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9)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9화(9/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 9편
(소영주의 꿈 (1))
“서울로 가려면 과천대로로 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큰길에는 아직 저글링들이 있을 테니··· 샛길로 우회해서 한번 가보겠습니다.”
백여 마리가 넘는 저글링을 해치웠지만, 그건 일부에 불과했다.
인덕원역 흥안대로에는 여전히 수백 수천마리의 괴물들이 들끓고 있었으니.
다행히 이곳 지리에 빠삭한 모양인지 이용수는 익숙하게 차를 몰았다.
부르릉.
서울로 향하고 있음에도 점차 시골길처럼 변하는 도로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가 근처를 기웃거리며 말했다.
“이 근방이 청동기 유적지라나 뭐라나··· 그 탓에 개발이 안 됐다더군요.”
금세 거칠어지는 자갈길에, 차체가 연신 울컥거렸다.
과거 시대에 대한 역사적 보존.
더 이상 그런 게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이제 인류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갈 테니.
그렇게 굽이진 도로를 십여분 가량 달렸을 즈음이었다.
“···앞에 뭐가 있군요.”
멀찍이 놓인 철제 바리케이드가 도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노란과 검정 패턴.
군에서 사용하는 철제 바리케이드였다.
그 앞으로 날카롭게 못을 세운 철침판이 놓여있었기에,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이용수가 물었다.
“군이 아직 있는 걸까요? 그러고 보니, 이 옆에 군부대가 하나 있긴 하거든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나는 바리케이드 옆을 지키고 있는 사내들을 가리켰다.
“군복을 안 입고 있어요.”
스포츠 바람막이부터 반팔차림까지.
그 팔뚝에는 형형색색의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들고 있는 물건이었다.
내가 말했다.
“···소총이네요.”
“이런··· 다른 길로 돌아갈까요?”
“그건 안 될 것 같은데요.”
빵빵-
뒤에서 하이빔을 켠 레토나 차량 한 대가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는 완벽한 양동작전에 걸려든 참이었다.
내가 말했다.
“용수 씨, 일단은 포탈 열어 드릴 테니 들어가 계세요.”
“어떻게 하시려고요?”
“장롱 면허지만 엑셀 정도는 밟을 줄 압니다.”
“아뇨, 그게 아니라···”
“다짜고짜 총부터 쏘지는 않겠죠. 지금도 그러고 있고요. 기습만 아니라면 죽지 않을 자신은 있습니다.”
만일의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그가 없는 편이 더 나았다.
아공간 포탈을 벽처럼 세우면 총알도 막아낼 수 있을 테지만, 이용수에게 그런 방어 수단은 존재하지 않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그도 내 뜻을 이해했는지, 조수석 사이로 생성된 포탈에 서둘러 몸을 구겨 넣었다.
나 또한 덜덜거리는 차체의 진동을 느끼며, 천천히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막상 핸들을 잡으니 머리가 하얬다.
젠장 운전 어떻게 하더라.
손을 대충 얹어 놓은 뒤, 천천히 액셀을 밟았다.
다시 속도가 붙은 트럭이 놈들이 세워 놓은 검문소 앞까지 다다랐고,
덜컹!
철침판 앞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창문을 내리자 소총을 목에 건 사내가 실실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운전 한번 뭐같이 하네. 바퀴 터지는 거 한번 구경해볼까 했더니만.”
“···무슨 일입니까? 군에서 나오신 건 아니신 듯한데.”
사내가 보글보글한 파마머리를 흔들며 히죽 웃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바로 1대대장이야-!”
그의 과장스런 몸짓에, 반대편에 있던 남자가 맞받아쳤다.
“야이 새끼야. 니가 대대장이면 난 뭐가 돼?”
“아 형님은 연대장 아니겠습니까! 충성!”
“씨팔, 연대장이랑 대대장이 위병소 뺑이치고 지랄이다 새꺄.”
제 형님과 장난을 주고받던 사내가 다시 내게 돌아왔다.
“오늘부로 말뚝 박기로 했어. 됐지? 그래서 우리 애기는 어디까지 가려고 이 큰 차를 몰고 계실까? 황천길?”
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이었다.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탑차의 뒷문이 열렸다.
뒤를 따라오던 레토나에서 내린 졸개들이 그새 문을 연듯했다.
놈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형님! 이 새끼 미쳤는데요?”
“와 씨바, 존나 대박이네!”
짐칸에는 이용수가 물류단지에서부터 챙겨온 각종 물자가 가득 실려있었다.
생수부터 통조림, 방한용품까지.
없는 게 없을 터였다.
졸개들을 따라 트렁크를 둘러보고 돌아온 사내가 오두방정을 떨었다.
“택배기사 아저씨셨네? 물건 이렇게 삥땅 쳐도 괜찮은 거야?”
“다 가져가셔도 상관 없습니다. 더 구해다 드릴 수도 있고요.”
“정말? 너 되게 협조적이다?”
그때였다.
수풀 너머로 나타난 또 다른 부하가 그에게 외쳤다.
“형님! 이제 한 시입니다!”
“아, 벌써?”
사내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내게 총구를 들이밀었다.
“일단은 내려. 여기 접어야 하니까.”
우선은 그의 말에 따랐다.
출하 스킬을 쓰면 단숨에 제압이 가능하겠지만, 그러기엔 놈들의 수가 많았다.
하나같이 소총을 들고 있다 보니 좀 더 확실한 기회를 살피기로 했다.
내심 믿는 구석도 있었다.
2레벨을 달성한 아공간.
그 이점은 단순히 사람을 수용할 수 있다는 데서 그치지 않았으니까.
놈이 다른 부하 한명을 불러왔다.
“부르셨습니까, 형님?”
“니가 이거 몰고 들어와. 얘는 내가 데리고 들어갈 테니.”
“데려갑니까?”
“엉. 이거 박스 더 갖다줄 수 있다대? 큰형님이 좋아하시지 않겠냐?”
사내는 그 말을 끝으로 나를 뒤에 있는 레토나 차량으로 데려갔다.
그러곤 나를 뒷좌석에 태운 뒤,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총구는 여전히 내 가슴팍에 향해있는 상태였다.
“여기 두어 시쯤 되면 뭐가 졸라게 튀어나오거든. 밖에 안 나와 있는 편이 좋아.”
그가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히죽 웃으며 말했다.
차가 덜컹이며 언덕을 올랐다.
놀랍게도 놈들이 향한 곳은 진짜 군부대였다.
차가 다다르자, 철로 된 위병소 문이 옆으로 드르륵 열렸다.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들 또한 군인이 아니었다.
내게 총구를 겨누고 있던 사내가 위병소를 지키던 부하들에게 말했다.
“이따 늦지 않게 들어가라. 벌써 한 시다.”
“알겠습니다. 형님.”
부대 안은 놀라우리만치 한적했다.
이따금 죽은 병사들의 시체가 눈에 띄었을 뿐.
어쩌면 저글링들에 의해 떼죽음을 당한 병사들의 소속이 바로 이곳이었는지도 몰랐다.
“내려.”
우리가 내린 곳은 연병장 한쪽 끝이었다.
과연 그 앞에는 화려한 부대 마크가 박힌 건물이 드리워 있었다.
<국군 지휘 통신 사령부>
그것이 이곳의 이름이었다.
그가 나를 건물 내부로 안내했다.
건물의 3층에 올라, 그의 ‘큰형님’이 있다던 방에 다다랐을 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날 뻔했다.
<사령관실>
방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나를 안내하던 사내가 똑똑 문을 두드렸다.
“형님, 저 석준입니다.”
“어, 들어와라.”
내부는 정갈한 집무실이었다.
벽면에는 태극기를 비롯한 이런저런 휘장들이 깃대에 걸려 있었고, 그 앞에 놓인 책상에 한 사내가 담배를 태우며 앉아 있었다.
헐렁한 셔츠 차림에 흰 바지를 입은 사내의 얼굴에는 큼지막한 흉터가 대각으로 그어져 있었다.
재떨이가 없었던지, 그는 피우던 담배를 책상에 비벼 꺼뜨렸다.
암만 봐도 ‘사령관’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서 일 봐.”
“예, 형님.”
석준이라는 이름의 사내가 문을 닫고 나갔다.
사령관은 턱 하니 책상에 무언가를 올려두었다.
새까만 권총이었다.
그가 물었다.
“그 많은 물건을 어디서 다 났어?”
무전을 통해 대략적인 이야기를 이미 건네 들은 모양이었다.
나는 사실대로 답해주었다.
“군포 물류센터에서 챙겨왔습니다.”
“아! 물류센터!”
그가 미처 몰랐다는 듯, 이마를 탁 쳤다.
“머리 존나 좋네. 나도 그런 델 먼저 먹었어야 했는데.”
“···여긴 어떻게 된 겁니까?”
“흐흐, 오면서 군바리들 다 뒈져있는 거 못 봤어?”
그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뭐 지들끼리 무슨 작전이랍시고 설치다가 다 뒈지더라고. 안에 잔당만 조금 남았길래 쓱싹하고 접수했지. 내가 행동력 하나는 참 빨라.”
내심 자랑스런 표정이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근데 문제가 좀 있어. 총도 있고, 수류탄도 있고 다 좋은데··· 정작 먹을 게 별로 없더라? 전투식량은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모르겠고, PX도 코딱지만 하고. 그래서 니가 수고 좀 해줘야 할 거 같아.”
그가 몸을 일으켜 저벅저벅 걸었다.
그러곤 대단한 작전 브리핑이라도 하는 양, 나에게 상세한 계획을 전달해주기 시작했다.
“트럭 몰고 그 잘난 물류센터에 좀 다녀와. 애들 딸려 보낼 거니까 허튼 생각하지 말고 방향만 똑바로 안내해. 뭐··· 원한다면 우리 쪽에 붙어도 좋아. 당분간 좀 구르긴 하겠지만, 괜히 밖에 돌아다니다가 괴물들한테 뜯겨 죽는 것보단 낫지 않겠어?”
그때, 창밖으로 낯선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끼에에에에에에-
끼에에에-!
세찬 울음소리가 연거푸 겹쳐 들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해가 가려졌다.
퍼득.
퍼드드득.
수천 장의 날갯짓 소리가 우레처럼 쏟아졌다.
짙은 먹구름처럼 하늘을 메우는 놈들을 보며, ‘사령관’이 투덜거렸다.
“오늘은 좀 빠르네. 평소엔 두 시에 오더니만.”
놈들은 와이번이었다.
하지만 터널에서 보았던 놈들과는 뭔가 달랐다.
“저건···”
“미쳤지? 쟤가 우두머리거든.”
유난히 몸집이 큰 한 마리의 와이번.
머리와 몸통이 검게 물들었고, 꼬리와 다리는 기름이라도 덮인 양 무지갯빛으로 아른거렸다.
그 크기가 유난히 거대했다.
어쩌면 와이번이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을 넘어···
“···드래곤?”
그렇게 부를 만한 존재였다.
저런 놈은 도끼를 수백 번 던져도 도무지 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놈이 수천 마리의 와이번과 함께 상공을 휘저었다.
‘사령관’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잘 들어. 우리 애들이랑 같이 일단 물류센터에 다녀 와. 니가 허튼수작만 안 부린다면 우리 식구로 받아줄 테니.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
그가 검은 권총을 들어 보였다.
그러곤 주먹을 움켜쥐었다.
으드드득···
총신이 조금씩 우그러졌고,
타앙-!
천장으로 총알이 발사되며 권총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엄청난 괴력이었다.
“나는 각성자다. <최강의 싸움꾼>이라는 능력을 얻었지. 이 시스템 창은 도무지 거짓말이란 걸 하지 않아. 내가 최강이라면 최강인 거다. 그러니···”
그가 봉신계약의 최종 조건을 제시했다.
“앞으로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 식량 찾아오고, 마석도 좀 찾아오고. 그러면 내가 널 괴물들로부터 지켜주마. 세상이 변했어. 이제 힘이 지배하는 시대가 된 거지··· 그러니 바로 이 내가···”
그의 장광설이 늘어졌다.
아무리 봐도, 그는 어딘가 취해있었다.
어쩌면 멸망 그 자체에.
무너진 문명 속에서, 그는 낡은 구시대의 향취를 좇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나는 왕이 될 거다. 여기가 내 나라가 될 거고.”
하늘을 날고 있는 또 다른 왕, 드래곤이 슬쩍 이곳을 곁눈질했다.
하지만 건물 안에 있어서인지 그저 와이번들과 함께 주변을 맴돌 뿐이었다.
과연 우두머리란 존재는 그야말로 위풍당당했다.
하지만 내가 찾는 가족은 이딴 드잡이질이나 일삼는 깡패 새끼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사령관’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나대로 계획하고 있는 바가 있었다.
마음속으로 팍스에게 말을 걸었다.
바로 오늘, 아공간 레벨 2를 달성한 상태였다.
유지 비용이 늘어나고, 한층 더 스킬을 강화할 수 있게 됐지만 가장 큰 성과는 따로 있었다.
팍스가 내게 물었다.
[저장할 대상을 입력하시겠습니까?] [저장 가능 횟수 : 1]내가 답했다.
‘이곳 국군 지휘 통신 사령부를 넣어줘.’
나는 사령관의 영지를 송두리째 탈취할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