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88)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88화(88/240)
088화 부활의 상징 (5)
끼기긱······.
소름 끼치듯 맞물리는 뼈.
언데드로 되살아난 페르메곤의 악마들이 무거운 발걸음을 이어갔다.
끼익.
그들이 멈춰 선 곳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쿵 소리와 함께, 시시포스의 핵심 부속 그리고 상공회의소의 유럽 본부를 내려놓았고······.
퍼드득.
퍼득.
마찬가지로 완연한 해골이 된 채, 그 중심으로 날아든 페르메곤이 시시포스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유럽본부장 스탠리가 물었다.
“왜 여기에 자리를 잡은 겁니까?”
“그럴듯한 물건이 많더군요. 뭐, 일종의 진열장 개념이죠.”
흑마법을 이용한 회생은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다.
불안정한 원혼을 보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사물에 귀속시키는 것.
나름의 미학을 추구하는 바르나울답게 평소 귀금속이나 보물을 그 대상으로 삼곤 했는데, 공교롭게도 이곳 루브르에는 지구인들이 모아 놓은 갖은 미술품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그렇게, 유럽 본부와 시시포스, 마지막으로 루브르를 하나로 연결되는 사이······.
퍼드득.
퍼드득.
박물관으로 날아들어 간 언데드들이 오래된 그리스식 신전 기둥을 끌고 나왔고, 바깥에서는 아직 숨이 붙은 악마들이 결박당한 채 끌려들어 왔다.
가츠가 말했다.
“당장은 전력이 필요한 시점이니······ 페르메곤을 위주로 작업을 진행할 겁니다. 인간들은 그다음이고요. 시간이 없어 대단한 명품은 못 만들겠지만······ 뭐, 지구 버러지들을 치우기엔 충분하겠죠.”
당장은 시시포스의 개량을 끝마치는 것이 우선이었다.
페르메곤과 인간들의 원혼을 노예로 부리고, 중간중간 지구인들을 잡으며 용돈벌이도 하게 되곤 하겠지만······.
“일주일 뒤, 카멜롯을 회수하러 갈 겁니다.”
이러나저러나, 바르나울의 최종 목표는 카멜롯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가츠는 스탠리에게 한 가지 요청사항을 전달했다.
“······통폐합 말입니까?”
“예, 유럽 본부에도 권한이 있다고 하던데요.”
외부 차원의 일부 지형을 지구로 옮겨다 놓는 통폐합.
분명 유럽 본부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 상대가 다름 아닌 바르나울이었기에 스탠리는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바르나울 같은 거대 차원을 그렇게 들일 순 없습니다. 원칙상······.”
“압니다. 어차피 우리한테는 그럴만한 땅도 없고요.”
다차원 곳곳을 떠도는 바르나울이었다.
애당초 모행성이랄 만한 게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해적 집단.
결국 가츠가 요구한 것은 손톱만 한 크기의 텅 빈 인공섬, 그리고 유럽과 연결될 게이트뿐이었다.
“아, 그 정도라면······.”
원칙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의 요청.
감찰국의 공조 요청을 받은 그였기에, 스탠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황색 장막 앞에 당황스럽게 멈춰 서 있던 나.
그런 내게 새로운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띠링!
[불법 아이템 자진 신고 기간 운영] [다차원 상공회의소 감찰국에서 안내 말씀드립니다······.]“뭐야?”
감찰국.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그 내용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메시지의 내용을 면밀히 살펴본 나는, 일행들과 함께 감찰국이라는 놈들의 요구 사항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카멜롯을 내놓으라고?”
감찰국은 카멜롯이 불법적으로 사용된 전력이 있는 아이템이며, 부여해 준 기간 내에 자진 신고해 반납한다면 죄를 묻지 않겠다며 자애를 베풀고 있었다.
해마다 경찰청이나 행안부에서 벌이던 불법무기 자진 신고 프로그램과 비슷한 느낌.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이 빌어먹을 침략자 새끼들이 공무원인 척 점잔을 빼고 있다는 데 있었다.
“······주군.”
시골 강아지처럼 애처로운 표정을 짓는 란슬롯.
당연히 기사들을 상공회의소에 헌납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반납 장소 : 다차원 상공회의소 유럽 본부] [반납 일시 : 7일 이내] [기간 만료 시 강제 추심이 집행됩니다.]놈들도 순순히 받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는지, 당장 일주일 뒤로 강제 집행 의사를 타진해 왔다.
내가 소유주라는 걸 특정할 수는 없었는지 다른 팍스맨들에게도 모조리 전송된 일종의 월드 메시지였지만, 어떻게든 카멜롯을 손에 넣겠다는 의지만큼은 읽어낼 수 있었다.
마침 딱 일주일이다.
공지된 장막의 유지 기간과 동일한 시간.
심지어 반납 장소까지 유럽 본부인 걸 보며, 나는 어렵잖아 감찰국의 집행관들이 바로 저 장막 너머에 들어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쟤들이 바르나울이라 이거지?”
“예, 주군께서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저들에게서 저희와 비슷한 기운이 느껴진다는 걸요.”
“뭔가 오싹오싹한 기분이 드는 것 같긴 한데······.”
그 집행관이 기사들의 원수인 바르나울이라는 것까지.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네.”
이미 상공회의소는 페르메곤의 죽음을 알리며 나를 승자로 선언한 상황이다.
보상이랍시고 파리로 향하는 게이트를 설치해 준다느니, 홀로그램 딱지를 떼어 주겠다느니 하는 망발을 늘어놓았지만······.
애당초 상공회의소의 게이트는 줘도 안 쓸 저질 교통수단이었으며, 홀로그램 또한 내게 붙어 있었던 적이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우리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건 분명했다.
유럽의 포로들이 아직 장막 너머로 갇혀 있는 것은 물론이요, 카멜롯을 강제 추심하겠다는 놈들과 사이좋게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하물며 그 상대는 그 악명높은 바르나울이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지잉.
아공간 포탈에서 새로운 소식이 전해져 온 것은.
.
.
.
“······엘리?”
나를 찾아온 것은 엘븐하임 갈라돈 의회의 의장, 엘리였다.
“이것 좀 보세요.”
“이건······.”
엘리가 꺼내 든 것은 큼지막한 흑색 DSLR이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팍스FC의 세계수 심기 캠페인으로 나날이 푸르게 변해가고 있는 엘븐하임.
자연을 사랑하는 엘프들답게 그 모습을 기록하고 싶다기에 내어준 물건이었는데, 이번만큼은 뭔가 다른 걸 찍어온 모양이었다.
달칵달칵.
엘리가 서투르게 카메라 버튼을 조작했다.
선캡과 선글라스를 낀 이 빠진 엘프들의 등산 사진이 우수수 지나갔고,
“잠깐만요, 이게 아닌데······!”
좌절스러운 각도로 촬영된, 목 접힌 엘리의 셀카 여러 장을 애써 모른 체 했을 즈음······.
마침내 자연풍광도, 엘프도 아닌 섬뜩한 무언가가 화면에 드러났다.
“······이건?”
사진에 드러난 것은 광활한 바다였다.
엘븐하임의 해변 어디를 가서라도 볼 수 있는 푸른 지평선.
하지만, 그 한 가운데에는 거무죽죽한 섬 하나가 둥둥 떠올라 있었다.
엘븐하임으로부터 고작 수십 미터 떨어진 거리.
공교롭게도 섬은 방금 전 우리가 보았던 황색 장막을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틀림없어요. 바르나울이에요.”
그 정체를 엘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
바르나울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건 비단 카멜롯의 기사들뿐만이 아니었다.
“이 씹어먹을 놈들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파르르 몸을 떨며, 앞니 사이로 산채 비빔밥을 튀기는 엘프들.
이제 엘프들에게 있어 지구는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었다.
밀짚모자를 쓰고 희번뜩 눈깔을 뒤집어 봤자 솔직히 하나도 무섭지 않았지만······.
‘······그럴만하지.’
그들의 분노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다.
바르나울에 의해 바닥까지 짓밟혔던 그들이다.
세계수와 함께 시름시름 죽어가고 있던 엘븐하임의 모습을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으니.
하물며 지금은 바로 그 바르나울의 섬이 코앞에 생겨난 상황이 아닌가?
더욱이, 바르나울의 적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그닥! 다그닥!
사슴을 타고 포탈을 건너온 대수림의 드루이드들.
유럽 전선에서는 잠시 빠져 있었지만, 바르나울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온 그들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세계수 비료로 줘도 시원찮을 놈들!”
“다차원 우주가 허락한 우리의 유일한 즐거움을!”
지금까지도 질겅질겅 세계수 잎을 씹고 있는 드루이드들.
그런 이들에게 세계수를 앗아갔던 존재 또한 다름 아닌 바르나울이었다.
카멜롯의 기사들부터, 엘프, 거기에 드루이드들까지.
바르나울을 미워하는 삼 종족이 모두 모인 상태였지만······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삼종족을 둘러놓은 뒤, 내가 말했다.
“놈들이 카멜롯을 추적할 수 있는 게 분명합니다.”
기사들을 손에 넣은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동안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카멜롯은 내 아공간 안에 들어간 이래, 밖으로 나온 적이 없었으니까.
변화가 있었다면 딱 한 가지.
“여기에 카멜롯이 있으니까요.”
엘븐하임에는 드워프들의 공장이 있었고, 다름 아닌 카멜롯에 마력 회로를 새기고 있었다.
기사들이 있었던 유럽에 둥지를 틀고, 공장이 있는 엘븐하임에 멀티를 깐 걸 보면, 그 정확성이 어느 수준인지는 몰라도 대략적이나마 감찰국에 카멜롯을 추적할 만한 능력이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했다.
더욱이, 바르나울이 카멜롯에 접근하는 일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 란슬롯의 의견이었다.
“······바르나울이 생산한 아이템에는 흑마법사들이 소유권을 회수할 수 있는 표식이 부여돼 있습니다. 감찰국이 바르나울을 불러들인 것도 그 때문이겠죠.”
자칫하다간 제대로 싸워 보기도 전에 기사들을 빼앗길지도 모르는 상황.
하물며 지금은 드워프들의 각인 작업 탓에 아공간에 카멜롯을 들일 수도 없는 처지였다.
오래 기다릴 것도 없이, 단 일주일 뒤면 바로 저 거뭇한 섬에서 흑마법사들이 들이닥칠 터.
“정겸 님, 세계수만 있다면 싸워 볼 수 있습니다.”
긴장되어 있던 내 표정 때문이었을까?
엘리가 내 팔을 붙잡았고, 주변의 드루이드들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다름 아닌 세계수로부터 힘을 얻는 자연 종족들.
엘프들은 ‘정화’ 능력을, 드루이드들은 ‘재생’ 능력을 발휘해 바르나울의 흑마법을 견제할 수 있었다.
애당초 이들이 바르나울의 집중포화를 받은 것 또한 세계수를 부릴 수 있다는 위험성 때문이었으니까.
“그래야죠. 그리고 더 잘 싸워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적들의 목표는 싸움이 아닌, 카멜롯의 회수.
흑마법사들의 접근을 허용한다면 싸움의 승패와 무관하게 카멜롯을 빼앗기게 될지도 몰랐으니까.
물류센터의 주인으로서, 다른 건 몰라도 아이템을 빼앗기는 일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나는 곧장 드루이드 족장, 핀드릭에게 말했다.
“이곳 엘븐하임에도 공간 왜곡을 펼쳐줄 수 있습니까? 세계수는 무한정 제공하겠습니다.”
“이것 참······ 며칠 내내 나무만 심어야겠군요. 바라던 바입니다.”
용케 엘븐하임까지 찾아온 바르나울이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엿가락처럼 배배 꼬인 드루이드들의 길을 놈들에게도 선사할 예정이었으니.
그 사이사이로 엘프와 드루이드들이 게릴라전을 곁들여 줄 참이었다.
더욱이,
“양동작전으로 갈 겁니다. 놈들도 두 곳으로 왔으니, 이쪽에서도 양 싸다구를 때려 줘야죠.”
한 번 당해본 적이 있어서일까.
죽은 자들의 혼을 되살리는 바르나울에 대해, 엘리는 내게 한 차례 경고했었다.
곧 무한히 되살아 나는 불사의 군대와 싸우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이제 무한이라는 말은 못 쓰게 될 겁니다. 적어도 내 앞에서는요.”
그 누구도 내 앞에서 무한을 자랑할 수는 없었다.
따지고 보면 제때 못 죽는 것도 병이다.
그리고 내게는 ‘불사’를 치료하기에 딱 좋은 장침이 구비되어 있었다.
띠링!
[포식 : 관련 대상에 한하여, 처치한 대상의 혼을 포식합니다.]‘축복된 악마 포식자’에 달린 설명.
흑마법사들이 죽은 자의 혼을 되살린다면, 그 혼을 모두 먹어 치우면 그만 아닐까?
대강의 준비는 끝났다.
미로처럼 얽힌 엘븐하임의 오솔길에 카멜롯을 감춰두고, 나는 몸 아픈 유럽의 좀비들을 치료해 주기 위해 의료봉사를 떠나면 될 터.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마음가짐뿐이었다.
“괜찮겠지?”
마지막으로 란슬롯의 어깨를 잡았다.
유럽에서 언데드들을 마주했을 때부터, 유달리 굳어 있던 해골 기사들이었으니.
바르나울을 쳐부수는 것과는 별개로, 이들이 저주의 트라우마를 이겨내길 바랐으니까.
고맙게도, 란슬롯은 내게서 남모를 힘을 건네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따르겠습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활의 상징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