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97)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97화(97/240)
097화 무소유 (4)
이곳은 수망교 소속의 유성병원.
8인 병실에는 환자와 힐러들이 이리저리 뒤섞여 저마다 침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늘은 밥 나온대요?”
“그제 준 거 마저 먹으라던데요. 이럴 줄 알고 남겨두길 잘했지.”
대답한 남자는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건빵 봉지를 꺼냈다.
잔뜩 구겨진 봉지 아래로, 이제는 바닥을 보이는 건빵.
허기에 몸부림칠 만도 했지만, 어쩐지 병원 사람들은 잠잠하기만 했다.
“참아봐요. 생각 안 하면 배 안 고파요.”
비단 식사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열악한 상황.
아무리 바깥보다야 안전하다지만, 얼룩진 환자복과 침대 시트, 거기에 씻지 못한 환자들의 체취가 어우러져 병원에는 한가득 악취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몇 주 전만 하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병실마다 한두 명쯤은 적극적인 사람들이 있었고, 종종 밖에서 구해온 식량을 나눠주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부질없는 연명보다는 마음의 평화가 더 중요하지요.”
“암요, 암요.”
그마저도 활동도 접어버린 채, 모두 남은 여생을 침대에 눌러앉기로 결정해버렸다.
움직이는 건 수망교에서 직접 구성한 소수의 활동원이었고, 상당수가 각성자들인 이곳 병원의 환자들은 이따금 제공되는 식량, 그리고 수망교주의 명상 프로그램을 위해 가지고 있던 마석을 모조리 털어놓았다.
“모두 덜어내고 나니,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모릅니다.”
“맞습니다. 주머니에 마석 하나라도 있었어 봐요. 하나를 벌었으니, 이제 두 개가 돼야 하고······ 그렇게 끝도 없이······.”
철저한 무소유의 실천.
방금 전만 해도, 병원 방송을 통해 수망교주의 명상이 진행된 참이었다.
덕분에, 뻣뻣한 시체가 되어 실려 나간 옆 병실 최 씨의 죽음에도 덤덤할 수 있었고, 허기짐, 찌는 듯한 더위, 씻지 못한 몸에서 느껴지는 찝찝함을 어렵지 않게 견뎌낼 수 있었다.
그렇게, 양 볼이 수척한 병원 사람들이 저마다 침대에 올라 가부좌를 틀고, 수망교주의 명상을 떠올리기 시작했을 즈음······.
-치익! 치익!
병실 방송 스피커에 불이 들어왔다.
“어라?”
의아한 일이었다.
기름 발전기를 돌려 가동해야 하는 병원 방송실.
에너지 절약과 환경보호라는 명목하에, 오로지 수망교주의 명상 시간에만 방송이 켜지곤 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목소리의 주인공은 수망교주가 아니었다.
-안녕하십니까, 친애하는 생존자 여러분. 팍스 FC입니다.
“······팍스?”
한국의 유통업계를 섭렵했던 대기업의 이름.
하지만 무상교주는 팍스FC가 무소유의 평화를 깨뜨리는 번뇌의 원흉이라 지목한 바 있었다.
당연하게도, 병실 사람들은 팍스FC의 등장에 한껏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마구니야, 마구니······!”
“수망······ 수망······.”
애써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들.
사실 팍스FC에 특별히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식량을 보급해준다는 이야기가 그들의 번민을 일으키곤 했고,
그로 인해 마취가 풀리는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괴로움이 찾아들곤 했으니까.
하지만······.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수망교주님의 명상 2부 시간으로, 여러분께 무소유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응?”
팍스FC가 대뜸 ‘무소유’를 긍정하기 시작했다.
젊은 여성의 낭랑하면서도 맑은 목소리.
‘좋은 말씀’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쾌청하게 흘러들어왔기에,
조금씩 긴장을 누그러뜨린 사람들이 천장에 달린 스피커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이제 무소유의 평안을 찾을 시간입니다. 모두 창밖을 확인해주세요.
“창밖?”
병실, 로비, 심지어는 당직실에서도 너나 할 것 없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ㄷ’자 모양으로 세워진 병원 건물과 중앙에 놓인 지상 주차장.
그들이 마주한 것은······.
“히······ 히익!”
거대한 크기의 아공간 포탈이었다.
모두가 겁을 집어먹었다.
팍스FC가 사람들을 포탈의 제물로 사용한다는 소문.
모두가 그 소문을 믿는 건 아니었지만, 겁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아공간 포탈은 그들 모두를 집어삼킬 듯, 장대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후두두두둑.
후두둑.
사람들을 집어삼키기는커녕, 포탈은 되레 미친 듯이 물건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쌀, 라면, 생수, 거기에 갖가지 가공식품들까지.
산더미처럼 쌓인 식량에 텅 빈 건빵 봉지를 부스럭거리던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오래지 않아, 팍스FC의 ‘좋은 말씀’이 시작됐고,
-양은 냄비에 팔팔 끓인 라면을 떠올려 보세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가운데, 이불처럼 덮인 계란 사이로 면을 건져 올리면, 탱글한 면에 뜨끈한 국물이 묻어나옵니다. 한 젓가락 크게 덜어, 국물을 몇 숟가락 끼얹어 주고, 저기 주차장에 나뒹굴고 있는 싱싱한 종갓집 김치를 한 팩 뜯어 얹어주면······.
“아아······!”
“아······!”
꿀꺽.
굶주린 사람들의 마음에 ‘마구니’가 끼기 시작했다.
불가항력이었다.
식사에 관한 소박한 찬미.
또렷한 목소리와 함께 전해지는 버프가 병원 사람들의 식욕을 자극했다.
“하······ 한 봉지만······.”
주차장에 널브러진 수천 개의 라면 봉지를 보며,
누군가 무심코 침을 흘렸을 즈음······.
-이 모두가 번뇌를 만드는 법이죠. 자, 우리는 다시 무소유로 돌아갑니다.
슈와아아아아악!
주차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식량들이 일순에 포탈로 빨려 들어갔다.
‘소유’에서 ‘무소유’로의 적나라한 전환, 다시 말해 ‘상실’을 보여주기 위해.
“허억······!”
“끄흐으으윽!”
병원 사람들이 터질 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리디아가 ‘무소유’라는 단어에 실어놓은 강력한 디버프.
그 번뇌가 사람들의 감정을 나락까지 끌어 내렸다.
심지어는······.
-여러분, 번뇌는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어엇!?”
‘좋은 말씀’은 계속되고 있었다.
다음 포탈에서 나타난 것은 커다란 샤워 시설.
쏴아아아······.
곳곳에 매달린 샤워기로부터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고, 주변으로 샴푸와 바디워시, 면도기를 비롯한 세면도구들이 텅텅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물이다······!”
“칫솔도 있어!”
다시 시작된 버프.
마취의 몽롱한 기운이 신선한 바람과 함께 씻겨 날아가는 가운데, 모두가 자문했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씻어본 게 언제였던가?
그제야 느껴졌다.
며칠 내내 흘러나온 땀이 소금처럼 몸에 절여져 있다는걸.
살갗이 닿을 때마다 쩍 하며 달라붙는 감촉이 불쾌하다는걸.
절규하듯 오소소 올라온 땀띠가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는 것을.
하지만, 이 또한 신기루였다.
샤워장이 눈 깜짝할 사이 포탈로 빨려 들어갔고······.
“아아아아!”
“안 돼애!”
‘무소유’ 체험은 계속됐다.
포탈은 데구루루 바닥을 구르던 클렌징폼 하나 놓치지 않았고,
주차장에는 텅 빈 절망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흐으으으윽!”
“크흐으윽! 그만해애애!”
이제는 눈물로 호소하는 병원 사람들이었지만······.
-여러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승의 하찮은 쾌락으로는 열반에 이를 수 없으며······.
무소유의 현자, 팍스FC는 멈추지 않았다.
두꺼운 갑옷을 걸친, 푸른 눈의 외국인들.
그들 열두 명이 커다란 스티로폼 박스를 들고 나타났고, 기다란 테이블에 갖은 물건들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치이이······.
달그락!
보글보글······.
일사불란한 움직임이었다.
누군가 뜨겁게 달아오른 불판에 커다란 고기를 얹었고, 누군가 채반에 깨끗하게 씻은 쌈 채소를 올려두었으며, 그 옆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솥 뚜껑이 열렸고, 또 누군가는 보글보글 끓인 두부 된장국 위로 칼칼한 고추를 썰어 넣었다.
“······.”
“······.”
마취 상태에 빠져 있던 병원 사람들.
팍스FC는 그들의 어깨를 수천 번 들었다 놓고 있었고,
수망교주의 마취는 탈골된 어깨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이라곤 적나라한 ‘무소유’의 현실.
그 현실이 사람들의 욕망에 불길을 집어넣고 있었다.
“무소유······.”
“족까!”
우르르르르르!
무소유의 ‘무’자만 들어도 입에서 거품이 나왔다.
다시 욕망의 주인이 된 병원 사람들.
그들이 팍스FC의 포탈을 향해 쇄도했다.
***
사람들은 알아차렸다.
고귀한 결단이 아닌, 막연한 명상과 평화로 덧칠된 무소유.
욕망을 거세당한 채, 마취에 사로잡힌 죄수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하지만 리디아의 버프/디버프와 아공간의 물자들이 그들의 마취를 풀어버렸다.
그러곤 더덩실 춤을 추며 ‘풀소유’를 연호하는 그들에게 교주의 진실을 들려주었다.
“······치료되던 게 아니었다고?”
“잠깐만, 그럼 우리 어머니는······.”
그저 허울에 불과한 병원과 치료.
수망 교주의 마취로 통증을 걷어내며, 오히려 병을 키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그리고 자신뿐만이 아닌, 가족과 지인들이 그 당사자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분노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결과······.
“이미 죽었다고 합니다.”
작전본부장 유성철이 전해온 소식.
실로 사이비 교주다운 말로였다.
최측근이던 간부 하나가 손수 수망교주의 숨을 끊었다고 했으니까.
덕분에 단체 ‘수망교’가 공중분해 되어 버렸지만······.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병원 쪽 단체 대표들은요?”
“빠짐없이 포획했다고 하더군요.”
그 산하에 있던 병원과 단체들을 빠짐없이 흡수한 상태.
이참에 아예 강남 세브란스와 더불어, 힐러나 의사들의 관리를 큰누나에게 일임할 생각이었다.
내가 말했다.
“쌍방으로 잘됐네요. 엘븐하임에는 힐러들이 필요하고, 여긴 약재가 필요한 상황이니······.”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생존자가 늘어나게 될 상황.
수망교가 환자를 가려 받은 덕이다.
상당수가 각성자였는데, 이들 대부분이 팍스FC의 전력으로 흡수될 터였다.
그 업적을 치하하려는 듯, 유성철이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평화롭게 해결해서 다행입니다. 충돌이 있었다는 소식이 돌면 다른 군소 단체들도 겁을 먹었을 테고요.”
그의 말대로였다.
우리는 아무것도 안 했으니까.
그저 ‘풀소유’의 가르침을 설파하며, 물자를 풀어놓았을 뿐.
유성철이 그간의 고충을 토로하듯 덧붙였다.
“사실, 그동안 군의 통제에 따르지 않는 단체들이 워낙 많았습니다. 하지만 팍스FC를 인정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공권력이 미칠 수 있는 영역도 점점 많아지겠죠.”
그의 소원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대한민국의 재건.
그 목표를 위해, 지금까지도 내게 끈질긴 추파를 던지고 있었지만······.
“언제 팍스FC로 들어오실 겁니까?”
“······예?”
이번에는 내 쪽에서 물었다.
명실상부한 동맹이라 볼 수 있는 합참본부.
하지만 이제 그들이 나를 품는 게 아닌, 내가 합참본부를 품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곧 바르나울이 공격해 올 겁니다. 그 전에 아발론을 끌어와야 하고요.”
우리는 이미 전 지구적인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적들은 장소를 가리지 않았고, 팍스FC 또한 동맹을 가리지 않았다.
중국, 일본, 미국과 유럽, 거기에 엘븐하임까지, 팍스FC의 세력들이 세계 곳곳에 퍼져 있었으니까.
한국에서의 집안 살림을 도와주는 합참본부의 노력은 고마운 일이지만, 슬슬 서로의 방향성을 합쳐둘 필요가 있었다.
“본부장님, 한국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하지만 합참본부는 국가기관입니다. 아무리 명목상이라곤 하지만······.”
국가와 기관, 그리고 기업의 관계.
그 틀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유성철이었지만, 그에게 나는 새로운 꿈을 불어넣어 주었다.
“뭐······ 팍스FC가 세계 정부 같은 거라도 하면 되지 않을까요?”
국가를 포괄하는 초 국가적 물류센터.
대한민국의 합참본부쯤이야 넣고도 남을 만한 그릇이었으니까.
유성철의 눈이 빛났다.
문화 강국 (1)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