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9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90화(90/240)
090화 부활의 상징 (7)
을씨년스럽게 변해 버린 파리.
콩코르드 광장 주변으로, 썩은 정원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까악. 까악.
까마귀가 왔나?
아니, 착각이었다.
붉은 노을에 그을린 에펠탑.
그 주변을 맴도는 건 좀비처럼 변해 버린 가고일이었으니.
죽음의 상징인 까마귀조차, 바르나울 앞에서는 명함을 내밀지 못했다.
“모두, 힘내세요.”
세계수 곁에 선 리디아가 우리를 배웅했다.
동생의 생사 탓에 불안에 휩싸인 그녀였지만, 덕담만큼은 효과를 발했다.
“가죠.”
광장은 넓었고, 처리해야 할 적도 많았다.
팍스FC의 성기사들과 기간트 라이더, 그리고 프라하의 각성자들까지.
우리는 빳빳한 세계수 잎을 씹었고, 리디아의 버프를 두른 채 만반의 태세로 포탈을 통과했다.
우르르!
성난 폭도처럼 수백 명의 전력이 포탈을 통과했지만, 파리는 이미 죽음의 존재들에 의해 채워져 있었다.
달칵!
탁!
검은 아스팔트 위로, 분필 같은 발목을 끌고 지나가는 해골들.
뿔 달린 두개골 뒤로 앙상한 날개뼈를 채찍처럼 늘어뜨린 그들은, 분명 페르메곤의 악마였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유럽을 휘어잡았던 그들이었으나, 지금은 하나같이 바르나울의 하수인이 되어 있었다.
놈들이 우리에게 희번뜩 푸른 안광을 비추었을 때쯤,
“위치로!”
성기사들이 나를 에워쌌다.
그어어어어어!
타앙!
언데드의 울음과 함께, 대규모 난전이 시작됐다.
페르메곤의 위계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탓에, 상당한 맷집을 자랑하는 언데드.
우리는 양쪽으로 방패를 세우고 망치와 창을 휘두르며, 미리 위치를 파악해 두었던 포로수용소를 향해 조금씩 진로를 확보해 나갔다.
모두의 손에는 ‘신성 망치’가 들려 있었다.
보랏빛 흑마 법에 휩싸인 해골들을 와르르 무너뜨렸고, 나 또한 H빔과 같은 중량 무기로 놈들을 빗자루처럼 쓸어버릴 때도 있었지만······.
츠츠츠······.
죽지 않고 돌아온 원혼이 무너진 뼛조각을 빠르게 수복했다.
“엘리가 말했던 게 이건가.”
덜그럭!
무한히 되살아나는 불사의 군대.
신성력은 분명 유효한 공격수단이었지만, 언데드와 싸우기 위해서는 그 이상이 필요했다.
곧장 ‘악마 포식자’ 수십 자루를 곳곳으로 출하했고,
쐐애애애애액!
카득!
뿔 달린 악마들의 두개골을 박살 냈다.
‘포식자’는 놈들의 혼을 탈취해 유유히 아공간으로 돌아왔다.
덕분에······.
달그라락!
악마들의 사체가 깨진 그릇처럼 와장창 바닥을 나뒹굴었고, 더 이상 되살아나지 못했다.
‘무조건 마무리는 내가 해야겠네.’
자연스레 각자의 역할이 배정됐다.
일행들의 신성 망치가 적들을 무력화하는 한편,
내가 ‘포식자’를 이용해 마지막 숨통을 끊어내는 것으로.
콰아앙!
채앵!
카멜롯의 기사들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갖가지 속성 강화석이 부여된 그들.
란슬롯의 지휘 하에 베디비어가 주먹을 휘두르고, 라이오넬이 전기 채찍을 휘두르는 등, 효과적으로 언데드들의 발길을 묶어주었다.
하지만······.
“괜찮아?”
내 눈을 속일 순 없었다.
기사들의 몸짓은 조금씩 무거워지고 있었으니까.
스릉!
란슬롯은 재차 칼을 휘두르며 내 걱정을 몰아내기 위해 애썼다.
“······괜찮습니다. 주군.”
흑마법의 기운이 기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일까?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페르메곤의 뼈가 산처럼 쌓이고, ‘악마 포식자’가 놈들의 혼을 차분히 적립하며 포로 수용소에 한결 가깝게 다가갔을 즈음, 기사들을 번민케 하는 진짜 원인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힐끔.
불안한 듯, 텅 빈 눈동자를 들어 올리는 카멜롯의 기사들.
그들의 시선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그 너머에 비스듬하게 눕혀진, 정체 모를 둥근 원판 모양의 건물이 세워져 있다는걸.
“저게 설마······.”
“예······.”
란슬롯도 인정하는 눈치였다.
잠시 고개를 떨구고 있던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시시포스입니다.”
이미 한 차례 이야기를 들었던 터였다.
바르나울에게는 포로들을 원혼으로 환원시키는 시설이 있으며, 놈들은 이 시설을 이용해 원혼을 사물에 귀속시켜 아이템을 만들곤 한다고.
그것이 바르나울의 빌어먹을 ‘사업 아이템’이었고, 그 대표적인 아이템이 다름 아닌 ‘카멜롯’이었을 뿐이었다.
푸쉬이-
뭉게뭉게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보랏빛 구름.
팽글팽글, 회전을 거듭한 시시포스의 원판이 자욱한 증기를 뿜어냈다.
그리고······.
칼을 쥔 란슬롯의 손목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일종의 트라우마인가.’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었다.
바르나울에 의해 카멜롯의 망령이 된 기사들.
당연하게도, 이들 또한 ‘시시포스’를 겪었을 테니.
“란슬롯.”
어쩌면 그들을 아공간에 들여놓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숙적인 바르나울과 싸우겠다며 참전을 간청한 카멜롯의 기사들.
나 또한 그 의지를 존중하고 싶었지만, 이대로라면 과거의 상처만 자극하는 꼴이 될 테니까.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가 과거의 이야기를 털어 놓기 시작했다.
“······저희는 카멜롯에서 최후의 농성을 벌였습니다. 수백 번이나 시도했지만······ 바르나울의 군세를 막을 수는 없었죠. 어떤 방법을 시도하든, 놈들은 성을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카멜롯이 놈들의 놀이터라도 된 듯이요.”
스릉!
단칼을 휘둘러 해골 임프의 발목을 잘라낸 란슬롯.
하지만 정작 시선을 멀리 둔 그는 어쩐지 과거의 한복판에 내던져진 것만 같았다.
“동문에 맞붙은 산맥에 숨은 병력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병력을 집중했지만······ 거짓말처럼 정문 방향으로 적들이 몰려들었죠. 산맥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후웅!
그의 칼끝을 따라 흑마법의 보랏빛 기운이 움직였고, 그 은은한 기운이 허공에 지도를 그려놓았다.
“경비단장이 바르나울의 첩자였습니다. 그를 처단하고 시작했더니······ 이번에는 재무대신이 북문에 걸린 빗장을 열어젖히더군요. 들이닥친 해골들이 카멜롯을 뒤덮였습니다.”
그의 기억은 철저히 뒤틀려 있었다.
수백 번이나 반복되었던 전투.
그 모두는 시시포스가 부여한 환상에 불과했으니까.
“아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진짜 문제는 성벽에 설치된 대포였죠. 병기고의 화약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게 그 원인이었습니다. 탄약병을 배치하고 포탄이 떨어질 궤도를 수정했지만······.”
수백 번은 더 떠들어 댈 수 있었다.
이 모두는 그가 처절하게 겪은 현실이었으니.
뭉게뭉게 피어오른 보랏빛 연기 속, 기사들은 투쟁하고 또 투쟁했다.
하지만······.
“······결국 아서를 지킬 수는 없었습니다.”
시시포스는 그런 그들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결코 이뤄질 수 없도록 설계된 소원.
수백 번의 치열한 전투 끝에, 이 모두가 지옥 같은 몽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정신을 차려보니 카멜롯에 사로잡힌 망령이 되어 있더군요.”
그들은 피와 눈물에 사무친 유령이 되어 있었다.
쐐애애액!
채앵!
란슬롯이 내게 날아든 화살을 단칼에 쳐냈다.
어느덧 그의 푸른 시선이 내게 돌아와 있었다.
“아서는 혜성처럼 나타난 젊은 기사였습니다. 수백 년 동안 내전으로 지쳐있던 아발론을 평화와 설득으로 통합했죠. 상공회의소가 나타나며 아발론은 다시금 전화에 휩쓸렸지만······ 그래도 아서만 지켜낸다면 희망이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가 만났던 기사왕과는 다른 인물이었다.
아서는 기사들과 함께 자라난, 그들의 주인이자 친우였던 아발론의 왕이었으니까.
카아아아악!
나를 노리고 들어오는 공격이 차츰 늘어나고 있었다.
필시 언데드들 또한 ‘악마 포식자’의 주인이 나라는 걸 알아차린 모양.
덕분에 나를 지키는 기사들의 움직임 또한 점점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킬 수 없었습니다. 장대에 목이 매달린 아서, 허리가 잘려 두 동강이 난 아서, 독주를 마시고 목을 움켜쥔 아서······ 비록 꿈이었지만, 현실이 운명처럼 날아들었죠.”
란슬롯의 복잡한 표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결국 그들이 지키고 싶었던 것은 카멜롯 성이 아닌, 아서라는 인물이었다는 것.
그리고 시시포스를 통해 좌절되었던 그 소원이, 지금 모종의 계기로 연장되고 있다는 것까지.
아공간이라는 새로운 장소.
그리고 세계를 통합해 나갈 새로운 인물.
물론 난 아서가 아니었고, 기사들의 충심 또한 카멜롯의 저주에서 시작된 것이었지만······.
‘여전히 꿈을 꾸고 있나.’
그들은 여전히 아발론의 비극 속에 살고 있었다.
.
.
.
그들을 꿈에서 깨운 것은 거울처럼 나타난 또 다른 불행이었다.
“잠깐, 저건······.”
정확히는, 바르나울이 생산한 스켈레톤.
악마들을 이용해 언데드를 생산하던 놈들이, 마침내 인간에게까지 손을 댔으니까.
“······포로들을 재료로 사용했군요.”
“이 새끼들이······.”
끼리릭.
끼릭.
수십 마리의 스켈레톤이 육중한 수레를 끌고 나왔다.
그 위에 놓인 것은 심상치 않은 고대 그리스식의 조각상.
나무에 묶인 두 팔에 매달린 채, 벌거벗은 몸을 드러낸 고통스러운 남성의 군상이었다.
일종의 비유적인 형상인 것일까?
조각상의 정체는 수백의 원혼이 귀속된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카멜롯’처럼, 조각상 또한 특별한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크으윽!
조각상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비틀었고······.
달그락!
생전의 능력을 되찾은 스켈레톤이 우리를 향해 쇄도했다.
불길을 내뿜고, 괴력을 발휘하며 성기사들의 방어선을 위협하는 스켈레톤 무리.
“막아!”
후웅!
성기사들이 휘두른 망치에 와르르 무너져내렸지만······.
츠츠츠······.
달그락!
조각상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빛이 스켈레톤을 다시 일으키며, 전투는 다시금 진흙탕 싸움으로 흘러갔다.
“왜 공격하다 말아!? 거기 뚫리지 말라고!”
“하지만······! 저건······.”
프라하의 각성자들은 동요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 해골 중에 그들의 가족이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조각상을 부수면 스켈레톤은 모두 힘을 잃을 겁니다. 하지만······.”
한편, 란슬롯이 각성 스켈레톤을 처치할 방법을 제안했지만······.
“원혼들 또한 함께 소멸해버리겠죠.”
그 또한 차마 내게 조각상을 부수라 말하지는 못했다.
얼마 전만 해도, 카멜롯의 기사들 또한 저들과 똑같은 입장이었으니까.
그들 또한 시시포스를 거쳤을 것이다.
구원이 됐든, 생존이 됐든, 저마다의 절실한 소원과 마주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원이 수십, 수백 번 미끄러졌을 때, 원혼이 된 자신을 발견했을 터.
그들의 숨을 우리 손으로 끊어야 한다는 사실이 막막하기 그지없었지만······.
“······장례를 치르더라도, 우리 손으로 치러야지.”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바르나울이 조롱하다시피 세워놓은 비석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거기에 깃든 혼령을 데리고 장난질하는 것도.
“출하.”
쐐애애애액!
포탈에서 빠져나온 성창이 빠르게 조각상을 향해 날아들었다.
차앙! 타아앙!
흑마법으로 된 몇 겹의 방어막을 뚫고 들어간 성창은······.
파각!
하늘 위로 묶인 조각상의 두 팔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와르르······.
수레로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돌무더기.
동시에, 각성 능력을 펼치며 날뛰던 수백 마리의 스켈레톤 또한 그 자리에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띠링!
[754/1,000]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
‘악마 포식자’가 조각상에 귀속되어 있던 인간들의 원혼을 무사히 흡수했다는 걸.
죽어도 죽지 못한 채, 바르나울에 휘둘리던 그들의 고통 또한 함께 사라졌을 터였다.
나는 다시 한번 란슬롯에게 ‘시시포스’에 관해 물었다.
“······수백 번을 반복한다 이거지?”
말 그대로 희망 고문이다.
이룰 수 없는 소원을 죽을 때까지 반복하는 끔찍한 고문 도구.
“그렇다면······.”
바르나울도 직접 한 번 갈려봐야 하지 않을까?
문득, 놈들이 내지르게 될 비명 소리가 궁금해졌다.
부활의 상징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