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82)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82화(82/240)
082화 악마와 성기사 (3)
빠르게 무너져 내리는 가고일의 성벽.
북한산의 가파른 산비탈을 타고, 돌처럼 부서진 가고일의 머리통이 데굴데굴 굴러갔다.
드워프들이 만든 ‘전투 망치’.
아직 조건을 부여한다거나, 그와 관련한 각인 작업이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 효과는 탁월했다.
드워프들의 솜씨 또한 빛났다.
거대한 육면체가 양쪽으로 드러난 망치 헤드.
최소 십수 마리, 많게는 수십 마리의 석화 가고일을 깨부쉈음에도 망치의 타격면에서는 흠집 하나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더욱이, ‘전투 망치’의 탁월함은 단순한 내구성에만 있지 않았다.
“마음에 드시오?”
“들다마다요.”
내가 열어둔 포탈에서 빼꼼 고개를 내미는 쿠퍼.
그 또한 드워프들이 애써 만든 ‘전투 망치’의 실전이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신전 기둥처럼 오목하게 파여 있는 전투 망치의 긴 손잡이.
볼록하게 튀어나온 실선은 에너지를 수용하고 전달할 수 있는 특수한 전도체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결과 각성 능력이나 보유한 위계의 힘을 망치 헤드까지 전달할 수 있었다.
화르륵!
파지지지직!
그 결과, 화염 능력을 각성한 자들의 망치 헤드에는 은은한 잔불 어렸고, 전기 능력을 각성한 자들의 공격에서는 전기 충격이, 그마저도 아니라면 각성 또는 위계에서 전달된 위력이 파르르 진동을 일으키며 가고일들의 성벽을 볼링핀처럼 쓸어 넘길 수 있었다.
아이러니 한 일이지만, 페르메곤이 선택한 전략은 결과적으로 더 많은 악마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설마설마했는데, 대뜸 성을 지어 버릴 줄이야.”
성을 짓기 위해 꾸준히 땅에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던 가고일들.
그런 녀석의 머리를 향해 성기사들의 망치가 내려꽂혔다.
‘석화’가 나름의 믿는 구석이었겠지만······.
우수수······.
모래알처럼 깨지고 조각나 바닥을 나뒹구는 놈들의 사체를 보고 있자니, 그건 틀려도 단단히 틀린 생각이었다.
손쉽게 정리되고 있는 페르메곤의 악마들.
하지만, 결코 놈들이 약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망치가, 그것도 무한대로 있었으니 망정이지······.”
가공할만한 건축 속도.
팍스맨들을 동원해 실시간으로 깨부수지 않았다면 정말 눈 깜짝할 사이, 북한산 한가운데에 페르메곤의 성이 생겨나 버렸으리라.
유럽을 제패했다는 이야기가 과연 허언은 아니었던 셈.
그리고 정확히 이 시점에서······.
“더러운 악마 놈들!”
“당장 이리 내려오지 못할까!”
페르메곤이 전략을 수정했다.
퍼득!
퍼드득!
더 이상 성을 짓기를 포기한 가고일들.
놈들이 날개를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쐐애액!
쐐액!
나무와 바위를 타고, 날개를 접었다 펴며 하늘로 치솟아 오른 악마들.
포탈을 빠져나오자마자 하늘로 솟구치는 걸 보니, 놈들이 목적을 바꾼 것이 확실했다.
휘리릭 날개를 움직이며 곳곳으로 산개해 나가는 가고일들.
북한산이 아닌, 다른 곳에 둥지를 짓기 위해 이리저리 뻗어나가는 놈들이었지만······.
슈슈슉!
슈슉!
아무리 빨리 기교를 부리며 날아간다 한들,
나의 ‘추적 배송’을 피할 수는 없었다.
푸욱.
“······카악!?”
오직 지상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던 석화.
상공에서 뾰족하게 날아드는 성창에는 타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니들한테 방법은 없어.”
비록, 나 홀로 그 많은 가고일들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쏴라!”
피웅!
피웅!
다행히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엘븐하임의 궁수들이 함께 하늘을 견제해 주고 있었으니까.
툭!
툭!
울창한 수림 사이로 젖은 빨래처럼 떨어지는 가고일들.
몸에는 하나같이 성창, 그리고 세공사가 깎아 만든 은제 화살이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하나같이 신성력으로 범벅이 된 무기들이었기에, 가고일들의 살갗을 뚫기엔 충분했다.
카아아아악!
악마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위기였다.
땅에서는 망치로 아작이 나고, 공중에서는 성창에 꽂히는 신세.
그저 게이트를 빠져나온 자신들의 운명이 야속하게만 느껴질 터였다.
그렇게······
한참이고 게이트에서 쏟아지는 가고일들을 처리했을 즈음.
휘이이이······
전투의 함성으로 얼룩졌던 북한산에는 적막이 내려앉았다.
한 마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돌처럼 부서진 놈들의 잔해가 흙먼지와 함께 바람에 휘날릴 뿐.
지이이잉.
푸른 얼룩 같은 게이트의 표면은 아무것도 뱉어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놈들이 공격을 멈췄다는 걸 의미했다.
“······끝났나?”
가고일들의 새하얀 돌가루가 눈처럼 뒤덮인 북한산.
조용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워진 분위기 속, 누군가 그런 소리를 뱉었던 것 같다.
그리고······
후우우우웅!
후우웅!
게이트로부터 뿜어져 나온 정체 모를 바람이, 우리 주변을 휩쓸었다.
“······뭐야?”
후웅!
후우웅!
바람은 북한산 나무들의 사이사이, 그리고 성기사들 사이사이를 자유롭게 활보했고 바닥에 깔린 하얀 돌가루를 잿먼지처럼 공중에 풀어댔다.
매캐한 분진이 피어오르며, 신성한 망치질로 달아올랐던 성기사들의 흥분을 차분히 꺼뜨렸다.
후우우우욱!
후우우욱!
바람은 점차 거세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작은 가루만이 날렸던 것이, 이제는 손가락만 한, 아니 더 나아가 가고일의 머리통을 실어 나를 정도로 강력한 바람으로 성장했다.
아니, 이쯤 되니 더 이상 바람이 아니었다.
바닥에 흩뿌려진 가고일의 사체를 주워 나르는 것은 바람의 역할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지엽적인 풍경이었으니까.
후욱!
귓가를 스쳤고,
비명.
후회.
울음소리가 섞여 들었다.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익숙하게 느껴졌기에.
“······망령?”
정확히 같다고는 할 수 없었다.
비록 저주받은 망령들이라고는 하나, 카멜롯의 망령들은 저마다 명징한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반면 페르메곤의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망령들은 흐느껴 울거나 고성을 내지르다가도 이내 깔깔거리는 광소를 내뱉으며 하염없이 북한산을 맴돌고 있었다.
살려줘.
살았다!
오래 기다렸지?
죽어!
산산조각이 난 언어들이 모래 알갱이처럼 귓가에 서걱거렸다.
한데 뒤섞인 가고일 석상의 먼지처럼, 망령들은 저마다 부딪히고 깎여 나가며 제 자신을 잃어만 갔다.
그리고······.
페르메곤이 망령들을 보낸 이유가 마침내 드러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바람들의 움직임은 파도와 같았다.
바깥으로 쓸려나갔다가, 이내 다시 포탈을 향해 모여드는 진자운동.
그렇게 돌아오는 길에는 죽은 가고일 석상의 돌가루가 모래사장처럼 되돌아왔다.
북한산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쌓인 백색의 모래성.
그로부터······.
푸하악!
콰드드득!
정체 모를 생명의 기운이 피어올랐다.
작은 모래 알갱이 사이사이로 피어오르는 살점.
그렇게 나타난 것은······.
크르르르르······.
사이사이로 하얀 성에가 껴버린 듯, 얼룩덜룩한 몸을 가진 거대한 괴물이었다.
스르륵.
스르르륵.
모래성 같은 놈의 몸은 끊임없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하지만 망령들은 시시포스의 언덕을 오르듯, 바닥의 모래를 퍼 올리며 계속해서 괴물의 형상을 유지해 나갔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 형태를 특정하기는 어려웠다.
크고 작은 가고일의 깨진 조각으로 이뤄진 몸.
북한산 곳곳에 줄기처럼 뻗은 그 몸이 이리저리 뒤엉킨 뱀의 형상과도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후우욱!
후욱!
나는 엘븐하임으로 잠시 물려두었던 해골기사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이러나저러나 놈을 겉돌고 있는 망령들의 존재는 여전했기에,
.
.
.
다행히, 임무를 마친 해골기사들은 아공간에 들어와 있었다.
투두두두두두!
헬기를 탄 채, 북한산의 상황을 내려다보며,
란슬롯은 내 불안한 예감이 맞았다는 걸 확인해 주었다.
“틀림없군요. 망령들입니다.”
그러곤 내 얼굴을 잠시 돌아본 뒤, 씁쓸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안타깝군요. 지구에서도 이런 일이······.”
틀림없었다.
유럽을 제패했다던 페르메곤.
놈들이 유럽의 사람들을 잡아다 원혼으로 만든 것이 틀림없었으니까.
란슬롯 또한 참담한 기색이었다.
침략자들에게 학을 떼던 그.
자신의 고향인 아발론에서 일어난 일이 다른 차원에서 반복되기를 결코 바라지 않았을 터였다.
어쩌면 나를 도와 지구의 멸망을 걷어내며,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같은 풍경을 보지 않으리라 다짐했을지도 모를 일.
“이미 저렇게 된 이상······ 더 이상 구할 방법은 없습니다.”
란슬롯이 말했다.
“저희처럼 아이템에 귀속되어 있다면, 최소한 맨정신이라도 유지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건······ 이제 맹목적인 에너지로 그저 치환되어 버리는 것뿐이지요.”
“그런가······.”
어쩔 수 없었다.
구할 수 없다면 한시라도 빨리 저 고통스러운 삶을 끊어 주어야 할 것이었지만······.
후우웅!
후웅!
성기사들의 망치질은 망령들을 가볍게 스쳐나갔고,
빠르게 쇄도한 성창은 놈들이 쌓아놓은 모래에 푹푹 꽂혀 있을 뿐이었다.
신성력이고 자시고, 물리 공격 자체가 아예 먹히지 않는 녀석.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놈이 마침내 공격을 시작했다는 데 있었다.
사아아아악!
사아아악!
모래 지옥처럼 성기사들을 집어삼키는 녀석.
‘상품회수’가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팍스맨들을 몇 이나 잃을 뻔했다.
사사사삭!
줄기처럼 뻗은 놈의 다리가 빠르게 나무와 나무 사이를 훑으며 내려가는 동안, 나는 타고 있던 헬기 안에서 무전을 넣었다.
“들립니까?!”
북한산을 누비는 팍스맨 성기사들.
그중에는 미국에서 데려온 프리스트, 글렌도 있었으니까.
망령들을 제거한다면, 저 괴물의 움직임 또한 멈춰 세울 수 있을 터.
혹시 성불도 가능하냐는 내 질문에, 글렌은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아니, 저게 망령이었습니까?
다행히 그에게 성불 스킬이 주어져 있었다.
지금이라도 망령들을 성불시키면 될 일이었지만······.
놈들이 일으키는 모래폭풍이 너무 거센 탓에,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만나는 길 잃은 영혼들마다 집으로 좀 보내주세요. 제가 잘 흩어드릴 테니······.”
결국, 남은 방법은 또 다른 방식의 ‘물리력’을 가미하는 방법뿐이었다.
내게는 폭발하는 신성 무기, H형강이 있었으니까.
잠시 한쪽으로 미뤄 뒀던 녀석이다.
지금은 악마족들을 잡아 성창의 조건을 달성하는 것이 급했으니.
불안정한 회로를 그려, 작은 충격에도 폭발하게 되어 있는 애물단지 같은 물건이었다.
거기에 신성을 최대로 부여해 둔 상태.
신성 폭발.
딱 그렇게밖에 이 무기를 특징지을 수밖에 없었다.
“모두 떨어지세요. 갑니다.”
그렇게, 나는 망령들이 그러모은 모래집 위로 거대한 신성 폭탄을 투하했다.
뻐어어어어엉!
강력한 폭발과 함께 사방으로 터져나가는 가고일 석상의 가루들.
제대로 부서지지 않은 조각들이 폭발의 충격으로 총알처럼 비산했다.
섞여 있던 망령들이 폭발에 휩쓸려 튕겨 나간 것은 물론이었다.
-억울한 죽음을 만난 원혼들이여······.
쏟아진 원혼들을 프리스트가 부단히 주워 담았고,
뻐어어엉!
뻐어어어어엉!
그렇게 북한산에는 흰 모래로 이뤄진 꽃봉오리가 피었다 오므리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 결과······.
“······확실히 효과가 있네.”
서서히 그 크기가 줄어가는 괴물.
모래를 모아다 주는 원혼들이 또한 줄어들고 있다는 증거였다.
태산과도 같던 녀석.
이제는 큼지막한 산 바위 하나 크기로 줄어든 참이었다.
남아 있는 원혼마저 채 열 개도 남지 않았을 즈음.
구어어어어어-
녀석이 마지막 발악을 감행했다.
쐐애애애액!
남은 모래를 모두 펼쳐, 뱀처럼 몸을 뻗은 녀석.
하지만······.
터엉!
이번엔 멀쩡한 H형강을 던져, 놈의 경로를 막아 세웠다.
슈우우욱!
슈우욱!
꾸물거리며 난처하다는 듯, 몸을 움츠리는 녀석.
“그렇겐 안 되지.”
놈이 노린 것은, 다름 아닌 페르메곤 차원의 게이트 핵이었다.
끗끗!
끄으읏!
징그러운 눈코입을 뽐내며 산비탈을 굴러다니는 게이트 핵.
페르메곤의 악마들이 숨겨둔 것도 사실이었지만, 나로서도 진즉 팍스맨들을 통해 그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
“감히 인제 와서 무승부를 하려고?”
속셈이야 뻔하다.
승산이 없는 싸움을 유럽까지 끌어오고 싶지 않았을 터.
하지만 우리로 이대로는 끝낼 수 없었다.
“손님 한 번 받아 봤으니······ 우리도 답례를 하러 가야지.”
유럽의 악마들을 데려다준 게이트다.
반대로 우리를 유럽으로 데려다줄 수도 있을 터.
“니들도 곱게는 못 죽을 거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망령이 된 인간들.
그 모습을 두 눈 똑똑히 목격해 버린 터였으니까.
악마와 성기사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