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arding In Hell RAW novel - Chapter (11)
지옥에서 독식-11화(11/346)
11화. 최상급 수정 이끼 (4)
유민은 핸드폰을 들어 올려 보여 주었다.
「130,700,000」
1억 3천. 비현실적인 숫자가 적혀 있었다.
유민이 호들갑 떨 때만 해도 오버한다고 생각했는데, 통장 잔고는 어마어마했다. 정확히는 현무의 통장이 아니라 유민의 통장이지만, 곧 현무의 통장으로 보내질 것이다.
“태성 클랜의 이지태 정도 아니면 수정이끼 몇 개 팔았다고 이만큼 버는 사람도 없을걸요. 자부심 가져도 좋아요. 오빠는 더 벌 수 있을 테니까.”
“……1억 3천이라.”
현무는 자신이 돈 액수를 세면서 70만 원은 생략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고작 몇만 원을 벌기 위해 시궁창을 뒤지던 게 어제 일 같은데.
단 3kg. 수정이끼 3kg을 팔아서 번 돈이었다. 현무가 채취꾼 일을 하며 평생 벌어들인 돈보다 요 며칠 사이에 벌어들인 액수가 훨씬 컸다.
그가 이때까지 저금했던 돈이라 봐야 3천만 원을 조금 넘는 정도였다. 단 한 번의 거래로 현무의 피땀 흘린 노력은 1/5이 되어 버렸다.
기분이 나쁘냐고? 아니다.
“……끝내주는군.”
현무는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뭐랄까, 허무함이나 언짢은 기분 같은 거 안 들어요? 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성과가 한탕에 부정당했다든가 하는 그런 거?”
“뭐래? 이것도 피땀 흘려 번 돈이야. 그리고 누가 돈을 싫어해?”
이 수정이끼를 들고 현실로 돌아오기까지 했던 고생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땀보다는 피를 더 많이 흘렸지만.
오히려 이때까지 척박하게 살아왔던 과정들이 지금을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문득 돈도 돈이지만 현무는 박휘소라고 밝혔던 노신사를 떠올렸다. 드러내진 않았지만 분명 강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도 강해 보였다.
옛날의 현무였다면 쳐다도 못 볼 그런 사람이 정중하게 허리 숙이고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인사했다.
유민은 어떨까. 그녀가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무에게는 그녀를 품을 만한 자신감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돈과 권력. 그리고 능력자가 됨으로써 갖게 된 강력한 힘.
현무는 길게 한숨을 토해 냈다. 그리고 결심했다. 떨리는 심장이 그의 긴장을 말해 주고 있었다.
오늘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마음을 다잡지 못했지만, 이 만남으로 현무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를 부추긴 것은 단 하나였다.
욕심.
이미 많이 가졌지만, 더 많은 것을, 더 큰 것을 움켜쥘 수 있다는 확신은 그에게 거대한 탐욕을 불어넣었다.
두려움은 여전히 있었다. 하지만 그의 욕망, 그의 야망, 그의 이상은 산불처럼, 지옥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지옥으로 간다.’
지옥은 그가 딛고 솟아오를 밑바닥이었다. 수면 밖으로, 아니 하늘 위로 솟구쳐 오를 발판이었다.
현무는 수십 년간 억눌려 있던 상승 욕구가 폭발하듯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단지 수면 밖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별을 움켜쥐기 위해.
지옥을, 오직 자신만의 훈련장으로 삼겠다고.
***
박휘소는 차를 몰고 길을 따라 운전했다. 눈에 띄는 고풍스러운 외제차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하지만 인적이 드문 산길에 들어서자 더 이상 쫓는 시선도 없었다.
한참 산길을 따라 올라가던 박휘소의 차는 중턱에서 멈춰 섰다. 서울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자리였다.
그곳에 이미 먼저 도착해 경치를 구경 중인 젊은 남자가 있었다.
박휘소의 차가 도착하자 남자는 자연스럽게 뒷좌석에 탔다. 젊은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잘됐습니까?”
“예. 시장에 풀렸던 분량도 전부 확보했습니다.”
박휘소가 내민 서류 가방 안쪽에는 유민이 카페에서 판 수정이끼 말고도 자잘하게 담겨 있는 다른 수정이끼들도 있었다.
전부 유민이 분산 판매했던 분량이었다. 그중 몇 개는 피에 물들어 있었다.
젊은 남자는 수정이끼 중 하나를 꺼내 들어 눈에 가까이 가져다 대며 들여다보았다. 이내 얕은 감탄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이런 게 시중에 마구 돌아다니는지 모르겠군요. 5성? 아니, 6성? 6성 던전은 보고된 적도 없는데, 가늠도 안 되는걸요. 게다가 이것들이 전부 원래는 한 덩어리였다니.”
잘게 부서뜨리긴 했지만 젊은 남자는 잘게 부서진 파편의 단면만 보고도 순식간에 그것이 한 덩어리였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것만으로도 알아낼 수 있는 결론은 굉장히 많았다. 박휘소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젊은 남자는 조용히 물었다.
“박휘소 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수정이끼에 대해서요.”
“……말마따나 적어도 5성 던전 이상에서 자랄 수 있는 순도의 수정이끼입니다. 당연히 던전의 몬스터들은 상당히 강할 테지요. 그런 던전에서 살아 나왔으니 상당히 강력한 헌터가 필요할 겁니다. 특기할 만한 점은, 수정이끼의 형태가 균일하다는 점이지요. 즉, 던전에 출입한 헌터는 단 한 명이라는 겁니다.”
“그렇겠지요.”
“예. 그것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한 헌터겠지요. 게다가 6성 이상의 던전을 찾아내고 숨길 정도의 정보력과 자본력을 갖춘 조직까지 갖추고 있을 겁니다. 아마 외국의 비밀 결사 클랜이 한국에 손을 뻗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대충 둘 정도 떠오르긴 하는데, 그 둘이 한국에 관심을 가질 이유를 전혀 모르겠군요. 신생 조직일지도 모르니 알아보는 게 좋겠습니다. 박휘소 씨가 만나 본 사람들은 어땠습니까? 기억할 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박휘소는 순간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오늘 유민을 만나면서 옆에 서 있던 남자.
겉보기에는 어수룩하고 별거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악수하기 위해 손을 쥐고 눈을 마주친 순간 확신했다.
이 남자는 지옥 같은 수라장에서 몇 번이나 생사를 넘나들었을 거라고.
조용히 마주 쥔 손안에서도 언제든 박휘소를 공격할 수 있는 폭력성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박휘소는 강현무라는 남자의 가면에 속지 않았다.
“한 명 기억할 만한 사람이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확신하기는 힘들어서 조금 더 관찰해 봐야 확신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아직 의도를 알아내지 못한 부분이 너무 많아서.”
“과연.”
젊은 남자는 수정이끼를 들어 올려 햇살에 비춰 보았다. 수정이끼가 햇살을 투명하게 바스러뜨리며 젊은 남자의 눈동자에 보랏빛 그림자를 드리웠다.
“어쨌든 이정도 물건이면 확실히 시련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한동안 그걸로 골머리를 썩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올 줄이야. 박휘소 씨가 큰일을 했어요.”
박휘소는 젊은 남자의 칭찬에도 우쭐해하지 않고 담담히 고개를 숙였다.
“한 가지 더 궁금하네요. 박휘소 씨, 이정도 수정이끼가 자생하는 던전에 들어가 혼자 채취해 오려면 얼마나 강해야 할까요? 박휘소 씨는 가능한가요?”
박휘소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이미 오래전에 은퇴한 몸입니다. 어림도 없겠지요. 적어도…… 단장님만큼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젊은 남자는 피식 웃었다. 박휘소는 농담을 즐겨 하는 편은 아니었다. 빈말은 더더욱 하지 않았다.
“그럼 휘소 씨께 부탁드려야겠군요. 놈들이 왜 이런 물건을 시장에 뿌리는지도요. 아, 그 유민이라는 연구 조교에 대해 조사 부탁드리겠습니다.”
박휘소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 주십시오, 이지태 단장님.”
***
난이도: 지옥.
현무는 늘 그랬듯 똑같은 사거리에서 구시대적인 체력 단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후욱, 허억!”
계단 위에 만들어 놓은 목재 봉으로 턱걸이를 반복했다. 단순한 근력 트레이닝이다.
하지만 현무는 현실에선 느껴 보지 못했던 숨이 턱 막히는 고통을 맛보고 있었다. 오랜만이었다.
‘189, 190!’
마침내 현무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이 경련을 일으키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현무는 손이 봉을 놓치기 전까지 계속해서 반복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그렇게 한계라고 생각하는 순간마다 한 번씩을 더 추가하던 순간, 기다렸던 내레이터 음이 울려 퍼졌다.
[근력 한계가 상승했습니다.]“큽!”
그걸로 현무는 긴장을 풀고 떨어지듯 내려왔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리 많은 횟수를 한 것도 아니었다. 운동 좀 한다는 사람들이 보면 비웃을 횟수였다.
능력자라면 말할 것도 없다. 현무도 현실에서라면 지치지 않고 반나절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지옥에서는 체력 소모도가 유독 빨랐다. 대신 성과가 좋았다.
‘역시 지옥에서는 조금만 격하게 움직여도 금방금방 한계가 상승하는군.’
평범하게 헬스장에 가서 체력 단련을 하는 것도 생각해 보았다. 능력자 전용의 헬스장도 있으니까.
신체 능력 따위 레벨 업으로 올릴 수 있는데 대체 왜 헬스장이 필요하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벨 업이 올려 주는 것은 신체 능력이나 스킬의 강화일 뿐, 유연성과 힘을 적절히 배분하는 법, 호흡법 같은 것은 결국 스스로의 단련이 필요했다.
그중에서도 현무는 지옥에서의 단련을 통해 한계를 빠르게 극복해 나가고 있었다. 그 효율은 현실에서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지옥에서는 현무가 딛고, 마시고, 만지고, 냄새 맡는 모든 것들이 단련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나는 전설이다’ 특전으로 경험치가 빠르게 상승하는 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
능력치는 따로 표시되지 않지만, 현재 현무의 레벨 이상으로 능력이 발달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 차이는 레벨 업에 비해 미미할지 몰라도, 분명히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럼…….”
현무는 이미 땀이 전신을 흠뻑 적신 상태였지만 일어서 달릴 준비를 시작했다. 근력이 한계에 이른 상태일 때 능력치는 더 빠르게 상승한다. 지금은 팔을 움직이기 힘드니, 다리를 쓰는 운동을 하는 편이 좋다.
“훅, 훅, 훅, 훅!”
현무는 아무도 없는 사거리를 혼자 달렸다. 약한 안개가 낀 사거리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풍겼지만 이젠 현무도 익숙해진 상태였다.
이 주변은 애초부터 몬스터가 그다지 나타나지 않는 곳 같았다.
생각해 보면 현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숨 쉬다 죽어 갈 때에도, 다른 몬스터에 의해 살해당한 일은 없었다.
‘고블린을 마주쳤던 게 특이 사항인지도 모르겠군.’
모기떼 같은 것만 주의하면 이 주변은 안전지대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한계 속도가 상승했습니다.] [독혈이 더욱 강력해집니다.]유산소 운동의 좋은 점은 이거였다. 현무가 미세먼지를 더욱 많이 들이마시면서 독혈의 능력치도 강해진다는 것.
현무는 독혈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강한지는 가늠하기 힘들지만, 예전에도 고블린의 손목을 끊어 놓을 정도의 독성은 품고 있었다.
고블린이 다시 나타난다면 맞설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무기였다.
지금이라면 고블린과 다시 만났을 때 이길 수 있을까?
현무는 짧게 그 순간을 회상해 보았다. 그리고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놈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전략을 획기적으로 수정할 수 없다면 꺾을 수 없다.
1km 정도의 사거리를 50바퀴 쯤 돌았을 때 현무는 멈춰 섰다. 상의가 완전히 땀으로 젖어 있었다.
지옥에서 땀을 흘리고 나면 유독 역한 냄새가 풍겨 왔다. 현무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다시 쉘터로 돌아갔다.
‘지옥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지?’
현무는 고개를 들고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다음 퀘스트까지 0일 18시간 14분 58초.]그렇다면 대충 사흘 정도 된 것 같다. 그동안 현실에서 챙겨 온 보존식과 캐러멜만 먹으면서 체력 단련에 매진했다.
이대로 계속 머물면서 수련한다면 좋겠지만, 현무는 그게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옥에서 살아있는 시간만큼 현실의 시간도 흐른 상태로 돌아간다.’
현무가 지옥에서 ‘살아서’ 지낸 시간만큼 현실의 시간도 흐른다. 그래서 지옥에서 고지되는 ‘다음 퀘스트까지의 시간’ 역시도 지옥에서든 현실에서든 똑같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시작되는 것이었다.
시간 축이 ‘살아있는 나’를 기준으로 맞춰져있다.
확실히 현재와 미래를 오가는 건 현무 본인밖에 없으니 납득할만했다. 현무는 쓰게 입맛을 다셨다. 이걸 알게 된 이상 마냥 지옥에서 시간을 보낼 수도 없게 된 셈이었다.
하지만 일정을 예측할 수 없었던 것보다는 나았다. 어찌됐든 성장 효율은 현재보다 난이도 지옥이 훨씬 낫다는 것은 여전하니까.
‘그것도 공간 오차는 아직 확인이 안됐어.’
생뚱맞게 이상한 곳에 떨어지면 곤란하다. 지옥의 미세먼지를 잔뜩 묻힌 채로 시내 한복판에 떨어진다거나 하면 곤란하니까.
공간 오차도 지옥에서의 체류시간과 상관있는 것 같으니, 가급적이면 지옥에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오늘 한번 나갔다 와서 오차를 갱신하고…… 그 전에 그걸 확인해 봐야겠군.’
현무는 상태창을 열어 스킬을 확인했다.
유민의 집에서 골드 박스를 까고 얻었던 바로 그 스킬이었다.
[배틀 헬퍼(전설): 능력자의 동작을 기록/제어해 명중률을 보정하고, 적의 동작을 예측해 판단을 돕는 스킬.]