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94)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94화(94/240)
094화 무소유 (1)
유럽에 들어온 불청객들을 모조리 쫓아낸 참이다.
더욱이, 죽은 카멜롯의 기사들이 되돌아 와, 재계약 서류에 도장까지 찍어준 상황.
다른 날이라면 몰라도, 오늘만큼은 저녁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역시 이런 날에는······.
“······회식이지.”
새롭게 재편된 카멜롯의 부서 회식.
먹지도 마실 수도 없던 기사들에게 거한 상찬을 베풀어줄 생각이었다.
“오늘만을 기다렸다고.”
지금껏 팍스FC의 일원이 된 이종족은 많았다.
엘프, 드루이드, 거기에 드워프들까지.
솔직히 데려오는 족족 밥부터 먹이곤 했지만, 못내 아쉬운 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철저한 채식주의로 산채 비빔밥만을 고수하는 엘븐하임의 엘프들.
드루이드들은 히피처럼 틀어박혀 밥 대신 세계수 이파리만 씹어댔고, 그나마 드워프들이 적응하나 싶었지만 얼마 전부터 맥주에 밥을 말아 먹기 시작했으니까.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한 광경.
그런 내게 있어, 기사들의 회생은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다.
‘드디어 잡았다······ 푸른 눈의 잡식성 코쟁이······!’
그 역사와 유래가 깊은 외국인 먹방.
나는 카멜롯의 기사들에게 팍스FC가 보유한 K푸드를 원 없이 먹여줄 작정이었다.
물론, 글렌이나 리디아 같은 미국, 또는 유럽의 각성자들 있기는 했다.
하지만······.
‘내 새끼들부터 먹이고 봐야지. 뭐, 식량을 안 대준 것도 아니고······.’
나는 팔이 안으로 굽다 못해, 아예 등짝에 붙은 사람이었다.
나를 따라 아공간으로 들어온 란슬롯과 기사들.
내가 젊음을 탑재한 회식 날의 부장님처럼 그들에게 물었다.
“먹고 싶은 거 있어? 언데드였던 동안 자주 생각났던 거라든지······.”
란슬롯은 허전한 배를 만지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배고픔이라는 감각을 모르고 살아온 수십 년의 세월.
이제 와 허기를 호소하는 신체가 낯설기만 할 테니까.
“그러고 보니 배가 고프긴 하군요. 아발론에서는 기사들의 식사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곡식을 굳혀서 만든 딱딱한 건량이었는데······.”
이제 보니 엘프들 못지않게 빈궁하게 살아온 그들이었다.
거기에 더 나아가 해골까지 되어버렸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올 따름.
다행히, 란슬롯은 한 가지 메뉴를 기억해냈다.
“포르쿠라는 짐승의 고기를 구워 먹어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지구에는 포르쿠가 없겠지만······.”
“고기구이라······.”
흰 살코기를 가진, 돼지를 닮은 동물.
아쉽게도 지구에는 없는 식자재였지만······.
“일단 가자.”
딱히 아쉽지는 않았다.
평생 건량을 먹고 살았던 그들.
전장에서 먹었다던 고기의 추억을 폄하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한우가 더 맛있지 않을까?’
일단은 K-미트부터 때려 넣고 시작할 생각이었다.
.
.
.
기사들을 대동하고 도착한 아공간 물류센터의 직원 식당.
란슬롯이 커다란 스티로폼 박스를 내려놓았다.
“어디······.”
띠링!
[안심 한우 아랫등심 채끝등심 꽃등심 1++ 구이용 (냉장), 가격은 457,200원입니다.]아예 kg 단위로 공수해 온 소고기.
집게로 들어 올린 채끝살에는 선명한 마블링이 물결처럼 퍼져있었다.
지방으로 기름칠을 한 뜨거운 불판.
그 위로 후추와 소금으로 겉 간을 한 커다란 고기를 내려놓았고······.
치이이······!
기름 끓는 소리가 한껏 입맛을 자극했다.
사면을 돌려가며, 육즙을 가둬 놓은 고기.
살짝 그을린 듯, 겉면은 선명한 갈색을 띠고 있었지만······.
“······이거지.”
잠깐의 기다림 이후,
홍해처럼 갈라진 내부에는 촉촉한 선홍빛 육즙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입 크기로 숭덩숭덩 잘라낸 뒤,
주사위 모양으로 구운 고기를 기사들의 접시에 담아주었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주군······ 뭐가 뭔지······.”
기사들은 우물쭈물할 뿐이었다.
아공간에 들어온 이래, 가족들의 식사를 멀뚱히 지켜보기만 했던 그들.
옛말에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빤히 고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란슬롯.”
“예, 주군.”
“분명, 더 성장하고 싶다고 했었지?”
“······예, 그렇습니다.”
그들의 눈앞에, 모락모락 김을 피어오르는 고기를 흔들었다.
그러곤 대한민국 군대에서 습득했던 괴이한 논리를 그대로 그들에게 설파했다.
“잘 기억해둬. 식사 또한 훈련의 일종이다.”
“······!”
저주에서 벗어나 비로소 인간이 된 그들.
그들이 살아있는 육체와 함께 오러를 개화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오러는 정교하게 빚어진, 신체의 강인한 내력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란슬롯의 설명이었으니까.
그런 점에서, 근력과 체력을 위한 영양 섭취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비록 생전에 건량을 먹으며 살아온 란슬롯이었지만······.
“식사는 훈련······.”
그도 내 뜻을 이해한 듯했다.
이제는 준비가 되었다는 듯,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기를 집어라. 그리고 여기 생 고추냉이를 얹은 다음, 그 앞에 있는 히말라야 핑크 솔트를 찍는 거야.”
“이해했습니다. 고추냉이를 얹은 다음······.”
란슬롯이 복명복창과 함께 내 지시를 따랐고,
척!
기사들 또한 일사불란하게 젓가락을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급식 훈련.
누구에게나 그렇듯, 처음은 쉽지 않았다.
손이 꼬이고, 고기를 놓치고, 젓가락이 바닥에 떨어지기 일쑤.
하지만 기사들은 꿋꿋내 잘 익은 고기를 입에 가져가는 데 성공했다.
“······성공입니다!”
우물우물 터져 나오는 육즙을 씹으며, 푸른 눈을 빛내는 란슬롯.
하지만 훈련은 이제 막 시작된 참이었다.
“아직 멀었어. 모두, 상추를 집어 들도록.”
모두가 큼지막한 손에 상추와 깻잎을 얹었다.
새콤한 파절이와 얇게 썰은 고추를 얹었고, 노릇노릇하게 익은 마늘 편을 쌈장과 함께 올렸다.
우물우물.
우물우물.
일렬로 늘어선 열두 개의 볼따구.
기사들이 하나같이 훌륭한 저작 작용을 보여주고 있었다.
“바로, 그거다. 다음은······.”
교육은 계속됐다.
무한의 물류센터답게, 교보재는 차고도 넘쳤으니까.
띠링!
띠링!
쉴 새 없이 떠오르는 교보재의 출고 메시지.
[겨울 동치미 물냉면 4인분, 1692g, 4개, 가격은 32,280원입니다.] [함흥 비빔냉면 2인, 1306g, 3개, 가격은 20,940원입니다.] [고깃집 된장찌개, 535g, 가격은 5,900원입니다.]물냉면과 비빔냉면의 차이, 겨자와 식초로 감칠맛을 더하는 법, 팔팔 끓여나온 된장찌개와 흰 쌀밥을 이용해 기름진 입을 씻어낼 수 있는 법을 연달아 교육했고,
[자동 눈꽃 빙수기, KC-2311WS, 가격은 64,510원입니다.] [서울우유 1급A우유, 2300mL, 가격은 3,820원입니다.] [당도 선별 수박, 5kg, 가격은 21,900원입니다.]컵과일을 얹은 눈꽃 빙수와 시원한 수박을 보급해 달아오른 훈련의 열기를 식혔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몰아쉬는 기사들.
하나같이 몸을 옥죄던 철판 갑옷을 벗어 던진 채, 부풀어 오른 배를 쓰다듬고 있었다.
어느덧 한계에 부닥친 그들이었지만······.
“······!”
저벅저벅.
느긋하게 허리를 굽힌 채 나타난, 나 김정겸의 할아버지.
두 번째 훈련 교관의 등장에, 식당에는 새로운 긴장감이 피어올랐다.
“빼빼 말랐더니······ 이제야 좀 보기 좋게 됐구만.”
포동포동 차오른 기사들의 양 볼을 보며, 만족스럽다는 듯 씨익 웃음을 지어 보이는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기사들에게 새로운 과제를 부여했다.
“란씨, 이제 술 혀?”
“······.!”
편견 없이 해골 기사들을 대해주던 할아버지였다.
함께 술잔을 기울일 수 없다는 현실이 기사들에게도 아프게 다가왔을 터.
란슬롯이 울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할아버지. 이제 술 합니다.”
막걸리를 부탁하며 기사들 사이로 자리를 꿰찬 할아버지.
괜찮겠냐는 내 물음에, 란슬롯이 끄덕였다.
꼴꼴꼴꼴······.
차갑게 식힌 밤 막걸리를 황주전자에 쏟아부었고, 양은으로 된 술잔에 넘칠 듯 술을 따라주었다.
훈련의 연장이니만큼 한국식 주도(酒道)를 교육했고, 할아버지와 건배를 나눈 기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꺾었다.
꿀꺽.
꿀꺽.
건조한 입 안으로 차디찬 폭포가 쏟아졌다.
입술을 넘어간 막걸리가 목젖을 타고 내려왔다.
톡 쏘는 탄산이 혓바닥을 알싸하게 간지럽혔을 즈음······.
콰앙!
쾅!
테이블 위로, 둔탁한 타격음이 연달아 들려왔다.
“······.”
일제히 고개를 처박으며, 내게 충성을 맹세하는 열두 기사들.
할아버지와 함께 허탈함을 주고 받을 수밖에 없었다.
“술 못하잖아······.”
***
“주군······.”
이튿날 아침,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물류센터로 돌아온 란슬롯과 기사들.
퉁퉁 부은 얼굴과 소용돌이처럼 꺾인 까치집이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더해주었다.
“일어났어?”
“아직 훈련이 부족한 모양입니다. 도중에 혼절을 해버리다니······ 면목이 없군요.”
“아니, 그건 훈련이라기보다는······.”
여러 이유가 있을 터였다.
갓 되찾은 신체이니만큼 아직 단련이 덜 되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흑마법사 가츠와의 결전을 통해 알게 모르게 피로가 쌓였을지도 모를 일.
그간 묵묵히 죽음에 담겨 있던 그들의 세월을 생각하면, 술에 취해 뻗어버리는 기사들의 모습이 되레 정겹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그러고 보니, 너희에게도 알려줄 소식이 하나 있어.”
“소식 말입니까?”
나는 곧장 기사들을 데리고 물류센터의 서쪽으로 향했다.
에메스의 자재 창고, 제임스의 작업실과 브로크의 공방을 지났고······.
“이건······.”
일본 지부 옆으로 들어온, 상공회의소의 유럽 본부에 다다랐다.
은은한 푸른빛과 함께, 시계 소리처럼 강박적으로 흘러나오는 틱틱 소리.
과연 본부답게, 일본 지부보다 몇 배는 더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원래의 주인은 죽었다.
가츠의 시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유럽 본부장.
일본 지부장 헨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놈의 머리 또한 여지없이 터져나갔으니까.
띠링!
[업데이트가 완료된 상태입니다.]전후 사정이 어쨌든, 유럽 본부가 내 손에 들어온 상황.
새로 들인 시설을 기반으로 곧장 팍스의 새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팍스는 동시에 유럽 본부의 활동 로그를 조회했고, 그 결과 내게 한 가지 중요한 정보를 전해줄 수 있었다.
[바르나울로의 송신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송신된 정보는 지구에 있는 세계수와 드루이드에 관한 것입니다.] [해당 차원 측에서도 수신이 완료된 상태입니다.]세계수와 드루이드.
놈들의 발작 버튼이 지구에 있다는 정보.
전송 시점으로 보건대, 가츠가 요청하기 한참 전에 이미 메시지가 전달된 상태였다.
그리고 그 결과를 예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바르나울이 지구로 들어오겠지.”
다만, 그 시점이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몰랐다.
상공회의소가 걸어놓은 강력한 제약이 놈들의 진입을 막고 있었으니까.
팍스는 바르나울 또한 상공회의소의 절차를 따라야 하며, 진입이 결정되더라도 그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해주었다.
“그렇군요. 말씀하신 소식이라는 게······.”
확실시 되다시피 한 적들의 침공 소식.
란슬롯 또한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 진짜 소식은 그게 아니야.”
그에게 전해주고 싶은 소식은 따로 있었다.
새로 얻은 상공회의소의 유럽 본부.
한 단계 상급 기관이니만큼, 일본 지부에는 없었던 새로운 기능이 탑재돼 있었으니까.
“차원 통폐합 기능이 생겼어.”
차원들을 이간질하기 위해, 또는 새로운 침략자를 길러내기 위해 상공회의소가 사용했던 기능.
엘븐하임과 라이시온 광산, 대수림과 드워프들의 공장을 지구로 끌어들였던 그 권한이 지금 내게 주어져 있었다.
그로부터 받은 수혜 또한 어마어마했다.
당장 엘븐하임만 하더라도 천혜의 요새가 되어 흑마법사들을 저지한 것은 물론, 자그마치 수 만 명에 달하는 포로들을 수용해주었으니까.
“네가 말했던 것처럼, 상공회의소는 내게 길을 열어주지 않겠지. 나는 침략자가 아니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주군, 그 말씀은······.”
“반대로 아발론을 지구로 끌어당기면 되지 않을까?”
그 때문이었다.
지금껏 하나씩 랜덤박스를 던져주던 상공회의소, 그 선물을 내 손으로 고르겠노라 결정한 것은.
이번에도 바르나울과 엮여 있었다.
언데드로 뒤덮인 아발론은 이제 놈들의 아이템 공장으로 활용되고 있었으니까.
“이번엔, 우리가 먼저 코털을 뜯어보자고.”
그게 내가 기사들에게 전해준 새 소식이었다.
무소유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