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87)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87화(87/240)
087화 부활의 상징 (4)
드레스덴 요새를 무너뜨린 지 고작 몇 시간 뒤.
우리는 악마들이 진을 치고 있는 파리 근교에 도착해 있었다.
“오면 또 금방이지.”
자폭 갈귀들이 들끓던 태평양을 단숨에 가로질렀던 우리였다.
비록 변방이라고는 하나, 독일에서 파리까지 오는 건 일도 아닌 셈.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반가운 손님에, 페르메곤의 악마들이 버선발로 뛰어나왔지만······.
꽈아아앙!
화르륵!
카아아악!
우리의 발을 조금도 묶어두지 못했다.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과연 페르메곤의 근거지답게, 파리 근교부터 빼곡히 방어선을 구축한 악마들이었지만,
“어딜 뒈질라고.”
우리는 놈들의 머리를 깨부수며, 전진에 전진을 거듭할 뿐이었다.
아주 어려울 것도 없었다.
지금까지 모아온 전력을 보따리처럼 풀어 놓았을 뿐.
자그마치 열네 곳의 거점을 연달아 빼앗긴 페르메곤이 이제 와 우리를 막아 세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위이이잉!
쿠웅!
이용수를 비롯한 기간트 라이더들이 거대 악마들의 발을 묶었고,
쐐애애액!
푹!
뻐어엉!
총알처럼 날아든 포식자가 악마들의 미간을 꿰뚫으며 신성 폭발을 일으켰다.
투두두둑!
우수수 주변으로 흩뿌려지는 악마들의 살점.
그러거나 말거나, 비정한 창날은 악마들의 원혼을 집어삼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드레스덴 요새의 폭격 앞에서 몸을 사렸던 성기사들이었지만······.
이번 전투에서는 달랐다.
후우웅!
따아앙!
성기사들의 망치가 바람을 일으켰고, 휘말린 악마들이 얇은 뼈를 으스러뜨리며 추풍낙엽처럼 흐트러졌다.
“팍스FC를 위하여!”
수십 종류의 명품관이 들이찬 파리의 아케이드 거리.
그곳에 성기사들의 낯간지러운 소리가 울려 퍼질 즈음······.
“······뭐야?”
우리는 돌연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길을 잃은 건 아니었다.
악마들이 파리 근교부터 건설해 놓은 석조 터널.
그 모두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었고, 결과적으로 파리 중심부로 연결되어 있었으니까.
물론 파리는 초행길에, 지금까지 봐 왔던 악마성에 비해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풍경이었지만······.
[페르메곤]그 위로 버젓이 떠 있는 붉은색 홀로그램을 두고 길을 잃어 버릴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분명 저기인데.”
하지만 갈 수 없었다.
지이잉!
지이이이이잉!
우리 눈앞에는 투명한 황금빛 장막이 높다랗게 세워져 있었으니까.
성기사들이 전투망치를 휘둘러봐도, 심지어는 H빔이나 ‘악마 포식자’를 이용해 신성 폭발을 일으켜봐도 장막은 끄떡조차 하지 않았다.
“뭐야, 이게?”
대뜸 진로가 가로막힌 상황.
장막을 면밀히 살펴보던 중 기시감이 찾아들었다.
“잠깐, 이거······.”
틀림없었다.
투명한 황금빛의 장막.
처음 지구에 ‘입찰 경쟁’이 벌어졌을 당시, 에메스 차원의 성기사들과 지구의 존재들을 가로막았던 바로 그 장막이었으니까.
퉁퉁!
서로의 공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상공회의소의 절대적인 방어막.
두드린 충격을 물결처럼 퍼트리는 황금빛 장막을 보며,
“이 새끼들이······.”
확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페르메곤과의 싸움에, 마침내 상공회의소가 끼어들었다는 걸.
하지만 그 정체를 알았다 한들, 의문을 지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인제 와서?”
물론 상공회의소가 칼을 빼든 것일 수도 있다.
게이트 핵을 설치하고, 전쟁을 일으켜 수수료를 얻어먹는 상공회의소.
반면 나는 돌아다니는 족족 상공회의소의 ATM을 털어먹고, 그 자리에 내 포탈을 설치하며 종횡무진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한국의 김정겸이란 놈이 장사를 말아먹고 있다며, 뒤늦게 조치에 나선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편을 든다고?”
이 지점에서만큼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중립’을 지켜오던 상공회의소였으니까.
물론 아예 없던 일은 아니다.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태평양에 엘븐하임 대륙을 통폐합하고, 남부의 침략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에 광산과 공장 같은 거점을 넣어준 전력이 있는 상공회의소.
하지만 이 모두가 일종의 ‘게임’의 형태였을 뿐, 지금껏 상공회의소는 결코 ‘중개’라는 역할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심지어 개인적 일탈로 유신각성회와 결탁했던 일본 지부장 헨리마저도, 눈앞에 무적의 장막을 세워 버리는 식의 월권은 벌이지 못했었으니까.
“······여기서 장막을 세워 준다는 건 진짜 말이 안 되는데.”
대놓고 페르메곤을 감싸고 도는 상공회의소의 태도 변화에, 당황을 금치 못하려던 찰나······.
“······저건?”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상공회의소는 자나 깨나 ‘중개’ 기관이었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걸.
-카아아악!
-카아악!
황금빛 장막으로 가둬진 우리.
그 속에서 페르메곤의 악마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쿠웅!
드레스덴 요새에서도 심심치 않게 봤던 거대 악마.
놈이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며 거칠게 바닥에 휩쓸렸다.
후훅······.
그런 녀석의 머리를 짓누르며, 게걸스럽게 목을 뜯는 존재는······.
“······언데드?”
앙상한 두개골 주변으로 썩은 살점이 너덜너덜하게 걸고 있는 거대한 언데드였다.
파리에 입성하던 중, 우리가 처치해 두었던 녀석.
놈이 알 수 없는 힘으로 되살아 난 채, 페르메곤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고일은 물론, 임프, 그렘린과 같은 여하의 하급 악마들까지.
언데드로 변한 악마들이 그 질긴 가죽을 흰 뼈 위로 거적때기처럼 늘어놓고 있었으니까.
“이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새 손님이 찾아왔다는 걸.
***
“끄르륵······.”
악마들의 수장인 페르메곤.
그가 왈칵 피를 쏟았다.
그를 공격한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수하들.
어느덧 언데드로 변해 버린 악마들이 그의 몸통 곳곳에 기다란 손톱을 찔러넣었다.
“제기랄······.”
페르메곤은 끔찍한 후회 속에 몸을 허물어뜨렸다.
본부장 스탠리에게 요청해 본 차원으로부터 들였던 고위계 악마들.
그것이 되레 독으로 돌아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한편······.
“······이게 대체?”
상공회의소 유럽본부장 스탠리.
악마들과 달리 털끝 하나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 또한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정체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파리 곳곳에 눈코 뜰 새 없이 불어나고 있는 언데드.
이건 아무리 봐도 죽음과 시체를 사랑하는 흑마법사들의 소행이었으니까.
바르나울의 개입.
스탠리 또한 바라오던 일이었다.
이를 위해 페르메곤을 지원하며 시시포스를 세우도록 종용해 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시점이 문제였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유럽은 스탠리의 관할 구역이다.
하지만 바르나울로부터의 진입 요청은 들어본 바가 없었다.
개척 차원으로의 진입은 상공회의소의 절대적인 권한.
어떻게 바르나울이 소리 소문도 없이 지구로 진입할 수 있었는지, 스탠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후욱.
“유럽 본부장 되십니까?”
그림자 속에서 창백한 얼굴을 드러낸 바르나울의 흑마법사, 가츠로부터 자세한 내막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감찰국에서 바르나울을 보냈단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감찰국.
개척에서의 공정성을 감시하는 다차원 상공회의소의 산하 기관.
두말할 것 없이, 까마득하게 높은 상급 기관이었다.
스탠리는 꿀꺽 침을 삼켰다.
원칙 이상으로 페르메곤을 지원했던 그.
나름 선을 지켰다고 생각했지만, 트집 잡을 구석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저희가 지구로 온 이유는······.”
다행히, 감찰국이 목표로 삼은 건 스탠리가 아니었다.
흑마법사 가츠가 축축 늘어지는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규제를 어긴 아이템이 있다고 하더군요. 시간이 조금 지난 일인데······ 최근에 다시 추적되기 시작했다고. 공교롭게도 우리 쪽에서 만든 물건이라, 감찰국에서 바르나울에 직접 회수를 요청했습니다.”
“아······ 혹시 어떤 아이템이?”
“카멜롯입니다. 소유자가 정신이 나갔던 건지······ 자유 개척에서 7위계를 소환했다더군요.”
그제야 스탠리는 알 수 있었다.
파리 중심지에 형성된 기간제 장막, 거기에 대뜸 진입이 허락된 바르나울까지.
이 모두가 감찰국의 소행이었다는 걸.
차라리 다행이었다.
바르나울을 지구로 끌어들이고자 했던 스탠리로서는 절회의 기회.
이 젊은 흑마법사가 당장에라도 자리를 떠나지는 않을까, 조바심에 찬 스탠리가 물었다.
“혹시 페르메곤으로부터 사업 제안을 받지는 않으셨습니까?”
“그야 받았죠······ 우리 바르나울이 많이 한가해 보였나 봅니다. 이런 미개한 차원에 코 묻은 돈이나 만지러 오라 한 걸 보면.”
툭.
흑마법사 가츠는 투덜거리듯, 바닥에 뉘어 있던 페르메곤의 사체를 걷어찼다.
그가 안심하라는 듯, 히죽 입술을 일그러뜨렸고,
“걱정 마세요. 기왕 온 거, 용돈벌이 정도는 하고 돌아갈 거니까. 그리고 어차피······.”
하나둘 죽어 가는 악마들을 보며, 스탠리에게도 은근한 미소를 던졌다.
“이렇게 될 줄은 알고 계셨을 것 아닙니까?”
“하하······.”
너털웃음을 흘리는 유럽본부장.
사실이 그랬다.
바르나울을 불러들이기 위한 징검다리였을 뿐.
중위 차원에 불과한 페르메곤을 파트너로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저건 대체 뭐 하자는······.”
그때, 지그시 콩코르드 광장을 내려다보던 가츠가 표정을 굳혔다.
광장에는 비스듬한 원판 형태의 구조물이 세워져 있었다.
페르메곤이 구슬땀을 흘려 만들었던 시시포스.
하지만 바르나울의 흑마법사는 꼴도 보기 싫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휙휙.
그의 손짓에 따라, 언데드로 변한 수십 마리의 가고일이 시시포스로 몰려들었다.
그러곤 핵심 부속을 제외한 나머지 자재 모두를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이런 허접한 시시포스는 불쾌하기 그지없군요. 생존 욕구에 급급한 망령들이라니······ 이런 저급한······.”
바르나울의 뒤처리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언데드 가고일이 상공회의소 유럽지부를 통째로 들어 올렸고, 방금 해체된 시시포스의 핵심 부속과 함께 이동을 시작했다.
“저건······.”
“왜요, 같이 일할 거 아니었습니까?”
그의 말에, 유럽본부장 스탠리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아무리 감찰국에 의해 들어왔다지만, 바르나울 또한 상공회의소가 부과한 원칙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고위계를 불러들일 수도 없는 것은 물론, 장막에 7일 동안 갇혀 있어야 하는 상황.
그동안 가츠는 입맛에 맞게 시시포스를 개량하는 한편, 겸사겸사 유럽 지부의 공조를 얻어낼 작정이었다.
“일어나라.”
쿠루룩······.
죽은 페르메곤까지 되살려 시시포스의 개량에 착수한 바르나울.
하지만 스탠리가 한 가지 걱정을 덧붙였다.
“장막 주변으로 한국에서 넘어온 세력들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다른 건 다 괜찮지만, 신성 무기를 사용하는 놈들이라······.”
“신성무기라······ 그건 좀 까다롭긴 하겠군요.”
슬쩍 맞장구를 친 가츠이지만······ 이내 피식거리는 웃음과 함께 말을 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사자들의 혼이 우리에게 있는 한, 놈들은 죽어도 죽지 않는 불사의 군대와 싸워야 할 테니.”
더욱이······.
“시시포스가 있는 한, 바르나울은 지지 않습니다.”
그 효과가 일시적인 여하의 흑마법과는 달랐다.
시시포스를 이용한다면, 원혼을 영원토록 사물에 귀속시켜 놓을 수 있으니까.
가츠는 오래전 기억을 떠올렸다.
고귀했던 아발론의 기사들.
카멜롯을 지키려던 그들을 되레 성에 귀속시켰던 그 짜릿함을.
운명의 장난이 가츠를 또다시 카멜롯으로 이끌었지만, 정작 그는 새 장난감을 만들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있었다.
“놈들은 우리의 노예가 될 겁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영원한 노예.”
가츠는 애지중지 바라보았다.
인간들의 갖은 보물이 담겨 있다는 루브르, 그 위로 세워지고 있는 시시포스의 모습을.
부활의 상징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