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93)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93화(93/240)
093화 부활의 상징 (10)
물결처럼 아른거리는 가츠의 잔상.
검을 겨눈 란슬롯이 옛 기억을 반추했다.
“······오랜만이구나, 가츠.”
비로소 온전하게 된 재회였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구천을 떠도는 망령에 불과했으니.
스응!
하지만 비스듬히 들어 올린 검 면에는 이제는 완연한 인간의 얼굴이 드러나 있었다.
“너······. 어떻게?”
가츠는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카멜롯이라는 감옥을 뚫고,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기사들.
속임수를 간파당한 무대의 마술사처럼, 파훼된 흑마법은 악몽 그 자체였으니까.
절대적인 힘을 자랑하던 흑마술의 언령은 살아 숨 쉬는 인간에게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었고, 지금껏 세 치 혀를 놀리며 기사들을 농락하던 가츠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란슬롯이 그런 가츠를 향해 담담히 덧붙였다.
“그때와는 많이 다를 거다.”
휘이이이······.
흑마법사들의 검은 로브가 바람에 흔들렸다.
그 모두가 한낱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걸 확인한 상황.
하지만 시시포스에 휘둘려 수백 번의 전투를 치르고, 카멜롯에 갇혀 기나긴 세월을 보낸 기사들 또한 과거의 그들이 아니었다.
지이이······.
기사들의 검이 은은한 빛을 발했다.
그리고 그 빛에 따라······.
“······저건?”
주변을 감싸고 있던 촘촘한 보랏빛 실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의아해하는 내게, 란슬롯이 부연했다.
“바르나울의 흑마술입니다. 무수히 많은 선택지를 만들고, 그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유도하죠. 하지만 그 어떤 걸 고르더라도 결국 놈들의 입맛에 놀아나게 됩니다.”
확실히 그랬다.
눈앞에는 흑마법사들이 표적지처럼 떠 있었지만, 그 무엇하나 실체가 아니었으니까.
기사들이 피워낸 검광에 의해 이제야 비로소 그 전모가 드러난 참이었다.
“놈들이 선택지를 만들어내는 방식, 그 자체에 주목해야 합니다.”
분명, 눈앞에 놓인 것은 환각이다.
하지만 그 환각을 조작하는 흑마법사들의 손길까지 환각일 수는 없었다.
결국······.
“저희가 길을 열겠습니다.”
흑마법의 노예였던 그들이 묶인 줄을 거꾸로 잡아 들었다.
탁!
타닥!
해골이었을 때보다 되레 가벼워진 발걸음.
열두 명의 기사들이 일제히 바르나울의 잔상을 향해 달려들었다.
후욱!
훅!
결과는 지금까지와 다르지 않았다.
하나 둘, 거품처럼 꺼져가는 가츠와 흑마법사들.
새롭게 생겨나는 환영과 함께, 엉킬 대로 엉킨 수식이 제자리를 맴돌았다.
하지만······.
검광에 비춘 보랏빛 실선들.
그 두 개가 선명한 평행을 이루었고,
쐐애애액!
“······커헉!”
그 사이로 날아든 ‘악마 포식자’가 마침내 흑마법사의 미간을 꿰뚫었다.
생명을 거슬러 오른 기사들의 검무.
가츠가 펼친 환각을 그 꼬리부터 역추적했고, 숨은 흑마법사들의 본체를 포착할 수 있었다.
“······끄륵.”
“······칵!”
촘촘하게 펼친 오선보 위로,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는 바르나울의 흑마법사들.
거짓과 환영으로 얼룩진 연주가 거꾸로 뒤집히자, 아름다운 생의 선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침내 도달한 대단원, 동시에 서막이기도 한 장소에는······.
“······.”
어느덧 넝마가 된 로브 자락을 휘날리는 가츠가 서 있었다.
놈이 두르고 있는 강력한 척력 때문일까?
비록 벨 수는 없었지만, 기사들의 검이 놈의 교묘한 움직임을 한사코 막아 세웠다.
탁!
“윽!”
발목이 걸려, 고스란히 엎어진 가츠.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대 바르나울에게 감히 이런 짓을 하고도······!”
그가 흙먼지 속에서 몸을 일으키며 아득바득 경고의 메시지를 남겼지만······.
콰득!
다시금 흑마력을 피워올리던 놈의 입에 성창을 찔러넣었다.
창대와 함께 휙하고 넘어간 몸통.
그 뒤로, 두 팔을 풀썩 늘어뜨렸다.
“감히는 누가 감히인데, 이놈 새끼야.”
초점을 잃어버린 가츠.
놈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흑마법사들의 최후를 장식했고······.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됐담.”
그제야 드문드문 달빛이 비치는 파리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흑마법사들의 죽음과 함께, 바르나울의 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무더기로 쌓인 뼈들만이 도로 곳곳에 즐비할 뿐.
남은 것은 이제 내 휘하로 들어온 언데드,
그리고 적막에 휩싸인 도시, 그뿐이었다.
***
파리에서의 상황이 일소되기는 했으나, 아직 유럽에는 수백 개의 포로 수용소가 남아 있었다.
“맡겨두세요. 깔끔하게 정리할 테니.”
“잘 부탁드립니다.”
프라하의 각성자들과 프리스트를 비롯한 타국의 지원 세력들이 뒷정리를 돕기로 했고, 나는 간간이 게이트 핵을 처리하고 환자 이송을 위한 포탈을 세우는 마무리 작업만 맡기로 했다.
덕분에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둔 채, 아공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층 더 널찍해진 아공간.
한껏 고초를 치른 가족들이 물류센터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문화생활치고는 좀 과한데.”
김솔이 머리를 긁적였다.
정원과 지하 전시장을 포함한 루브르 박물관.
그 거대한 규모의 지형이 물류센터의 북쪽 입구에 연결되어 있었다.
심지어 평범한 박물관도 아니었다.
‘원혼’ 탈곡기 시시포스가 체르노빌의 대관람차처럼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고, 주변으로 악마들이 귀속된 수십 개의 섬뜩한 조각상이 도열해 있는가 하면, 그 앞에는 흑마법사들의 혼이 담긴 성창이 이쑤시개처럼 꽂혀 있었으니까.
이것만 보면 카멜롯을 아득히 뛰어넘는 흉흉한 기피 시설에 다름 아니었지만······. 나는 전시장 한쪽에는 일종의 위령비를 세워둔 참이었다.
“······.”
바르나울에 의해 희생당한 원혼들.
‘악마 포식자’를 이용해 그들의 혼을 따로 빠짐없이 모아두었으니까.
1,000명까지 수용이 가능한 창이 자그마치 여섯 자루에 달하는 걸 보고 있자니, 파리에서의 참상이 사뭇 끔찍하게 다가왔다.
엘프 장로 윌그라임에게, 혹시 이들을 소생시킬 방법이 없을지 물었지만······.
“······어렵습니다. 카멜롯과는 상황이 달라요.”
그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원혼이 사물에 귀속되어 있는 건 같잖아요?”
“카멜롯에 담긴 건 고작 열둘의 원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한 번에 수백의 원혼을 살려내려면 상상 이상의 자연력이 필요할 겁니다. 차마 가늠조차 가질 않는군요······.”
아쉽지만, 이번만큼은 복사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재료가 될 세계수를 복사한다 한들, 그 이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성불이라도 시켜야 하나······.”
희생자들의 혼으로 신성 폭발이라도 일으켜야 할지 고민했지만, 혹시나 모를 가능성을 간직하며 일단은 박물관에 모셔놓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레오!”
다행히, 모두가 죽은 건 아니었다.
파리의 포로수용소를 손에 넣었고, 시시포스에 들어간 사람들 또한 구해냈으니.
사실 따지자면,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레오는 리디아와 열 살 터울의 어린 꼬마였다.
리디아는 레오를 안은 채 하염없이 울음을 터뜨렸고, 다른 희생자들을 의식하는 중에도 잊을 만 하면 내게 고맙다며 거듭 눈물 섞인 감사를 건넸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함께 고개를 숙이는 레오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 주었을 즈음······.
“인사해. 여기는 레오라고 하는데······.”
그간 제대로 정을 붙인 모양이었다.
리디아는 레오를 세계수로 데리고 갔고, 서로를 소개해주었다.
활짝 핀 웃음과 함께, 버프가 섞인 인사말을 건넨 리디아였지만······.
“······!”
추우우욱.
엄마의 숨겨진 또 다른 아들을 마주한 듯, 세계수는 노란 낙엽을 우수수 떨궜다.
“······어? 계수야? 어디 아파? 너 왜 그래?”
거무죽죽하게 시들어가는 세계수.
보아하니 얼추 한나절이면 회복될 게 분명했지만, 경쟁자의 출현에 적잖이 실망한 게 분명했다.
세계수로서는 엄마나 다름없는 리디아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을 테니까.
한편, 엘프 장로 윌그라임은 그 풍경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이겁니다······. 가족적 사랑을 둘러싼, 인간적이면서도 실존적인 고통! 저런 고통이야말로 뿌리에 두께를 가하는 시련이지요! 이로써 세계수는 점점 어른이 되어갈 겁니다······.”
‘······이제 보니 이 인간이 문제였구나.’
짝짝!
감격에 찬 눈물을 훔치며 물개박수를 치는 윌그라임.
700살 먹은 엘프 장로가 실은 황천의 뒤틀린 사디스트였을 줄이야.
이 양반의 조언만 아니었어도 세계수와의 관계가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않았을 터였다.
“아, 그러고 보니······.”
바르나울을 처리했고, 아공간에 전리품까지 수용했지만, 아직 남아있는 일이 하나 있었다.
엘븐하임에서 드워프들에 의해 새로운 마력 회로를 새긴 카멜롯.
녀석에게 기사들을 부활시키겠다는 내기를 걸어둔 참이었으니까.
“약속은 지켰지.”
이제 그 보상을 확인할 차례였다.
***
기사들과 함께, 포탈을 타고 넘어간 엘븐하임.
공장에서 나온 쿠퍼가 내게 왕관 크기의 카멜롯을 전해주었다.
“회로가 제대로 반응했소. 이게 그 결과물이지.”
축축한 잿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새하얀 돌벽이 찬란하게 빛났고, 그 틈새 사이로 푸른 빛의 매끈한 회로가 물줄기처럼 흘렀다.
“작업하던 내내 흑마법 회로가 바깥과 연결을 주고받더이다. 하지만 이제 모두 걷어냈으니, 더 이상 외부로부터의 추적은 없을 거요.”
아이템 제작의 명수답게, 쿠퍼는 카멜롯에 부여되어 있던 기능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바르나울의 흑마법에 의해 추적되던 카멜롯 성.
하지만 흑마력 회로를 걷어내고, 부여된 조건을 달성한 덕에 감찰국인지 뭔지 하는 놈들의 추적은 뿌리칠 수 있게 됐다.
예상했던 대로, 새로운 카멜롯에는 그 어떤 영혼도 귀속되어 있지 않았다.
해골 기사들은 살아생전의 모습을 되찾았고, 동시에 카멜롯의 제약으로부터도 풀려났으니까.
착취 기능 또한 사라진 덕에, 기사들이 없는 지금은 사실상 깡통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새로 부여된 옵션만큼은 차마 가볍게 넘길 수가 없었다.
띠링!
—-
[역천의 카멜롯]등급: [유니크]
설명: [저주받은 기사들의 궁전이었으나, 각인된 조건을 달성하여 근본적인 성질의 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원하는 크기로 설치할 수 있으며, 크기에 비례하는 설치 비용이 소모됩니다.]
속성: [특수]
옵션:
[기사 등록]-기사를 등록할 수 있습니다. (최대 12명)
※ 단, 과거 카멜롯에 귀속되었던 기사만 등록이 가능합니다.
[꿈과 현실]-카멜롯을 경유하여, 기사를 ‘망령’ 형태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카멜롯을 경유하여, 기사를 ‘인간’ 형태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역천]-사망한 기사가 카멜롯에서 부활합니다.
※ 일정 크기 이상의 세계수가 재료로 사용됩니다.
※ 부활에 필요한 시간이 소요됩니다. (24시간)
—-
‘······세상에, 진짜 부활이 될 줄이야.’
‘역천의 카멜롯’이라는 새 이름을 달았다.
그리고 뒤집힌 하늘이라는 이름답게, 그 본래의 기능 또한 고스란히 뒤집혀 있었다.
‘······산 채로 망령이 될 수 있다고?’
기사들은 이제 사람이다.
하지만 역천의 카멜롯을 통해 망령이 될 수 있는 것은 물론, 죽은 뒤 되살려내는 것까지 가능했다.
세계수가 자원으로 소모되기는 하지만, 그거야 복사해서 쓰면 그만이니까.
사실상 24시간의 쿨타임이 부여된 자동 리스폰이라는, 그야말로 사기적인 옵션에 다름이 아니었다.
문제는······.
‘이걸 기사들에게 요구할 수 있을까?’
아이템으로의 귀속.
‘망령화’ 기능과 생명의 본질을 거스르는 부활 효과까지.
그 효과가 하나같이 카멜롯의 저주와 여전히 닮아 있었으니까.
“······.”
나를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 카멜롯의 기사들.
함께 아이템의 정보를 공유받은 그들은, 하나같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야 당연하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계약으로 맺어진 주종관계가 아니니까.
저주가 사라진 이상, 기사들은 더 이상 나를 주인으로 섬길 필요가 없었다.
물론 지구를 벗어나거나 할 수도 없겠지만, 독자적으로 움직이겠다고 선언한다면 막을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동안 수고가 많았지.’
꼭 내 신하가 아니어도 좋았다.
나를 섬기는 것은 아니었지만, 엘프나 드루이드들 또한 든든하기 그지없는 조력자였으니.
솔직히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었지만, 함께 등을 맞댈 우군이 되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었다.
긴 적막 끝에, 란슬롯이 입을 열었다.
어쩐지, 조금은 젖어 있는 목소리였다.
“······드디어 소원을 이뤘군요.”
찌르르······.
바람 소리에 섞여 울리는 새소리.
세계수로 가득 찬 엘븐하임의 중심에서, 란슬롯은 살갗이 덮인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사실, 저희끼리도 예전부터 이야기를 많이 나눠왔습니다. 지금까지야 카멜롯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저주가 사라진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고요. 그런데······.”
멋쩍다는 듯, 란슬롯은 머리를 긁었다.
그리고······.
띠링!
[란슬롯이 ‘역천의 카멜롯’의 기사가 되었습니다.] [그웨인이 ‘역천의 카멜롯’의 기사가 되었습니다.] [퍼시발이 ‘역천의 카멜롯’의 기사가 되었습니다.] [모드레드가 ‘역천의 카멜롯’의 기사가 되었습니다.] [베디비어가‘역천의 카멜롯’의 기사가······.]‘역천의 카멜롯’으로부터 열두 명 전원의 등록 메시지가 떠올랐다.
나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억겁의 시간 동안 카멜롯의 속박에 고통받았던 그들.
그들이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다시금 자유를 내던지고 있었으니.
“다들 소원하는 바가 다르지 않더군요.”
기사들의 소원.
문득 시시포스에서의 환상이 떠올랐다.
아서라는 주인을 지켜내기 위해 수백, 수천 번의 악몽을 헤맨 그들이었지만······.
“저희도 알고 있었습니다. 주군께서는 나날이 강해지고 계셨고, 머지않아 당신의 발목을 잡게 될 날이 오게 될 거라고요.”
기사들의 소원은 더 이상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실제로도 그랬다.
7위계, 혹은 8위계의 벽에 가로막혀 있던 그들.
그들의 충심과는 별개로,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었던 카멜롯의 기사들이었으니까.
“그래서 더욱 지독하게 생을 원했습니다. 육체의 땀과 세월을 더해 성장할 수 있었던, 살아생전의 신체를 원했지요. 결국 주군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전해 받은 덕에······.”
스릉!
란슬롯이 칼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다시금 ‘오러’를 개화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 끝에 은은한 검광이 서리기 시작했다.
“이제 저희에게도 시간이라는 것이 흐르겠지요. 수천 번, 수만 번 검을 휘두르다 보면······ 점차 더 높은 경지로 주군을 보필할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철걱.
란슬롯이 내게 검을 쥐여주었다.
그러곤······.
“많이 늦었지만······ 기사의 맹세를 올리겠습니다.”
열두 명의 기사들이 일제히 부복했다.
무소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