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the fact that a new actor i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127)
127막, 배역 그 이상의 악역 (1)
127막, 배역 그 이상의 악역 (1)
새로이 1인 기획사를 세운 이후로 광고 촬영과 영화 오디션 준비.
나름대로 갖가지 일을 도맡아왔던 유성태 사장은 유난히 힘겨웠던 지난 한 달간을 되뇌어보았다.
“후우, 이만하면 잘 끝낸 건가.”
처음엔 이신우의 말대로 가볍게 팬미팅을 진행해보려했던 그였다.
갑작스레 내려온 이철호 회장의 지시만 아니었다면.
국내 7성급 호텔 연회장.
물론 비용적인 건 모두 그의 비서인 한건호가 처리해주었다고 하나 아예 난생 처음 벌여보는 스케일이었다.
그 JN엔터에 있을 때도 진행해본 적 없는 거대한 규모.
다행히 그 끝무렵에 나온 건 안도의 한숨이었다.
“그래, 홍보 효과도 탁월했고.”
이만하면 충분히 잘 치른 거겠지. 그리 읊조리는 유성태 사장의 말대로.
이번 팬미팅··· 아니, 솔직히 팬미팅이라 하기에도 애매해진 이번 이벤트는 꽤나 성공적이었다.
「(후기)진짜 너무 좋았어요ㅠㅠㅠㅠ 사진첨부有」
「(후기)이신우배우님 실물 미침; 인성은 더미침;」
이번 기회에 완전히 이신우라는 배우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린 이들이 써내린 후기글.
당장 팬카페 외에 다른 커뮤니티 등지로도 퍼진 후기글들과 팬들의 반응만 해도 그러했다.
더불어 배우 이신우에 대한 별 관심없던 이들조차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와근데 아무리 돈이 많아도 팬한테 저렇게까지 해주는 연예인이 또 있냐?」
「재벌이고 뭐고 진짜 팬 아끼는 게 아니면 못저럴 듯」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갑작스레 터진 인터뷰까지.
『할리우드의 큰 손 닐 크레이그 감독이 내한을 결심한 이유··· 이신우 배우를 만나기 위하여?』
도저히 들어가보지 않고는 못 배길 제목이 우후죽순 뉴스란에 솟아오르기 시작했고, 이신우의 팬미팅은 다시 한 번 화제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말 그대로 두 배 이상의 홍보효과를 더욱이 가져올 수 있게 한 원흉.
닐 크레이그.
그에 대한 이신우의 대답은 조금 떨떠름해보였다.
“어··· 호텔에서 명함을 받긴 했는데.”
그 또한 닐 크레이그 감독이 그런 인터뷰를 남길 줄은 몰랐던 모양.
『이신우 배우의 이번 영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사실 연회장에 나타났을 때만 해도 놀라긴 했으나 딸아이의 연기 지도를 부탁하러 왔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던 유성태였다.
『다음 기회를 기다리면서』
다만 문제는 귀국 전에 닐 크레이그가 남긴 자그마한 인터뷰.
어렴풋이 짐작해볼 수 있는 그 의미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물론 그건 명백한 청신호였지만.
“신경쓰실 건 없습니다. 그냥 혹시 따로 얘기한 게 있으신가해서요.”
“아뇨, 그런 건 없었습니다.”
이미 명함을 주면서 연락을 기다리고 있겠노라 했지만 더 노골적인 신호를 보내고 떠난 닐 크레이그.
국내에선 유명하나 해외에는 그닥 연이 안 트여있는 유성태로서도 기쁜 일이었다.
‘어찌 보면 내 할 일을 뺏긴 기분인데.’
소속사가 해올 영업을 배우가 제 발로 직접.
아니, 정확히는 한국으로 불러내면서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니.
‘···하,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구만.’
자조적인 미소를 입가에 은은하게 피어올린 유성태 사장도 그걸로 속내를 정리했다.
나머지는 추가 광고 건과 출연 제안서.
일단 가장 유력한 대로 추려본 유성태 사장이었으나 굳이 추천해줄 만한 일감들은 아니었다.
다행히 그건 제가 맡은 배우에게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고.
정확히는 그 안에 아직 흥행을 이룰 만한 작품이 섞여있지 않다는 걸 아는 이신우였지만.
“그럼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겁니다만.”
“뭐죠?”
어찌 보면 배우이기에.
그리고 그 배우를 담당하고 있는 유성태이기에.
두 사람이 모두 가장 기다려왔을 소식.
“박인수 감독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 반가운 소식에 움찔거린 이신우가 피식 미소를 지어보였다.
미뤄두었던 촬영이 슬슬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
“대본 리딩 날짜가 나왔다네요.”
“···언제인가요?”
정다원 배우를 제친 이후로도 쉴 새 없이 자신을 다그치고 갈고 닦아온 이신우.
“기왕이면 가까웠으면 좋겠는데.”
“하핫, 그런가요?”
이미 그 자신감은 할 수 있는 모든 충전을 마친지 오래였다.
* * *
날짜 공지를 마치기 전.
박인수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 김태현과 개인적인 만남을 가졌다.
다만 그 태도에는 어쩐지 마냥 곱지만은 않은 기색이 묻어나고 있었다.
“안 물어보나?”
“이제와서요?”
“물어보고 싶어하는 것 같길래.”
그제야 꾹꾹 눌러담은 불만을 숨기고 있던 김태현은 작은 한숨을 내쉬곤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물어봐도 되는 겁니까?”
“안 된다고 하면 안 물어보려고?”
어쩐지 장난기가 섞인 듯한 박감독의 태도에 곧장 용수철처럼 물음이 튀어나왔다.
김태현으로서도 많이 벼르고 벼려온 것처럼.
“그래요, 왜 이신우로 한 겁니까?”
“왜냐니?”
“정다원이었잖아요 무려 정다원.”
불만이 가득 섞인 그 말투에는 작가로서 강한 프라이드를 가진 그의 고집이 담겨있는 것도 같았다.
삼십 대 후반의 시나리오 작가 김태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좋은 입지를 쌓아올린 그에게 이번 는 인생을 걸 만한 작품이었다.
“아쉬워?”
“그럼 당연히 아쉽지, 그걸 말이라고······!”
일부러 인내심을 테스트하기라도 하듯 말을 거는 박인수 감독에게 버럭 내지르려던 김태현은 간신히 참았다.
사실 화를 내기에도 애매했다.
왜 하필 그 날 집안에 일이 터진 건지.
정작 오디션 날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며 빠진 건 자신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신우 배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닙니다.”
꼿꼿하게 혀를 세운 김태현은 제 의견을 덧붙였다.
“근데 정다원입니다, 정다원. 국내에서 인정받은 건 둘째 치고 미국까지 진출해서 경험까지 무궁무진한 보증수표. 이미 악역도 성공적으로 연기해본 적 있는 스타배우.”
감정을 제외한 채 담백한 사실만을 벼려낸 팩트 그 자체.
만약 그 정다원이 상대가 아니었다면야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지도 모른다.
화제성 면에서든 기존에 보여준 연기에서든 모자랄 것 없는 이신우이니.
근데 왜?
“대체 왜···!”
품속 가득 지니고 있던 의문을 쏟아내기 시작한 김태현은 흡사 브레이크가 망가진 차와 같아보였다.
“보증된 흥행수표를 집어던지고 경험도, 새로운 스펙트럼의 연기도 불확실한. 화제성만 확실한 신인을 고른 겁니까? 예?”
“그것도 그 정다원 배우를 떨어트리고?”
“그래요!”
가까스로 속내를 털어낸 그는 그나마 후련해보였다.
그 안에 여전히 남아있는 아쉬움은 어찌할 도리가 없겠지만.
솔직히 상관없을 줄 알았다.
굳이 가보지 않은들 당연히 정다원 배우가 뽑힐 거라 예상한 덕에.
“김태현 작가.”
“예, 감독님.”
어느새 웃음기가 가신 얼굴로 차분히 이름을 부르는 박인수 감독.
“그간 각본 열심히 짰지? 최선을 다해서?”
“···그랬죠.”
괜히 진중해진 태도에 멈칫한 김태현 작가를 힐끗 바라본 박인수 감독은 잔을 확 제쳤다.
철썩.
혓바닥에 달라붙은 진한 알코올 향을 음미하며 덧붙였다.
“심지어 그거 내가 옆에서 같이 보고 보조해준 거잖아. 내가 직접 연출할 거니까.”
“···예.”
덕분에 찜찜한 대답을 늘어놓은 김태현에게 쐐기를 박는 박인수.
“그러니까 믿고 기다려봐.”
“믿고요?”
“그래, 그 정다원보다 더한 놈이었으니까.”
그리 중얼거린 박인수 감독은 찐득한 미소로 잔을 탁 내려놓았다.
“최소한 내 눈에는.”
덕분에 할 말이 궁해진 김태현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고.
투덜대긴 했지만 사실 가장 확실한 건 하나였다.
조만간 있을 대본 리딩 날.
그 연기를 직접 제 눈으로 봐보는 것뿐.
* * *
드물게 신이 난 남유민은 대본리딩 현장 앞에서 한 사람만을 기다렸다.
그걸 보며 매니저도 한 마디를 거들 수밖에 없었고.
“야, 굳이 한참 일찍 와서 안 들어가고 기다리냐?”
“아 왜, 주연끼리 같이 들어가는 게 더 그림 좋을 거 아냐.”
“그냥 니가 같이 들어가고 싶은 게 아니라?”
“쓰읍, 슬슬 다 와간댔는데.”
“······아예 씹냐 이제?”
“아, 언제 오는 거야 신우 이 녀석?”
결국 매니저에게 볼을 꼬집히며 당겨진 뒤에야 남유민은 발견할 수 있었다.
“······아아악, 형. 어! 왔다!”
“휴, 드디어 들어가겠네 나도.”
허나 들떠오르려던 남유민의 기분은 벤에서 내리는 이신우를 보며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인사하고 같이 들어가려던 거 아니었어?”
“음, 원랜 그러려고 했는데···.”
입가에 픽 웃음을 띄우는 남유민.
그의 시선은 딱딱하게 마른 이신우를 천천히 지켜봤다.
마치 주변으로 고독한 아우라를 스멀스멀 흩뿌리는 듯한 그를.
“나도 슬슬 집중해야겠네.”
“그래 인마, 잘 생각······ 어?”
그러한 반응은 전대수도 마찬가지였다.
불과 팬미팅을 하고 그러던 얼마 전까지도 단정했던 이신우의 헤어스타일.
“신우씨, 머리가······.”
그 헤어스타일은 변해있었다.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늑대의 사나운 갈기와 같은 모양새의 장발로.
아니, 심지어는 그 눈빛까지.
당장 사납게 달려들 것만 같은 야성을 갈무리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연기를 보여주려는 건지 가늠해볼 수조차 없도록.
* * *
미리 리딩 현장에 나와있던 김태현은 물끄러미 입구만을 바라봤다.
“김작가님, 누구 기다리세요?”
“예? 아니, 그냥 슬슬 다들 올 테니까···.”
그리 말하는 시나리오 작가 김태현이었지만 정작 속내는 딱 들킨 그였다.
이신우.
그 하나만을 기다리며 목을 축이고 있는 그는 박인수 감독의 말을 믿기로 했다.
허나 그게 잠깐 불만을 잠재울 순 있어도 긴장까지 가로막지는 못했다.
솔직히 말해 이번 작품은 김태현에게 있어 사활을 건 히트작이었다.
히트가 꼭 되어야만 하는.
그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시나리오.
경찰을 맡은 첫 번째 주연 남유민은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그였는데.
보증수표가 아닌 신인배우.
그가 과연 자신이 만들어낸 친 첸이라는 악당을 자연스럽게 그려낼 수 있을지.
‘조선족 말투부터 대사 하나하나에 담아내야하는 위압감이랑 카리스마를···.’
자아낼 수 있을까?
그러한 긴장을 갈무리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현장 너머 저편에서부터 기다리고 있던 배우들이 하나둘 입장을 시작한 건.
조연급과 단역 몇 명이 들어오는 사이로 애타게 기다리던 얼굴은 없었다.
물론 그 기다림도 얼마 안 가 끝이 났지만.
“남유민 배우님이랑 이신우 배우님 입장하십니다!”
두 주연의 입장을 두고 관계자 중 누군가가 외쳤다.
그와 함께 긴장에 절여있던 김태현의 시선이 움직이길.
아니, 다른 출연진과 관계자들의 시선이 한데 모이길.
‘···장발? 붙임 머리인가?’
세간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뒤바뀐 이신우의 입장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로 옆에 선 남유민에게 향하려던 관심까지도 앗아가는 그 장발을 스륵.
“허?”
“···.”
내린 순간.
숨겨져 있던 그 눈을 마주한 이들이 일제히 숨을 집어삼켰다.
거기엔 김태현 작가 또한 포함되어있었다.
‘···눈빛은, 좀 어울리는 것 같네.’
꿀꺽.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켜낸 그는 간단하게 일축해보였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외관으로 들어선 이후 보여준 눈빛이 썩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물론 그건 착각이었다.
얼마 뒤 박인수 감독이 들어서고 모두가 자리에 모인 그 순간.
“···그럼, 시작합시다. 씬 13번 아지트!”
박인수 감독의 신호와 함께 시작된 이신우의 시린 한 마디가.
아니, 온갖 해방감을 듬뿍 머금은 그 한 마디가.
“햐, 한국이 좋긴 좋구나?”
그 바로 뒤에 이어지는 아무렇지 않게 칼로 목덜미를 노리며 협박하는 장면과 호응하면서.
“양태야, 가져와라.”
“예, 형님.”
김태현은 제가 직접 작성한 각본을 들여다보았다.
“네 딸내미 곱더라 야?”
그 각본 이상대로 연기하고 있는 배우를 번갈아보며.
“우리 아빠 어디 갔냐고 그리 울던데, 다시 봐야 하지 않겠니.”
이미 오디션에서 보여주었던 연기보다도 더 농익어진.
완전히 제 가죽처럼 덮어써버린 그 악역의 모습을.
“무슨 수를 써더라도, 그렇지?”
오한이 드는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좌중을 압도하는 가운데.
진정 대본리딩이 시작되었다.
오직 한 사람만이 집어삼키며 아우르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