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92)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92화(92/240)
092화 부활의 상징 (9)
쿠구구구······.
낮은 진동 소리와 함께, 격통이 찾아왔다.
팍스에게 저장을 요청한 대상은 ‘루브르 박물관’.
바르나울에 의해 유령의 집으로 개조돼 있음은 물론, 놈들이 벙커처럼 활용하던 유럽 지부와 ‘원혼 탈곡기’ 시시포스가 덤으로 딸려 들어왔다.
‘진짜 더럽게 아프네······.’
지끈대는 머리를 부여잡던 중, 갖은 장면이 눈앞을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지붕을 잃은 채 우왕좌왕하는 흑마법사 가츠와 유럽본부장의 모습.
사라진 거대 원판으로부터 우르르 쏟아져 내린 수천 명의 포로.
마지막으로 박물관의 지하 시설까지 말끔히 도려낸 탓에, 지축이 뒤틀려버린 내 시선까지.
“주군!”
“대표님을 지켜!”
그야말로 역대급 규모의 수용이었다.
조금도 몸을 가눌 수 없었지만, 카멜롯의 기사들과 팍스FC의 일원들이 무방비가 된 나를 보호해주었다.
덕분에 득실거리던 언데드들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지만······.
“쟤들 이제 우리 편이야.”
그들은 더이상 바르나울의 군세가 아니었다.
구어어어어!
달그락!
두개골을 조아리며 내게 부복하는 언데드들.
카멜롯을 넣었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원혼들이 귀속된 조각상이 루브르와 함께 수용된 덕에, 이제 내가 놈들의 주인이 되었다.
“너무너무 고맙지 뭐야······.”
원래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물이나 지형과 달리, 사람을 비롯한 생명체들은 강제로 아공간에 저장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바르나울이 페르메곤의 원혼을 일일이 조각상에 수납해 준 덕에, 루브르를 수용하는 것만으로도 언데드들을 내 휘하로 빼앗아 올 수 있었다.
카멜롯의 기사들, 그리고 새로 얻은 루브르의 언데드까지.
졸지에 진짜배기 네크로맨서가 되어버린 나였지만······.
바르나울의 흑마법사들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일어나라!”
사악한 언령이 담긴, 쩌렁쩌렁한 목소리.
쿠구구구구······!
이 대신 잇몸이었다.
조각상을 모조리 빼앗긴 탓에 그 수가 줄긴 했지만, 바르나울은 바닥까지 긁어모은 흑마력을 동원해 파리의 죽음을 일으켰다.
구어어어어······.
그 결과, 또다시 만만치 않은 수의 언데드와 스켈레톤이 나타났다.
당연한 결과였다.
페르메곤과 바르나울의 침략에 의한 시체들은 파리 곳곳에 널려 있었고, 시시포스를 이용해 조각상에 귀속시킨 원혼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으니까.
물론 직접 흑마력을 끌어 써야 했던 탓에, 바르나울의 흑마법사들 또한 빠르게 여유를 잃어갔지만······.
콰아아앙!
달그라라라락!
루브르 박물관이 사라진 채 네모나게 파인 구덩이.
결국 그 거대한 무덤 속에서, 언데드와 언데드가 맞붙는 대규모의 난전이 연출됐다.
촤아아악!
강에서 수장되어 있던 거인 악마들이 몸을 일으켰고,
썩은 박쥐 날개를 단 악마들이 텅 빈 갈비뼈 사이를 누비며 공격해왔다.
쿠웅!
쿠웅!
지축을 흔드는 거대 악마들의 발소리.
뼈마디 사이사이로 하급 악마들을 숨기며, 항공모함과 같은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했다.
쐐애애애액!
퍼엉!
뻐어엉!
나 또한 수백 자루의 ‘악마 포식자’를 뿌리며, 놈들의 공세를 막아 세웠다.
루브르의 악마들을 빼앗은 덕에 한층 유리해진 상황이었지만······.
“의료팀! 여기도!”
“일단 옮겨! 치료는 그다음이다!”
시시포스에서 벗어난 수천 명의 포로가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팍스맨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설치된 포탈로 포로들을 인솔했고, 바르나울로부터 빼앗은 상당수의 가고일이 환자들을 실어 나르기 위한 앰뷸런스로 동원됐다.
벌써 수백 명의 사람이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상황.
흑마법사들의 천적인 드루이드들이 있긴 했지만, 당장은 그들의 재생 능력을 환자들의 치료에 쏟아 넣을 수밖에 없었다.
콰아아앙!
파삭!
뼛가루가 불길처럼 치솟는 언데드들의 난전 속.
결국 흑마법사들과 마주한 것은 나와 카멜롯의 기사들 뿐이었다.
한편, 놈들은 사라져버린 시시포스와 유럽 본부 탓에 사실상 패닉에 빠져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철수가 안 된다니!”
“본청과 연락이 닿아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본부가 통째로······.”
“미치겠네, 진짜······.”
가츠는 버럭버럭 소리를 내질렀고, 유럽 본부장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쯔쯧······.”
자고로 유럽 여행을 왔으면 소매를 조심해야 하는 법.
대놓고 안일하게 루브르에 보물창고를 꾸려놓은 탓에, 거하게 내 식사를 거들어준 셈이었다.
더이상의 방해는 없었다.
흑마법사들과 대치하게 된 우리.
그 긴장감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바르나울!”
카멜롯의 기사들이었다.
맹렬하게 타오르는 란슬롯의 푸른 안광.
비록 언데드인 탓에 성창을 비롯한 신성 무기를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기사들의 손에는 최대치로 강화된 운양검이 들려 있었다.
탓!
카멜롯의 기사들이 움직였다.
자로 잰 듯이, 한 몸처럼 전열을 형성한 그들.
그들이 바르나울을 향해 분노에 찬 칼을 내질렀다.
스응!
급변한 전황 탓에 아직 어수선한 분위기에 사로잡혀 있던 흑마법사들이었지만······.
“······?”
후욱!
기사들의 칼이 닿은 곳에는 검게 물들인 잔상만이 남아있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 머저리들아!”
바르나울의 수장, 가츠의 솜씨였다.
흑마법사들에게 호통을 내지르며, 손을 뻗어 올린 그.
이미 언데드들을 운용하기 위해 상당량의 흑마력을 소진하고 있던 그는, 남아 있던 마지막 힘을 짜내 흑마술의 환각을 피워내기 시작했다.
후욱!
후우욱!
가츠가 부여한 환각은 정교했다.
카멜롯의 기사들이 흑마법사들에게 쇄도했지만, 내지른 검격은 번번이 검은 안개를 흩어낼 뿐이었다.
쐐애애액!
휘익!
‘자동 추적’으로 쏘아낸 성창 또한 별다른 차이를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수십 수백 자루의 성창을 출하해 지면에 고루 박아넣기까지 했지만, 두어 명의 흑마법사들을 겨우 처리했을 뿐, 가츠만큼은 그 틈새를 유령처럼 유유히 빠져나갔으니까.
“이것 참······.”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었다.
애당초 여기에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듯, 인식을 교란하는 가츠.
남은 흑마력이 충분하지 않은지, 반격을 해오지는 않았지만······.
“······카멜롯의 기사들이여.”
놈에게는 아직 ‘환각’이라는 무기가 남아 있었다.
흠칫.
낮게 울리는 흑마법사의 언령에, 카멜롯의 원혼들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가츠가 말했다.
“너희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아서가 살아있다는걸.”
“······헛소리 마라. 아서는 죽었어.”
사랑하던 주인의 죽음.
란슬롯은 즉시 부정했지만, 가츠는 멈추지 않았다.
그 질문을 카멜롯의 다른 기사들에게 건네기 시작했으니까.
“퍼시발,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겠나? 지금 실바니아 숲에서 아서가 널 기다리고 있어.”
“말도 안 되는 소리······.”
“왜 말이 안 되나? 네가 처음으로 아서를 만난 장소인데.”
퍼시발은 끝끝내 가츠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카멜롯의 기사, 퍼시발이 소멸했습니다.] [퍼시발이 카멜롯의 망령으로 돌아갑니다.]정교하게 짜인 가츠의 환각이 그를 지상으로부터 지워버렸다.
가츠의 말은 계속됐다.
“이봐, 모드레드. 분명 시종장이 술에 독을 타는 걸 봤잖아? 지금 시종들이 그 잔을 들고 아서에게 가고 있다고.”
“······.”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아서가 식탁에 엎어지는 모습을 몇 번이나 더 보고 싶은 거야?”
“그러니까 그건······.!”
후욱.
[카멜롯의 기사, 모드레드가 소멸했습니다.] [모드레드가 카멜롯의 망령으로 돌아갑니다.]꺼진 촛불처럼 연기와 함께 사라진 모드레드.
그렇게······.
[그웨인이 카멜롯의 망령으로 돌아갑니다.] [베디비어가 카멜롯의 망령으로 돌아갑니다.] [헥터가 카멜롯의 망령으로······.]카멜롯의 기사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한 명 한 명에게 빠짐없이 말을 건넨 가츠.
놈은 기사들이 아서라는 인물과 공유했던 경험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고, 태생상 원혼인 기사들은 흑마법사의 언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한편,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아서’의 죽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의 죽음을 주제로 꾸며진 수십, 수백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
란슬롯이 내게 전해줬던 것처럼, 이 모두가 시시포스에서 비롯된 환상의 연장이었으니까.
“주군.”
결국 남은 것은 란슬롯 하나.
이제 그는 가츠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았지만, 곧 사라질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있었다.
“아서는 죽었습니다. 결국 그 죽음이 저희를 망령으로 만들었지요. 하지만······.”
칠흑같이 텅 비어버린 해골의 두 눈덩이.
그 속에 담긴 푸른 빛이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다.
“저희는 절대 착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내 손목을 붙들었다.
그러곤······.
[카멜롯의 기사, 란슬롯이 소멸했습니다.] [란슬롯이 카멜롯의 망령으로 돌아갑니다.]휘이이······.
오래된 먼지처럼 흩어져버렸다.
그는 내게 전했다.
나를 아서로 착각하지 않았노라고.
카멜롯의 저주로 인해 내게 복종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을 자신의 마음과 혼동하지는 않았노라고.
“······.”
그가 흩어진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게, 가츠가 말했다.
“뭘 그렇게 감상을 떠나? 다시 불러내면 될 것을. 뭐······. 그러려면 네가 꼭꼭 숨겨둔 카멜롯을 다시 꺼내오는 게 먼저겠지만.”
또랑또랑 목소리를 울리는 것을 보니, 이번에는 나를 타겟으로 삼은 모양이었다.
“어차피 놈들의 소원은 줄곧 아서라는 놈을 구하는 거였어. 시시포스에서 욕망이 변형된 탓에 네게 충성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 그리고······.”
하지만 나는 놈의 언령에 반응하는 원혼도, 시시포스의 환상에 죽도록 갈려나간 망령도 아니었다.
그 때문인지, 놈은 내 심리를 흔드는 것부터 시작하려는 것 같았다.
“물류센터 사장, 너도 별생각 없잖아? 그냥 물건 몇 개가 들어왔다 나갈 뿐이잖아. 재고품에 무슨 마음을 그렇게 쓰겠다고······.”
가츠는 내 의식을 서서히 파고들고 있었다.
정보를 캐내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부풀리고, 때론 축소해가는 식으로.
마음으로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에도, 가츠는 카멜롯이 그저 그런 아이템 중 하나라거나, 기사들 같은 원혼들은 우주에 널리고 널렸다거나, 바르나울이 지구의 구원자가 될 것이라는 등의 터무니없는 생각을 꾸준히 주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가장 집요하게 주입되고 있는 생각은 이거였다.
“카멜롯이 없으면 그놈들이 널 따를 것 같아?”
“쫑알쫑알 시끄럽네, 진짜······.”
란슬롯은 한차례 내게 이야기한 바 있다.
나를 향한 복종은 카멜롯의 저주에 의한 것이지만,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지는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가츠의 말대로, 나는 물류센터에 카멜롯의 기사들을 넣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까지 함께 딸려 들어왔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세상의 모든 물건이 담겨 있는 물류센터라지만, 마음은 택배상자에 담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다고.”
나 또한 그랬다.
물류센터에 넣고 싶은 것은 기사들의 복종이 아닌 마음.
오히려 그 마음을 넣기 위해서는 카멜롯을 내버릴 수 있어야만 했다.
비록 지금까지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지만······.
“출하.”
각고의 노력 끝에, 비로소 그들에게 강제된 복종을 떨어낼 수 있게 됐다.
지이잉.
포탈이 푸른 물결처럼 넘실거렸다.
그로부터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철걱.
은빛 갑주를 입은 열 두명의 기사들이었다.
“······.”
살갗이 차 오른 양손.
동굴처럼 비어 있던 눈자위는 온데간데 사라져 있었다.
세찬 눈물이 흘러넘쳤고, 부드러운 솜털을 적신 눈물이 턱을 따라 똑하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휘이이이······.
귓바퀴를 타고 들어온 생생한 바람 소리.
반듯한 이마 양옆으로, 긴 갈색 머리를 늘어뜨린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가 란슬롯이라는 걸.
“······왜 그렇게 울어.”
이제는 모든 계약이 끊어진 카멜롯의 기사들.
침묵 속에서 서로를 마주 본 기사들은, 일제히 내게 무릎을 굽히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곤······.
스릉!
바르나울의 흑마법사들을 향해 칼을 빼 들었다.
츠츠츠츠······.
검 끝을 맴도는 정체 모를 기운.
달라진 것은 그들의 외양뿐만이 아니었다.
부활의 상징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