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99)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99화(99/240)
099화 공동 묘지의 공집합 (1)
틱틱!
부드러운 가죽 소파가 놓인 물류센터의 한쪽 구석.
77인치 OLED TV 앞으로, 김솔이 바쁘게 컨트롤러를 누르고 있었다.
화면 중앙에 담긴 것은 바쁘게 초원을 내달리는 한 명의 중세기사.
그런 그의 앞으로, 거대한 몸집의 중장기병이 모습을 드러냈다.
히히힝!
마갑을 두른 말이 거칠게 앞발을 치켜들었고,
후우우웅!
얼마 지나지 않아 반월 같은 할버드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틱! 틱!
버튼을 누를 때마다, 캐릭터가 쉴 틈 없이 바닥을 굴렀다.
그러곤 적의 무거운 움직인 사이사이로 부지런히 칼날을 찔러넣었다.
단 한 번의 실수로도 목숨이 끊어질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
비장한 음악과 함께, 김솔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올 즈음······.
“시간을 정확하게 재야 합니다. 적의 준비 동작이 오래 걸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가속해 들어오는 타이밍까지 계산에 둔다면······.”
“에이! 거기선 앞으로 굴렀어야죠!”
후우우욱!
후우욱!
카멜롯의 망령들이 그녀의 귀를 간지럽혔다.
“아! 내가 알아서 한다고!”
쉬지 않고 로테이션으로 들어오는 망령들의 훈수.
김솔이 질색하며 손사래를 쳤지만, 두둥실 떠오른 란슬롯이 낮은 목소리로 덧붙일 뿐이었다.
“그건 안 될 말씀입니다. 주군께서 신신당부하셨으니까요. 김솔 님께서도 오러를 개화하셔야 한다고요.”
“자, 잠깐만! 안 보이잖아!”
내력은 꾸준한 훈련을 통해 형성된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내력은 깨달음의 경로를 통해 오러로 발현된다.
문무를 겸비해야 다다를 수 있는 오러 유저의 길.
기사들이 김솔에게 24시간 내내 들러붙은 것 또한, 다름 아닌 그 길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아악! 김정겸!”
싸늘한 시체가 된 캐릭터를 보며 게거품을 무는 김솔.
하지만 아무리 팔을 휘둘러봐도, 망령이 된 기사들은 연기처럼 흩어질 뿐이었다.
***
그로부터 몇 시간 뒤.
백여 명에 달하는 손님들이 아공간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오······ 왔어?”
부상이 완치된 백민우, 세브란스 병원의 송현구, 훈련 프로그램을 이수한 여하의 각성자들까지.
모두가 바르나울과의 싸움을 대비하기 위한 팍스FC의 전력이었다.
10명이나 되는 고위 흑마법사들을 상대하기엔, 카멜롯의 기사들만으로는 그 수가 모자랐으니까.
“다들 따라오시죠.”
물론, 머릿수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흑마법사들을 타격하기 위한 두 가지 열쇠는 오러와 정교한 합공.
상당한 수준의 훈련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함께 합을 맞춰볼 만한 환경이 조성되어야 했다.
내가 준비한 것은······.
“······이곳입니까?”
“뭔가 썰렁한데······.”
아공간에 설치된 텅 빈 방.
희고 거대한 벽으로 둘러싸인 이 공간은 다름 아닌 아공간 <실험실>이었다.
나는 잠시 상태창을 띄워, 실험실 능력에 관한 정보를 확인했다.
띠링!
—
◈ 아공간 실험실 (3)
-외부에서 식별된 대상을 홀로그램으로 형상화할 수 있습니다.
-형성된 홀로그램을 대상으로 모의 시뮬레이션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 단, 대상에 대해 확인된 정보만 시뮬레이션에 반영됩니다.
—
‘식별된 대상’은 두말할 것 없이 가츠.
그리고 그가 다른 흑마법사들과 펼쳤던 흑마법이었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겠지만.”
이미 몇 시간 전, 시뮬레이션을 통해 가츠의 모습을 재현해 본 터였다.
대상에 대해 ‘확인된 정보만’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는 실험실 능력의 한계.
내 인지 능력을 벗어났던 탓인지, 시뮬레이션을 통해 재현된 환각에서는 듬성듬성 새카만 구멍이 드리워져 있었다.
더욱이······.
그것뿐만이 아니라는 듯, 란슬롯이 덧붙였다.
“흑마법사들마다 환각을 만들어내는 고유한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들어올 흑마법사들 모두 저마다 다른 패턴을 가지고 있겠죠.”
창의성까지 겸비한 바르나울의 흑마법사들.
놈들이 어떤 환각을 들고나올지는 미지수였으니까.
이것저것 제약이 많은 홀로그램 훈련이었지만······.
“······그 점을 모두 감안해도 놀랍습니다. 바르나울을 상대로 한 모의 훈련이라니요. 다차원을 통틀어 이런 훈련이 가능한 곳은 주군의 아공간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바르나울은 워낙에 베일에 싸인,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한 놈들이었다고 하니까.
“각각 열 명씩이면 된다는 거지?”
“예. 6위계 흑마법사들의 수준을 생각하면······ 그 이상의 매듭을 만들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애초에 그만해도 상당한 수준이고요.”
곧장 실행으로 이어갔다.
김솔과 민우를 비롯해, 비슷한 전투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한 조로 구성했고, 실험실 홀로그램을 이용해 가츠와 휘하에 있던 하급 흑마법사들을 재현했다.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우뚝 서 있는 흑마법사들의 모습.
한 조로 구성된 열 명의 각성자가 대열을 갖추었고, 망령이 된 기사들이 홀로그램과 팍스맨들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세세한 위치와 자세를 교육했다.
후웅! 타악!
스릉!
일제히 주먹과 칼을 휘두르는 팍스맨들.
마치 율동이나 체조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고······.
“아발론에서는 <합동 검무>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바르나울에 맞서기 위해 고안했던 전투 방식이었죠.”
실제로도 그런 맥락이 포함돼 있었다.
직접 타격하기 위한 것이 아닌, 본체를 추적하기 위한 예비 공격.
알면서 모르듯이, 모르면서 알듯이.
바르나울의 환영을 가르는 그 공격에는 <검무>라는 이름이 썩 잘 어울렸으니까.
바르나울의 환각 앞에서, 압도적 힘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했다.
속이는 자와 그 속임수를 추적하는 자.
양자 간의 치열한 수 싸움만이 남아 있을 뿐.
우리 쪽에서도 철저한 준비를 갖춰가는 중이었지만······.
“주군, 문제가 있습니다.”
30분 가량이 흘렀을 즈음, 훈련을 주관하던 란슬롯이 돌연 내게 돌아왔다.
“뭔데 그래?”
“흑마법사들을 상대로 훈련하는 건 아직 이른 것 같습니다. 다들 도무지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고 있어요.”
그를 따라나섰고, 한창 훈련이 진행되고 있는 실험실의 풍경을 내다봤다.
“······너무 끌려다니는데?”
과연 그의 말대로였다.
시시각각 흩어졌다 돌아왔다를 반복하는 흑마법사들의 모습.
기사들이 오러를 피워 흑마법사들의 보랏빛 실선을 드러내주고 있었지만, 다들 속임수를 파훼하기는커녕 날아다니는 공격을 피하기에 급급할 따름이었다.
“반응속도가 부족합니다. 매시간 패턴이 변하는 환각이니만큼, 처지지 않고 따라붙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고 있어요.”
“이런······.”
저마다 각양각색의 각성 능력을 가지고 있는 팍스맨들.
하지만 신체가 강화되고, 무기 숙련도가 얻는다 한들, 완벽히 모든 영역을 초월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환영들의 움직임을 읽어낼 만한 동체시력, 그리고 그에 맞춰 스텝을 밟고 무기를 휘두를 수 있는 순발력은 각성 능력과는 별개의 영역이었으니까.
동체 시력과 순발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 케이스는 단, 두 가지 경우뿐이었다.
카멜롯의 기사들처럼 살아생전 뼈를 깎는 수련을 했거나······.
“······지금으로선 김솔뿐인가?”
“그렇습니다. 벌써 오러까지 개화했더군요.”
압도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거나.
“으으음······.”
곤란한 상황이었다.
싸움 내내 우리를 귀찮게 했던 바르나울의 환술.
이번엔 열 배로 놈들에게 끌려다니게 생겼으니.
그렇게 고민에 잠겨있을 즈음,
“음?”
밖으로 이어진 포탈로부터, 누군가 입장을 원한다는 소식이 전해져 들어왔다.
위치는 베이징.
수십 명에 달하는 방문자들의 정체는······.
“······운양?”
영약을 찾으러 떠났던, 중국의 무림인들이었다.
.
.
.
곧장 포탈 밖으로 나가 그를 마중했고, 우리는 웃는 얼굴로 포권을 주고받았다.
“무용담은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정겸 대협.”
운양을 직접 보는 것은 꽤 오래간만이었지만, 사실 베이징과는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아온 터였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듣기로는 운남에서 좋은 일이 있으셨다고······.”
“하하, 예, 물론이죠. 이겁니다.”
그가 검게 칠이 된, 작은 목함 하나를 꺼냈다.
뚜껑을 열자 안에는 금실 자수가 박인 붉은색 손수건이 덮여 있었는데, 손수건을 걷어내니 동글동글하게 말아놓은 새카만 영단 두 알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한 알은 제가 먹어봤습니다. 한데 이게 참······.”
“무슨 문제라도······?
“아뇨, 효과는 확실했습니다. 다만 소모품이라서 문제죠.”
보통은 내공을 증진시켜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영약.
하지만 운양은 아쉽게도 그 정도 단계의 약은 아직 구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영약을 만들 수 있는 각성자가 아직 충분한 레벨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이건 청심단이라는 이름의 단약인데, 기와 혈맥을 깨끗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다만 그 효과가 일시적이라 저도 정겸 대협이 가장 먼저 떠오르더군요.”
“기와 혈맥이라면······. 정확히 어떤 효과가 있다고 보면 될까요?”
“무공을 사용하는 제 입장에선 기감이 예민해지고, 대응도 한결 빨라지더군요.”
예민한 기감과 대응.
동체 시력과 반응 속도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바르나울의 환각 앞에서 거북이처럼 처진 팍스맨들을 보고 나온 터였으니까.
“그것참 잘됐네요. 마침······.”
나는 운양에게 우리가 바르나울이라는 흑마법사들의 차원과 싸우고 있으며,
놈들의 환각을 뚫기 위해 각성자들에게 그 무엇보다도 예민함과 민첩성이 필요해진 시점이었다고 덧붙였다.
다행히 영약은 의약품 카테고리를 통해 수용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더욱이 아공간에 저장한 채 무한히 복사하게 된다면, 소모품이라는 청심단의 약점 또한 보완할 수 있게 될 터였다.
“그거 잘 됐군요! 청심단이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운양 또한 반색하며, 내게 협력을 다짐했다.
“저희도 손을 보태겠습니다. 공교롭게도 무림인들이 제법 칼을 쓰니까요.”
씨익 웃으며, 농을 건네는 운양.
든든한 지원군의 등장에, 조금은 어깨가 가벼워지려던 찰나.
어느덧 표정을 굳힌 그가, 내게 한 가지 새로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대협. 사실 소식이 하나 더 있습니다. 중국 본토 쪽에 균열이 생겼다고 하더군요.”
“균열이요?”
“예, 처음에는 단순히 괴물들이 나타나는 평범한 스팟이라 생각했는데······ 그렇다고 보기엔 그 크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게이트 포탈이냐하면 그건 또 아니었고요.”
“······위치는요?”
일단은 신중해지기로 했다.
머지않아 바르나울의 침공이 시작될 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 다른 놈들이 밀려 들어온다면 꽤나 골치가 아프게 될 테니까.
하지만······.
“병마용(兵馬俑)이라고······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위치를 전해 듣자마자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건 바르나울의 소행일 수밖에 없다는걸.
“물론······ 들어봤죠.”
진시황의 무덤 근처에 위치한 유적지.
흙을 구워 만든 수천 명의 토병이 잠들어 있는 동시에, 실제로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생매장 당했다고 전해지는 끔찍한 장소였다.
다른 세력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시체와 골동품, 바르나울이 사랑하는 모든 재료가 거기에 있었으니까.
“차라리 잘됐네요. 대비라도 할 수 있으니.”
운양과는 이튿날 바로 병마용에 생겨난 균열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놈들이 들어올 자리를 특정할 수 있다면, 아예 그곳을 중심으로 진영을 깔아둘 수도 있을 테니까.
“일단 들어가시죠.”
곧장 청심단을 아공간에 수용했고, 운양과 함께 아공간으로 돌아왔다.
첫째는 각성자들에게 무한히 복제한 청심단을 먹여주기 위함이었고,
둘째는 무림인들에게도 흑마법사들의 환각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
운양은 지그시 기사들의 <검무>를 바라보았다.
퍼즐처럼 정교하게, 꽃잎처럼 화려하게 흩어지는 기사들의 칼날.
흑마법과 오러가 서로를 감추고 비추기를 수십 차례 반복했을 즈음······.
“정겸 대협. 저거······.”
운양이 내게 물었다.
“진법(陣法)이잖아요?”
공동 묘지의 공집합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