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the fact that a new actor i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143)
143막, 첫 번째 캐롤 (3)
143막, 첫 번째 캐롤 (3)
모든 건 한 여인이 나타나면서부터였다.
그 전에 어머니가 외도를 저지른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그로인해 집안을 떠나게 되었을 때도 삼 남매는 딱히 비감을 느끼지 못했다.
늘 회사일에 치여 살던 아버지와 제 일신 외에는 관심이 없던 무정한 어머니.
예정되어있던 비극일지도 몰랐고 변화가 생긴 건 오히려 그 날부터였다.
『신형, 연희, 현수야···』
어미 잃은 자식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이철호 회장의 노력.
그건 삼 남매로선 처음 느껴보는 온정이었다.
따뜻한 품이었다.
어쩌면 스스로부터 괴로웠을 아버지가 애써 의지할 곳을 찾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 온정은 불행히도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안 가 아버지는 새로 의지할 곳을 찾아버렸으니까.
『이제부터 여기 이 분이 너희 새 엄마가 되어주실 거란다』
『안녕 애들아?』
갈증이 생긴 건 그때부터였다.
새 엄마라는 여인을 향한 아버지의 관심을 지켜보면 지켜볼수록.
우리가 느꼈던 따뜻한 온정이 생각나면 생각날수록.
『미안해, 응? 아줌마가 신형이 마음에 들게 더 잘할게』
『···』
이유없는 앙금은 커져만 갔다.
바람난 어머니도, 무심해진 아버지도 과녁으로 삼지 못한 채.
그녀가 뭘 해주든.
무슨 말을 해주든.
표적을 잃은 마음은 뾰족하게 새 엄마를 겨냥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새 엄마가 죽었다.
『······여보···』
아버지는 무너져내렸다.
마음속에서 붙잡은 하얀 수의를 놓지 못했다.
남은 건 그 수의의 주인이 마지막까지 품고 있던 아이였다.
막내동생 이신우.
아직 첫걸음을 떼지도 못한 아이에게는 아무런 선택지도 주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쌓여온 모든 걸 감당해내는 것 밖에는.
『동생이지 않으냐? 형누나로서 너희가 양보해야지』
『···어차피 그 아줌마가 낳은, 진짜 동생도 아니잖아?』
『형? 형은 누가 지 형이라고···』
『신우야 너는 특별한 아이다. 특별하게 살아야한다』
네 엄마의 몫까지.
지긋지긋했던 꼬리표는 한 인생을 바꾸어버렸다.
숨 막히는 관계 속에 꽁꽁 매인 아이는 덜 자란 어른이 되었다.
과격한 성장통은 망나니라는 뒤틀린 결과를 낳았고.
거기에 이신형이라고 특별히 죄책감을 가지진 않았다.
합리화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도 선택지는 없었던 거니까.
그냥 서로 간에 운이 나빴던 거니까.
『야밤에 고속도로 질주한 G그룹 막내 사망? 음주운전 의혹 확인중······』
한 교통사고 소식이 뉴스란을 가득 채우기 전까진.
‘다시는······ 눈을 못 뜰 지도 모른다고?’
억누르고 억눌렀던 죄책감은 뒤늦게 망가진 표적을 바라보게 했다.
부서진 표적의 잔해가 밭 밑을 처량하게 덮었다.
『자살 시도한 G그룹 막내아들, 감춰져있던 재벌가 암투 수면 위로 드러나나』
연거푸 되물음이 나왔다.
‘왜, 왜······.’
그토록 악착같이 덤비던 놈이.
가시를 세우고 덤벼들던 녀석이.
왜 어째서.
뒤죽박죽이 된 머릿속을 정리하기엔 짧은 시간.
여태껏 겹겹이 묻고 또 묻어두었던 죄책감을 갈무리하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그 동생이 다시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 건.
‘아버지, 왜 말씀 안하신 겁니까?’
‘무얼 말이냐.’
‘신우 말입니다.’
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녀석이 다시 눈을 떴다고 한다.
심지어 이미 병원을 나선지 한참 되었다고 한다.
덜컥 무슨 짓을 저지를지 두려워 추적해본 동생의 족적은······.
다른 어디도 아닌 방송국으로 향해있었다.
대체 무슨 속셈인 건지.
무슨 꿍꿍이인지.
직접 파악해봐야 했고.
‘오랜만에 보는 형 얼굴이라 그런가, 어째 좀 반가워서.’
‘······뭐라고?’
다시 만난 막내는 변해있었다.
‘그 얘기하러 여기까지 온 거야?’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 거냐는 앞선 추궁을 녀석은 각서라도 써주냐며 대수롭게 않게 넘겼었다.
그리고 지금.
“저에게 주시는 10퍼센트의 지분. 그 중 1퍼센트를 제외한 나머지는 형누나에게 넘기겠습니다.”
무려 그룹의 지분 10퍼센트.
그걸 스테이크 조각 썰 듯 가볍게 내친 이신우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피식거리는 입가에 방금 묻은 약한 기름기가 번들거렸다.
넋이 나가버린 이신형은 멍하니 그걸 바라보다.
“너···.”
자기도 모르게 식탁 위로 중얼거릴 뻔했다.
무슨 꿍꿍이냐고.
대체 뭘 노리는 거냐고.
앵무새 같은 말이 뇌리를 수차례 맴돌았지만.
“무슨, 꿍꿍이가···.”
있을 리가.
그딴 게 있을 리가.
“···있다면 이리 행동할 리가.”
없다는 걸.
뒤늦게야 깨달은 이신형은 처음으로 제 막내동생을 바라봤다.
온전히.
어떤 선입견도.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눈길로.
쌓여왔던 응어리가 희석된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다.
* * *
오랜만의 식사는 숨 막히도록 빠르게 지나갔다.
‘그냥 반만 준다고 할 걸 그랬나?’
풋.
아니, 그랬으면 이렇게 후련하진 않았겠지.
내내 적대감어린 시선으로 나를 비추던 이신형과 이현수.
적어도 맏형인 이신형만큼은 색이 옅어져있었지만 불편한 건 마찬가지였다.
의심과 경계를 내려놓지 못하던 모습.
허나 식탁 위로 내던진 한 마디에 그 포커페이스는 무너져내렸다.
지금, 뭐라고···.
아주 작게 달싹거린 이신형의 입모양이 여전히 선하니까.
물론 어수선해진 식탁 위를 정리한 건 이철호 회장의 한 마디였다.
『진심이냐?』
묵묵히 스테이크를 씹는 나를 응시했던 이철호 회장.
“단 둘이 남았으니 내 딱 한 번만 다시 물어보마.”
넓다란 서재로 나를 따로 불러낸 걸 보면 그 이유가 몹시도 궁금한 모양이었지만.
식사를 마치고 막 배가 꺼지기도 전이었다.
“아까 한 말이 모두 진심이냐?”
“그렇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냐?”
진한 갈색으로 꾸며진 고풍스런 서재로 조용한 문답이 흘렀다.
“전 이제 회사 밖의 사람이니까요. 지분은 계속 회사를 이끌 형누나들에게 더 필요할 것 같아서.”
전체 지분의 10프로.
솔직히 일반인으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금액이겠지만······.
“그래서 양보하고 싶었습니다.”
오히려 그렇기에 더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만약 저걸 쥐게 된다면 경계와 의심이 짙어지면 짙어지지.
덜 해지진 않을 것 같아서.
다만 이대로 말을 끝내기엔 어째 심심한 듯해 의례적인 말을 끝으로 덧붙였다.
“언젠간 화해해야 할 테니까요.”
“···.”
마지막 어미가 끝났을 무렵 이철호 회장의 연로한 눈꺼풀이 움찔거렸다.
“화해구나.”
다음 순간.
그 입가에는 아주 옅은 미소가 피어오르는 걸 이신우로서는 발견하지 못했다.
‘···용서해주려는 게냐, 아버지에 이어 배다른 형제마저.’
정작 가장 힘들었을 녀석이.
가장 무거운 짐을 감당해내야 했던 녀석이.
“···따뜻한 밥 한 끼가 필요하다고 했지?”
“네?”
“가족들과 나눠먹는 따뜻한 한 끼.”
애써 거기에 눈물을 드러내지 않은 이철호 회장은 주름진 눈가를 화창하게 그어보였다.
“자주 먹자꾸나.”
“···네, 아버지.”
녀석들도 막내의 뜻을 서서히 깨달을 테니.
아직은 겨우 진의를 파악하기 시작한 데에 그치겠지만.
“아 참.”
한편.
이야기가 얼추 마무리되자 비서실장에게 들은 이야기가 이철호 회장의 머릿속을 스쳤다.
“호텔에서 만나기로 했다지 내일?”
“네, 네? 그게 무슨···.”
모처럼 눈에 띄게 당황한 이신우가 얼버무렸으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이미 한실장에게 다 들었다. 도유정이라는 아가씨랑 만나기로 했다면서.”
“······아버지께서 잡아주신 겁니까 호텔도?”
갑작스레 도와주겠다며 나선 한건호 실장.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어 덥석 수락했던 이신우로서도 뒤늦게 눈치를 채길.
“허허, 녀석! 다 큰 녀석이 데이트 좀 할 수도 있지. 그리 수줍어할 필요 없다.”
호방한 웃음을 터뜨린 이철호 회장은 막내의 어깨를 다독이며 능청스레 대화를 정리했다.
반대로 사색에 질린 이신우는 필사적으로 방어했지만.
“그, 아버지. 오해가 있으신 듯 한데 데이트가 아니라······.”
“됐다, 굳이 둘러대지 않아도 된다. 다 이해하니.”
“···그게 아니라요 아버지.”
“신우 네가 아깝기야 하지만 예쁜 아가씨더구나.”
아니, 글쎄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더 이상 주장해보려 해도 마주 앉은 이철호 회장으로선 이미 들을 생각이 없다는 걸 깨달은 이신우는 그냥 입을 닫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직접 호텔도 잡아주시고.”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기에 전한 감사인사에 이철호 회장은 느긋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잘 다녀오거라.”
막내와 보내는 첫 크리스마스의 이브 날이 여물고 있었다.
단란히.
다가오는 약속을 기다리면서.
* * *
[이신우 배우님]별 건 아닌데..
혹시 크리스마스에 약속있어요?
답장을 보낸 건 하루 뒤.
동창 친구들에게 실컷 자랑을 한 다음 날, 숙소 멤버들과 함께였다.
물론 사공이 과하게 많긴 했다.
“분위기 좋은데요 언니?”
“저쪽에서 선연락줬으니까 만나자는 건 너가 해보자!”
“···정작 연락하는 건 유정인데 왜 신은 그쪽들이 내?”
양쪽 어깨에 있는 대로 기댄 채 쳐다보는 한주희와 서나은.
자기는 아닌 척하면서 은근히 즐기고 있는 권혜정까지.
“어, 우리 축하파티했을 때 얘기네?”
“모처럼 유정이 우는 거도 보고 재밌긴 했지 그때~.”
오른쪽 어깨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애써 무시한 도유정은 적당히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ㅋㅋㅋ맞아요 재밌었는데」
그러다 마지막 말을 보낸 뒤 움츠려드는 손가락을 억지로 펴보냈다.
아주 자그마한 시간 차이를 두고.
「이번에도 시간있으면 올래요?」
「숙소로요?」
가장 말미에 있던 권혜정부터 멤버들이 격노한 건 바로 그 타이밍이었다.
“야, 야! 도유정 너 뭐해?!”
“언니 정신 나갔어요?!”
“바보 아냐! 숙소를 부르긴 왜 불러!”
“아, 아니. 언니가 계속 먼저 만나자 해보라며···.”
갑작스레 들끓는 열렬한 성원에 당황한 도유정으로선 드물게 움츠려들었고.
덕분에 드물게 기세를 잡아먹은 한주희가 도유정을 말로 찍어 눌렀다.
“아니, 그게 그렇게 숙소로 데려오라는 게 아니잖···! 누가 크리스마스 데이트를 숙소에서 다 같이 해?!”
“······하, 유정아 연애가 하기 싫어?”
유명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유행어를 들먹이는 혜정에.
막내인 나은까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언니를 안타깝게 바라보길.
망설이던 도유정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주 나지막이.
“···고 싶어.”
“뭐?”
뱉은 말에 순간 얼어붙어버린 공기.
깜짝 놀란 도유정이 허둥댄 건 그 다음 일이었다.
“아니, 그게. 연애가 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배우님이랑 그냥···.”
······자주, 보고 싶다고.
어느새 귀가 빨개진 도유정의 뺨마저 붉그스름하게 물들 무렵.
“언제까지 배우님이야, 그 호칭부터 틀려먹었어 너는.”
“그, 그럼 뭐라 해?”
한껏 기세가 등등하게 오른 한주희는 그런 유정을 향해 검지를 확 추켜세웠다.
모처럼 잡은 이 주도권을 톡톡히 이용해먹겠다는 일념을 숨기면서.
“오빠.”
“···.”
제멋대로 주절댄 한주희의 말에 다시 한 번 찾아온 정적.
아니, 거의 빙하기와 같은 분위기 속에 버럭 소리쳤다.
“도유정 너, 언제까지 딱딱하게 존댓말만 할 거야!”
“어, 어?”
새빨간 딸기처럼 익어버린 도유정도 정신을 못 차리고 휩쓸리는 찰나.
“이번 크리스마스를 계기로 말부터 트는 거야, 어때?”
때 아닌 특명을 내리는 한주희.
아니.
갑작스런 임무를 주입받은 도유정이 볼터칭없이 연분홍으로 물든 뺨을 움찔거리길.
꿀꺽.
한껏 넘긴 침샘으로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삼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