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the fact that a new actor i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142)
142막, 첫 번째 캐롤 (2)
142막, 첫 번째 캐롤 (2)
12월 25일의 전야.
이브 날이든 당일 날이든 별 다를 거 없이.
내게 있어 크리스마스란 언제나처럼 흔한 연휴 중에 하나였다.
누구처럼 연인과의 특별한 날을 보낼 여유도.
그렇다고 따뜻한 하루를 함께 보낼 가족도 내겐 없었으니까.
그래서 구석진 방 안에서 혼자 캐롤을 들을 때면 늘 덧없는 생각에 빠지곤 했다.
애틋하면서도 안타까운 어느 동화를 떠올리면서.
「추위를 이겨내지 못한 소녀는 성냥 하나를 꺼내 불을 붙였어요.」
타오르는 작은 성냥불에 의존해 몸을 녹이던 소녀는 별안간 기적을 보게 된다.
따듯한 난로와 꿈만 꾸던 만찬.
성냥을 새로 붙일 때마다 나타나는 환상은 소녀를 점점 부추겼다.
그 마지막은 생전에 소녀를 누구보다 아껴주었던 할머니였다.
「“할머니, 제발 가지마세요! 저를 두고 가지마세요!”」
행여나 할머니의 모습마저 사라질까 두려웠던 소녀는 남은 성냥에 몽땅 붙을 붙여버리고.
「그리웠던 할머니의 품에 다시 안긴 소녀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제 소녀는 더 이상 춥지도 배고프지도 않았어요.」
성냥팔이 소녀에게 자신을 이입해보던 어린 소년의 몰입이 끝나는 건 언제나 그 대목에서였다.
그리웠던 품에 다시 안긴 소녀.
그 품이 얼마나 따뜻할지도 알 수 없는 소년.
둘 중 누구의 크리스마스가 더 나은가에 대한 고민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숙제였다.
최소한 그게 부질없는 고민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기 전까지는.
“···.”
넓은 저택 안을 내딛던 걸음이 멈추어선 건 그 즈음이었다.
식사까지 한 시간.
남은 시간 동안 내가 머무르려던 곳은 비어있는 내 방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 몸의 원래 주인이 머물렀던 방.
말끔히 청소되었지만 온기 없이 차디찬 공간을 마주하다 나도 모르게 픽 미소가 지어졌다.
“···너나 나나.”
숙제 투성이었겠다고.
남보다 못한 가족들 속에서 하루하루 죽어가던 너나.
그 가족조차 일찌감치 잃어버렸던 나나.
해결될 일 없는 숙제를 아주 열심히 풀고 있었겠다고.
“난 거기서. 넌 여기서.”
그리 중얼거리며 침대에 주저앉아 불 꺼진 방 안을 둘러보았다.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건 없었다.
오래 비어있던 방답게 살짝 퀘퀘한 냄새가 나긴 했지만 그마저도 어딘가 친숙했으니까.
“흐음.”
덕분에 그대로 등을 붙여버리고 눈을 감았다.
대충 머릿속을 정리하는 동시에 긴장을 누그러뜨리면서.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야, 이신우.”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가 문 밖으로 들이닥쳤다.
‘여자?’
이철호 회장 소유의 이 저택에서 날 저렇게 부를 수 있는 젊은 목소리의 여성.
“안에 있지? 들어간다?”
되뇌어보아도 딱 한 사람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당연히 그 예상도 들어맞았고.
“···누나?”
“······.”
난생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묘하게 앞서 마주쳤던 이신형과 이현수를 닮은.
물론 투박한 두 사람의 인상과는 달리 좀 더 유순한 인상의 여인은 작게 중얼거렸다.
“···신형오빠 말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나보네.”
형이라는 소리에 강하게 거부감을 드러내던 둘과는 또 다른 반응.
그 내용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딱히 적개심이 느껴지진 않았다.
덕분에 앞선 둘에게보단 좀 더 일상적인 투로 먼저 물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누난?”
“···.”
그러자 연한 화장기로 물든 이연희의 눈동자가 움찔거렸다.
제 몸집을 애매하게 키우면서.
“지금, 안부 물어보는 거야?”
그럼 이게 안부인사지.
작별인사는 아니지 않나?
당연한 소리를 되묻는 그녀를 그냥 빤히 바라보자 곧 이연희가 새 말을 꺼냈다.
“나야··· 똑같이 카드나 키우고 있지.”
“카드?”
“왜? 다른 계열사라도 더 받았을까봐?”
그제야 그게 그룹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이연희는 카드사 쪽이라고 어디서 봤었지.
의도치 않게 튀어버린 대화에 다시 친절함을 포장한 건 그 다음이었다.
“누나 능력이면 받아도 이상할 거 없으니까.”
“···.”
다시 찾아온 적막.
아예 분위기 자체부터가 달라져버린 막내동생을 바라보는 이연희의 눈동자에 의구심이 담겼을 즈음.
“넌 어때? 연기하는 거.”
“어, 나?”
자기가 질문 받을 줄은 몰랐는지 당황하는 동생에게 이연희는 덤덤한 얼굴로 덧붙였다.
“얘기는 나도 들었어, 상도 받았다며? 그냥 촬영이나 스케줄 소화 같은 거 어땠냐고.”
“음.”
원래 덧붙이려던 것보다도 좀 더 상세해진 물음이었다.
관계가 영 좋지 않은 배다른 남동생과 나누기에는 불편한 질문.
“어땠냐면···.”
때문에 거기에 반응하는 이신우를 보며.
“풋.”
“···?”
이연희는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다들 진짜 연기 잘하더라. 내가 모자라다고 느낄 만큼?”
“어, 어.”
“첫 촬영 갔을 때는 진짜 깜짝 놀랐다니까. 조연으로 섭외된 배우분이 있었는데 그 분이 대사를 뱉자마자 그냥······.”
낯선 표정이었다.
아니,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최소한 막내동생에게서만큼은 살면서 발견해본 적 없는 낯.
“···그래서 감독님이 자기가 직접 해보겠다고 나서서 보여주시는데, 다들 웃겨서 완전···.”
별 것 아닌 촬영장의 에피소드를 떠벌리는 이신우는.
막내동생은······.
꼭 기뻐보였다.
아니, 화창한 기운이 넘실거리는 게 얼굴 가득 느껴졌다.
“으음, 아무튼 그랬었어. 너무 내 얘기만 했네.”
“어, 응. 아니야.”
물론 가만히 듣고 있기만 하자 막내동생은 멋쩍은 듯 먼저 말을 돌렸다.
“누난 어떻게 잘 돼가? 요즘 통 소식을 안 찾아봐서 내가.”
행여라도 사정이 안 좋은데 부담스러운 질문일까 첨언한 말까지.
모든 게 당황스럽기만 한 이연희였지만 차마 놀란 속을 내비치진 않았다.
“그냥, 매출 수익은 전 년도 대비 11프로 정도 늘었고 영업 규모도 커지고 있긴 한데··· 요즘 경기가 계속 어렵잖아?”
지루한 회사 이야기에 방금 전 밝은 티는 죽었지만 나름대로 경청하는 이신우.
사실 자세한 내부사정을 모르기에 알아듣기 어려운 이야기도 섞여있었지만 굳이 티를 내진 않았다.
그런 이신우를 보며 이연희는 가는 손가락을 움찔거리며 내려놓았다.
‘······진짜, 아무런 마음도 없었구나 회사에는.’
싫은 것보단 불편한 동생이었다.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게, 아버지가 두 번째로 사랑한 여인의 밑에서 태어났다는 게 불편했을 뿐이지.
오빠나 친동생처럼 그걸 극도로 불쾌해하진 않았다.
피가 반만 섞여있다는 흔치 않은 상황이 당황스러웠을 뿐.
그러던 어느 날 그 반쪽 짜리 동생과 큰 다툼이 있던 날이었다.
원래도 오빠와 친동생 사이에서 서먹하던 막내와 등을 돌리게 된 건.
『···맞아, 형들이랑 누나도 결국 ···가 중요한 거겠지』
자세히 듣지 못했지만 그 뒷말만큼은 또렷이 알 수 있었다.
『······아빠처럼···』
그게 막내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그 뒤론 더 이상 서먹한 관계마저도 지워졌으니까.
아예 처음부터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던 것처럼.
악에 받친 눈동자로 형제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바라보던 이신우의 눈길은 차갑디 차가웠다.
회사를 두고 오빠와 친동생 사이에서 권모술수가 난무했다.
그 피해는 온전히 막내에게로 끼쳐졌다.
이연희 자신이라고 그걸 막아주진 못했다. 아니, 막아주지 않았다.
오빠와 친동생의 말대로 정당화했다.
우리가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회사에 대한 저 녀석의 욕심이 우릴 덮칠 거라고.
“······미안.”
“어? 뭐라고?”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순간적으로 툭 튀어나와버린 말을 이연희는 다시 주워삼켰다.
“그냥.”
잘 정리되지 않는 머릿속을 간신히 정리해 말을 골랐다.
염치없는 사과보다도 차라리 나은 말.
“다음에 또 얘기나 나누자.”
이마저도 어쩐지 염치없게 느껴지는 이연희였다.
* * *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는 겨울의 따스함을 물씬 풍겨냈다.
12개월 중에서도 단 이틀.
웬만한 봄바람보다도 포근한 감각을 선사해주는 캐롤과 어우러지며.
은은히 귀를 자극하는 노랫소리 사이로 길게 늘어선 접빈용 식탁 위엔 만찬이 하나둘 나열됐다.
그 가운데 먼저 자리에 앉은 셋째 이현수.
불과 한 시간 전 있었던 문답을 떠올린 그는 홀로 중얼거렸다.
“···저 새끼가 뭘 잘못 처먹었나.”
미안하다고?
그것도 소속사 차원에서 해명을 준비 중이라고?
속이 빤히 보이는 블러핑이자 기만이었다.
형이나 자신이나 녀석과 그런 정다운 사이를 만든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
‘아버지는 왜 갑자기 넷을 한 번에 모으신 거야?’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이신우와의 악연이 아직도 선명한데.
갑자기 뒤늦은 화해라도 종용하시려는 건지.
그런 이현수의 예상은 아주 완벽하게 들어맞을 수 있었다.
맏형과 누나.
그리고 그 놈까지 자리에 모인 그 순간.
“크리스마스 날 이렇게 다같이 모인 건 처음이구나.”
가장 무거운 상석에 앉은 아버지, 이철호 회장은 차분히 준비한 말을 풀기 시작했다.
“오늘 이렇게 너희를 불러모은 건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 마지막은 예상했던 폭탄발언 그대로였지만.
“회사와 관련해 신우에게, 그리고 너희들에게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
“···.”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는 와중에 덤덤한 건 이철호 회장과 그 옆에 선 비서실장뿐이었다.
“한실장.”
“여기 있습니다 회장님.”
품에 무언가를 품고 있던 한건호가 내민 서류.
그 안에는 절대 작지 않은 숫자들이 빼곡히 쓰여있었다.
진짜 폭탄발언은 그때부터였다.
“이전에 회수했던 신우가 원래 지니고 있었던 그룹에 대한 지분 5퍼센트.”
서류를 만찬이 즐비한 식탁 위로 촥 집어던진 이철호 회장은 선언했다.
“거기에 5퍼센트를 더한 총 10퍼센트의 지분. 이걸 신우에게 다시 돌려주도록 하겠다.”
“···!”
“···아버지!”
금강그룹의 수장으로서.
그리고 이 저택의 가장으로서.
“나의 아들로서. 이 집안의 막내로서.”
근엄하게 선포했다.
“그리고 너희 신형, 연희, 현수 셋의 동생으로서.”
처음부터 틀렸다고.
처음부터 적이 아닌 동생으로서 가르쳤어야 했다고.
설령 피가 섞이지 않았다고 해도.
“여기 있는 신우는 우리 가족의 일원이니까.”
그러니 이 지분을 받기에 충분히 합당하다고.
말뚝을 박은 이철호 회장은 남은 세 자식을 차례대로 바라보았다.
“이에 대해 할 말 있느냐?”
비록 겉테두리에 불과할 지라도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일 터였다.
이미 갈라져버린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선 긴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10퍼센트의 결코 작지 않은 지분.
이 지분이라면 막내와 세 형제누이를 연결해주는 끈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첫 걸음은 그 작은 발디딤으로도 충분할 터라고.
“이의가 없다면······.”
여기며 상황을 정리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속으론 거부감을 느끼더라도 그룹의 수장인 자신에게 반기를 들 자식은 셋 중에 없으리라 여겼던 그 순간.
“이의 있습니다.”
문득 손을 든 채로 발언한 건 이신우.
다름 아닌 지분을 수령하는 당사자였다.
“신우 네가 무슨 불만이···.”
“음.”
예기치 못한 행동에 눈꺼풀을 꿈틀거린 건 이철호 회장뿐만이 아니었다.
맏형 이신형을 제외한 이연희와 이현수도.
모든 시선이 이루 모은 이신우는 묵묵히 스테이크를 썰었다.
‘웬만한 바보라면 후회할 짓이겠지?’
한 입 베어문 고기 너머로 새어나오는 육즙.
하얀 눈처럼 잘 익은 쌀밥이 그리워지는 기름기였다.
그제야 고개를 다시 든 나는 식탁을 둘러보았다.
빤히 향하는 시선들에서 각양각색의 뜻이 씹혔다.
셋째 이현수는 저 놈이 과연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하는 눈길로.
아까 대화를 나누었던 이연희는 아까보다도 더 놀란 눈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즈음.
불현듯 잊고 있던 동화의 구절이 떠올랐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성냥팔이 소녀를 외면했어요. 성냥팔이 소녀는 혼자였어요.」
길거리에 홀로 버려진 소녀는 사나운 바람을 피하기 위해 골목길로 향했다.
비틀거리는 걸음 앞으로는 어느 가정집이 보였다.
「따뜻한 난로와 스프, 거기다 잘 익은 스테이크까지 차려진 식탁 앞에는 소녀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앉아있었어요」
여전히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소녀는 추위에 떨며 지켜봤다.
「아이는 밝게 웃으며 말했어요」
「“아빠! 내일도 놀아줄 거예요?”」
「“그럼, 당연하지 우리 아들! 대신 맛있게 잘 먹어야 한다?”」
그때 소녀가 바라본 건 아이의 입에 들어가는 스테이크 조각이었을까.
아니면 스테이크를 넣어주는 아이의 아버지였을까.
그도 아니라면 그런 부녀를 웃으며 지켜보는 아이의 어머니였을까.
‘······확실한 건 소녀만 알 수 있겠지만.’
물컹.
씹히는 고깃덩어리가 왠지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할머니, 제발 가지마세요! 저를 두고 가지마세요!”」
아마 소녀가 바란 것도 내가 바라는 것과 별 반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그깟 스테이크도.
그깟 지분도 아니었을 거라고.
‘······그래.’
이 모든 게 이신우가 겪은 비극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고.
가장 필요한 건 그 따위 것이 아니라 따뜻한 품에 불과했을 텐데.
“저에게 주시는 10퍼센트의 지분.”
곱씹고 또 곱씹은 한 마디에 식탁 위가 다시금 무거워졌다.
이현수와 이연희는 물론 담담하던 이신형마저도 동요하는 게 느껴질 무렵.
내던졌다.
내게 아무 짝에도 필요없는 걸.
“그 중 1퍼센트를 제외한 나머지는 형누나에게 넘기겠습니다.”
고요했던 식탁 위로 떨어진 폭탄에 모두의 눈동자가 들썩였다.
여지껏 무표정을 잃지 않고 있던 맏형 이신형마저도.
흐트러진 말을 탄식처럼 흘리길.
“지금, 뭐라고···.”
“저는.”
하얀 쌀밥을 젓가락으로 집은 막내동생은 아무렇지 않게 피식이며 말을 끝마쳤다.
“이렇게 따뜻한 밥 한 끼, 같이 나눠먹는 거면 충분하니까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바보같은 소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