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83)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83화(83/240)
083화 악마와 성기사 (4)
콰앙!
전투를 지켜보던 페르메곤이 주먹을 내리쳤다.
“······젠장!”
당초 계획했던 바는 아니었다.
한국으로 보낸 테스트 용도의 원혼들.
원래는 좀 더 가공을 거쳐 바르나울에 시제품으로 보낼 예정이었으니까.
“저······ 저······!”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산산조각이 나는 가고일들을 보고 있자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차라리 안심이었다.
독일의 기갑 능력자들을 파훼했던 비장의 수단.
망령으로 빚은 모래 괴물은 지금껏 무패의 신화를 자랑했었으니.
하지만······.
“프리스트가 있다고······? 신성 폭발까지?”
섬광에 휩쓸리는 모래 괴물을 보며, 페르메곤과 유럽 본부장은 자신들의 생각이 단단히 틀렸음을 뼈아프게 실감했다.
털썩.
페르메곤은 풀썩 무릎을 꿇었다.
자그마치 7위계다.
유럽에서 연전연승을 거둔 끝에 본 차원에서 끌고 올 수 있었던 수백 마리의 가고일.
쉬울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더욱이 이렇게나 쉽게 무너질 줄은.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지구에 온 이래, 지금껏 패배란 걸 겪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패배자가 치러야 할 대가에 대해, 페르메곤은 철저히 무지한 상태였다.
그때였다.
“······!!”
완전히 일그러진 표정의 본부장이 그에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빨리······?’
“빨리 게이트핵부터 치우라고!”
“아······!”
그제야 페르메곤은 허둥지둥 움직였다.
곧 있으면 설치된 게이트 포탈을 타고 한국이 이곳 유럽으로 들이닥칠 터.
유럽 본부장의 득달같은 조언에, 그는 서둘러 모래 괴물에게 ‘마지막’ 명령을 하달했지만······.
“아, 안돼······!”
이를 눈치챈, 한국 대표가 게이트 핵을 지켜내 버렸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침공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 놈들의 반격에 다리를 놓아준 셈.
“아아······!”
포탈 너머로 넘실넘실 드리워져 오는 성기사들의 모습은 이제 악마들에게 있어 공포 그 자체였다.
‘대체 왜 한국을 치라고 해가지고······!’
차마 내뱉을 수는 없었지만, 유럽 본부장의 조언이 야속할 따름이었다.
애당초 페르메곤은 그리 과감한 성격이 아니었다.
본부장의 조언만 아니었어도 동유럽을 차츰차츰 정복해 나가는 것으로 만족했을 터.
바르나울에 제공할 보다 질 좋은 원혼이라는 말에 이끌려, 지구 반대편에 놓인 한국을 공격했던 터였다.
그리고······.
“······부수세요.”
그때였다.
유럽 본부장이 페르메곤에게 새로운 조언을 덧붙인 것은.
“······예?”
“빨리 게이트핵 부수라고요!”
“하지만, 한국의 게이트핵은 지금······!”
“거기 말고!”
척!
유럽 본부장이 가리킨 것은, 그들 눈앞에 있는 게이트 핵.
그러니까,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에 설치된 게이트 핵이었다.
“하지만 저건······!”
파리에서의 입찰 경쟁을 통해 지구로 들어온 페르메곤이다.
그들에게 있어 콩코르드 광장 게이트는 지구 개척에서의 상징적인 기념비와도 같았으니.
“페르메곤······.”
망설이는 페르메곤에게, 낯빛을 바꾼 본부장이 조곤조곤 설명했다.
음성은 낮췄지만, 그의 말은 여전히 빨랐다.
“잘 들어요. 이대로라면 놈들이 이곳 파리로 밀려드는 건 시간문제예요. 하지만 지금 광장의 게이트를 파괴한다면, 서울 게이트와의 연결이 다른 곳으로 이전될 겁니다.”
“그, 그 말씀은······?”
정복 전쟁으로 유럽의 각 지역을 섭렵해나갔던 페르메곤.
당연하게도, 그들이 유럽 각지에 확보한 게이트는 수십 개가 넘었다.
한국에 설치된 게이트가 파리와의 연결을 상실한다면, 분명 그중 하나에 다시 연결될 터.
그것이 유럽 본부장의 노림수였다.
“이제 놈들이 유럽으로 오는 건 막을 수 없어요. 하지만, 적어도 곧장 이곳 파리로 넘어오는 일만큼은 막아야 합니다. 다른 지방을 내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본부장은 이미 피해를 각오한 상태였다.
남은 전략이라면, 그나마 덜 중요한 지역을 내어주겠다는 것.
이곳 파리가 넘어간다면, 즉시 페르메곤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 그들과 결탁한 본부장 자신 또한 끔찍한 실적을 뒤집어쓰게 될 테니까.
“······알겠습니다.”
페르메곤으로서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의 장기는 전투보다는 건축술과 용병술에 있었으니까.
한국 대표를 이길 자신이 없는 한, 조금의 시간이라도 확보하는 편이 최선이었다.
“······이익!”
푸하하학!
울상이 된 표정으로, 자신의 게이트 핵을 파괴한 페르메곤.
그 아래로 황금빛 액체가 주르륵 흘러넘쳤다.
수만 개의 마석이 그의 차원 계좌에 들어왔지만, 그의 기분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목을 비튼 격이었으니.
그 때문일까?
페르메곤은 차마 감정을 감추지 못한 채, 본부장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껏해야 시간 벌이 아닙니까······!”
남은 전략은 많지 않았다.
병력을 규합하고, 들어올 경로를 예상해 방어시설을 보강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성기사들로 무장한 놈들을 쉽사리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그런 페르메곤을 본부장은 여느 때처럼 구슬렸다.
“일이 아주 급해졌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바르나울의 관심을 끌어야 해요.”
“바, 바르나울······.”
바르나울이 지구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
이제 이들에게 남은 방법이라곤 그것뿐이었다.
이름값만으로 다차원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거대 차원이었다.
바르나울의 입장에서, 지구는 구멍가게나 다름없는 변방 중의 변방이었지만······.
“어서 시시포스를 완성하세요. 그다음 바르나울에 사업 제안서를 보내는 겁니다.”
그들의 하청이 되기 위해 그 전부터 많은 준비를 해오던 그들이었다.
유럽 각지에 수용해 둔 수천만 명의 예비 재료들.
건설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원혼 탈곡기’ 시시포스까지.
이 모든 걸 고스란히 넘겨줄 수 있다는 비굴한 제안을.
그것만 해도 괜찮았다.
바르나울의 밑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페르메곤에게 있어서는 우주가 뒤집힐 만한 신분 상승이었으니까.
푸드득.
말없이 날개를 펼치며 시시포스를 완성하기 위해 나선 페르메곤.
그런 그를 바라보며, 홀로 남은 유럽 본부장 스탠리가 잘근 입술을 씹었다.
“절대 안 돼. 이런 쓰레기 같은 동네로 발령된 것만 해도 개 같은데······.”
그는 누가 뭐래도 상공회의소의 베테랑 매니저였다.
직전에 머물러 있던 중견 차원에서의 실적 악화로, 이곳 지구 차원으로 좌천되었을 뿐.
그가 바라는 것 또한 번듯한 재기였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었다.
“이제 본부나 예하 기관은 꿈도 꾸지 않아. 그러니까······.”
한국은 스탠리의 ‘마지막 퍼즐’이었다.
지구를 통틀어 가장 적은 수익이 나는 지역.
그럼에도 가장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지역이었으니까.
알짜배기와 같은 한국 각성자들의 원혼이라면, 스탠리는 바르나울을 지구로 끌어들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바르나울이 없으면 난 끝장이야.”
순서가 뒤집어졌다.
한국에서 무참히 패배한 페르메곤.
이젠 한국을 미끼로 삼는 것이 아닌, 한국을 치우기 위해서라도 바르나울을 끌어들여야만 했으니까.
“······어차피 상관없어. 결과만 같으면 그만이니.”
아무리 한국이 강하다 한들, 바르나울에 비할 순 없었다.
상공회의소의 규약 탓에 다소간 밸런스 조종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흑마법사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구에 남은 마지막 살점 하나까지 핥아먹을 터였다.
서서히 완성되어가는 시시포스를 보며, 본부장은 천천히 되뇌었다.
지금의 수모는 그때 꼭 갚아주겠노라고.
***
지체하지 않았다.
마지막 혼신을 담아 북한산에 설치된 게이트 핵을 치우려던 페르메곤.
그 마지막 공세를 막아 세운 나는, 김솔과 기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게이트 포탈을 넘었으니까.
“괜찮겠지?”
상공회의소가 설치한 포탈을 사용해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인간들에게도 일종의 보상처럼 주어졌던 게이트핵이다.
인제 와서 사용이 불가하다는 건 말이 안 됐으니.
하지만, 그렇게 만발의 준비를 마치고 게이트 포탈을 타고 유럽으로 넘어가고 나니······.
“뭐야, 이거?”
정작 주위로 악마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을씨년스러워 보이는 악마들의 성.
그 옆으로는 세계사 책에서 본 듯한 멋들어진 중세식 성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채앵!
챙!
꽈아앙!
성 너머로 울려 퍼지는 전투 소리.
그 사이로 드문드문 움직이는 악마들을 본 나는, 지금의 상황을 얼추 가늠할 수 있었다.
“······얘네 공격받고 있네.”
모르긴 몰라도, 내가 위치한 곳은 페르메곤의 거점.
그 주변으로 거대한 함성과 함께, 인간들의 목소리가 몰려들고 있었다.
“와아아아아아아!”
“다 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애써 나설 일도 없었다.
고작 몇 분의 시간이 흐른 뒤, 인간들의 무리가 성안으로 물밀듯 밀려들어 왔으니까.
우르르르르!
“이겼어! 우리가 이겼다!”
“이제 저 지긋지긋한 게이트 핵만 처리하면······!”
“잠깐, 그런데 저기······.”
땀과 피, 그리고 먼지로 젖은 그들은 눈물과 콧물을 쏟으며 감격하던 그들이었지만······.
“······누구세요?”
포탈을 넘어온 나와 민망하게 시선이 마주쳐 버렸다.
.
.
.
마석을 쥔 채, 통성명을 나눈 나와 유럽의 각성자들.
이들을 이끄는 것은 버프 능력을 각성한 ‘리디아’라는 이름의 붉은 머리 여성이었다.
“······프라하요?”
“그래요. 여긴 프라하고······ 페르메곤의 본거지는 파리에 있다구요.”
프라하.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나는 난데없이 체코의 아름다운 도시에 들어와 있었다.
‘어쩐지 집들이 더럽게 예쁘더라니······.’
졸지에 차마 소원해보지도 못한 유럽 여행을 다 하게 된 상황이었지만······.
문제는 더 이상 이곳에는 악마들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 또한 페르메곤과 한국에서 전투를 치르고 넘어온 것이라 말하자, 리디아가 최근 이곳에서의 상황을 내게 전해 주었다.
“어제 갑자기 악마들의 병력이 줄어들었어요. 저희도 그 틈을 타서 기습적으로 들어온 참이고······.”
이들은 체코인들과 독일인들이 얼추 반반 섞인 각성자 그룹이었다.
페르메곤과의 전쟁에서 이곳 프라하를 빼앗겼으나, 방금 기적적으로 탈환하게 된 것이라고.
놈들이 갑자기 병력을 뺀 이유에 대해서는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보나 마나 한국과의 전투 때문이었겠지.’
나름 총공세로 달려들었던 페르메곤이었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 전투는 한국의 승리로 돌아갔다.
남은 일은 페르메곤 대표의 목을 베는 일.
하지만 놈들도 모르지 않는지, 나를 파리가 아닌 프라하에 보내 버린 참이었다.
리디아가 말했다.
“저희는 이제부터 이곳 프라하를 거점으로 활동을 시작할 거예요. 속도는 더디겠지만······ 반드시 모두를 구해낼 겁니다.”
그녀는 유럽에 최소 수백 개 이상의 수용소가 설치되어 있으며, 무슨 목적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악마들이 사람들을 잡아 두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녀는 악마들이 사람들을 제물로 사용하려는 것 같다고 추측했는데, 원혼을 만드는 것이 그 목적이라는 점에서 틀린 추론은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이제 비켜주세요. 저 지긋지긋한 게이트를 치워 버려야 하니까······.”
이들이 내가 타고 온 게이트를 없애려고 한다는 것.
하지만,
“그건 곤란합니다.”
“뭐라고요?”
리디아가 발끈하며 내게 설명했지만······.
“가만두면 또 여기서 가고일이 튀어나올 거라고요! 열 마리만 나와도······!”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이 게이트는 이제부터 유럽에서의 내 ‘운송수단’이 되어줘야 했으니까.
“제가 타고 들어갈 겁니다. 그다음에 없애든 말든 마음대로 하세요.”
유럽 각지에 흩어져 있는 수십 개의 게이트.
그 모두가 하나같이 페르메곤의 거점이었다.
이를 중심으로 각각 수십, 수백 마리의 악마들이 진을 치고 있을 터.
비록 이곳 프라하는 허탕이었지만, 악마 1,000마리 처치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이었다.
‘이걸 놓칠 순 없지.’
과정은 간단했다.
포탈을 타고 넘어가 악마들을 잡으며 천 마리 처치 조건을 달성하는 것.
그리고 지나온 포탈의 게이트핵을 처치하면서 마석을 두둑이 벌어들이는 일까지.
유럽에 모인 돈을 탈탈 털어먹다 보면, 저절로 페르메곤의 악마들을 일망타진하게 될 터였다.
‘파밍도 하고, 악마도 잡고.’
그 끝에 내게 주어져 있을 것이었다.
악마 천 마리를 잡아먹은 성창, 그리고 아공간의 레벨업이.
부활의 상징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