째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공문서까지 내려보내는 걸 보면.
시기도, 싸울 방식도 확인했다.
이제 남은 것은 한국에 설치된다는 게이트 포탈의 위치.
의외로 그리 멀지는 않은 곳이었다.
“북한산이라······.”
지역을 선정한 기준은 보나 마나 나일 게 분명했다.
놈들이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다름 아닌 나를 잡아야 하는 상황.
그리고 나는 한때 상공회의소가 선정한 ‘서울’ 대표이기도 했으니까.
한국, 그것도 내가 있으리라 예상되는 서울을 콕 집어 게이트를 열어주는 걸 보면, 상공회의소가 은근히 페르메곤의 손을 들어주는 눈치였다.
“하긴······.”
당연한 일이었다.
지구에서 가장 잘 성장한 지역, 한국.
한편, 지구에서 가장 수수료 안 내는 지역도 한국이었다.
이윤을 숭상하는 상공회의소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
“뭐가 됐든, 대피부터 시켜야겠네.”
모르긴 몰라도 대규모 전투가 예상되는 상황.
아무리 북한산이라지만, 주변 지역의 민간인들이 싸움에 휩쓸리는 건 곤란했다.
다행히 대피가 어렵지는 않았다.
‘포탈 운송’으로 다른 포탈로 옮겨 주면 될 일.
마침 대피할 만한 넉넉한 장소도 마련돼 있었으니까.
“엘븐하임이 이럴 때 참 좋구나.”
비교적 작다고는 하지만, 대륙은 대륙이다.
온 땅을 뒤덮은 세계수 외에는 텅텅 비어있는 땅이 많았기에, 통제만 제대로 된다면 수십만 명의 피난민을 몰아넣어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한동안 산채 비빔밥만 먹어야겠지만······ 뭐,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지금도 꾸준히 각성자가 생겨나고 있었다.
살아남는 사람이 많다는 건, 그만큼 지구가 강해질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
사람을 살리는 일은 팍스FC에게 있어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그럼······.”
합참의 도움이 무조건적으로 필요한 일이었다.
수십만 명의 대피를 도우려면, 대규모의 인력 통제가 필연적이니까.
“알겠습니다. 근처 부대들에도 내용을 전달해 두죠.”
나와 뜻이 다르지 않은 만큼, 유성철은 흔쾌히 요청을 받아들여 주었다.
.
.
.
유성철과 대화를 마친 뒤, 나는 란슬롯을 불러냈다.
용건은 간단했다.
엘븐하임으로 대피하는 민간인 행렬을 호위해 달라는 것.
행렬이 숨은 괴물을 만나거나, 많은 사람이 움직이는 만큼 크고 작은 난동이 일어날 수 있었으니까.
“맡겨두시지요.”
여느 때처럼 충성스럽게 대답하는 란슬롯.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어쩐지 모를 그늘이 서려 있었다.
내가 덧붙였다.
“······이번은 상대가 좀 그러니까.”
“물론입니다. 그저······ 주군을 보필할 수 없는 제 능력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존재 자체가 언데드인 카멜롯의 기사들.
엘프 장로들의 도움으로 간지러움으로부터는 해방되었지만, 그렇다고 그 근본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 신성 무기만 아니었어도······.”
강화된 신성 무기.
악마족들과 싸우기 위한 필수적인 무기였지만, 정작 해골 기사들에게는 그 신성력이 극독으로 작용해 버렸다.
잡거나 드는 것조차 어려운 마당에, 행여나 아군이 던진 성창에 스치기만 해도 상당한 피해를 각오해야 하는 상태.
결국 이번만큼은 카멜롯의 기사들이 전력 외로 취급될 수밖에 없었다.
‘······세계수가 조금만 더 빨리 자랐더라면.’
장성한 세계수와 숙련된 드루이드.
기사들의 회생과 관련해, 엘프 장로가 이야기해 준 요건이었다.
미국에서의 일이 일단락된 뒤, 드루이드들에게 카멜롯의 기사들을 되살려줄 수 있느냐 물었지만······.
-더 자라야 합니다. 아직은 부족해요.
카멜롯에 심어 놓은 세계수의 성장이 부족하다는 답변을 들을 뿐이었다.
‘착취’를 가했다 풀기를 반복하며 세계수에 최대한의 시련을 부여하고 있는 카멜롯.
원래보다 몇 배는 빨리 성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언데드의 뼈에 새 살점을 내려주기엔 아직 그 힘이 모자랐다.
하지만, 그 이상 서글펐던 것은······.
“조금만 기다려. 꼭 다시 되살려 줄 거니까.”
“괜찮습니다. 주군······.”
되살아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지 않는 카멜롯의 기사들이었다.
“이미 지나간 생이라는 걸, 저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주군의 뜻을 가볍게 여길 생각을 추호도 없으나······ 그 모두가 미약한 가능성일 뿐이지요. 그 작은 가능성이 되레 주군을 갉아먹는 결과로 이어질까, 저는 그것이 가장 두렵습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미약한 가능성은 사람을 갉아먹으며, 실패한 가능성은 어마어마한 대가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철걱철걱.
피난민들을 호위하라는 명령에 따르기 위해 움직이는 란슬롯.
발걸음에 따라 그의 저주받은 갑옷이 흔들렸다.
“주군을 위해 칼을 잡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합니다. 이미 많은 것들을 이뤄왔으니까요.”
란슬롯은 그렇게 덧붙였다.
***
한국으로 향하는 게이트 포탈 형성까지, 고작 한 시간을 남겨두었을 시점.
“······이제 시작이군요.”
펄럭.
새카만 몸 뒤로, 큼지막한 날개를 펼친 악마, 페르메곤이 입을 열었다.
그의 앞에는 한 남자가 등을 지고 서 있었다.
예민함이 느껴지는 반듯한 정장.
거기에 남모를 연륜이 느껴지는 쓸어 넘긴 백발까지.
남자의 이름은 스탠리.
다름 아닌 상공회의소의 유럽 본부장이었다.
“본부장님의 도움이 정말 컸습니다. 처음에는 참 치열했는데······.”
감회가 남다른 페르메곤이었다.
본부장 스탠리의 은밀한 지원 끝에, 다른 수십 개의 차원을 제치고 유럽의 유일한 주인으로 올라선 그.
물론 서유럽에 국한된 데다가 아일랜드를 비롯한 몇몇 지역에서의 점령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규정을 교묘하게 비튼 스탠리가 페르메곤의 승리를 선언해 버린 상태였다.
“뭘요, 페르메곤이야말로 정말 잘해 주셨습니다.”
그제야 스윽 뒤를 돌아보는 스탠리.
페르메곤 또한 그럴만한 자격이 있었다는 듯, 그가 덧붙였다.
“가고일의 활용이 특히 좋았어요.”
석화 가고일.
그것이 페르메곤이 유럽을 휩쓸 수 있었던 이유였다.
기민한 기동력을 지닌 가고일들이 빠르게 적진에 침투했고,
특유의 건설 능력을 이용해 적진 한 가운데에 ‘둥지’로 쓸 수 있는 성을 빠르게 축조해 버렸다.
페르메곤으로서는 매 전투마다, 튼튼한 전진 거점을 사용할 수 있었던 셈.
빠르게 세를 넓히는 페르메곤 앞에, 현대전에 익숙한 유럽의 각성자들은 빠르게 무너져 버렸다.
그 결과······.
유럽에는 수천 개의 성이 새롭게 지어졌다.
얼핏 보기엔 멋들어진 중세 유적과도 같은 풍경이었지만······ 실상은 포로들을 넣어두기 위한 수용소였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지구인들을 살려두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제 이 ‘시시포스’만 똑바로 완성하면 되겠군요.”
“맞습니다.”
그들의 눈앞에는 두꺼운 원판 형태의 구조물이 놓여 있었다.
비스듬히 누운 케이크 같기도, 넘어질 듯 기울어진 쳇바퀴 같기도 한 형태.
그 방식은 간단했다.
인간들을 입구에 집어넣고, 비스듬히 기울어진 미로를 지나게 하는 것.
그리고 시시포스가 제공하는 환상에 젖어 들도록 하는 것.
하지만 미로의 끝에서 자신의 소원에 다다랐을 때······.
휘리릭!
빠르게 원판을 굴려 출발 지점으로 되돌려보내는 것.
희망과 좌절의 수레바퀴를 통해 인간의 정신을 수렁에 빠뜨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무한히 반복했을 때 나오는 것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 정도 수의 원혼이라면, 감히 바르나울에게 제안을 해볼 만도 하겠어요.”
“벌써 마음이 뜁니다. 바르나울의 하청이라니······.”
원혼, 혹은 다른 이름으로 망령.
그것이 페르메곤이 인간들로부터 얻어내려는 것이었다.
더 정확히는 그렇게 모은 원혼을 바르나울이라는 흑마법사들의 차원에 팔아넘기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본부장 님이 아니었다면······ 페르메곤은 한평생 중소 차원으로 머물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름 아닌 스탠리의 계획이기도 했다.
한국으로의 선전포고 또한 마찬가지였다.
각성 능력에 비례하는 원혼의 질.
지금 한국은 지구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원혼들이 모여있는 곳이었으니까.
그리고······.
페르메곤은 본부장의 깊은 속내를 미처 알지 못했다.
‘······그 정도는 돼야 바르나울을 끌어들일 수 있겠지.’
홀로 말을 삼키는 본부장 스탠리.
그가 양손에 찬 손목시계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예, 준비하겠습니다.”
악마, 페르메곤이 뿔을 번들거리며 덧붙였다.
“가시죠, 한국에.”
***
한국으로 향하는 게이트 포탈을 앞,
퍼드드드······
퍼드드득!
하늘을 메운 수천 마리의 가고일이 날갯짓을 했다.
녀석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벽돌이 한아름 안겨 있었다.
포탈을 통과하자마자 북한산 주변을 성벽으로 에워쌀 생각.
중간에 공격을 받더라도, 석화를 이용하면 몸과 성을 동시에 굳혀 보호할 수 있었다.
-카카카카카카······.
-카카카칵!
성을 짓고, 하늘을 누비며 인간들을 찢을 생각에 한창 신이 난 가고일들.
게이트 포탈을 둥글게 에워싼 그들이 이제는 숨죽여 페르메곤의 신호를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가라!
-카아아아아아아!!!
-카아아아아악!!
고성을 지르며 가고일들이 쏜살같이 포탈로 침입해 들어갔다.
슈우웅!
슈웅!
“어디······.”
페르메곤은 즉시 눈알 악마를 보내 사태를 관찰했다.
꿀렁꿀렁 유럽에서 넘어온 가고일을 뱉어내는 게이트 포탈.
지구로 넘어온 가고일들이 저마다 정해진 위치로 산개했고······.
파바바박!
파바박!
빠른 속도로 성을 쌓기 시작했다.
그렇게,
낮게 쌓은 담장이 서로서로 연결되려던 찰나······.
-카아아아악!?
“······어?”
꽈아아앙!
파사삭!
날아든 거대 망치 한 자루가 성벽과 함께 놈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화들짝 눌란 페르메곤이 두 눈을 비볐다.
아무리 기습당했다지만, 석화를 사용한 가고일이었다.
그런 놈이 단 한 방이라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그였지만······.
“택배 왔습니다. 문 열어주세요!”
꽈앙-!
파사사사삭!
망치를 든 팍스맨들의 파괴는 계속됐다.
꽝!
파삭!
우지끈!
가고일이 성을 쌓는 족족, 거대한 망치가 날아들어 부숴버리는 상태.
석화를 통해 내구도를 강화해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다들 모여! 떨어져 있으면 각개격파 당한다! 모여서 작게 만들어!”
페르메곤의 지시에 따라 사사삭 좁은 위치로 모여드는 가고일들.
한결 빠르게 자그마한 내성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지만······
투두두두두두!
귀를 찢을 듯한 소음이 그림자를 만들었다.
“······?”
눈알 악마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팽팽 프로펠러를 돌리며 멈춰 있는 헬기.
그로부터······
“······?”
“······?”
쿠웅!
쿵!
성기사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수십, 아니 수백.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이.
악마와 성기사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