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89)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89화(89/240)
89화 부활의 상징 (6)
“그랬지······ 그땐 정말······.”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 엘프와 드루이드들.
그들이 하나같이 바르나울로부터 겪었던 치욕을 떠올렸다.
자연 종족들의 능력은 특별했다.
이들의 혼은 죽음이 아닌 자연에 귀속되는바,
카멜롯의 기사들처럼 원혼이 되어 바르나울의 노예로 부려지는 수모를 피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역으로······.
“맞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부아가 치밀어 오릅니다.”
바르나울의 견제를 받아, 집요한 괴롭힘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흑마법으로는 공략할 수 없는 특별한 종족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엘리가 먼저 입을 뗐다.
“울창한 꽃과 나무로 가득 차 있던 엘븐하임에 놈들이 불을 질렀죠. 우리 엘프들이 혼비백산한 틈을 타 대륙 곳곳에 저주를 뿌려댔고요.”
그 결과는 나 또한 모르지 않았다.
거무죽죽하게 죽어 있던 엘븐하임 대륙.
그 참담한 풍경을 뇌리에서 지울 수 없었으니.
심지어······.
“불 끄는 걸 도와주겠다며 더러운 오줌을 갈기더군요.”
엘븐하임을 몰락시킨 것도 모자랐다.
바르나울은 자신들의 개차반 인성을 어김없이 과시했고, 엘프들의 가슴에도 커다란 상흔을 남겼다.
고개를 끄덕이는 족장, 핀드릭.
드루이드들이 당한 수모 또한 그에 못지않았다.
“하루아침의 일이었습니다. 창고에 쌓아두었던 세계수 잎을 모조리······.”
사라진 세계수 잎.
범인은 바르나울의 서리꾼들이었고, 장난이라 하기엔 드루이드들이 입은 피해가 실로 막심했다.
“부족원들 모두가 하루가 가기 무섭게 피폐해져 갔지요. 어느 날 대뜸 바르나울의 흑마법사들이 나타나 세계수 잎을 들이밀기는 했지만······.”
이미 드루이드들은 흑마술의 환각에 걸린 채였다.
흑마법사들이 손바닥에 버젓이 세계수를 올려두었지만······.
“세계수를 입에 넣고 싶다는 환각에 휘둘리며······ 놈들의 발이든, 흙바닥이든 개처럼 핥아댔습니다. 우릴 보며 미친 듯이 비웃더군요.”
바르나울은 잔인했다.
흑마법의 노예가 되지 않는 드루이드들.
드루이드들의 뿔을 짓밟은 건, 그 알량한 자존심을 채우기 위함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를 겁니다.”
다시 만나게 될 바르나울.
내 말에, 엘리와 핀드릭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
어느덧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시시포스를 건설하고, 악마들의 원혼을 갈아 넣으며 바쁜 한 주를 보낸 바르나울.
이제 감찰국에서 요청한 대로 카멜롯을 회수하기 위해 나서면 될 일이었지만······.
“우리끼리 가라고?”
“예, 가츠 님께서는 박물관을 둘러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가츠는 돌연 카멜롯의 회수를 부사령관 말키오스에게 모두 일임해 버렸다.
부관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야, 엘븐하임이니까요.”
“뭐, 그렇긴 하지.”
흑마법을 통해 추적한 카멜롯의 위치.
공교롭게도 원래 지구에 있던 지역이 아니었다.
가츠는 유럽 본부의 통폐합 기록을 확인했고, 그곳이 엘븐하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귀신같이 흥미를 잃어버렸다.
“······완전히 몰락해 버린 차원에 무슨 재미가 있겠어?”
왜 카멜롯이 엘븐하임에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직접 저주를 뿌렸던 곳이니만큼, 가츠는 지금쯤 엘븐하임이 어떤 꼬락서니를 하고 있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말키오스 또한 흥미가 덜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임무는 임무.
황금빛 장막이 거둬지자마자, 그는 수십 명의 흑마법사를 이끌고 게이트 포탈을 빠져나갔다.
그들은 언데드로 되살린 뼈 가고일을 타고 날아올랐고,
퍼득!
퍼드득!
흑마력을 덧씌운 썩은 날개 가죽이 그 알량한 무게를 감당했다.
북태평양에 끌어들인 작디작은 인공섬.
엘븐하임 대륙 위로 드높게 날아오른 흑마법사들은······.
“······어?”
콰아아앙!
돌연 알 수 없는 중력에 이끌려, 엘븐하임에 추락했다.
입안 가득, 깔깔한 해변의 모래가 씹혔다.
흑마법사들은 가고일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뭐야, 왜 이래?”
다른 이유가 없었다.
엘븐하임으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는 방대한 자연력.
고작 갓 되살린 가고일의 흑마력으로는 버틸 수 없었으니까.
“페르메곤 쓰레기들로는 이 정도가 한계인가. 그나저나······.”
흑마법사들은 달라진 엘븐하임의 모습을 눈에 담았고, 너나 할 것 없이 충격에 휩싸였다.
“······이게 엘븐하임이라고?”
숯검댕이처럼 대륙을 휩쓸던 저주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파릇파릇한 녹림과 생동감 넘치는 물결을 확인할 수 있을 뿐.
그로부터 말키오스가 느낀 감정은 짜증, 그리고 불쾌였다.
“이럴 리가 없는데?”
분명 새싹 하나까지 말끔하게 태워 버린 터였다.
매 걸음 저주를 박아넣으며, 혹시 모를 세계수의 준동에 대비했던 그들이었으니.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도 아니었다.
추적 흑마법에 줄곧 감지되고 있던 카멜롯.
그 흉흉한 실루엣이 엘븐하임 숲 너머로 아른아른 비쳐오고 있었으니까.
결국, 말키오스가 선택한 전략은 단순했다.
과거를 다시 반복하는 것.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태워 버리면 그만이지.’
말키오스가 흑마법사들을 이끌고 숲으로 들어섰다.
그러곤 충분히 깊숙이 들어왔다고 판단했을 즈음, 부하들에게 틱틱 손가락을 튕겼다.
“알지? 시작해.”
“알겠습니다.”
흑마법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나란히 펼친 두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다 댄 그들.
훅훅!
날숨으로 뱉어 불씨를 만들었고.
쓰으읍······!
또다시 폐부로 빨아들이며, 농축된 흑마력을 붉게 달궜다.
치이이······.
흑마법사들의 손끝에 맺힌 불씨.
겉보기엔 별것 아닌 불씨였지만, 이것이 한때 엘븐하임을 불길로 뒤덮었던 화마(火魔)의 정체였다.
휙!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손가락을 튕겨, 숲 곳곳에 불씨를 퍼뜨리는 바르나울의 흑마법사들.
이제 불길에 휩싸인 숲과 눈물 콧물을 쏟으며 뛰쳐나오는 엘프들을 구경하면 될 일이었지만······.
“······왜 안 타는 거야?”
아무리 불씨를 던지고, 입김을 불어 넣어도 도무지 불길은 번질 기미가 없었다.
그들은 그제야 확인할 수 있었다.
숲의 대부분이 단 한 가지 종류의 식물로 가득 차 있다는 것.
그리고······.
凸
자신들을 향해 뻗어 나온 수백 개의 가지.
그 끝에 달린 잎사귀들이 하나같이 독특한 모양으로 말려 있었다는 것.
생명력으로 가득 찬 그 떡잎에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흑마력의 불이 붙지 않았다.
.
.
.
“헉······ 헉······.”
부사령관 말키오스는 전략을 수정했다.
움직임을 멈춘 가고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숲을 불태우는 여흥 또한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일.
그 모두를 차치하고서라도, 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임무가 주어져 있었다.
“······다 집어치워. 카멜롯만 가지고 돌아가면 돼. 카멜롯만······.”
추적 마법은 여전히 가동되고 있었다.
숲 중심부에 놓인 카멜롯의 실루엣을 여전히 확인할 수 있었지만······.
“분명 가까이 있었던 것 같은데······.”
걸어도 걸어도 목적지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부사령관님······.”
상황은 점차 악화되고 있었다.
촘촘한 잎사귀 사이로 떨어지는 찬란한 빛.
경사를 따라 졸졸 흐르는 맑은 시냇물 소리까지.
불쾌한 환경을 도무지 참지 못한 부하 몇몇이 훌렁 허리끈을 풀어 버렸다.
“······이젠 못 참겠습니다!”
흑마법사들은 어느덧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자연환경에 굴복하고야 말았다는 모멸감이 그들을 휘감고 있었고······.
쏴아아······.
다소 찌질한 방법이기는 하나, 주변 경관에 오줌을 갈기는 것으로 파괴와 부패를 상징하는 흑마법사로서 자존심을 회복하고자 했다.
하지만······.
투두둑.
투둑.
정수리를 향해 떨어지는 샛노란 빗줄기를 맞으며.
그제야 부사령관 말키오스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
줄곧 쫓아온 카멜롯의 형상이 거꾸로 뒤집혀 있었다는 것.
다시 말해, 지금껏 공간 왜곡으로 생겨난 신기루를 좇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은 깨달음이 비릿한 오줌 냄새와 함께 뒤늦게 찾아왔다.
“히히힉!”
폐부를 채우는 청명한 공기에, 반쯤 정신줄을 놓아 버린 흑마법사들.
곳곳에 오줌발을 휘갈기고, 손끝에 되도 않는 불씨를 키우고, 흑마력 포션을 삼키고 남은 플라스크를 이곳저곳에 내팽개치고 둥, 진상 등산객으로서의 종합 예술을 선보이던 찰나······.
삑삑! 삑삑삑삑!
어디선가 발굽 소리와 함께,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뭐······ 지?”
혼미해지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은 말키오스.
그가 발견한 것은 정글모와 선글라스를 쓴 채, 고라니를 타고 있는 드루이드였다.
“어째서······? 어떻게 드루이드가 여길······?”
있을 리가 없는, 있어서는 안 될 드루이드다.
아니, 있다고 한들 세계수 잎이 없어 사경을 헤매고 있어야 할 존재들.
하지만 눈앞에 선 드루이드는 사슴뿔과 함께 위풍당당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거- 아저씨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질겅질겅, 낙타처럼 턱을 움직이는 드루이드.
그는 바르나울이 지엄한 수림의 규율을 어겼다며, 그 죄를 묻기 시작했다.
그렇게 부여된 형벌이란······.
“히히히힉!”
“흐이이이이히히힉!”
흑마법사들에게 ‘재생’을 부여하는 것.
하나같이 흙바닥을 뒹굴었다.
어둠의 계약을 통해 부패와 손상에 내맡긴 앙상한 육신.
그 사이로 새살이 돋기 시작했으니, 끔찍한 가려움에 고통이 동반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어으으으으으으윽!”
압도적인 상성.
그들이 세계수를 멸절시키고자 했던 것 또한 이런 이유에서였다.
바르나울은 세계수로 무장한 드루이드들을 절대 이길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때였다.
“저 놈들은······.”
스륵.
스르륵.
순박한 엘프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들은 이 빠진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었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유를 알 수 없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엘프 거렁뱅이 새끼들이!”
드루이드는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엘프들이라면?
‘너희만은 죽인다’는 맹목적인 적개심과 함께, 흑마법사들이 불굴의 의지로 몸을 일으켰고······.
“죽어!”
흑마력으로 뒤덮인 손을 휘둘렀다.
하지만,
탁!
“······어?”
확연한 차이였다.
바람에 의해 훌렁 걷어진 흑마법사들의 소매.
그들의 앙상한 손목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것은······.
“뭐가 이렇게······ 두꺼워?”
팍스FC의 무한 산채비빔밥으로 뼛속까지 영양 보충을 마친,
구릿빛으로 보기 좋게 그을린 엘프들의 두꺼운 팔뚝이었다.
“잡았다.”
씨익.
앞니 빠진 미소.
자다 일어난 듯, 한껏 눌려있는 새집 머리.
통통한 볼살을 사선으로 지나는 흰 콧물까지.
보기만 해도 된장 냄새가 풍겨 오는 순진무구한 모습이었지만······.
“아······ 아악······!”
흑마법사들에게는 오히려 정반대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바로 공포라는 감정을.
“으아아아아악!”
니 편 내 편 할 것 없이 미친 듯이 혼비백산하는 그들.
하지만 타잔처럼 나타난 엘프들이 무 뽑듯이 흑마법사들의 머리채를 붙잡았고, 이따금 벗어나더라도 공간 왜곡에 되돌아오거나, 그도 아니면 발을 헛디뎌 실족사로 생을 마감할 뿐이었다.
“말도 안 돼······.”
한편, 말키오스는 억울했다.
아무리 자연이라 한들, 죽음과 생의 사이클이 균형을 이루고 있기 마련이다.
울창한 숲일수록, 흑마력을 추출할 만한 죽음의 환경 또한 갖춰져 있는 것이 타당할 터.
하지만······.
“대체 뭐냐고! 이 괴물 같은 공간은······!”
이 숲에는 죽음이라곤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부터 끝까지 세계수의 생명력에 의해 지탱되는 공간.
무한한 생명력으로 가득 찬 엘븐하임은 바르나울이라는 병균에게 있어 무균실로 작용하고 있었으니까.
“······헉! 헉!”
말키오스는 달렸다.
드루이드의 ‘재생’을 피해.
엘프들의 ‘정화’와 완력을 피해.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흘렀을 즈음······.
죽음의 신이 그를 구원하려는 것일까?
탁! 탁!
그는 마침내 소원해마지않던 죽음의 대상을 맞닥뜨릴 수 있었다.
“찾았다! 저것만 있으면······!”
수풀 사이로 짐승 한 마리가 창백하게 쓰러져 있었다.
사슴 같으면서도, 그렇다고 사슴은 아닌 어정쩡한 생김새였지만······ 종 따위야 아무래도 좋았다.
부패와 죽음은 흑마법사들의 자산이다.
그는 이 망망대해에서 마침내 자신의 무기를 발견한 참이었으니까.
쓰으으······.
가슴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흑마력.
그가 입술 사이로 사악한 언령을 내뱉었다.
“일어나라.”
벌떡!
반응은 빨랐다.
몸을 일으킨 짐승.
자신을 일으킨 주인을 향해 촉촉한 눈망울을 드러낸 녀석은······.
-꿰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이이익!
“워메 X발!”
대뜸 괴랄한 소리로 흑마법사를 주저앉혔다.
다그닥. 다그닥.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며, 비명과 함께 멀어지는 고라니.
껑충껑충 뛰어나가는 고라니의 뒷모습을 말키오스는 망연히 바라볼 뿐이었다.
“······.”
푸욱.
그는 고개를 파묻었다.
엘븐하임에는 정말 단 하나의 죽음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
“세계수를 내준 보람이 있네.”
한편, 엘븐하임의 전투를 둘러본 나는 결론 내릴 수 있었다.
바르나울은 절대 세계수로 무장한 엘븐하임을 뚫어낼 수 없을 것이라고.
엘프와 드루이드들이 활약해주고 있는 만큼, 카멜롯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물론······.
“아직 끝난 건 아니지.”
지이잉.
나는 유럽으로 가는 포탈에 서 있었다.
란슬롯을 비롯한 카멜롯의 열두 기사들과 함께.
바르나울에 원한이 있는 건, 엘프와 드루이드뿐만이 아니었으니까.
“······가자.”
내가 눈짓하자, 카멜롯의 기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된 빚을 되돌려 받기 위해.
부활의 상징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