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84)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84화(84/240)
084화 부활의 상징 (1)
“괜찮은 걸까······?”
한국 대표가 게이트에 들어간 직후.
리디아는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체코와 독일의 각성자들을 이끌며, 직접 페르메곤의 악마들과 싸워 온 그녀였다.
하지만 김정겸이 이끌고 들어간 병력은 고작해야 스무 명 안팎.
아무리 생각해도 페르메곤의 거점을 공격하기엔 부족하기 짝이 없는 숫자였다.
“······어떻게든 말렸어야 했는데.”
물론 그녀도 알고 있었다.
페르메곤의 게이트를 타고 움직이겠다는 김정겸의 생각은 단호했으며, 자신을 비롯한 체코, 독일 각성자들의 계획과도 맞지 않았다는 걸.
그 점이 못내 아쉽게 느껴지는 리디아였다.
“차라리 드레스덴이었다면 연합해서 움직일 수도 있었을 텐데······.”
이들에게 있어 중요한 곳은 다름 아닌 드레스덴이었다.
체코의 프라하와 큰 도로를 통해 이어져 있는 독일의 도시.
리디아 자신을 비롯해, 그룹에 포함된 상당수의 독일 각성자들이 드레스덴에 가족들을 두고 있었으니까.
게이트를 통해 페르메곤의 거점을 골라 타격한다는 김정겸의 전략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들로서는 드레스덴에 갇혀 있을 가족들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생각에 잠긴 리디아가 눈앞에 놓인 황금색 물체를 바라보았다.
끗끗!
끗!
밧줄에 묶은 채, 혀를 이리저리 날름거리는 게이트 핵.
한국 대표가 던져두고 간 녀석이 거기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알아서 하라고?”
쉬운 일이다.
게이트 핵을 처리하고, 프라하의 전력을 정비하면 된다.
그다음은 당초 계획했던 대로 드레스덴 탈환을 위한 작전을 준비하면 될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게이트 핵이 파괴되면 후퇴도 못 할 텐데······.”
태평하다 못해, 나른하다시피 했던 한국 대표의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거라면?
악마들의 힘이 한국 대표의 생각 이상으로 강하다면?
자칫하다간 자신의 손으로 한국 세력의 퇴로를 끊어 버리게 될지도 몰랐다.
“율리안!”
그래서였다.
악마들로 이어져 있는 위험천만한 게이트 포탈.
그 너머를 내다보기 위해 정찰 능력자를 불러들인 것은.
“······시선을 공유해 줘. 한국 대표가 있는 쪽으로.”
그녀는 결정 내렸다.
악마들에게 밀리고 있을지도 모를 한국 세력들.
게이트를 닫기 전에 그들을 먼저 구해 내기로.
“빨리 찾아야 해. 갑옷 입은 기사들이랑, 동양인 각성자들 몇 명······.”
그녀가 급한 마음으로 덧붙였다.
정찰 각성자, 율리안이 공유해 준 시선.
하지만 그 속에서 그녀가 발견한 것은······.
“······어?”
페르메곤의 악마성을 공략하고 있는 수십, 아니 수백의 병력이었다.
“······뭐가 이렇게 많아?”
콰아아앙!
콰아앙!
실로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조각 케이크에 올려진 과일 토핑처럼 사르르 무너져 내리는 악마성의 첨탑.
와르르 무너진 돌무더기 사이, 광채에 휩싸인 거대한 전투 망치가 우뚝 솟아올랐다.
목청이 터지라 울부짖는 성기사들의 포효.
“팍스FC를 위하여!”
“더러운 악마들을 정화하라!”
“······읏.”
화들짝 놀란 리디아는 저도 모르는 새, 주춤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기름에 절인 듯, 무거운 발걸음을 이어가던 기간트.
그 존재가,
푸슈우웅!
꽈아아아아아아-앙!
갑작스런 폭발과 함께 악마성의 입구에 처박혔으니까.
두둥실 떠오른 조종사의 알록달록한 낙하산이 되레 얄밉게 느껴질 지경이었지만, 심지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정체불명의 금속 덩어리가 쏟아졌다.
새하얀 광채와 푸르스름한 회로로 범벅이 된 그 물건은 악마성에 부딪히는 족족 폭발을 거듭했다.
-카아아아악!
-카아아악!
“아, 안돼!”
리디아는 질겁했다.
벌집이라도 건드린 듯, 악마성 주위로 가고일을 비롯한 악마들이 벌 떼처럼 쏟아져 나왔으니까.
하지만,
슈슈슈슉!
슈슉!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진 성창에 의해, 줄줄이 꿰뚫리는 악마들.
눈앞의 광경에, 리디아는 백치처럼 턱을 내려놓을 뿐이었다.
‘······저걸 전투라고 부를 수 있나?’
그게 리디아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이제야 헬기를 타고 있는 김정겸의 모습을 확인한 그녀.
그녀가 관찰한 김정겸의 싸움은 차라리 기예에 가까웠다.
헬기 주변으로 피어오른 여덟 개의 포탈.
각각으로부터 쏟아진 수십 자루의 창은 단 한 번도 적을 놓치거나 빗맞히거나 한 적이 없었으니까.
“아니야, 저건······.”
고성을 내지르는 성기사들.
푸른 안광을 내뿜는 해골 기사들.
육중한 자폭 기간트와 민첩하게 하늘을 누비는 금속 형강과 유도 무기까지.
리디아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이건 페르메곤과의 전투가 아닌, 그들을 향한 심판에 가깝다는 것을.
그리고······.
“누가 누굴 돕는다고······.”
구원이 필요한 것은 한국 대표가 아닌, 바로 자신이었다는 것까지.
***
“클리어!”
“여기도 클리어!”
이번에도 모래성을 만들어 버렸다.
산산이 부서진 악마들의 성을 등정하며, 하나둘 목소리를 드높이는 팍스맨 성기사들.
그들이 곳곳에 팍스FC의 로고가 그려진 깃발을 꽂아 넣고 있었다.
펄럭!
“저건 또 누가 만든 거야······.”
악마들을 잡겠다는 목적하에, 드워프들을 통해 만든 판금 갑옷과 망치.
사실 로망과 콘셉트질의 일환이었는데, 의외로 팍스맨들의 호응도 나쁘지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유럽에서 치른 첫 전투는 싱겁기 그지없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나폴리에 세워진 페르메곤의 성을 함락시켰고, 성창으로도 100마리에 가까운 악마를 잡아낸 참.
“······이제 며칠 안쪽이면 천 마리도 채우겠네.”
압도적인 무력 앞에,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가는 지금이었지만······.
“이제 저게 문제인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주요 거점답게, 나폴리에도 페르메곤이 세워 놓은 거대 수용소가 있었다.
직접 세어 보지는 못했지만 어림짐작하기에도 수만 명은 족히 갇혀 있는 시설.
해골 기사들과 팍스맨들이 통제해 천천히 문을 개방하고, 물자도 나눠주었지만, 그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시간이 너무 끌려.”
그렇다고 문만 똑 열어 두고 빠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닭장처럼 세워진 수용소.
아무런 조치 없이 해방이 주어진다면 분명 아비규환이 펼쳐질 테니까
홀로 고민에 잠겨 있을 즈음······.
“······음?”
프라하의 각성자 그룹을 이끌고 있던 리디아.
그녀가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
.
.
프라하에서 전력을 정비하겠다고 했던 그녀였다.
갑자기 나폴리에 나타난 까닭이 의아할 따름.
묘하게 깍듯해져 있는 그녀에게 내가 물었다.
“이리로 넘어오실 줄은 몰랐는데요.”
“알아요, 그렇게 말씀드리기는 했지만······.”
잠시 우물쭈물 고민하던 리디아.
하지만 오래지 않아 꺼내든 본론은 다음과 같았다.
“동생이 드레스덴에 있어요.”
분명 페르메곤의 점령지 중 하나였다.
리디아는 자신의 동생, 그리고 그룹의 다른 각성자들의 가족들이 드레스덴에 포로로 잡혀 있다고 전해 주었다.
과연, 프라하의 각성자들이 유독 드레스덴을 고집하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드레스덴을 먼저 공략해 달라는 건가?’
그런 부탁을 들으려나 싶었지만······.
리디아의 부탁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었다.
“허락해주신다면, 저희도 전투를 지원하고 싶어요. 너무 압도적인 공략 속도라······.”
“아······.”
그녀도 알아챈 것이다.
랜덤 게이트를 돌고 있는 내가, 그들보다 몇 배는 더 빠르게 드레스덴에 도착하리라는 걸.
그 증거로, 나는 고작 몇 시간 만에 나폴리 공략에 성공한 참이었으니까.
‘잘됐네······?’
자그마치 수천 명에 달하는 리디아의 그룹이었다.
이제 그들에게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의 해방과 통제를 부탁하면 될 터.
덕분에 나로서도 유럽 공략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심지어, 그녀의 능력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버프, 디버프가 모두 가능하다 이거죠?”
“네. 하지만 제 목소리가 닿는 위치까지만 가능해요. 말을 통해서 전달하는 개념이거든요.”
각성자들의 수장답게, 제법 독특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그녀였다.
“정보도 이것저것 제공할 수 있어요. 악마들은······.”
동생에 대한 간절한 마음 때문일까?
면접관 앞에 선 취업준비생처럼 자신의 이런저런 쓸모를 늘어놓기 시작한 그녀였지만······.
“그 정도면 충분해요.”
줄줄이 늘어지던 그녀의 브리핑을 멈춰 세웠다.
“해 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요.”
버프와 디버프를 동시에 발휘할 수 있는 능력.
팍스FC에서 그녀를 위한 딱 맞는 일자리가 떠올랐으니까.
***
웅성웅성.
아공간이 시끌벅적해졌다.
위치는 다름 아닌 카멜롯 성이다.
해골 기사들이 여느 때와 같이 주변에 늘어서 있었고, 엘븐하임의 장로들과 대수림의 드루이드들이 인파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같이 혀를 내둘렀다.
“이것 참······ 이런 성장 속도는 700살 평생 본 적이 없습니다.”
“말을 통한 성장과 극복이라니, 어쩜 이런 생각을······.”
질겅질겅.
잎을 씹으며, 감탄을 금치 못하는 그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아공간의 세계수였다.
녀석이 폭풍 같은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으니까.
“이제 좀 뭐가 되는구나······.”
나로서도 감회가 남달랐다.
그간 세계수를 키워내겠답시고 별의별 짓을 다 해왔으니.
‘······똥꼬쇼도 그런 똥꼬쇼가 없었지.’
‘병 주고 약 주고’가 핵심인 세계수 육성이다.
이를 지킨답시고 카멜롯의 착취 기능과 아공간의 생명 유지 시스템을 번갈아 적용했고, 세계수의 탄탄한 몸통을 김솔에게 샌드백으로 애용하게 했다.
큰누나에게 주기적으로 힐을 사용하게 한 것은 물론, 종국에는 매디슨으로부터 탈취한 약물을 비료로 뿌려주기까지 했던 나.
어느 정도 성과가 있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마지막 한 끗이 부족했던 세계수의 성장이었다.
하지만······.
리디아의 능력 덕에 비로소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계속해주세요, 리디아.”
세계수와 마주 보고 있는 리디아.
진짜 부끄러워 죽겠다는 듯,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였지만······.
“예······.”
내가 채근하자, 마지못해 하던 일을 계속했다.
떠듬떠듬, 무겁게 입술을 달싹거리던 그녀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또박또박, 국어책을 읽는 듯한 목소리로.
“······넌 세상에서 가장 예쁜 활엽수야.”
쑤욱!
놀라운 일이었다.
리디아의 말을 들은 세계수 잎이 초롱초롱 빛나며 번쩍 고개를 들었으니까.
하지만······.
“······들, 들뜨지마, 멍청한 풀 대가리야.”
-!!
대뜸 돌아온 차가운 독설에, 그 잎이 금세 누렇게 시들해졌다.
추욱 고개를 떨구는 세계수였지만······.
“그래도 파릇파릇해서 보기 좋긴 해.”
-!?
리디아의 말에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쑤욱!
추욱······.
쑤우욱!
추우욱······.
무한한 반복이었다.
손바닥 뒤집듯 날아드는 칭찬과 독설.
그에 따라 피었다 죽기를 반복하는 세계수까지.
얼마나 성장이 빠른지, 실시간으로 잎이 무성해지는 게 맨눈으로도 보일 지경이었다.
‘버프, 디버프가 모두 가능하다길래 혹시나 했는데······.’
‘말’을 통해 버프를 부여할 수 있는 리디아의 능력이었다.
대뜸 아공간에 들어오자마자 식물과 유사 과학적 대화를 나누게 된 그녀.
정작 본인은 부끄러워 죽을 지경인 것 같았지만······.
‘······좋았어.’
덕분에 세계수가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하기야, 세계수가 괜히 신물이 아니지요. 상처와 회복을 정신적으로까지 부여할 줄은······.”
짝짝!
감탄한 엘프 장로 윌그라임이 물개박수를 쳤다.
“이 정도 속도라면······.”
마찬가지로 혀를 내두른 드루이드 족장 핀드릭도 내게 귀띔해 주었다.
앞으로 보름 안에 해골 기사들을 살려볼 수 있겠노라고.
한편······.
“주군······.”
정작 란슬롯은 초조한 목소리였다.
저주를 벗고 되살아나는 것.
분명 그건 의심의 없이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저희의 충성이 흐려질까 걱정됩니다. 언데드로서 누렸던 능력들도 사라질 테고요.”
그는 사라질 능력을 걱정하고 있었다.
죽어도 죽지 않는 카멜롯의 기사들.
그건 분명 나의 크나큰 전력이었으니까.
기쁜 소식 앞에서도 마냥 웃지 못하는 그였지만······.
“걱정 마. 난 너희를 약하게 만들 생각이 없거든.”
나는 곧장 옆에 있던 드워프, 쿠퍼를 불러세웠다.
“당장은 만들고 있는 거 없죠?”
“망치 만든 다음부터는 쉬고 있지요. 부품 조각이나 정비하면서······ 왜요, 새로 맡길 게 있소?”
드워프들을 통해 배운 마력 회로의 개념.
이를 통해 한 가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공들여 만든 사물에는 모종의 철학이나 상상이 부여되기 마련이라는 점이었다.
마력 회로를 통해 그려 넣는 ‘조건식’ 또한 그런 의미였다.
어떤 내기를 주고받느냐에 따라, 그 사물의 가치나 방향성을 설정하게 되니까.
그런 점에서······.
“카멜롯 성에 마력 회로를 그려주세요.”
카멜롯 또한 마찬가지였다.
바르나울의 흑마법사들이 만든 유니크 아이템.
여기에는 귀속된 영혼을 지옥 끝까지 가둬 놓겠다는 흑마법사들의 사념이 깃들어 있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기사들을 구하고자 하는 내가, 바르나울의 생각에 딴지를 걸게 된 것은.
그들이 카멜롯에 그려놓은 낙서가 ‘죽음’이었다면······.
“조건은 ‘카멜롯의 기사들을 부활시키는 것’으로.”
내가 쓸 글씨는 ‘부활’이었다.
부활의 상징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