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the fact that a new actor i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139)
139막, 청룡영화제 (3)
139막, 청룡영화제 (3)
“으 추워···.”
“그러게 엄마가 꼭 껴입으라고 했지?”
살갗이 시리도록 부는 바람은 어느새 종결의 계절이 다가왔음을 고한다.
12월.
한 해 동안 비축해온 먹이로 긴 잠을 대비하는 짐승과 지는 꽃 사이로 앙상하게 남은 가지.
허나 종결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는 법이다.
“그치만··· 답답하단 말이야.”
“으이그, 내년부턴 어엿한 초등학생이니까 엄마 말 더 잘 듣는 거야?”
“으응.”
유치원을 졸업한 아이가 새로운 일원으로서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듯이.
고단했던 한 해의 마지막을 고하면서도 다가오는 한 해에 왠지 가슴을 부풀게 만드는.
“약속하는 거야?”
“응!”
겨울.
시리면서도 따스한 계절에 아이는 헤실헤실 웃으며 제 엄마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을 쳐다보지 못한 아이가 누군가와 부딪힌 건 그때였다.
“앗!”
“어머, 죄송합니다! 호진이 괜찮아?”
“어 응.”
중절모를 쓴 노신사.
공원 부근에서 마주친 노신사에게 아이 엄마는 얼른 인사를 시켰다.
“뭐해, 호진이도 빨리 사과드려야지.”
“죄송합니다 할아부지···.”
다행히 크게 부닥치지 않은 덕에 노신사나 아이나 피해는 없어보였다.
그럼에도 미안한 표정을 잔뜩 지은 아이는 노신사를 그대로 올려다봤다.
그제야 중절모에 가려진 할아버지의 낯이 조금이나마 보였다.
소년으로선 파악하기 힘든 표정을 짓는 노신사가.
“아니다 꼬마야. 이 할아버지가 몸이 둔해 비켜주질 못했구나.”
“···할아부지가요?”
“그래, 미안하니 여기 이거라도 받아주련?”
품속에서 꺼낸 빳빳한 노란 지폐에 어머니 쪽이 얼린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에요 어르신! 저희 애가 잘못 부딪힌 건데···.”
그러던 젊은 새색시는 문득 중절모 너머의 얼굴을 발견했다.
뉴스에서 몇 번이나 볼 수 있을 얼굴.
아니, 뉴스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얼굴이었다.
금강그룹의 총수인 이철호 회장.
“···.”
아예 할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 쪽에서 아무런 반응도 못하고 있길 눈치를 보던 아이가 냉큼 노란 지폐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할아부지!”
몇 번이고 놀란 눈길을 가다듬지 못한 새색시가 이철호 회장을 뒤돌아볼 무렵, 곁에 있던 비서실장이 입을 뗐다.
“날이 차갑습니다 회장님.”
“그래, 겨울이군.”
“산책은 이만하고 슬슬 사옥으로 돌아가시는 게······.”
허나 말을 멈춰세운 한건호 실장은 잠시 후 입을 다시 다물었다.
어딘가 외로워보이는 공원을 지긋이 지켜보는 이철호 회장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오히려 중얼거린 건 이철호 회장이었다.
“딱 저런 아이였지.”
“···.”
저 멀리 사라져가는 모자의 뒷모습을 다시 한 번 쳐다보곤.
회상하듯이 머릿속에 무언가를 그린 이철호 회장은 천천히 덧붙였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 잘못한 거라곤 그저 제 어미를 바라본 것밖에 없던 아이에게···.”
착잡한 목소리에는 후회가 잡혔다.
“그토록 미련하고 모질게 굴었는데.”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는 낙인같은 후회가.
물론 그 끝에 남는 감정은 결국 희미한 기쁨이었다.
“이리 잘 커준 게 어찌나 고마운지.”
“회장님.”
“허허, 나도 알고 있네. 면목없다는 거.”
“그게 아니라···.”
성공.
그 어떤 배우보다도 탄탄한 길을 저 스스로 찾아나가는 막내아들.
“오늘따라 유독 바람이 쌀쌀하군.”
“···슬슬 들어가시죠.”
거기에 대한 착잡함과 뿌듯함을 번갈아 음미해보던 이철호 회장은 비서실장의 말대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생각나는 대로 덧붙였다.
“참, 이번 청룡영화제에 참석한다지?”
“예 그렇습니다.”
“청룡영화제라면 정상급의 배우들이 여기저기서 몰려올 텐데······.”
살짝 느즈막한 걸음으로 비서실장을 되돌아보면서.
“아무 옷이나 입어서 되겠나?”
“그럼?”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철호 회장은 다시 걸음을 앞세우며 정리했다.
“이태리 주문 제작까진 기간이나 신우나 둘 다 부담스러울 테니 소소하게 가면 좋겠군.”
“소소하게라면 어느 수준을 말씀하시는 건지?”
“조금 아쉽지만 브리오니 쪽 양산품 중에 적당한 가격으로 찾아보게나.”
“알겠습니다.”
할리우드의 까다로운 셀럽들에게도 사랑받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정장 브랜드.
그 뒤는 비서실장의 재량에 맡긴 이철호 회장은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유독 차가우면서도 어딘가 기분좋게 부는 바람.
그건 꼭 이철호 회장의 올 한 해를 담아내는 것만 같은 바람이었다.
아픈 손가락에 불과했던 막내아들과의 관계를 일으킨 한 해를.
* * *
영화제까지 이제 겨우 이주일이 남은 시점.
급격히 추워진 날씨는 확실히 겨울이 다가왔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당일 날 비가 올 지도 모른다는 기상 정보는 살짝 불안하긴 했지만 어차피 영화제는 실내에서 진행될 테니 괜찮겠지.
그런 감상으로 소속사를 찾은 나는 불현듯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요?”
“네, 비서실장님을 통해 직접 보내셨더군요.”
그 발신인은 다소 아직 난감한 관계에 놓인 노신사였지만.
‘이철호 회장이···.’
아니.
아버지가 직접 보내준 정장.
왠지 간지러운 속마음에서부터 뭉클하는 기분이 느껴졌다.
“잘 입겠다고··· 전해드려야겠네요.”
“아마 기뻐하실 겁니다.”
공교롭게도 부모라는 존재에게 있어 처음으로 받아보는 선물.
나도 모르게 먹먹해진 기분으로 정장을 꺼내보았다.
세련미가 돋아나면서도 범상치 않은 색감.
부드러운 촉감까지 포함하여 만족을 드러내려던 찰나였다.
“그리고 이건 제 선물입니다.”
“네?”
품속에서 꺼내 유성태가 건넨 건 다름 아닌 이니셜이 새겨진 만년필.
아무래도 미리 준비했던 모양인 선물을 건네주며 유성태는 덧붙였다.
“반지나 목걸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실 것 같고. 시계도 그닥 차고 다니시는 걸 못봤어서.”
불필요한 사치품을 살 바엔 차라리 그만한 밥값을 떼우는 게 낫다는 이신우의 생각을 정확히 꿰뚫는 한 마디였다.
그리고 그 말미에 다는 첨언까지.
“이거면 원하시는 사인이 더 잘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해서요.”
“풉.”
호텔에서였나.
팬들의 요청에 사인을 수어 번 넘게 하면서 이미 묘한 집착증을 보여주었던 이신우였다.
그걸 마침 기억하는 유성태 사장이었고.
“사인,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그렇죠.”
딸깍.
심을 드러낸 만년필은 은은한 빛을 반사하며 인사했다.
거기에 피식 웃은 이신우도 고마움과 함께 미안함을 전했다.
“저도 선물을 준비했어야 했는데 깜빡해버렸네요.”
“하하, 신경쓰지 마세요. 저는 이거로도 족하니.”
그리 말하며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명패를 쓰다듬은 유성태 사장은 나직이 고백했다.
“이 바닥에 처음 들어오면서부터 쭉 꿈꿔왔습니다.”
색이 바래버렸던 염원.
어느샌가부터 잊고 살았던 오래된 염원을.
“내 가족, 내 식구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흔히들 더럽고 추하다 생각하는 이 연예계에서 식구가 되어서 함께 커보고 싶다고.”
처음 따랐던 인물 대신 그 라이벌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비록 덜 유능하되 사람냄새나던 그가 새 대표가 된다면 자신이 바라던 그런 식구가 생기리라 믿었으니까.
허나 시간이 지나가며 변한 건 장한영 대표뿐만이 아니라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요, 함께 커보고 싶다고. 아무도 버리지 않고.”
그런 유성태에게 이건 기회이자 은혜였다.
비록 아직은 전직 샵직원과 시골로 내려가려던 은퇴 매니저가 다이지만.
“그걸 도와준 게 이신우씨이니까요.”
“···.”
“오히려 감사한 건 접니다.”
굳이 고개를 숙이진 않더라도 그 마음이 모두 전해질 만큼 넋두리를 늘어놓았던 유성태 사장은 마지막에야 입꼬리를 실룩였다.
“그리고, 특별한 케어 없이도 이렇게 대성하는 배우를 맡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큭.”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야죠 제가. 물심양면으로 돕겠습니다.”
참 든든해지는 한 마디에 절로 이신우의 입꼬리 또한 올라가길.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실세부터 말단까지 배우들이란 배우들은 모두 모이게 될 커다란 태풍이.
청룡영화제의 시상식 날이.
아이러니하게도 그 태풍의 눈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건 어느 신인배우가 될 테지만.
* * *
영화계의 모든 시상식을 통틀어 가장 드높은 권위를 자랑하는.
문장 그대로 별들의 시상식.
청룡영화제의 개막을 알리는 레드 카펫 앞으로는 수없이 많은 카메라가 모였다.
차칵-차칵.
뇌쇄적으로 파인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여배우의 등장에 터지는 셔터.
그 외에도 등장하는 배우마다 셔터 세례는 그치지 않았다.
당연히 그 중에서도 인기와 평판에 따라 관심도가 나뉘기는 했지만 그 정점을 찍은 건 다름 아닌 두 배우였다.
하필이면 등장도 친분을 자랑하듯이 함께 해버린 두 미남 배우.
“야 이신우, 안 오고 뭐해?”
자신도 모르는 새에 멍하니 그 레드카펫 위에 선 이신우의 정신을 남유민이 일깨웠다.
어쩌면 넋이 나가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이신우를 기자들은 더 신이 나서 카메라에 담아냈지만.
“잠깐만, 저거 정장··· 브리오니꺼 아니야?”
“뭐, 뭐? 브리오니?”
개중에는 최소한 수백에서 수천을 호가하는 명품 정장 브랜드.
그 대형 떡밥을 물어버리는 기자도 존재했지만 셔터 세례의 주인공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멍하니 발밑을 내려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감이 들지 않는 발걸음이었다.
그 발을 천천히 내딛어보았다.
“···미안해요 형.”
“자식, 얼마나 긴장한 거야? 킥.”
소란스러울 대로 소란스러운 카펫 위를 그대로 가로질렀다.
“긴장 안 해도 돼 인마.”
곁으로 따라오는 남유민의 소근거림이 아슬아슬하게 귓가에 닿았다.
“···오늘은 우리가 주인공이니까.”
그 말에 잠깐 멈칫했던 발걸음이.
다시금 가로질렀다.
주인공으로서 걷는 이 카펫 위를.
‘주인공··· 이구나.’
주연과 조연.
아니, 그마저도 미치지 못하는 단역.
단역의 삶이었다.
반지하방에서 꿈을 키웠고 배우가 되고 싶었다.
그래, 꿈꿔왔다.
이 자리를.
이 카펫 위에서 모두에게 받을 관심을.
“풋.”
“뭐야, 왜 혼자 웃어?”
“아니 그냥···.”
어쩐지 메이는 목과 함께 말문이 막혀버린 그때였다.
이신우가 고개를 지그시 들어올린 건.
아니, 들어올릴 수밖에 없던 건.
“뭐야, 저건?”
“일기예보에서 비 예고가 있긴 했는데···.”
아직 크리스마스도 오지 않은 이른 시기일 텐데도.
“첫눈?”
사르르.
콧등에 사뿐히 내려앉은 눈은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다.
녹아내린 눈이 그대로 발밑을 적셨다.
눈 밑을 아주 옅게 적셨다.
점점 수습할 새 없이 벅차오르는 마음과 함께.
* * *
첫눈까지 맞이한 시상식은 어느 때보다도 훌륭한 분위기에서 개막을 거뒀다.
그 중에는 가수들의 축하공연 덕도 크게 작용했다.
올 한 해를 화려하게 강타해버린 역주행 걸그룹.
이제는 아예 역주행 타이틀을 떼고 해외 발매까지 미친 듯한 성적을 거두며 메이저로 올라선 스테이 미.
첫 등장부터 간간히 들린 박수소리가 시상식 분위기를 한 번 더 돋우길.
무대 위에 오른 도유정은 눈을 빙글빙글 돌렸다.
다름 아닌 한 얼굴을 찾기 위해서.
‘···저기 있다.’
천만영화 무법도시.
올해 영화제의 주인공답게 그 테이블을 찾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다만 어쩐지 낯빛이 이상했지만.
‘많이 긴장했나?’
단단하게 굳은 얼굴.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 듯 했지만 어딘가 넋이 나가보이는 이신우였다.
은근히 눈이 마주치길 바랐던 도유정으로서는 실망스러운 노릇.
그럼에도 애드립까지 넣어 깔끔하게 마무리한 무대 아래로 내려온 도유정에겐 도리어 걱정이 맴돌았다.
난생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렇다고 이신우와 특별한 일이 있었거나 오랫동안 그를 봐온 건 아니지만.
“이상하지 않았어?”
“맞아, 이상해.”
리더 주희에게 슬며시 물어본 도유정은 꿀꺽 침을 삼켰다.
물론 주희 반응은 전혀 달랐지만.
“보통 배우분들은 리액션이 딱딱하다고 하잖아? 근데 너무 잘해주시더라 다들! 애드립 준비하길 잘했다 진짜.”
“아 응, 수고했어.”
주희의 아이디어로 가사에 변주를 주어 시상식에 참여한 배우들의 명대사를 하나씩 읊은 게 도움이 컸다.
다만 도유정의 관심이 쏠린 건 거기가 아니었지만.
‘···이게 뭐라고 이렇게 걱정하는 거래 나도.’
생각해보면 신출내기 배우가 이런 큰 자리에 와 긴장하는 건 당연한 걸 텐데.
특히 눈에 띄는 행보로 후보에 들 지도 모르는 이신우로서는 더더욱.
괜히 머리를 털어낸 도유정은 가만히 시상식을 지켜봤다.
축하무대가 끝난 뒤 본격적으로 막이 오르는 시상식을.
편집상.
미술상.
조금은 형식적인 부문들부터 먼저 시상을 시작하며 진행되어가던 가운데였다.
“그럼 다음은 올해의 신인남우상 부문입니다. 시상을 도와줄 MC로는···.”
신인감독상이 막 주어진 뒤 순서가 돌아온 즈음.
네 사람의 후보가 오르길 현장의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올라갔다.
“후보 4번! 무법도시의 이신우 배우입니다.”
드디어.
독보적인 악역으로서 그 영화의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준 한 배우의 이름이 올라왔으니까.
“예, 정말 소름끼치는 악역을 보여줬죠? 조선족이라는 쉽지 않은 설정에도 악랄한 면모를 강하게 보여주면서···.”
그에 대한 해설이 나왔고 잠시 후 이어진 결과는 마침내 알렸다.
두구두구.
두드리는 북소리가 맥없게도.
“올해 신인남우상의 영광스러운 주인공은······.”
이신우.
축포가 터져나오고 카메라는 완벽하게 굳은 얼굴을 비추었다.
옆에선 절친하기로 유명한 남유민이 신이 나 마구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덕분에 멋쩍은 미소를 아주 잠깐이나마 흘린 이신우가 천천히 올라섰다.
“네 관객들에게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죠. 참 신인답지 않게도······.”
그 사이를 채우는 MC들의 말이 막 끝날 즈음이었다.
고요해진 시상식장.
여의도 홀을 가득 채운 정적만이 무대 위에 선 한 사람만을 바라봤다.
그 한 사람의 수상 소감만을 기다리면서.
“···.”
굳어있던 표정이 산산이 부수어진건 그때였다.
담담하게 해보려던 첫 마디부터 무너져내리며.
“감사, 합···.”
울컥 치밀어오르는 한 마디였다.
괜스레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마저 뒤흔들어버리고 마는.
“감사합니다···.”
그 첫 마디와 함께 머금고 있던 눈물이 왈칵 틀어졌다.
주르륵.
뺨을 타고 내리는 한 줄기로부터.
고요에 잠긴 시상식은 고스란히 잡아먹혔다.
당당히 레드카펫을 걸어올라온 천만배우.
『······연기가 하고 싶었다』
아니, 한 단역배우가 일생토록 머금고 있었던 간절함에.
『오직 딱 그거면 됐는데』
그 절실함에 시상식 자리에 모인 모두가 노출되어갔다.
TV 너머로 바라보는 모든 이들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