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98)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98화(98/240)
098화 문화 강국 (1)
콰아아앙!
자욱하게 피어오른 먼지와 함께, 조각상이 쓰러졌다.
한국에서의 상황을 마무리 된 다음이다.
나는 유럽에서의 상황 정리를 돕는 겸, 바르나울의 흔적을 찾기 위해 파리로 돌아왔다.
더 이상 파리에는 루브르가 존재하지 않았다.
아공간으로 함께 딸려 들어온 카후젤 개선문과 정원.
이제 그 자리에는 움푹 파인 직사각형 모양의 빈 공간이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었다.
비스듬한 경사로 이루어진 기다란 공간,
“으랴!”
꽈아아앙!
후드득!
그 끝을 향해 김솔이 기합과 함께 볼링공을 던졌고,
아랫목에 깔아 둔 열 개의 ‘비너스 상’을 단번에 박살 났다.
몇 차례 휘청거리며 끝끝내 버티던 마지막 비너스 상이 마침내 쓰러졌고,
김솔이 씨익 웃으면 내게 말했다.
“리필!”
“······.”
일종의 ‘근력 훈련(?)’의 일환이었다.
사람 크기의 조각상을 대상으로 한, 투포환 볼링.
나 또한 자동 볼링 머신에 빙의하여, 틈틈이 열 개의 비너스 상을 삼각 대형으로 세워주고 있었다.
태평하기 짝이 없는 그녀와 달리······.
‘쉽지 않네.’
사실 나는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 있었다.
특히, 통폐합으로 아발론을 지구로 끌어오는 계획에 관해서.
‘······가능하다면 바르나울이 들어오기 전에 하는 게 좋은데.’
기사들의 고향을 되찾아주는 것이 가장 첫째 되는 목표였지만, 아발론은 바르나울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사업장 중 하나이기도 했다.
놈들의 보급창고 하나를 빼앗은 채 싸움을 시작할 수 있다면, 그만큼 좋은 일도 없을 테니까.
물론 아직은 시간이 필요한 상황.
지금도 팍스가 아발론의 좌표를 찾기 위한 계산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어쩌면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었다.
“성장 등급이라······.”
통폐합.
여기에는 상공회의소가 부여해놓은 특별한 조건이 있었다.
모 차원의 등급이 통폐합 차원의 등급보다 낮을 수 없다는 조건.
간단히 말해, 지구가 아발론보다 더 높은 평가 등급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현재 지구의 등급은······.
[CCC+]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입찰 경쟁 직후 [CCC]로 격하된 이래, 겨우 한 계단 올라간 수준에 불과했으니까.
내심 억울한 기분이었다.
“······아니, 양심이 있어야지. 그렇게 처맞아 놓고도······?”
강함을 척도로 하는 것이 아니었나?
이미 상공회의소를 비롯한 외계 깡패들을 여러 번 후두려 팬 우리다.
초고속 승진을 예상했음에도, 정작 까 본 인사고과에 내일 짤려도 이상할 게 없는 성적이 기록된 셈이었다.
그때, 김솔이 손가락 위로 빙빙 볼링공을 돌리며 다가왔다.
“아니지, 아우야. 실력이 다가 아니란다.”
“······다가 아니면?”
그러곤 회전하는 볼링공을 휙 하니 어깨에 얹어 묘기를 부리기 시작했다.
“간지! 간지가 있어야 하는 거야. 지금 스탯은 좋은데 정작 등급이 F따리라는 소리 아니냐. 실력은 있는데 듣보잡이라 평가절하당하는 거지. 나는 간지가 보충되면 해결될 문제라고 본다.”
“음······.”
게임 용어를 동원해 상황을 반추하는 김솔.
얼핏 들으면 개소리였고, 실제로도 개소리가 맞았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깡촌, 변방, 촌놈, 냄새나는 뭐시기.
하나같이 외차원 놈들이 우리를 부를 때 썼던 표현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다차원의 입장에서는 지구가 아주 불모지에 가까운 모양.
흥미로운 해석이었다.
어쩌면 바로 그 ‘명성’이라는 것이 평가 등급을 결정하는 중요한 척도일지도 몰랐으니까.
“바깥으로 이미지를 좀 쌓아야 한다는 소리 같은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이 있나?”
“그건 세계 총통 각하께서 알아서 하셔야지. 낄낄.”
“······.”
유성철의 소행이었다.
나로 인해 세계 정부의 꿈을 키우게 된 그.
열기구처럼 허파에 바람을 집어넣고는 세계 정부를 건설하겠다며 설레발을 치고 다녔고, 김정겸 대령께서 초대 총통이 될 거라는 소리에 가족들이 나를 각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안에서 세계 정부면 뭐하냐고. 밖에서 찐따인데.”
물론 아직 지구에서도 많이 할 일이 남아 있었지만,
당장으로서는 아발론을 되찾고 바르나울과의 전쟁을 대비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확실히 쉽지 않아.’
하지만 어떻게 지구가 그런 ‘유명세’를 얻을 수 있을지 쉬이 짐작이 가지 않았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구애의 춤사위를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렇게 고민이 깊어지려던 찰나······.
“······응?”
비너스 상을 향해 공을 던지던 김솔이 우뚝 자세를 멈춰 세웠다.
부서진 조각상 사이로 흘러나오는 소리.
조심스레 가까이 다가간 우리는 조각상의 부서진 조각을 만지며 서럽게 울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끄흐흐흐흑! 흐흐흐흐흑!”
‘······얜, 또 뭐야?’
딱 봐도 지구의 종족이 아니었다.
수달과 몹시 흡사한 외양이기는 했지만, 세상에 실크 셔츠를 입는 수달 따윈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심지어 한쪽 눈에는 금색의 외눈 안경까지 쓰고 있었다.
똑똑.
빳빳한 털 사이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수달.
녀석이 한껏 붉어진 눈으로 우리에게 소리쳤다.
“왜! 대체 왜 부수는 거야! 이렇게 아름다운 물건을!”
“······?”
“이러니 등급이 그따위지!”
찾은 것 같았다.
우리 푸른 별 지구의 진가를 알아줄 존재를.
***
“히흑! 히흑!”
아직 울음이 가시지 않았는지, 거칠게 숨을 말아 쉬는 수달.
녀석이 짧은 팔을 버둥거리며, 튀어나온 주둥이까지 고등어를 툭하니 집어 올렸다.
[국내산 순살 고등어, 100g, 8개입, 가격은 16,190원입니다.]수달의 이름은 해리스.
녀석은 자신을 다차원 언론 ‘에코스’의 예술부 기자라고 소개했다.
다차원 언론 에코스니, 예술부 기자니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이놈이 눈물까지 쏟을 만큼 지구의 예술에 진심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별다른 전투 능력은 없었다.
대신, 고위계의 척력을 두르고 있는 놈이었지만······.
“저기, 근데 이거 풀어주시면?”
“안돼.”
지금은 두 발이 묶인 채, 인어공주 같은 자세로 생선을 받아먹을 뿐이었다.
“그보다······ 아까 하던 이야기 좀 마저 해봐.”
내가 물었다.
부서진 비너스상에 이성을 잃었던 해리스.
녀석이 이미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던 터였으니까.
해리스는 침략자도, 그렇다고 마농족 같은 난민도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한 목적을 갖고, 상공회의소로부터 임시비자를 발급받아 지구로 방문했다.
그리고······.
“······지구가 불바다가 되기 전에 미술품 좀 챙겨가려 했다는 거요?”
“아니, 등급 이야기 한 거 말야.”
공교롭게도, 녀석은 지구의 평가 등급을 올릴 방법을 알고 있었다.
앞발로 수염을 털어낸 해리스.
녀석이 기억을 되짚으며 대답했다.
“좋은 작품이 있다면, 그걸로 다차원 호사가들의 관심을 끌 수 있어요. 자연스레 지구의 이름값도 올라갈 테고······ 상공회의소의 평가 등급에도 영향이 가겠죠.”
해리스는 지구의 평가 등급과, 개척 규제는 무관하게 적용된다고 덧붙였다.
등급이 오른다 해서, 갑자기 3위계, 4위계에 달하는 괴물들이 지구에 들어올 일은 없다는 소리.
오히려 지구와 협력을 원하는 차원들이 생겨날 가능성도 있다고.
“그럼 이거라면······ 등급이 얼마나 올라갈까?”
나는 곧장 새 물건을 꺼내 들었다.
<보르게제의 검투사>라는 제목의 조각상.
드높게 높게 치켜든 팔이 일품인 고대 그리스의 물건이었다.
“오······.”
역동적인 조각상의 자태에 해리스는 내심 감탄하는 기색이었지만,
그럼에도 결국 고개를 내저었다.
“분명 도움은 되겠지만······ 하지만 작품 하나만으로 바로 등급 상승까지는······.”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이거지?”
나는 즉시 노선을 변경했다.
기존 작품을 중첩하고, 섞고, 살을 덧붙여 보기로.
이참에 아예 제대로, 스케일을 키워볼 생각이었다.
“이게 사실 어떻게 돼 있는 작품이냐면······.”
아공간에서 출하된 싱싱한 고등어를 얻어먹은 해리스.
내게 일종의 인벤토리 능력이 있다는 건 예상했겠지만, 정작 사물까지 복제할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을 터였다.
더욱이 내가 그걸 통해, 어마어마한 규모의 ‘설치 미술’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것도.
제목을 바꿨다.
<보르게제의 검투사>에서, <보르게제의 검투사‘들’>로.
밋밋한 땅덩어리 위로 조각상들이 수백 개로 불어났고, 고고한 자세를 뽐내는 것만 같던 검투사의 모습은 어느덧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검투사들의 생생한 장면으로 순식간에 전환됐다.
“······.”
조금씩 말을 잃어가는 해리스.
하지만 이것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싸움에 휘말린 포로라도 되는 것일까?
몸을 베베 꼬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 상을 비극적으로 진열했고,
중간 지점에 <포로 노예들의 반란>을 세워, 성난 파도처럼 억압을 뒤집고 일어나는 노예들의 모습을 급진적으로 연출했다.
“흐으으······ 흐윽······.”
조금씩 가쁜 숨을 몰아쉬는 해리스.
속속들이 나타나고, 또 연결되는 조각상들은 한 편의 장엄한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었다.
촤아악! 촤악!
이제 마지막이었다.
저 멀리 배를 타고 들어오는 승리의 여신 <니케>를 발견했을 때에는······.
“······.”
해리스의 솜덩이 같은 입이 쩍 하니 벌어져 있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앙증맞게 발을 버둥대는 녀석.
밧줄을 풀어주자, 녀석이 꼬리를 펄떡이며 경이에 찬 눈으로 조각상을 눈에 담았다.
짧은 손을 움찔거리며, 터져나올 듯한 탄성을 애써 막아보려는 듯했지만······.
“흐흐흐흐흑! 흐으으윽!”
애써 참은 감탄이 되레, 물줄기 같은 눈물로 펑펑 터져나왔다.
지구가 불바다가 된다면, 틀림 없이 작품 또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테니까.
“이렇게 아름다운 물건이 사라져야 한다니! 흐흐흐으윽! 끅!”
해리스가 전해준 소식은 비단, 등급 상승에 관한 것만이 아니었다.
녀석도 바르나울과의 전쟁이 곧 시작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고, 사라질 예술품들을 미리 보존하기 위해 이곳 지구에 찾아온 에코스의 예술 기자였으니까.
덕분에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한 달 뒤, 바르나울이 지구 땅을 밟을 것이며, 거기에는 6위계에 달하는 흑마법사들이 열 명이나 포함될 것이라는 소식을.
밑도 끝도 없이 지구의 패배를 예상하는 녀석이었고, 그래서 울음도 터뜨린 것이겠지만······.
작품에 대한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제가 기사를 쓰겠습니다. 이 정도 작품이라면 호사가들이건, 수집가들이건 엉덩이가 들썩일 거예요.”
결국 펜을 들었으니까.
특별히 조건도 덧붙였다.
아직 충분히 자립하지 못한 지구이니만큼, 예술에 호의적인 차원들을 선별해 선택적으로 기사를 배포해주겠다고 나섰다.
침략에 별다른 관심이 없거나, 중립을 지키는 차원들을 위주로.
“그것만으로도 등급 상승에는 충분히 도움이 될 겁니다. 이런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이라면 분명······ 따흐흑!”
조각들로부터 차마 눈을 떼지 못하는 해리스.
그 격한 반응에, 나 또한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스펙터클하게 연출이 될 줄이야.’
하나만 보여줬을 때 비하면, 그 반응이 그야말로 천지 차이였다.
원작가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이것저것 뒤섞이며 완전히 다른 작품을 만들어버린 셈.
그래도 덕분에, 감화된 해리스가 지구의 안위를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서고 있었다.
‘이제 평가 등급 쪽은 어떻게든 되겠네.’
아발론을 끌어당기기 위한 조건 하나가 충족된 상황이었지만,
한 가지 더, 반드시 준비해야만 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6위계 흑마법사 열 명이라······.’
얼추 놈들의 전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바로 이 자리에서 맞붙었던 가츠가 6위계를 두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비껴버리는 놈들의 환각이 문제였다.
물론, 기사들의 오러를 이용한다면 그 환각을 파훼할 수 있을 테지만······.
‘아무리 그래도 열 명은 좀······.’
카멜롯의 기사들만으로는 그 많은 환각을 깨뜨릴 수 없었다.
그러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팍스FC에 더 많은 ‘오러 유저’들이 양성되어야 하는 것은.
란슬롯을 비롯한 기사들을 훈련 교관으로 삼고, 팍스맨 중 신체 각성자들을 선별하여 집중적으로 교육을 진행해볼 작정이었다.
일단은······.
“아뵤!”
“아아아아악! 안 돼애!”
콰드드득!
저기, 저 비너스 상을 박살 내고 있는 격투기 캐릭터부터.
공동 묘지의 공집합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