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91)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91화(91/240)
091화 부활의 상징 (8)
“······역시 새 주인이 있었군.”
흑마법사 가츠가 덧붙였다.
곳곳에 퍼져 있는 망령들로부터 시선을 공유받은 그.
파리로 진격해 들어오는 성기사들을 살펴보던 중, 이질적으로 섞여 있는 카멜롯의 기사들을 발견했다.
“몰라볼 수가 없지······. 내 새끼들인데.”
벌써 수십 년 전의 일이지만,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또한 아발론을 짓밟고 카멜롯을 제작했던 장본인 중 하나였으니까.
기사들이 필사적으로 지키고자 했던 영웅의 처절한 죽음.
그 죽음은 절망을 사랑하는 바르나울의 흑마법사들에게 잊을 수 없는 향취를 남겨주었다.
“그런데······.”
아련하기 짝이 없는 기억이지만, 지금으로선 그 추억을 음미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입니까?”
파리 시내로 밀려드는 성기사들을 보며, 가츠가 유럽 본부장에게 물었다.
본부장 스탠리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할 따름이었다.
“······신성 무기를 사용한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그 잘난 무기가 드워프들이 강화한 에메스제 성창이라는 말은 안 했잖아요. 대체 저런 물건이 왜 이런 하위 차원에 있는 겁니까?”
차라리 그것뿐이라면 다행이었다.
바르나울의 저력은 불사의 군대로 이루어진 압도적인 물량.
그 어떤 영웅이든, 아이템이든 가볍게 꺾어버릴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저게 대체 몇 자루냐고!”
붕붕.
하늘을 수 놓는 수백 자루의 성창.
심지어 원혼을 포식해버리는 탓에, 불사의 군대라는 바르나울의 수식을 한낱 허명으로 추락시키고 있었다.
덜그럭!
싸늘하게 내동댕이쳐진 백골들.
가츠가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다차원 중에서도 열 손가락에 꼽히는 바르나울이다.
당연히 이 모두를 압도할 만한 저력이 있었지만······.
‘······이런 깡촌만 아니었어도.’
지구에 부여된 규제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감찰국을 통해 들어왔다곤 하나, 모든 절차는 상공회의소의 지엄한 개발 원칙에 따라 진행되어야 하는 법.
위계 등급 하락, 중상급 이상의 흑마술 봉인, 병력 제한, 특정 설비 반입 제한 등등.
강력한 힘을 가진 바르나울이니만큼, 그들을 옥죄는 제약 또한 상당했으니까.
-와아아아!
성기사들은 포로수용소를 향해 빠르게 접근해나가고 있었다.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린 가츠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카멜롯을 회수하는대로 바르나울은 지구에서 손을 뗄 겁니다. 그렇게 알아두세요.”
“잠시만요, 사령관······!”
고민은 길지 않았다.
무거운 추를 주렁주렁 매단 채, 코 묻은 돈벌이에 집착하는 것.
백번 천번 생각해도 당장 때려치우는 것이 옳았으니까.
하지만 감찰국으로부터 수주한 ‘카멜롯 회수’ 임무마저 내팽개칠 수는 없었다.
이미 수십 명의 흑마법사가 회수 작전을 위해 엘븐하임으로 투입된 상태였지만, 가츠로서는 한시라도 빨리 이 상황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그래야 한 톨의 원혼이라도 아낄 수 있을 테니까.
“다시 생각해보세요. 가츠 사령관. 지구는 잠재력이 어마어마한 차원입니다. 조만간 상당한 수익이······.”
신분 상승을 꾀하던 스탠리로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
그가 애타게 가츠를 설득했지만······.
“철수 신청입니다. 접수 바랍니다. 본부장.”
가츠는 단호하게 자기 의사를 전달했다.
‘······이쯤에서 서로 좋게 좋게 끝내자고.’
이제부터는 그가 직접 움직일 생각이었다.
최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며, 카멜롯을 회수하기 위해.
***
한순간이었다.
파리 곳곳을 메우고 있던 흑마법의 기운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은.
와르르르!
언데드 무리가 순식간에 무너졌고, 악마들 또한 귀속되어 있던 아이템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갔다.
“······뭐지?”
순식간에 뚫려버린 길목.
거품처럼 사라져버린 적들 앞에, 모두 당황스러운 눈치였지만······.
덕분에 포로 수용소가 위치한 방돔 광장까지 단번에 다다를 수 있었다.
웅성웅성.
거대한 수용소에는 수천 명의 인파가 들이 차 있었다.
“잘 부탁합니다.”
팍스 FC의 힐러들이 총동원되었고, 프리스트 글렌, 그리고 드루이드들이 포로들의 회복을 도왔다.
빠르게 보급된 포션을 마시며, 조금씩 기운을 되찾은 포로들.
그들이 지금까지의 참상을 차분히 증언해주었다.
“각성자들을 위주로 차출해 갔어요. 여기 남은 건 대부분 별다른 각성 능력이 없는 민간인들이고요······.”
포로들이 풀썩 고개를 떨궜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벌써 수천 명 이상이 시시포스로 끌려간 상황.
거리는 멀지 않았다.
남쪽으로 채 1킬로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위치.
파리의 역사가 담긴 고풍스러운 건축물 사이로, 거대한 크기의 시시포스가 떡하니 드리워 있었으니까.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루브르인가.”
고대 조각상이 수레에 끌려올 때부터 알아봤지만, 정말 루브르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즉시 놈들의 동태를 살폈다.
프라하의 정찰 능력 각성자인 율리안을 불러왔고, 멀리 뻗어나가는 그의 시야를 공유받았다.
루브르 박물관의 트레이드 마크인 유리 피라미드가 거대한 시시포스의 그늘에 가려진 상황.
그 아래로 향해 들어간 시선에서,
“······저건?”
유독 낯익은 장소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찰칵찰칵.
쉼 없이 맞물리는 톱니바퀴.
타르르르······.
복잡하게 얽힌 파이프관을 미끄럼틀처럼 통과하는 쇠구슬,
틱틱 탁탁 모스부호 같은 박자를 찍어내는 십수 개의 스위치까지.
잔잔한 배기음과 은은한 푸른빛에 둘러싸인 공간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몇 배 이상의 규모였지만, 틀림없었다.
“······상공회의소?”
아공간에 담긴 상공회의소의 지부와 똑같이 생긴 공간이었으니까.
휘이이······.
파리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바르나울의 언데드들이 모조리 쓰러져 있는 상황.
나는 포로들이 한국 또는 엘븐하임으로 피신할 수 있도록 포탈을 놓아주었고, 곧장 성기사들과 기사들을 이끌고 시시포스가 설치된 루브르로 나아갔다.
몇 분이나 걸었을까?
상공회의소의 은은한 푸른빛을 머금은,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가 한눈에 들어왔을 즈음······.
-제안할 게 있다.
주위로 몰려든 망령들을 통해, 섬찟한 목소리가 귀를 찌르고 들어왔다.
‘저놈인가.’
검은색 로브를 뒤집어쓴, 바르나울의 흑마법사.
목소리의 주인이 상공회의소 유럽 본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나는 바르나울의 가츠라고 한다. 들어와라. 이 안에서는 서로 공격할 수도 없고, 밖으로부터도 공격받을 일이 없으니······.”
안전장치로 삼은 상공회의소 본부.
놈이 다차원 최고의 중립 지대로 나를 초대해주었지만,
“잘 들려. 거기서 이야기해.”
아쉽게도 우리는 하하호호 차를 나눌만한 사이가 아니었다.
놈도 차마 부정할 수는 없는지, 곧장 본론을 꺼내 들었다.
“카멜롯을 포기해라. 어차피 규제 위반에 연루된 이상, 상공회의소가 카멜롯을 내버려 둘 일은 없어. 감찰국은 지옥 끝까지 널 추적할 거다.”
시작은 경고였다.
살벌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한 놈은,
“지금 시시포스에는 수천 명의 포로가 수용돼 있다. 아직 가동은 하지 않았으니 구하려면 구할 수도 있겠지. 만약 네가 카멜롯만 넘긴다면······.”
곧 차분한 목소리로 평화협상을 제안했다.
“포로들을 해방하는 건 물론, 말끔히 지구를 떠나주겠다. 이곳 유럽도 텅 빈 땅이 될 테니, 네가 여길 점령해도 되겠지.”
놈이 내게 저울을 들이밀었다.
수천 명의 포로, 그리고 충직한 카멜롯의 기사들이 양쪽에 매달린 아슬아슬한 저울.
실로 불쾌하기 짝이 없는 선택지였지만······. 놈은 또 다른 조건을 추가로 덧붙였다.
“다만, 시시포스와 이곳 지하에 있는 조각품들은 가져가겠다. 특별히 인간을 재료로 만든 것들은 남겨두고 가도록 하지. 페르메곤의 악마들이 귀속된 아이템만 챙겨 돌아가겠다.”
‘······뭐가 이렇게 지들 맘대로야?’
눈치를 밥 말아 먹은 듯한, 일방적인 제안
아무래도,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가츠 님!”
걸레짝이 된 로브를 휘날리며, 머리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흑마법사.
헐레벌떡 달려온 그가 바르나울의 사령관에게 귓속말을 남겼고,
“······뭐?”
그의 ‘믿는 구석’을 산산이 조각내버렸다.
카멜롯을 회수하기는커녕, 엘븐하임에 고립되어 버린 흑마법사들.
그 비참한 소식이 이제야 가츠의 귀에 들어간 모양이었으니까.
“······잠깐만, 천천히 이야기해라.”
그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부하의 마지막 보고를 끝으로, 결국 이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엘븐하임이 세계수를 되찾았다고?”
그리고······.
“······드루이드까지?”
그것이 전환점이었다.
자신들의 천적이 이곳 지구에 있음을 알게 된 바르나울.
안색이 새파랗게 변한 가츠가 말없이 몸을 돌려세웠다.
그러곤 두 팔을 뻗어, 파리 시내에 먼지처럼 깔려있던 흑마력을 다시 피워올렸다.
타르르르르르륵!
더 이상의 평화는 없었다.
쇠사슬처럼 뼈를 엮으며, 빠르게 수복되기 시작한 언데드.
앙상한 백골의 무덤이 다시금 불사의 군대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가긴 틀린 것 같군.”
나는 더 이상 놈의 대화상대가 아니었다.
상공회의소에 앉아 있던 정갈한 포마드 머리의 남성.
틀림없는, 이곳 상공회의소 시설의 관리자에게 그가 말했다.
“본부장, 철수 신청은 철회합니다. 대신, 본 차원에 연락 하나 넣어주십시오.”
“뭐, 뭐라고 넣어드리면 되겠습니까?”
본부장의 얼굴이 화창하게 피어올랐다.
그런 그에게, 가츠가 살벌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바르나울이 지구 개척 사업에 참여해야 한다고. 사유는 수만 그루의 세계수, 그리고 드루이드.”
“알겠습니다······!”
지구를 불바다로 만들 생각에 한껏 신이 난 본부장이 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변화는 끝없이 이어졌다.
구어어어······.
파리 도심 곳곳을 울리고 있는 언데드들의 고성.
잠시 숨을 골랐던 만큼, 놈들이 내뿜는 죽음의 향기는 한층 더 끈적했다.
쿠구구구······.
망가진 대관람차처럼, 수천 명의 포로가 실린 시시포스가 서서히 기울어졌고,
녹슨 쇠가 맞물리며, 비명 소리 같은 구동음을 울렸다.
후두두두둑!
챙강!
루브르의 드넓은 지하.
조각상에 귀속되어 있던 수십 마리의 가고일이 유리 피라미드를 뚫고 날아올랐다.
나뒹굴던 두개골이 푸른 안광을 빛냈고, 스켈레톤들이 또 다른 조각상을 끌고 몰려들었다.
마지막으로······.
흑마법사 가츠, 그리고 유럽 본부장만큼은 상공회의소의 안전한 방벽 속에 숨어 있었다.
결연한 표정으로 주변을 관망하던 가츠.
“아직 안 갔나? 생각 없으면 빨리 꺼져. 어차피 여긴 이제 지옥이 될 운명이거든.”
그제야 나를 의식했는지, 그가 살벌한 축객령을 내렸다.
나로서는 의문스러울 뿐이었다.
왜 남의 땅에 들어와 놓고는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은지.
내가 대답했다.
“아니, 방은 니들이 빼야 할 거야. 그리고······.”
그러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시포스와 루브르 박물관, 거기에 상공회의소 유럽 본부까지.
아공간에 집어 넣기 딱 좋은 시설들이 고스란히 하나로 모여 있었으니까.
“이렇게 죄다 한 데 몰아 놓으면 어떡해? ······맛있게.”
“······뭐?”
“꺼윽.”
벌써부터 트림이 나왔다.
부활의 상징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