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the fact that a new actor i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140)
140막, 청룡영화제 (4)
140막, 청룡영화제 (4)
전국에 있는 모든 국민들에게 생중계되고 있는 시상식장.
“···.”
“···.”
고요해진 홀 내부는 도리어 청각을 예민하게 자극했다.
극도로 예민해진 귀로 온갖 소음이 들려오도록.
누군가의 가느다란 숨소리와 헛기침.
부스럭 뒤척이는 소리까지.
평소라면 알아채지 못할 만한 작은 소음이 모두의 귓가에 생생하게 들리길.
그 무거운 침묵 한 가운데에 선 배우가 입을 열었다.
“오래 전부터···.”
뺨을 타고 흘렀던 물길이 아직 선명히 카메라에 비추어졌다.
커다란 스크린은 그 모습을 온전히 담았다.
그 앞에 선 이신우는 멈췄던 말을 다시 이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배우를 꿈꿨습니다.”
무언가 울컥 치밀어올라왔다.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고 싶었는데.
어쩐지 첫 마디부터 흔들리는 목소리에 등불과 같았던 나날들이 스쳤다.
새록새록 피어났다.
겨울바람보다도 시리고 괴로웠던 기억들이.
그 첫 단추를 꿴 건 별 것 아닌 대화였다.
『전부 가짜라구요?』
『응 그러니까 우리 신우가 너무 슬퍼할 필요도, 안타까워할 필요도 없는 거야』
전액 감면으로 다닐 수 있는 공립 유치원의 선생님이 보여준 단편 드라마.
그 흔한 TV 하나도 보지 못하고 지낸 내게 그건 신세계와도 같았다.
정서교육을 위한 영상에 너무 과하게 몰입한 나를 달래며 선생님은 친절히 설명했지만.
『저기 우는 아줌마도 친구도 다 배우이니까, 알았지?』
『배우······』
『그래 배우, 아! 배우가 뭔지 잘 모르나 혹시?』
아무 말 없이 빤히 바라보는 내게 선생님은 밝게 웃으며 덧붙였다.
『배우란 건 말이야, 음··· 저렇게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을 부르는 거야』
『가짜로 나오는 사람들이요?』
『음······』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던 동심에게 말을 고르면서.
『······가짜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런 건 어떨까?』
『어떤 거요?』
『오히려 누구든지 될 수 있는 거지 그게 부자일 수도 있고 엄청 훌륭한 운동선수일 수도 있고』
아마 그때부터였다.
『으음 그래, 미안해 신우야! 선생님이 잘못 알려줬네』
『잘못 알려줬어요?』
『응 그러니까 다시 알려줄게!』
배우.
생소했던 두 글자를 마음속에 새기게 된 건.
『배우는 말야, 누구든지 될 수 있는 사람을 말하는 거야!』
『누구든지···』
『그래 누구든지, 저 안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될 수 있는 게 바로 배우인 거야』
생글생글 웃으며 건넨 그 말이 어린 마음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그 자유로움이 너무나도 탐났다.
“손에 집히는 대로 대본이란 대본은 모두 읽었습니다. 이미 본 거라도 상관 안하고 다시 읽었어요.”
내가 아닌 그 누구도 될 수 있다는 게.
“최소한 대본을 읽을 때만큼은··· 그걸 연기할 때만큼은 제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될 수 있었으니까.”
힘겨운 현실에서 잠깐이나마 고개를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시간.
암담한 미래 대신 솜사탕처럼 달콤한 꽃길을 그려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으니까.
그러다보니 즐거워졌다.
대본을 읽는 것 자체가.
그걸 연기하는 것 자체가.
『···오늘은 대사가 여섯 줄이나 되네』
그렇게 선망하게 되었다.
배우를.
“···그런 배우가.”
장황하게 이어나가던 말문이 멈춘 건 그 즈음이었다.
울컥.
멈춰선 이신우의 뇌리로 단역배우로서의 삶이 지나쳐갔다.
잔잔하던 마음이 복받쳐갔다.
아니, 요동치기 시작했다.
고요하던 해변을 덮치는 파도처럼.
간신히 막아서던 댐을 돌파해버린 거센 물길처럼.
“그런 배우가, 될 수 있게 도와주셔서··· 이런 자리에 오르게 해주셔서···.”
톡 건들면 터질 듯이 차오른 눈가로 바라봤다.
아니, 이미 넘실거리는 기쁨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말, 모두···. 감사드립니다······.”
장황하기만 할 뿐 정작 함께 했던 스태프들의 이름이나 배우들의 이름도 언급하지 못한.
알맹이는 쏙 빠진 수상소감.
그러나 지켜보는 이들의 가슴 언저리가 아려오는 수상소감이 한동안 고요한 정적을 저 혼자 채우길.
기쁨에 젖어 오열하는 배우를 현장 저 멀리 유리 화면 너머로 지켜보는 노신사.
– 감독님, 스태프분들, 동료 배우들과 응원해주신 팬분들까지 모두······
제 책상에 앉은 이철호 회장은 깍지 낀 두 손으로 묵묵히 얼굴을 가렸다.
차마 볼 수 없다는 듯.
마주할 수 없다는 듯.
그저 흐느끼는 막내아들을 따라 숨을 죽였다.
툭.
그 밑으로 떨어트린 무언가는 서류를 적셨지만.
* * *
첫 눈 오는 날의 시상식은 방대한 양의 기사거리를 만들어냈다.
『청룡영화제 최우수작품상 • 최다관객상 석권해버린 무법도시······』
『‘무법도시’ 남우주연상과 신인남우상 공동 수상?』
작품상은 물론 주연을 맡은 두 배우마저 나란히 수상을 받아버렸으니까.
선배인 남유민은 남우주연상.
후배인 이신우는 신인남우상으로.
사이좋게 각 부문을 평정해버린 둘 모두에게 쏟아진 관심은 무지막지했다.
당장 포털을 뒤져보아도 둘을 비롯한 무법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각 항목을 채울 정도로.
개중에는 물론 오열을 보여준 신인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긴 했다.
그 가운데 유독 공격적인 반응이라고 없는 건 아니었으나.
「금수저도 그냥 금수저가 아니라 뭔 다이아몬드 수저로 태어나놓고 시상식에서 눈물팔이냐? ㅉㅉ」
밑으로는 바로 반박 댓글이 달려있었다.
└ 모르는 소리지; 저번에 과거 터졌을때도 집안에서 완전 외톨이랬는데.. 이철호 회장도 공개적으로 밝힌 부분 아님?
└ ㅋㅋㅋㅋㅋㅋ진짜 그렇게 잘나고 행복한 인생이었으면 일부러 교통사고내고 자살하려고 하겠냐
과거 음주운전 논란이 불거졌던 만큼 이철호 회장이 밝혔던 사고 당시의 이야기는 좋은 증거가 되어줬다.
당시의 이신우가 그만큼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든 생활을 이어나갔을 거라는 증거가.
덕분에 상단을 차지한 다른 댓글들은 긍정적인 반응만이 즐비했다.
「진짜 얼마나 심적으로 고통스러웠으면 저기서 저렇게 오열을 하냐… 본인도 참으려고 하는게 눈에 선히 보이는데 주체를 못하더라」
「7년전에 사업 망하고 길바닥 앉았을때 내가딱 저랬지. 간절해본 적 없는 사람은 모른다. 현실이 지옥같으니 외면하고싶고 자살까지 생각하는거지. 나보다 어린친구지만 이겨내고 저위치까지 간게 존경스럽다.」
「티비 보면서 나도 울었음ㅠㅠㅠㅠ앞으론 꽃길만 걸어라 우리 신우ㅠㅠㅠ」
└ 누구 맘대로 우리 신우에요 내껀데
└ 아닌데요? 제껀데요?
└ 갑분 소유권 쟁탈전ㅋㅋㅋㅋㅋ내 감동 물어내ㅜㅜㅜ
└ 여러분.. 그 혹시.. 이신우씨랑은 합의가 된건가요..?
공격할 놈은 공격하고 드립치고 놀 때는 또 죽이 척척 맞게 노는 너튜브판.
그 대신 뉴스 기사 판에는 또 다른 이슈가 돌기도 했다.
다름 아닌 이탈리아의 명품 정장 브랜드를 미끼로.
『레드 카펫 위에서 이신우가 선보인 정장의 충격적인 정체··· 가격대만 2800만원?』
『역시 재벌 2세? 이탈리아제 명품 정장 브리오니 입고 청룡영화제 찾은 이신우』
이철호 회장의 의도와 달리 ‘소소한’ 영역대를 벗어난 정장이 또 하나의 이슈가 되면서 자리를 채울 무렵이었다.
“아 진짜요? 크리스마스에?”
슬슬 다가오는 진짜 연말에 남유민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왜? 데이트한다니까 이제 막 샘나려고 해?”
“에이 설마요, 잘되신 건데.”
“···신우야 난 너가 질투해줬으면 좋겠다 그냥.”
이전에 썸 타는 여배우가 생겼다던 남유민.
그 연장선으로 데이트 약속까지 따냈다며 자랑한 그는 혀를 찼다.
반응이 재미없어서 놀리는 맛이 없다나 뭐라나.
그리고 그게 농담이 아니라는 듯 진짜 할 말 못 할 말을 가리지 않고 덧붙였다.
“아, 너는 더 잘나가고 예쁜 썸녀 있다 이거지~? 맞네 그러고 보니······.”
“뭐, 뭔 소리에요!”
아니, 진짜 또야?
지겹지도 않나 이 사람은.
허나 내 반응에도 아랑곳 않은 남유민은 그대로 밀어붙였다.
어쩌면 뻔한 농간으로 날 넘겨보려는 수작 같은데.
“뭘 뭔 소리야? 시상식에서도 찐하게 아이컨택하더니만.”
“···이 사람이 미쳤나 진짜.”
“뭐? 이 사람?! 애가 정곡을 찔리니까 아주···.”
나직이 중얼거린 내 말에 보다 격하게 반응하는 남유민과 잠시 투닥거리길.
“신우씨는 그럼 특별히 크리스마스 약속 없는 거예요?”
“네? 아, 그렇죠 아무래도.”
시상식을 다녀온 뒤로 인터뷰가 쇄도해왔다.
그 중에 적당히 유성태가 추려준 소수만 받아내고 나머지 시간은 그대로 휴식에 보태고 있었다.
그 휴식은 아마도 크리스마스까지도 이어질 거 같고.
불쑥 전대수와의 대화에 남유민이 끼어든 건 그때였다.
“이번엔 너가 신청해보지 왜?”
“뭘요?”
“뭐긴, 데이트 신청말야.”
“···.”
누구한테인지는 물을 필요도 없겠지.
그 놈의 놀림에 신물이 나려던 참이었다.
“야, 이신우.”
목소리를 잔뜩 내려깐 남유민이 정색하고 나를 바라본 건.
“너 진짜 아무런 감정도 없어?”
“···.”
“내가 둔감하긴 해도 도유정이었나? 걔 쪽에선 적어도 너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은데.”
어느 걸그룹이 위험하게 바깥에서 이성 친구랑 저녁식사 신청을 하냐.
가뜩이나 조심해야 할 텐데 누가 먼저 나서서 식당까지 알아보고, 계획까지 짜오냐.
“···너무 비약하는 거 아니에요 형?”
“비약은, 사람 마음 다 알면서 장난치는 거. 그거만큼 질 나쁜 게 없다 신우 너?”
첫 만남부터 평범치 않긴 했다.
망하다 못해 자포자기헤버린 걸그룹.
그걸 온 힘 다해 도와준 신인배우.
눈물을 보이며 고마움을 표현한 것도 여러 번이었고.
사적인 자리에서나.
같이 나온 방송에서나.
“확실하게 말해, 넌 마음 있어? 없어?”
“···.”
그 모든 기억들이 불현듯 무겁게 스쳐지나간 직후였다.
“······풉.”
“왜, 웃어요?”
“형! 얘 진지하게 고민하는 거 봤지?! 거 봐! 내가 괜히 그런 게 아니라니까!”
제 매니저의 어깨를 쿡쿡 찌르며 자지러지기 시작한 남유민.
“역시! 우리 신우, 입은 쭉 아니라곤 했지만 속마음은 남자가 맞······ 으악!”
맞아야지, 그래.
형이고 뭐고.
“아, 악! 미안! 형, 형 나 죽어 구해줘!”
“···신우씨.”
그대로 제 배우를 덮친 나를 지켜보는 전대수와 시선을 견주었다.
덕분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전대수가 체념하듯 중얼거렸다.
“그냥 이 기왕에 반 죽여놔주세요 쟤 좀.”
“매니저분께 허락도 받았네요 형.”
이어서 사색이 되어버린 남유민이 나를 꾸짖었다.
“어, 어허! 너 내가 그렇게 키웠어?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가만히 계세요 형. 몸부림치시면 더 다쳐요.”
그런다고 이미 제압해버린 내 손이 멈출 턱은 없었지만.
* * *
축하공연도 성공적으로 결실을 거두었다.
실수없이 깔끔한 무대에 나쁘지 않은 개사 애드리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만큼 스테이 미 숙소는 태평한 연말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있으면 진짜 크리스마스네요 언니?”
“꺄, 눈 왔으면 좋겠다 얼른!”
막내 나은과 한주희가 속 편히 창밖을 바라봤다.
그 옆에는 모처럼 혜정도 일어서서 나섰다.
“으그극··· 그럼 뭐해, 이 나이대 누구들처럼 데이트도 못하고 여기 박혀있는 신센데.”
아니, 거들기는 커녕 단호한 목소리로 초를 치는 혜정.
덕분에 눈을 확 치켜뜬 한주희가 리더로서 위엄을 지니고 나섰다.
“씁, 지금 그게 아이돌이 할 말이야? 우리 팬들과 얼마나 오붓한 시간을 보낼까 고민해도 모자랄 판에!”
“······쟤는 다른 게 모자란 거 같은데.”
그리고 턱 끝으로 저편을 가리키는 혜정 덕에 그 위엄은 금세 자취를 감출 수 있었다.
“응? 아.”
“······뭐야, 뭘 봐. 나 왜?”
거기엔 어쩐지 기운이 사나워보이는 도유정이 하얀 피부를 소파에 깔아뭉개고 있었다.
동갑내기 혜정의 날카로운 직감이 그녀를 향한 건 바로 그 다음이었다.
“솔직히 말해봐, 유정이 너 또 저녁 신청하려고 고민 중이지?”
“아, 아니거든?”
얼른 휴대폰 화면을 잠근 도유정이 원래 보고 있던 건 카톡창.
[이신우 배우님]ㅎㅎㅎ.. 축하 고마워요
나도 무대 잘봤어요
(이모티콘)
당시엔 완전 굳어있느라 연락할 틈이 안 보였지만 시상식 이후 건넨 문자에 이신우는 반갑게 인사해보였다.
비록 우는 거 완전 감동적이었다는 말에는 별 다른 반응을 보내지 않았지만.
“헐, 맞네! 우리 유정이는 또 봄날이 있지?”
“봄날 같은 소리 하네··· 또 손날에 찍혀볼래 한 번?”
“내가 이번에도 똑같은 수에 호락호락 당할 줄 알고?”
잠시 후 간지럼에 백기를 든 한주희가 숙소 바닥을 구르고 도유정에게 정수리를 찍힌 건 평소와 다를 거 없는 일이었다.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지.
“···만약 또, 먹자고 하면 이상할까?”
아닌 척하면서 괜히 혜정에게 물어본 도유정은 우물쭈물하는 얼굴로 시선을 회피했다.
“이상할 건 없는데 귀찮을 수도 있지.”
“귀, 귀찮아?”
“모처럼 영화도 끝냈고 시상식도 끝나고 이제 딱 쉬는 기간 아니야?”
“그렇지만 저번에······.”
거기서 말문이 멈춘 도유정은 홀로 되뇌었다.
레스토랑도 막 사주고 다음에 또 보자고도 그랬었는데.
“맞다, 이미 약속 있을 수도 있겠다. 배우님 주변에 사람도 많잖아? 유채린이었나 한소연이었나.”
“···.”
거기까지 말하자 파랗게 질린 도유정의 안색이 아주 차갑게 물들었다.
괜히 귓가로 다가온 한주희가 혜정에게 귓속말을 보낼 만큼.
“야 혜정이 너 갑자기 왜 그래?”
“···언니,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저 기지배 놀려보겠어?”
수긍하고 싶지 않지만 방금 전 바닥을 뒹굴었던 한주희로서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길.
카토!
누군가의 알람이 띵 울리자 굳어있던 정적이 풀렸다.
“뭐야, 유정이 너꺼 아니야?”
“···.”
질려있던 도유정의 얼굴이 풀린 것도 그 즈음이었다.
파스텔로 데셍한 것처럼 얇은 몸선이 움찔거리며.
열어보았다.
카톡 창을.
[이신우 배우님]별 건 아닌데..
혹시 크리스마스에 약속있어요?
활짝.
피어난 미소가 숙소 가득 번졌다.
왠지 모를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